<권은정의 일상만상> 더 친절하고 따뜻한 세상을 꿈꾼다
칼럼과 기고 :
2003/12/02 10:56

그것도 밤에 일어난 일이라 더욱 황망했다. 평소 예방주사 맞히던 동물병원에 전화했더니 야간진료는 곤란하다며 다른 병원을 안내해 주었다. 아프다고 끙끙거리는 강아지를 안고 비가 오는 길을 택시를 잡아타고 갔다. 그날 밤 새벽 한시가 넘어서야 강아지는 다리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동물에게까지 의료보험 적용이 당연히(!) 안된다. 다친 강아지가 불쌍하다는 생각과 치료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마음이 이리저리 헷갈렸다. 문득 가족 중 누군가가 다쳤는데 치료비가 없어 발을 굴러야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그런 생각이 수의사와 얘기하는 도중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강아지도 다리가 완전히 나으려면 한달 반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런저런 치료를 받으러 강아지를 안고 다니면서 드는 생각이 많아졌다. 다친 게 강아지가 아니라 만약 나라면, 그리고 치료를 하면 금방 낫는 병이 아니라 장애를 영영 지니고 살아야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자동차 없이 사는지라 순전히 대중교통에 의존해야하니 그런 생각은 더욱 절실하게 든다.
우선 버스를 탈 때 운전기사의 눈치를 아주 잘 살펴야 한다. 버스에 오를 때마다 운전기사가 인상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신경을 곤두세운다. 아무 말 하지 않는 기사에게는 탈 때나 내릴 때나 내편에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크게 한다. 그저께 한 운전기사는 '개를 데리고 다니려면 가방에 넣고 다녀야지!' 하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민망하고 화가 났지만 찍소리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
혹시라도 내리라고 할까봐 겁이 나서. 묵묵히 차창을 내다보며 내가 장애인이라면 아마 이런 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집에 들어앉아 있을 것이지 나다니기는 뭘 나다녀!'(하긴 아직 우리나라 장애인들은 휠체어를 탄 채 버스를 탈 엄두도 못 낸다.) 몇년 전 1급 장애인으로 야간학교를 다니던 한 아가씨를 만난 기억이 났다. '나처럼 이렇게 밖으로 다닐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데요.'
얼마 전부터 서울 시내에는 몇 대의 저상버스가 다닌다고 하지만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행운'의 장애인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버스에 내려 동물병원으로 가다보면 길가 빌딩에 장애인용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다. 기가 막히게도 그 길은 아주 짧은데다가 경사가 워낙 가파르게 져 있어 휠체어는커녕 그냥 내려가기도 겁이 날 정도다. 그동안 수없이 봐왔던 말도 안 되는 장애인용 경사로와 지하철 역 안에 매달려 있는 리프트가 떠오른다. 그 공중에 매달려 있는 듯한 리프트를 타다가 몇 명이나 목숨을 잃었는데도 장애인들의 지하철 이용이 크게 나아졌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한쪽 발을 들고 겅중거리며 집안을 돌아다니는 강아지는 매일 다니던 문턱 앞에서 번번이 멈춘다. 그 전에는 잘만 넘던 낮은 턱이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으로 변하고 말았다. 지난달 대학 입시 수능시험이 있던 날, 한 장애인 수험생은 시험을 포기하고 말았다. 몇 년간 같은 학교에서 장애인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렀건만 그 곳에는 여전히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무차별적인 차별'에 그 장애인은 항의의 표시로 수험장을 박차고 나갔다. 자신의 소중한 꿈이었을 시험마저 포기하면서. 그가 분노한 것이 어찌 화장실 그 자체였을까. 그냥 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나치고 잊어버리는 사람들의 무관심, 이 사회의 철벽같은 무심함에 그는 다시 절망했을 것이다.
강아지는 다쳐도 귀여움을 받는다. '어머, 다쳤네. 아휴, 귀여워라. 빨리 나아라.' 길을 오가며 만나는 행인들은 주인 품에 안겨 가는 장애 강아지에게서 '장애'를 찾아내지는 않는 것 같다. 따라서 차별의 눈초리는 없어 보인다. 강아지를 안고 걸으면서 과연 강아지가 아니라 내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다녀도 사람들은 친절할지 궁금해진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게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눈인사를 보내고, 차안에서 자리를 양보해주고, 은행 문을 잡아주고, 따스하고 긍정적인 표정을 지어 보일까?
바로 어제 한 방송국은 창립기념 행사의 하나로 장애인에게 헌신적인 봉사를 해온 한사람에게 사회봉사상을 수여했다고 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그냥 미담으로 흘러지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미담이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하도 많이 들어서 새로울 게 없는 '지루한' 이야기가 되어야한다. 다친 강아지를 안고 다니면서 '이상한'상상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될 그런 날은 언제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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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너무 따뜻하게 읽었습니다.
정말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장애인들에 대해 내 생각과 태도, 사회 시스템에 생각을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꾸준히 갔던가 다시 생각해 보기도 하구요.
선생님의 좋은 글들 계속 잘 읽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