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참여연대』는 매주 수요일, 사회적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수요논객>이라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참여연대의 입장과 다르더라도 논리성과 합리성을 갖춘 글이라면 주제와 자격의 제한 없이 소개할 것입니다. 논객으로 참여하고 싶은 분들은 자신의 성함과 신분, 연락처를 명기해 desk@pspd.org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이번 주 수요논객은 구영단님의 글입니다. 편집자 주

문민정부부터 참여정부까지, 3대 민간 출신 대통령의 내각 구성 때마다 이른바 '개혁-컬러' 인사의 내각 (또는 정당) 진입은 범개혁 진영, 특히 진보 진영으로부터 끊임없는 문제 제기의 대상이었다. 태생적, 존재론적 보수정당 구조에 몸담는 자체가 개혁성과 진보성의 분명한 한계로 나타날 것이고, 뻔히 사정을 알만한 사람들이 내각에 합류하는 모양새가 썩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이 모든 구설수의 밑바닥에 깔린 논리의 본질이었다.

이 논리가 어김없이 맞아떨어질 때도 나는 개혁-진보 인사의 내각 진입은 그들의 개혁 의지나 일관성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개혁이요, 진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만약 민주주의, 인권, 사회적 약자의 권리 옹호 등의 가치가 선이라는 데 누구나 동의한다면 그 가치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사람들에 대한 보상도 선이라는 것이 내 논리였다. 선은 많을수록 좋다.

이런 무미건조한 논리보다 좀 더 직설적인 심보는 이거였다. 친일, 독재, 인권 유린, 사회적 강자 옹호에 적극 가담했거나 그 언저리에 적당히 자신을 걸쳤던 인사들이 대대로 잘먹고 잘사는 이 사회의 처세술에 파열구를 내는 것이야말로 진보요, 개혁이 아니겠는가. 그 가장 확실한 방법이 항일, 민주주의, 인권, 사회적 약자의 권리 옹호에 나섰던 사람들도 당당히 권력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국민들의 눈앞에서 확인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다는 말이다.

그런 믿음은 지금도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 다만 한가지 심각한 고민이 추가됐을 뿐이다. 만약 권력의 한 자리를 차고앉은 그들이 과거 자신이 헌신한 가치들을 전혀 구현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그 가치들에 역행하는 모습을 계속 국민들에게 보여준다면 그것이 개혁과 진보에 미치는 악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최근에 이런 심각한 고민을 안겨 준 것은 참여정부가 시민사회와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는 현안에 있어 이른바 '개혁-컬러' 내각 인사들의 처신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의 처신을 야유하기 전에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이 있다. 파격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던 참여정부 초기의 내각 구성에 대해 시민사회의 기대가 의외로 크지 않았다는 것이 그것이다.

강금실, 김두관, 이창동 등 '파격 인사의 대명사'에 대한 기대감과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시기에 한 시민단체 인사는 "경제부처의 보수성이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부처의 상대적 개혁성을 잠식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시민단체 인사의 문제의식을 내 나름의 추론으로 간단히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성장과 분배, 민주주의와 효율, 인권과 안보, 환경과 경제 등 수많은 대립되는 가치들, 그러면서도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상호 의존하기도 하는 이 모순의 가치들을 어느 선에서 어떤 방식으로 조율할 것인가 하는 정책 결정자의 고민은 경제정책에서 가장 집약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

그러므로 70년대 국가 동원 이데올로기를 무색케 하는 '2만 달러 시대'라는 전근대적 경제기조 아래서 노사관계의 근대적 안정은 처음부터 공염불이 될 소지가 높다. '성장이 있어야 분배도 하고, 실업률도 줄어든다'는 근대적 패러다임 속에서는 환경, 여성, 평화 등의 가치들이 자신을 꽃 피울 단 한 뼘의 탈근대적 지평도 확보하기 어렵다.

우리 시민사회가 이런 기본교양을 갖추게 된 것 이외에 '개혁-컬러' 인사들에 대한 기대감을 획기적으로 낮춘 또 다른 이유로는 이른바 386이라는 단어가 처음에 내뿜던 아우라의 쇄락 과정을 가슴 아프게 지켜본 학습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참여정부 '개혁-컬러' 인사들에 대한 시민사회의 기대가 절대 크지 않았다는 것을 이처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이들이 이 소박한 기대마저 철저히 배신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가장 좋은 예가 테러방지법이다.

참여연대 장유식 협동처장(변호사)이 '안국동창'에서 테러방지법에 대해 까발린 대목을 보자.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이 대테러센터를 장악하고 관계기관의 대테러 활동을 기획·조정한다. 계엄 없이도 군병력의 동원이 가능하고, 감청 등 기본권 제한 근거가 마련되며,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합법화된다. 북한과 이슬람을 테러국으로 지목하여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고, 공연히 이슬람 전체를 적대시하고 있다. '제2의 국가보안법'이라는 지적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집시법 개악까지 포함해서, 테러방지법 신설은 두 가지 점에서 다른 개혁의 후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국정원이 직접 주도하고 청와대와 내각이 묵인, 방조, 동조한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이 절대 과반을 장악한 의회의 보수성이나 반개혁성에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는 점이 하나다. 정치관계법, 기업관련법 등에서 이미 존재하는 반개혁적 장치들을 그대로 유지하는 소극적 방식이 아니라 있는 법을 뜯어고치고 없는 법을 만들어서 기어이 하고야 말겠다는 반개혁이라는 점이 둘이다.

국정원이 반인권 전력을 끊임없이 의심받아온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과의 긴밀한 협력 속에 발의했다는 이 법안에 대해 이익단체인 대한변협도 위헌 소지가 있다는 성명서를 냈을 정도다. 하물며 대통령을 비롯, 강금실 법부무 장관, 고영구 국정원장, 문재인 민정수석, 이용철 민정2비서관 등 무려 5명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 인사들이 포진한 내각에서 이 법안에 브레이크를 거는 인사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제동은커녕 오히려 적극 추진한다고 한다.

이 블랙 코미디를 심심하면 터져나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언처럼 웃어넘길 수 없는 것은 이들이 주도할 법안이 미래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을 안기부 시절로 후퇴시킬 현재의 명백한 위협이라는 것이다.

백 번을 양보해서, 아무리 민변 출신의 국정원장이라 하더라도 관료기구 중 가장 왕성한 확대재생산의 욕구를 가진 정보기관의 속성을 제어할 수 없다고 치자. 파격 인사란 칭호를 받으며 내각에 입성한 다른 '개혁-컬러' 인사들은 참여정부의 이 변태적인 자기 부정에 대해 변변한 저항의 제스처라도 한 번 취해본 적이 있는가?

국정원이 주도하는 테러방지법을 '개혁-칼러' 인사들이 묵인 내지 동조하는 것은 참여정부 자신을 향한 정치적 마조히즘이다. 국정원과 정형근이란 이름이 표상하는 수구냉전 세력에게 테러방지법 채찍을 쥐어 주고, 그 채찍 아래 누워 엉덩이를 까놓고 "인권은 없다, 인권은 없다, 더 세게, 더 세게"를 외치는 꼴이란 말이다.

이 자학적 변태성은 건전한 시민사회의 상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질 사람들의 피와 눈물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 시민사회를 향한 가학의 극치다.

* <수요논객>에 실린 글은 사이버참여연대의 입장과 무관함을 밝힙니다.
구영단
2003/12/03 13:16 2003/12/0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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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민단체의 실체[펌]
    한국 시민사회의 문제점과 우리의 역할

    이석희 (단국대 연구교수)

    I. 한국시민사회의 현실

    요즘 “한국에 시민사회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하게 됩니다. 우리사회에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해야 할 책무들을 잘하고 있는지 항상 의문을 갖게 됩니다. 시민사회의 기본임무인 정부에 대한 견제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우리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참여연대와 같은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들과 한총련, 전교조, 민주노총과 같은 단체들은 국가의 장래나 공공의 이익보다는 노무현정권과 좌파세력의 홍위병을 자처하며 사회를 더욱 혼란 속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말하면서 사회주의적인 정책과 친북성향의 태도를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현실입니다.

    더욱이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이들 시민사회단체들은 조직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지키려는 보수 세력을 무력화시키려 다양한 전술과 전략을 구사하며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이들 좌파 시민사회단체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인원을 충원하고 교육을 통해 그들의 세력을 키워가고 있으며 우리사회 전부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요즘 “국민의 힘”이라는 시민단체는 당선운동을 통해 차기 총선에서 그들과 이념을 같이하는 후보자를 당선시키기 위해 적극적 운동을 하겠다고 공표하였습니다. 이러한 좌파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우리사회의 민주적 발전과 국민의 이익을 위하기보다 노정권과 소수의 좌파세력을 위해 세력을 점진적으로 넓혀가고 있습니다.


  2. 참여연대 회원들은 거짓, 욕설, 은폐조작에 동조하시나요?
    참여연대 운영자가 "객"이라는 사기성 이름으로 방문자에게 욕설과 비방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습니다. 이후 그런 사실을 게시판 프로그램 조작을 통해 은폐해왔다는 것도 공개되었습니다.

    거짓, 욕설, 감추기 등은 매우 심각한 부도덕한 행위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참여연대 안에서 벌어진 이런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스스로 비판하지 않는 참여연대 회원들은 은폐조작의 공범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어용 또는 홍위병 회원들만 존재하는 단체는 시민단체란 이름을 사용할 자격이 없습니다.

    참여연대 회원들은 거짓, 욕설, 은폐조작에 동조하시나요?

  3. 한사람 2003/12/04 23:42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답답합니다
    답답합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우리땅도 살만한곳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날이 오기를 손꼽아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수구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아주 요원해지기에 쏟아져 내려오는 물을 어찌 막아보려고 참여정부에 표를 주었던 사람이기도 하지요.
    아무렴 회창이아저씨가 통령이 된것 보다야 낫겠지만...
    참으로 요즘엔 암담하기만합니다. 이래저래...
    진정 고집을 부려야 될곳과 이해와 관용이 필요한곳이 완전히 서로 뒤빠뀌어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는것이 많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벙어리 냉가슴이라는 말이 맞는것 같습니다. 자칫 수구세력들에게 먹기좋은 떡만 찧어주고 있는것은 아닌지...

    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4. 밝은별 2003/12/05 11:34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자기 엉덩이에 채찍...이라...잼있는 표현이네요
    전에 경제위기와 검찰과의 관계를 잼있게 다룬 구영단님 맞죠?

    음..시간이 갈수록 참여정부에서 보이는 지나친 '대중화'에 대한 따금한 질책이군요. 지나친 '대중화'는 진보에 대한 역행을 의미하는 것이구요. 님의 지적은 개혁에 대한 현정부의 자발적 퇴행을 상징하는 테러방지법을 다룬 것이겠구요... 서글프지만 님의 지적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요즘 눈에 많이 띄는 것도 사실임다. 올초 경제관료들의 보수성으로 자신들의 급진적 이미지를 막아보겠다는 현정권의 의도는 훌륭하게 관철되고 있는 듯이 보이고...결국 현정권과 진보진영과의 벽은 갈수록 두터워지고...이거 테러방지법의 문제만은 아닌 거 같슴다. 각처에서 그런 조짐들이 터지고 있슴다...작년말에 콱 찍은 손가락에 생손이 날라 함다..거참 이상하지.

    님의 따끔한 지적들을 현정권이 모니터링해야 할텐데...한긴 해봐야 방법이 없긴 하겠지만 말임다. 암튼 앞으로도 현정부의 자발적 퇴행을 보다 따끔하게 지적할 필요가 절실하다 하겠슴다..

  5. 김포맨 2003/12/07 00:09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맞다
    맞다..
    요즘 세태에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질 않았는데 바로 이건 거 같다.

    '자기 엉덩이에 채찍을 휘두르는 변태성' - ㅋㅋㅋ 쥑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