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을 둘러싼 논란이 새로운 국면에 이르게 되었다. 한나라당의 김용갑, 박세환, 박원홍, 민주당의 최명헌, 자민련의 김종호 등 5명의 국회의원들이 2003년 12월 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령부를 옮기는 것은 안 되니 주한 미군이 달라는 대로 용산 미군기지의 28만평을 넘겨주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와 관련된 국회 차원의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는 데, 여기에 전체 147명의 국회의원들이 동의했다고 밝혔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을 둘러싼 주한 미군의 억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9년의 합의는 주한 미군이 터무니없는 이전비용과 이전적지를 요구하는 바람에 결국 없던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정부와 서울시는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에 대비해서 공원계획까지 다 세웠으나 모두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2003년 2월에 주한 미군은 다시 용산 미군기지를 반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반환협상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도 주한 미군은 다시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주한미군사령부와 연합사령부 등의 잔류 부대용 터로 28만평을 달라는 것이다. 왜 주한 미군은 이렇게 번번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나서는 것일까?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을 둘러싼 논란을 보노라면, 주한 미군은 '동맹의 의리'가 아니라 철저히 '장사꾼의 계산'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만일 주한 미군이 '동맹의 의리'에 따라 움직인다면, 진작에 용산 미군기지는 반환되었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전비용도 스스로 부담했어야 옳다. 이전적지의 문제도 기존의 기지를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해서 주한 미군이 멋대로 사용하는 땅을 줄이도록 했어야 한다. 그러나 주한 미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게 할 뜻은 조금도 없다. 주한 미군은 철저히 장사꾼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자신들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새로운 기지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면서도 최대한 이득을 취하려는 장삿속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이런 주한 미군을 거들고 나선 것이다.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우리가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을 요구하는 것은 크게 네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정치적 이유이다. 지리적으로 용산은 서울의 한복판이다. 이런 곳에 외국군의 대부대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용산 미군기지의 주소는 캘리포니아로 되어 있거니와 용산의 지도에 표시조차 되어 있지 않은 '서울 속의 미국'이다. 용산 미군기지는 이 나라가 '미국의 군사적 식민지'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용산 미군기지는 한국과 미국이 평등한 '동맹국'의 관계가 아니라 불평등한 약소국과 강대국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예이다.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은 한국과 미국이 참된 동맹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둘째, 상징적 이유이다. 용산 미군기지는 이 나라의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모든 미군기지와 마찬가지로 두가지 상징적 뜻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여전히 전쟁상태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우리를 미국이 지켜주고 있다는 것이다. '군사적 식민지' 상태는 이러한 상징적 차원을 통해 정당화된다. 따라서 용산 미군기지를 비롯한 이 나라의 모든 미군기지는 사실상 반환대상이며, 당장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해도 불평등한 주둔방식은 빠른 시간 내에 바로잡아야만 한다. 미군기지를 그냥 내버려두고 평화나 통일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군기지는 그 자체로 우리가 전쟁이라는 극한상태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최면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은 이런 '최면효과'를 줄이고 현실을 올바로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세째, 생태적 이유이다. 용산 미군기지는 주한 미군이 차지하고 있는 특수지역이었기 때문에 박정희의 개발독재에서 비롯된 난개발의 광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강변에는 온통 아파트들이 난립했어도 용산 미군기지가 자리잡고 있는 지역은 여전히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 땅은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통해 마구잡이로 부서지고 망가진 서울의 자연을 되살릴 수 있는 소중한 유보지이다. 이곳을 돌려받아 숲을 조성한다면, 그 숲은 말 그대로 서울을 살리는 '생명의 숲'이 될 것이다. 그 결과 북한산에서 남산을 거쳐 한강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남북녹지축이 되살아날 것이며, 이 축을 기둥으로 삼아 서울의 동서로 넓은 녹지그물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용산 미군기지는 서울의 생태적 희망이다. 이런 희망 때문에 우리는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네째, 도시개발의 이유이다. 용산 미군기지는 서울의 도시개발에 심각한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동작대교와 지하철 4호선의 삼각지-신용산-이촌 구간을 들 수 있다. 먼저 동작대교는 북쪽 끝부분이 앞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잘려나간 채로 완공되었다. 용산 미군기지를 지나 남대문으로 이어졌어야 하지만 주한 미군이 반대했기 때문에 동작대교는 '불구의 다리'가 되고 만 것이다. 지하철 4호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삼각지-신용산-이촌 구간은 거의 ㄴ자로 휘어져 돈다. 용산 미군기지를 에둘러 피해가기 위해 이렇게 '불구의 노선'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주변 지역의 재개발이 오랫동안 규제되었던 것도 역시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도시개발의 경우는 다른 이유들에 비해 더욱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서울의 가장 심각한 도시문제는 이윤의 극대화를 노린 난개발이기 때문이다.

주한 미군이 용산 미군기지를 돌려주기로 한 것도 역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반환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슐츠 전 국무장관이 1989년에 서울을 방문하면서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성남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용산 미군기지로 왔는 데, 이때 하늘에서 용산 미군기지를 보고는 돌려주도록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럼스펠트 국방장관이 '센트럴파크에 한국군이 주둔한다면 어떻겠느냐'며 돌려주라고 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주한 미군의 '장삿속'이다. 실제로는 자신들의 전략적 필요에 의해 새로운 기지계획을 추진하는 것이면서도 한국인이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는 식으로 대응하면서 '꿩 먹고 알 먹고' 하려는 것이다. 이런 뻔한 '장삿속'과 그것을 감추려는 오만한 태도가 '반미감정', 나아가 '반미주의'의 원천이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미국이 참된 동맹국이 되려면, 이런 '장삿속'과 오만한 태도부터 확 뜯어고쳐야 한다.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라면 당연히 그 누구보다도 나라의 국익을 위해 애써야 한다. 주한 미군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라고 외치고 나선 147명의 의원들을 보며 다시금 이 당연한 명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은 물론이고 모든 미군기지의 반환은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역사적 과제이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용산 미군기지의 17만평을 주한 미군에게 계속 제공하기로 했다. 이것만으로도 사실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크게 퇴색되고 만다. 그런데 주한 미군은 11만평을 추가로 요구해서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을 아예 무화시키려 하고 있고, 147명의 국회의원들은 이런 주한 미군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주한 미군과 치열한 협상이 진행되는 중에 국회의원들이 주한 미군의 일방적인 요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이 나라는 정녕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미국'이란 말인가?

용산 미군기지는 완전히 반환되어야 한다. 28만평을 내달라는 주한 미군의 요구는 말할 것도 없고 17만평을 계속 제공하기로 한 정부의 협상안도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지금 미국은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최대한 활용해서 최대한 많은 이익을 거두려고 하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뻔한 장삿속으로 반환협상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반환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있다. 예컨대 일단 17만평의 반환을 유보하더라도 5년쯤 뒤에는 완전히 반환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용산 미군기지는 서울의 복판으로 되살아날 수 있고, 한미관계도 좀더 평등한 동맹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은 공지전의 시대에 사령부가 옮겨간다고 해도 안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령부의 존속을 이유로 용산 미군기지를 사실상 존치시키려는 것은 잘못이다. 용산 미군기지는 하루빨리 완전히 반환되어 '생명의 숲'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역사의 흐름이다.

역사의 흐름에 거스르는 것을 두고 옛사람들은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고 했다. 사마귀가 수레바퀴에 맞선다는 뜻이다. 그러나 수레바퀴에 맞서는 사마귀는 수레바퀴에 깔려 죽을 수밖에 없다. 누구도 역사의 흐름에 거스를 수는 없다.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은 역사의 요청이다. '장삿속'으로 반환협상을 흐트리는 주한 미군과 이런 주한 미군을 옹호하고 나선 국회의원들을 보며 수레바퀴에 맞서는 사마귀 떼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냉전이 낳아 기른 기형 철갑사마귀들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잠시 멈출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경은 수레바퀴가 그들을 깔고 지나갈 것이다. 역사란 그런 것이다. 사마귀들은 모르겠지만.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2003/12/09 11:01 2003/12/0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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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여연대 정책위원장님은 거짓, 욕설, 은폐조작에 동조해서 침묵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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