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태의 잠망경> 파괴되는 계곡들
칼럼과 기고/홍성태칼럼 :
2003/12/15 11:31
2003년 12월 5일, 언론은 국립환경연구원이 ‘수달이주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거제도의 구천댐에 3-4마리의 수달이 살고 있는 데, 이 녀석들을 잡아서 5km 떨어진 연초댐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연초댐에는 2-3마리의 수달이 살고 있는데, 연초댐의 서식환경이 더 좋아서 이곳으로 옮기기로 했다고 한다. 개체수가 너무 적어 근친교배에 의한 멸종의 위험이 있으므로 이런 이주계획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수달의 서식환경을 파괴했기 때문에 수달은 멸종의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수달이 계속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우리가 수달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수달을 살리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수달은 머지않아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수달이주계획’은 수달을 살리고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귀중한 시도이다.
‘수달이주계획’에 관한 보도를 접하고 지난 가을의 또 다른 수달 관련 보도가 생각났다. 2003년 9월 3일, 언론에서는 별로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강원도에서 수해복구를 한답시고 깊은 산 속의 계곡을 마구잡이로 파괴해서 먹이를 구하지 못하고 탈진한 수달들이 여럿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마구잡이 복구공사 때문에 계곡 물이 더러워져서 물고기들이 계곡을 떠났고, 그래서 결국 수달들이 탈진해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수달은 천연기념물이다. 그렇다면 수달이 사는 곳은 당연하게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지 않을까?
복구공사 때문에 수달이 굶어죽을 처지가 되었던 것은 복구공사가 올바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파괴공사’라고 부르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두가지 점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맑은 계곡 물에 사는 물고기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흙탕을 일으키며 공사를 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파괴공사’였다. 흙탕을 방지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공사를 했기 때문에 유리같이 맑은 계곡 물이 졸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흙탕물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둘째, 자연 그대로의 물가와 물밑 환경을 크게 파괴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단순히 흙탕물을 일으킨 차원을 넘어서는 대대적인 ‘파괴공사’였다. 흙탕물은 시간이 지나면 맑은 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바윗돌을 들어내고 시멘트 둑을 쌓는 식으로 망가트린 물밑과 물가 환경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복구공사의 이름으로 이런 식의 ‘파괴’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참담한 현실이다.
계곡 물이 더러워져서 수달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그 얼마 전에 오대산의 깊은 계곡을 돌아다니며 내 눈으로 직접 보았던 모습이 떠올랐다. 2003년 8월 22일과 23일 나는 진부에서 속사를 거쳐 구룡령을 넘고 양양으로 가서 어성전 계곡을 들러서 집으로 돌아왔다.
영동고속도로로 진부까지 가서 국도를 타고 속사로 갔다. 그 길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이승복 어린이’가 다녔던 국민학교이다. 그곳을 지나 월정사로 가서 비포장도로를 타고 구룡령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월정사 입구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직원이 2002년의 태풍 루사가 입힌 피해를 아직도 복구하지 못해서 그 길로는 갈 수 없다고 막았다. 결국 온 길을 한참 되돌아가 구룡령으로 가야 했다. 가는 길에 만난 찻길 옆 계곡에는 맑은 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다. 그 시원한 물줄기를 보며 기분이 좋아져서 구룡령을 넘었다.
구룡령 정상에는 찻길 위로 구름다리가 놓여 있었다. 동물의 이동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동물 이동로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동물이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기보다는 그저 생색을 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그 한쪽 옆에 커다란 휴게실이 있고, 그 앞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차들이 무시로 다니고, 휴게실에서는 요란한 소리며 불빛이 그치질 않는 데, 어느 정신나간 짐승이 이 길로 오가겠는가? 귀 먹고 눈 먼 짐승이 아니라면 야성을 잃은 짐승들만이 이 길로 다니지 않을까? 여기에 동물 이동로를 만들 바에야 휴게소를 짓지 말았어야 했다.
구룡령을 넘어 양양쪽 입구에서 민박을 했다. 속초 출신의 털보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우리를 진심으로 환대해주었다. 토종닭을 한마리 잡아서 백숙을 해 먹고, 주인 내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여름밤이 깊어갔다. 물론 얘기만 나누지는 않았다. 인사를 나누고 한잔 두잔 권한 것이 늘어나서 결국 많은 술을 함께 마시게 되었다. 털보 아저씨는 LP판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1960-70년대 락음악이 특히 많았다. 그렇지만 턴테이블이 없어서 음악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노래방 기계가 있었다. 기계가 좋지는 않았지만, 취흥에 젖어서 신나게 놀았다. 아주 유쾌한 밤이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났다. 비가 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꼭 어성전을 가 보고 싶었다. 털보 아저씨는 이곳이 오대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인 데, 루사 때문에 너무 심하게 망가지고 말았다고 했다. 나는 그 현장을 꼭 보고 싶었다. 어쩌면 가지 않는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깊디깊은 계곡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가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절망감과 좌절감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양양을 향해 구룡령을 내려가는 길 옆은 큰 계곡이다. 그 계곡의 곳곳에서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2002년의 루사 때 입은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공사였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복구공사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계곡의 자연을 무지막지하게 파괴하는 단순한 토목공사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깊은 계곡마저 이런 식으로 파괴한다면, 우리는 어디서 살아 있는 자연을 만나게 될까? 가슴은 답답해지고 머리를 뜨거워졌다. 그러나 이곳에서 본 것은 어성전 가는 길에 본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였다.
어성전 쪽은 구룡령 쪽에 비해 훨씬 더 깊디깊은 계곡이다. 그런데 이렇게 깊디깊은 계곡이 대대적으로 파괴되고 있었다. 긴 계곡 전역에서 바위를 부수고 모래를 파내어 바닥을 편편하게 고르는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또한 돌과 흙과 풀이 복잡하게 어우러져 있어야 할 물가는 직선형으로 다듬어져서 돌무더기나 시멘트로 뒤덮이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렇게 깊디깊은 계속까지도 도심 하천처럼 직강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천의 직강화는 살아 있는 하천을 단순한 수로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하천의 생명력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직강화했던 하천들을 다시 원래의 모습대로 되살리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깊디깊은 계곡까지도 직강화하는 엄청난 잘못을 대대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대적인 개발공사도 진행되고 있었다. 망가진 길을 고친다면서 곳곳에서 확포장 공사를 벌이고 있었고, 이 때문에 크고작은 계곡들이 곳곳에서 망가지고 있었다. 또한 곳곳에서 다리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예전처럼 이곳의 정취와 어울리는 작은 다리들이 아니라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로 지탱되는 다리였다. 계곡 복판에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 세워지고 그 위로 커다란 상판이 놓였다. 길도 다리도 모두 커졌다. 그 결과 산골의 정취가 엄청나게 파괴되고 있었다. 어성전 가는 길은, 아니 어성전조차도 더 이상 깊디깊은 산골이 아니었다. 그곳은 빠르게 대규모로 도시화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사시사철 차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곳곳에 카페며 가든이며 모텔이 들어서게 될 모양이었다. 어성전은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시 오대산을 넘는 중에도 계곡 곳곳에서 파괴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국립공원 안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파괴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포크레인이 계곡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계곡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포크레인이 계곡 안으로 들어가는 까닭은 계곡을 파괴하기 위해서이다. 국립공원 안에서도 포크레인이 계곡 안에서 바위를 마구 파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국립공원이 마구 파괴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더 길을 가다보니 길가를 정원석으로 장식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계곡의 바윗돌을 파괴해서 길가로 옮겨서 장식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몰상식한 파괴가 이토록 버젓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지나가는 곳이 국립공원 안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계곡의 바윗돌은 장식용으로 팔려나가기도 하는 모양이다. 전원주택이나 펜션 등을 장식하기 위해 자연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자연 속의 삶을 즐기기 위한 전원주택이나 펜션이 자연을 파괴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자연을 돌보고자 하지 않는다면, 이런 역설적인 일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것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지금의 복구공사는 좋은 예이다. 복구란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을 뜻한다. 복구의 이름으로 파괴를 저지르는 것, 자연의 이름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것, 이제 이런 후진적 행태는 그만두어야 한다. 자연을 파괴하는 복구공사가 아니라 파괴된 자연을 되살리는 복구공사를 벌여야 한다.
지금처럼 계곡을 파괴한다면, 우리는 결국 이 땅에서 수달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계곡이 살아 있고 수달이 살아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삭막하고 쓸쓸해질 것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 계곡을 지키고 살려야 한다.
우리가 수달의 서식환경을 파괴했기 때문에 수달은 멸종의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수달이 계속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우리가 수달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수달을 살리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수달은 머지않아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수달이주계획’은 수달을 살리고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귀중한 시도이다.
‘수달이주계획’에 관한 보도를 접하고 지난 가을의 또 다른 수달 관련 보도가 생각났다. 2003년 9월 3일, 언론에서는 별로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강원도에서 수해복구를 한답시고 깊은 산 속의 계곡을 마구잡이로 파괴해서 먹이를 구하지 못하고 탈진한 수달들이 여럿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마구잡이 복구공사 때문에 계곡 물이 더러워져서 물고기들이 계곡을 떠났고, 그래서 결국 수달들이 탈진해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수달은 천연기념물이다. 그렇다면 수달이 사는 곳은 당연하게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지 않을까?
복구공사 때문에 수달이 굶어죽을 처지가 되었던 것은 복구공사가 올바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파괴공사’라고 부르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두가지 점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맑은 계곡 물에 사는 물고기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흙탕을 일으키며 공사를 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파괴공사’였다. 흙탕을 방지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공사를 했기 때문에 유리같이 맑은 계곡 물이 졸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흙탕물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둘째, 자연 그대로의 물가와 물밑 환경을 크게 파괴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단순히 흙탕물을 일으킨 차원을 넘어서는 대대적인 ‘파괴공사’였다. 흙탕물은 시간이 지나면 맑은 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바윗돌을 들어내고 시멘트 둑을 쌓는 식으로 망가트린 물밑과 물가 환경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복구공사의 이름으로 이런 식의 ‘파괴’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참담한 현실이다.
계곡 물이 더러워져서 수달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그 얼마 전에 오대산의 깊은 계곡을 돌아다니며 내 눈으로 직접 보았던 모습이 떠올랐다. 2003년 8월 22일과 23일 나는 진부에서 속사를 거쳐 구룡령을 넘고 양양으로 가서 어성전 계곡을 들러서 집으로 돌아왔다.
영동고속도로로 진부까지 가서 국도를 타고 속사로 갔다. 그 길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이승복 어린이’가 다녔던 국민학교이다. 그곳을 지나 월정사로 가서 비포장도로를 타고 구룡령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월정사 입구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직원이 2002년의 태풍 루사가 입힌 피해를 아직도 복구하지 못해서 그 길로는 갈 수 없다고 막았다. 결국 온 길을 한참 되돌아가 구룡령으로 가야 했다. 가는 길에 만난 찻길 옆 계곡에는 맑은 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다. 그 시원한 물줄기를 보며 기분이 좋아져서 구룡령을 넘었다.
구룡령 정상에는 찻길 위로 구름다리가 놓여 있었다. 동물의 이동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동물 이동로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동물이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기보다는 그저 생색을 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그 한쪽 옆에 커다란 휴게실이 있고, 그 앞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차들이 무시로 다니고, 휴게실에서는 요란한 소리며 불빛이 그치질 않는 데, 어느 정신나간 짐승이 이 길로 오가겠는가? 귀 먹고 눈 먼 짐승이 아니라면 야성을 잃은 짐승들만이 이 길로 다니지 않을까? 여기에 동물 이동로를 만들 바에야 휴게소를 짓지 말았어야 했다.
구룡령을 넘어 양양쪽 입구에서 민박을 했다. 속초 출신의 털보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우리를 진심으로 환대해주었다. 토종닭을 한마리 잡아서 백숙을 해 먹고, 주인 내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여름밤이 깊어갔다. 물론 얘기만 나누지는 않았다. 인사를 나누고 한잔 두잔 권한 것이 늘어나서 결국 많은 술을 함께 마시게 되었다. 털보 아저씨는 LP판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1960-70년대 락음악이 특히 많았다. 그렇지만 턴테이블이 없어서 음악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노래방 기계가 있었다. 기계가 좋지는 않았지만, 취흥에 젖어서 신나게 놀았다. 아주 유쾌한 밤이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났다. 비가 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꼭 어성전을 가 보고 싶었다. 털보 아저씨는 이곳이 오대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인 데, 루사 때문에 너무 심하게 망가지고 말았다고 했다. 나는 그 현장을 꼭 보고 싶었다. 어쩌면 가지 않는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깊디깊은 계곡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가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절망감과 좌절감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양양을 향해 구룡령을 내려가는 길 옆은 큰 계곡이다. 그 계곡의 곳곳에서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2002년의 루사 때 입은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공사였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복구공사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계곡의 자연을 무지막지하게 파괴하는 단순한 토목공사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깊은 계곡마저 이런 식으로 파괴한다면, 우리는 어디서 살아 있는 자연을 만나게 될까? 가슴은 답답해지고 머리를 뜨거워졌다. 그러나 이곳에서 본 것은 어성전 가는 길에 본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였다.
어성전 쪽은 구룡령 쪽에 비해 훨씬 더 깊디깊은 계곡이다. 그런데 이렇게 깊디깊은 계곡이 대대적으로 파괴되고 있었다. 긴 계곡 전역에서 바위를 부수고 모래를 파내어 바닥을 편편하게 고르는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또한 돌과 흙과 풀이 복잡하게 어우러져 있어야 할 물가는 직선형으로 다듬어져서 돌무더기나 시멘트로 뒤덮이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렇게 깊디깊은 계속까지도 도심 하천처럼 직강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천의 직강화는 살아 있는 하천을 단순한 수로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하천의 생명력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직강화했던 하천들을 다시 원래의 모습대로 되살리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깊디깊은 계곡까지도 직강화하는 엄청난 잘못을 대대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대적인 개발공사도 진행되고 있었다. 망가진 길을 고친다면서 곳곳에서 확포장 공사를 벌이고 있었고, 이 때문에 크고작은 계곡들이 곳곳에서 망가지고 있었다. 또한 곳곳에서 다리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예전처럼 이곳의 정취와 어울리는 작은 다리들이 아니라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로 지탱되는 다리였다. 계곡 복판에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 세워지고 그 위로 커다란 상판이 놓였다. 길도 다리도 모두 커졌다. 그 결과 산골의 정취가 엄청나게 파괴되고 있었다. 어성전 가는 길은, 아니 어성전조차도 더 이상 깊디깊은 산골이 아니었다. 그곳은 빠르게 대규모로 도시화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사시사철 차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곳곳에 카페며 가든이며 모텔이 들어서게 될 모양이었다. 어성전은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시 오대산을 넘는 중에도 계곡 곳곳에서 파괴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국립공원 안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파괴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포크레인이 계곡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계곡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포크레인이 계곡 안으로 들어가는 까닭은 계곡을 파괴하기 위해서이다. 국립공원 안에서도 포크레인이 계곡 안에서 바위를 마구 파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국립공원이 마구 파괴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더 길을 가다보니 길가를 정원석으로 장식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계곡의 바윗돌을 파괴해서 길가로 옮겨서 장식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몰상식한 파괴가 이토록 버젓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지나가는 곳이 국립공원 안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계곡의 바윗돌은 장식용으로 팔려나가기도 하는 모양이다. 전원주택이나 펜션 등을 장식하기 위해 자연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자연 속의 삶을 즐기기 위한 전원주택이나 펜션이 자연을 파괴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자연을 돌보고자 하지 않는다면, 이런 역설적인 일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것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지금의 복구공사는 좋은 예이다. 복구란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을 뜻한다. 복구의 이름으로 파괴를 저지르는 것, 자연의 이름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것, 이제 이런 후진적 행태는 그만두어야 한다. 자연을 파괴하는 복구공사가 아니라 파괴된 자연을 되살리는 복구공사를 벌여야 한다.
지금처럼 계곡을 파괴한다면, 우리는 결국 이 땅에서 수달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계곡이 살아 있고 수달이 살아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삭막하고 쓸쓸해질 것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 계곡을 지키고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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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정책위원장님은 거짓, 욕설, 은폐조작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기 때문에 한달이 다되도록 침묵하고 계십니까?
2003년 11월 19일 참여연대 운영자가 "객"이라는 사기성 이름으로 방문자에게 욕설과 비방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습니다. 이후 그런 사실을 게시판 프로그램 조작을 통해 은폐해왔다는 것도 공개되었습니다.
거짓, 욕설, 감추기 등은 매우 심각한 부도덕한 행위로서, 그런 행위가 도덕성을 존재의 기반으로 하는 시민단체, 그것도 시민단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시민단체 홈페이지 운영자가 그랬다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참여연대 안에서 벌어진 이런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스스로 비판하지 않는 참여연대 회원들은 은폐조작의 공범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어용 또는 홍위병 회원들만 존재하는 단체는 시민단체란 이름을 사용할 자격이 없습니다.
참여연대 정책위원장님은 거짓, 욕설, 은폐조작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기 때문에 한달이 다되도록 침묵하고 계십니까? 자신들이 행한 행동에 대한 자기비판과 속죄를 거부하는것은 참여연대가 해도해도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파괴되는 시민사회
건강보험 흑자라고 공단직원 월급 팍팍 올려주고, 대학교 다니는 약사의 아들이
싸줘도 되는 일에 엄청난 조제료를 지불하는 짓거리는 애써 무시하는 시민단체
는 각성하라.
의사들이 환자치료해 주고 받는 정당한 대가를 멋대로 깎아서 남은 돈이니,
당연히 돌려줘야 할 것이다.
건강보험료가 환자의 치료에 쓰여야지 쓸데없는 데는 팍팍 쓰고
실제 꼭 필요한 치료는 가로막고 삭감하는 엉터리 공단과 복지부와 한 통속이
되어 국민을 속이고 우롱하는 시민단체는 각성하라.
복지부의 약사공무원, 사이비 시민단체, 건강보험공단이
일체가 되어 숫자조작으로 마치 수가는 오르는 것처럼하고
야간진료시간 조정하고, 불편한 몸으로 찾아온 할머니
할아버지들 한달내내 물리치료해도 12일만 인정하고,
초진 규정을 바꾸어서 또 엄청나게 삭감하고 해서 실제적인
병의원에서의 체감수가는 최소 10%이상 인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숫자놀음으로 약국의 실제
수입에는 변동이 없게 착실히 챙겨준 약사공무원과 이를
알고도 아무말 없는 시민단체는 각성하라.
지난 3년간 늘어난 보험료 지출 7조 8천억 가운데 60%인 4조 8천억이
약사의 약싸는 비용으로 들어갔는데 이 돈은 순수히 의약분업으로
추가로 국민들이 약사에게 지불한 돈이다. 이런 엄청난 약사의
수입으로 요즘 밤에는 진통제 한알 구하기 힘들고, 아침일찍
문을 여는 약국이 다 사라졌다. 예전에 약국에서 담배도 팔고
담배 끊는 약도 팔던 약사들의 생리를 볼 때 돈에는 물불 가리지
않는 그들이 얼마나 철저히 계산된 의약분업인지 알 수가 있다.
왜 약국으로 가는 실제 수가는 인하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이런 시민단체들이 조용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또 건강보험공단의 1만명이 넘는 인력이 모두 노조에 가입에 있으니
항상 시민단체와 같이 나와서 한통속이 되어 기자회견도 하고
하니 그들의 임금이 얼마나 많은지, 지난 3년간 건강보험의
엄청난 적자에도 불구하고 매년 인상되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보험공단 직원들과 코드가 맞아서인지 왜 언급이 없나?
정직을 우선한다는 시민단체는 각성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