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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터뷰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의 성격은 모두 다르다. 직업이나 하는 일도 갖가지인데다 나이층도 다양하다. 그러나 결국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나눠지기 마련이다. 이 성별의 차이가 내게는 특히 의미심장하다. 글쓰기의 난이도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여성 인터뷰 대상자를 만나고 나면 뭘 쓰나 막막해질 때가 특히 많다는 것이다. 도대체 내가 이 사람을 제대로 만났는지, 이 사람이 한 말을 제대로 알아 들었는지,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람을 읽어내는 내 능력이 부족한 탓인가? 그 사람은 왜 내게 입을 다문 것일까? 내가 여성인 게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나? 온갖 고민을 했다. 그리고 여성들의 자기 드러내기가 능숙하지 못한 데는 사회적인 요인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인권운동을 하는 어느 여성 운동가를 만난 자리에서 우연히 그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일에 관해서는 일사천리로 얘기를 이끌어갔다. 그러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개인 신상에 관한 질문으로 넘어간 순간이었다. 그런데 말하는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는 게 아닌가. 무슨 유명스타라서 감추어야할 프라이버시가 있는 사람도 아닐텐데... 그는 오직 일과 일로만 살아온 담백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내 개인적인 얘기는 할 게 없어요. 뭐가 있어야지.' 그가 말을 아끼는 데는 쑥스러움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그가 반문했다. '솔직히 인터뷰란 게 남성적인 게 아닌가요?'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하는 남성들을 위해 펴놓는 장이라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모습은 바로 이렇다'라고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남성들의 자기표현 구도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문득 몇 년 전 자신의 이력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내게 잘 받아 적으라고 주의를 주던 한 남성 인터뷰이가 떠올랐다. 인터뷰가 남성적인 것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여성들이 머뭇거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물론 여성들도 자기를 드러 내고 싶어한다. 다만 그 방법이나 절차에 있어서 남성보다 더 까다롭고 철저한 자기검증을 거친다는 차이가 있다. 즉, 여성은 스스로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기말로 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많다. '반드시 ...해야 한다'와 같은 말은 상당히 조심스럽게 한다. 자신의 언행이 조금이라도 함량미달이라고 생각되면 아예 입을 다문다. 내가 그렇게 행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한테 떠벌릴 수 있겠느냐. 그들은 어떤 이념을 얘기하거나 주장할 때 자신의 행동이, 말이, 심지어 삶 전체가 그 주장과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를 항상 염두에 두는 것 같았다. 원칙 따로, 삶 따로 살면서도 아무 거리낌 없는 사람들이 남성들 중에 더 많다. 그런 여성적 순결주의가 때로 나를 답답하게 만들기도 했다. 세상에 하기 좋은 말이 얼마나 많은가, 그냥 목청 높여 주장하면 나도 받아 적기 좋을텐데. 하지만 빙긋이 웃고 넘어가는 여성들의 조용한 태도가 남자들의 허장성세보다 얼마나 더 무게 있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말 바꾸기를 손바닥 뒤집기처럼 예사로 하고 한결같이 제자리걸음으로 한심한 남성 정치인들, 부정직한 남성 고위 공직자들을 볼 때마다 나는 저런 높은 자리에 여성들을 더 많이 들인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최근 서울대 법대에 여성교수가 더 임용될 예정이라는 뉴스는 더욱 반갑다. 여성적인 자기 검증시스템이 법학교육 전반에 투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생명 윤리와 법사이의 간격을 꼼꼼하고 사려 깊게 메워줄 박은정 교수 같은 여성법학자에 대한 기대는 크다.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는 많은 의미에서 기준열이 된다. 그동안 남성전용 구역으로 여겨졌던 법대에서 여성교수를 영입하는 '타의 모범'을 보였으니 다른 대학사회에서도 이런 선례를 따르면 좋지 않을까 기대되는 것이다. 올해 서울대 법대 신입생 중에서 여학생의 비율이 더 높아졌다는 소식도 들린다. 법대에 웬 '여자'교수냐고 수군거리고 소리 질러대는 '남자'주의자들은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만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여성들은 대부분 따듯하고 사려 깊고 정직하고 겸손하다. 사회 여러 자리에서 이런 여성들의 자기 검증 시스템이 풀가동 될 수 있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분명히 '진화'할 것이다.
권은정 (인터뷰 전문기자, 번역문학가)
2003/12/16 10:33 2003/12/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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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여연대 운영자가 행한 거짓, 욕설, 은폐조작을 방치하는 것은 시민단체의 직무유기 아닙니까?
    2003년 11월 19일 참여연대 운영자가 "객"이라는 사기성 이름으로 방문자에게 욕설과 비방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습니다. 이후 그런 사실을 게시판 프로그램 조작을 통해 은폐해왔다는 것도 공개되었습니다.

    거짓, 욕설, 감추기 등은 매우 심각한 부도덕한 행위로서, 그런 행위가 도덕성을 존재의 기반으로 하는 시민단체, 그것도 시민단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시민단체 홈페이지 운영자가 그랬다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참여연대 안에서 벌어진 이런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스스로 비판하지 않는 참여연대 회원들은 은폐조작의 공범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어용 또는 홍위병 회원들만 존재하는 단체는 시민단체란 이름을 사용할 자격이 없습니다.

    참여연대 회원들은 거짓, 욕설, 은폐조작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기 때문에 한달이 다되도록 침묵하고 계십니까? 자신들이 행한 행동에 대한 자기비판과 속죄를 거부하는것은 참여연대가 해도해도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참여연대 운영자가 행한 거짓, 욕설, 은폐조작을 방치하는 것은 시민단체의 직무유기 아닙니까?

  2. 참견연대 2003/12/17 15:18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의미심장
    건강보험 흑자라고 공단직원 월급 팍팍 올려주고, 대학교 다니는 약사의 아들이
    싸줘도 되는 일에 엄청난 조제료를 지불하는 짓거리는 애써 무시하는 시민단체
    는 각성하라.
    의사들이 환자치료해 주고 받는 정당한 대가를 멋대로 깎아서 남은 돈이니,
    당연히 돌려줘야 할 것이다.
    건강보험료가 환자의 치료에 쓰여야지 쓸데없는 데는 팍팍 쓰고
    실제 꼭 필요한 치료는 가로막고 삭감하는 엉터리 공단과 복지부와 한 통속이
    되어 국민을 속이고 우롱하는 시민단체는 각성하라.

    복지부의 약사공무원, 사이비 시민단체, 건강보험공단이
    일체가 되어 숫자조작으로 마치 수가는 오르는 것처럼하고
    야간진료시간 조정하고, 불편한 몸으로 찾아온 할머니
    할아버지들 한달내내 물리치료해도 12일만 인정하고,
    초진 규정을 바꾸어서 또 엄청나게 삭감하고 해서 실제적인
    병의원에서의 체감수가는 최소 10%이상 인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숫자놀음으로 약국의 실제
    수입에는 변동이 없게 착실히 챙겨준 약사공무원과 이를
    알고도 아무말 없는 시민단체는 각성하라.

    지난 3년간 늘어난 보험료 지출 7조 8천억 가운데 60%인 4조 8천억이
    약사의 약싸는 비용으로 들어갔는데 이 돈은 순수히 의약분업으로
    추가로 국민들이 약사에게 지불한 돈이다. 이런 엄청난 약사의
    수입으로 요즘 밤에는 진통제 한알 구하기 힘들고, 아침일찍
    문을 여는 약국이 다 사라졌다. 예전에 약국에서 담배도 팔고
    담배 끊는 약도 팔던 약사들의 생리를 볼 때 돈에는 물불 가리지
    않는 그들이 얼마나 철저히 계산된 의약분업인지 알 수가 있다.
    왜 약국으로 가는 실제 수가는 인하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이런 시민단체들이 조용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또 건강보험공단의 1만명이 넘는 인력이 모두 노조에 가입에 있으니
    항상 시민단체와 같이 나와서 한통속이 되어 기자회견도 하고
    하니 그들의 임금이 얼마나 많은지, 지난 3년간 건강보험의
    엄청난 적자에도 불구하고 매년 인상되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보험공단 직원들과 코드가 맞아서인지 왜 언급이 없나?

    정직을 우선한다는 시민단체는 각성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