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평화보고서2005]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과 동북아평화
1장 2005 동북아 질서와 한반도 평화(5)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문제가 동북아 평화의 새로운 핫이슈가 되고 있다. 일본 국회에 설치된 헌법조사회가 2005년 4월 발표한 헌법조사보고서 특히 중의원의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자위권 및 자위대에 대한 모종의 헌법상의 조치를 취할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수의견으로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이때의 모종의 조치란 자위대를 국군으로 하거나 국제공헌을 들어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헌법규정화하는 것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비무장평화주의를 규정한 헌법규범에도 불구하고 세계 유수의 군사비를 쓰는 자위대가 존재하는 현실의 괴리문제를 놓고 일본 사회는 민중의 평화운동의 힘에 밀려 오랫동안 헌법규정의 무게를 부정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궁여지책 끝에 나온 논리가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라 최소한의 실력’이기 때문에 헌법규범을 위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궤변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만큼 무시하기 힘든 헌법규범의 무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종래의 태도에 비하면 이번 헌법 조사회가 결론으로 내놓은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보고서의 내용은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태도이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헌법조사회의 보고서 내용과 2005년 9월 11일 총선 이후의 일본의 개헌정국에 대하여 보고하고 이러한 개헌움직임의 원인과 전망을 동북아 평화의 관점에서 분석해 보고하고자 한다.
2. 헌법조사회의 설치
헌법조사회는 지난 2000년 2월 17일 국회에 설치되었다. 그런데 이는 일본의 평화주의 헌법사에 기록될 만한 날이었다. 왜냐하면 1947년 현행 일본헌법 시행 후 거듭되는 개헌과 호헌의 공방이 일어났지만 국회 주도의 헌법개정논의는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간의 헌법공방이 주로 정부여당과 시민사회간의 정치적 공방의 형태로 벌어졌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국회 내에 여야의 합의로 헌법조사회를 설치한 것이다 朝日新聞 2000年2月16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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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국회 내 헌법조사회 설치에 대한 여야간의 목적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자민당은 주로 현행 헌법이 연합군 특히 미군점령 하에서 이루어진 강제된 헌법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자주적인 헌법을 제정하자는 것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경우 현행 헌법이 전후의 일본 민주주의와 평화주의에 미친 영향은 긍정하면서도 개헌에 대한 논의는 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냐는 입장이다.
한편, 일본 헌정사상 헌법조사회가 설치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이미 1956년 6월1일 공포된 헌법조사회법에 따라 헌법조사회가 설치된 적이 있다. 현행 일본 헌법이 제정된 이래 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래 파상적으로 되풀이되었는데, 헌법조사회가 설치된 1956년은 헌법개정의 움직임이 고양되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즉 1953년에는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법안이 만들어지고, 자유당과 개진(改進)당이 헌법개정안을 발표되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개헌을 위한 집권여당의 움직임이 고양되던 시기였다. 그러한 무드는 1957년에는 정부에 헌법조사회를 설치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당시의 시도는 집권 여당이었던 자민당의 강공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시민사회의 반대로 국회차원의 설치로 이어지지 않고 결국 정부에 설치하는 형태에 그쳤다. 게다가 야당인 사회당과 공산당이 참가를 거부함으로서 명분을 잃었으며, 소기의 조사활동 조차도 이렇다할 결론이 없는 보고서를 1964년에 작성하는 것으로 수명을 다하였다 法律時報臨時增刊『憲法調査會報告書』,(日本評論社,1964年)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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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헌법조사회는 국회 내에 설치되었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헌법조사회는 5년 기간으로 활동하며, 헌법의 제정과정 및 개정논의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이를 중참의원에게 제출하는 것을 그 임무로 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조사회가 헌법개정초안을 직접 그리고 당장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헌법조사회장 무라카미 마사쿠니(村上正邦)에 따르면, “헌법조사회의 5년간의 조사활동 후 제출되는 보고서에 따라 3년 정도에 걸쳐 새로운 헌법초안을 만들고 이를 기초로 하여 2008년 정도이면 일본국회가 새로운 헌법 제정에 착수할 수 있을 것” 朝日新聞,2000年2月17日.
이라고 한 바 있다.
3. 최종보고서의 내용
가. 중의원 보고서
중의원 최종보고서는 상징천황제의 유지, 제9조에 대한 모종의 조치의 필요성으로 요약된다. 제9조에 대한 모종의 조치가 필요한 이유는 헌법과 현실이 지나치게 괴리되어 그에 따른 규범성 저하되었으며, 개헌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9.11, 북한, 국제협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평화헌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제9조에 대하여 ‘자위권행사로서 필요최소한의 무력행사는 인정’하여야 하며, ‘자위권 및 자위대에 대한 모종의 헌법상의 조치를 취할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수의견으로 채택하였다.
물론 이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전통적인 호헌세력으로부터는 헌법이 문제가 아니라 자위대가 문제이며, 제9조는 전범국가 일본이 국제사회복귀를 위한 공약이었으므로 제9조의 준수가 필요함이 역설되었다. 그러나 헌법조사회의 다수를 차지한 개헌파의 자위권 및 자위대의 헌법상의 근거를 명확히 하는 조치를 취하자는 주장에 밀려 결국 ‘모종의 헌법상의 조치를 취할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선에서 다수의견으로 채택된 것이었다.
일미안보조약에 대해서도, 한편에서는 현행 일본 헌법상 집단적 자위권은 인정되지 않으며 선제공격전략을 내세우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는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비판론이, 다른 한편에서는 미일동맹의 존속과 안보체제의 강화를 주장하는 미일동맹 강화론이 팽팽히 접점을 이루어 결국 다수 의견을 도출하지는 못하였다.
천황을 원수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일본 국내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행 상징천황제를 유지하는 것을 다수의견으로 제출하였다. 그것은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우려, 야당의 반대, 여당 내에서의 이견 등에 기인한 것이었다. 다만, 현 왕세자가 아들이 없음을 고려하여 여성의 천황승계를 인정하고 이를 위한 황실전범 개정필요성에 공감하였을 뿐이다.
나. 참의원 보고서
참의원 보고서에서는 중의원 보고서와 같은 다수 의견을 내지 못하고 의견을 종합하는데 그쳤다. 전문에 국민주권, 평화주의 외에 일본의 역사 전통 문화 등 민족주의적 색채를 강화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다수의견을 도출할 수 없었다. 상징천황제에 대해서도 천황을 원수로 할 것인지 또한 그것을 명문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일치를 볼 수 없었다.
다만, 평화주의에 관해서는, 중의원 보고서와 달리 현행 일본헌법 제9조를 견지하자는 공통의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침략전쟁 포기를 규정한 제9조 제1항의 견지에는 공통의 인식을 나타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력포기를 규정한 제9조2항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여 다수의견을 낼 수 없었다. 특히 자위권에 대해서는 개별적 자위권을 인정하지만,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서는 의견대립이 있었다. 이는 미일동맹의 강화에 대한 소극적 견해와 적극적 견해가 대립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4. 9.11 총선과 개헌 그리고 국민투표법안
헌법조사회의 보고서는 ‘자위권 및 자위대에 대한 모종의 헌법상의 조치를 취할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보고서였지만, 단일 의견을 낼 수 없었다는 점에서는 개헌의 움직임이 거세지 않겠구나 하는 기대와 전망도 일시적으로 가능하였다.
그러나 지난 2005년 9월 11월에 자민당의 압승으로 끝이 난 중의원 총선결과는 일본헌법의 개정이 현실적 정치과정에 오르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선거의 쟁점이 개헌이 아니라 우정성 개혁에 대한 찬반으로 압축된 결과 고이즈미 총리가 개혁파로 인식되었고 20-30대마저 자민당에 표를 쏟는 쏠림현상이 나타났다.
문제는 선거쟁점과 별도로 명문 개헌을 추진해온 자민당이 2/3에 육박하는 의석을 차지하였음은 물론 연립여당이 공명당을 합하면 중의원 내 개헌 의결 정족수인 2/3선을 확보하였다는 점이다. 총선 직후, 자민당으로부터 개헌을 다루고 개헌안을 제출하기 위한 국회 내 위원회를 상임위원회로 두어야 한다는 제안이 당장 제시되었다. 그러나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반대와 여론의 반대를 의식하여 상임위원회가 아닌 헌법조사특별위원회로 구성하게 되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국민투표법안과 개헌안에 대한 본격적인 강공이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개헌을 위해서는 국회 내 2/3의 찬성뿐만 아니라 국민투표를 통하여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의 내용도 헌법조사특별위원회의 뜨거운 쟁점이 될 것이다. 특히 국민여론이 개헌에는 과반수 이상 찬성하면서도 제9조의 개헌에는 과반수 이상 반대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일괄 투표식의 국민투표법이 제정될 것인지 개별 조항별 투표식의 국민투표법이 통과될 것인지는 평화적 생존권을 규정한 일본국 헌법의 존망과 동북아의 미래에 있어서 중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자민당의 국민투표법 시안에 따르면 허위보도와 신문잡지의 불법이용을 금지한다는 명분하에 국립대학의 헌법교수를 비롯한 여론주도층의 정치활동을 과도하게 규제하고 있어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도 계속될 전망이다.
5. 자민당 개헌시안
지난 2005년 8월 1일, 자민당신헌법기초위원회(森喜郞위원장)가 그 요강을 발표하고 자민당 창당 50주년이 되는 2005년 11월22일에 그 전문을 공식발표할 예정인 자민당의 개헌시안은 일본헌법의 개헌에 대한 집권여당의 의도와 의지를 여실히 보고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제2장 전쟁포기’를 ‘제2장 안전보장’으로 바꾸고, 현재의 제9조 1항 은 유지하되, 제9조 2항에 자위군 보유를 명기하고, 자위군의 사명을 국제사회의 평화유지 및 안전확보로 규정함으로서 해외 파병의 길을 확보하고자 하고 있다. 자위대를 합헌화하고 군대화함에 따라 현행 헌법 제76조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특별재판소 금지 규정도 개정하여 군사재판소에 관한 명문의 헌법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다.
헌법개정절차도 완화하고 있는데, 현재 개헌발의 정족수가 중참의원 각 2/3 찬성발의로 되어 있는 것을 중참의원 각 과반수 찬성발의로 완화함으로써 제2, 제3의 개헌을 염두에 둔 개헌안이라는 비난이 줄을 잇고 있다. 현재 정교분리의 원칙에 대한 위배라고 하여 문제가 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참배의 문제 등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사회적 의례의 범위에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용인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6. 한국사회의 대응
종래에도 일본에 개헌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종래의 개헌 움직임은 대체로 미국에 의해 강요된 헌법을 자주적인 헌법으로 만들자는 주장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현재의 개헌 움직임은 자주적 헌법을 만들자는 국내적 요인과 동시에 미국에 의한 개헌요구의 측면이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
미국의 군사전력이 전방배치군 위주의 전략으로부터 신속기동군화 전략과 지역동맹화 전략으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동북아지역에서는 한미일군사동맹의 강화가 요청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경우 쌍무적 군사동맹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일미안보조약의 경우 일본국 헌법 제9조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부정하고 있는 관계로 편무적 군사동맹으로서의 성격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제약을 돌파하기 위해서 미국이 일본의 개헌을 요구 또는 용인하고 있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개헌을 통하여 노리는 것은 비무장평화주의를 규정한 헌법과 대미의존의 경무장 국가상태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을 당면의 목표로 하면서도 미일동맹 하의 중무장국가로의 탈바꿈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한미일동맹의 강화라는 미국 측의 군사외교적 요구와도 일치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한미일 동맹의 강화는 동북아의 평화체제 형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신속기동군화전략에 따른 미군기지의 재배치 및 한미일군사동맹의 강화는 중국의 군비경쟁을 가속시킬 것이며, 한반도에 있어서의 남북교류와 남한에 있어서의 평화운동의 사회적 입지는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 헌법 전문의 평화적 생존권과 제9조의 비무장 평화주의가 동북아의 평화공동체 형성의 중요한 향도이념의 하나라고 한다면, 일본의 평화헌법 개악은 동북아 평화를 위한 보물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일본의 평화헌법 개악에 대한 평화운동차원의 공동대응이 절실한 때이다. 또한 일본의 비폭력 평화주의는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대한 반성과 평화국가로 국제사회에 복귀하고, 공헌하겠다는 아시아민중에 대한 약속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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