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 “김정일, 핵게임서 부시에 승리” (경향신문, 2007. 10. 19)
북미갈등과 핵위기/자료-시민사회 :
2007/10/30 16:51
미국 내 최고의 한반도 전문가로 꼽히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역사학부)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커밍스 교수는 19일 미국 노틸러스연구소 온라인 정책포럼에 기고한 ‘김정일이 부시와 맞서 이기다(Kim Jong Il confronts Bush-and wins)’에서 이같이 평가하고, 북한이 지난해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미국보다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커밍스 교수는 북핵 위기는 부시 행정부가 증거가 희박한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관련 첩보만 믿고 북한과 대치했다가 북핵문제는 물론 한·미관계까지 위기로 몰아넣은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커밍스 교수 기고문의 주요 내용이다.
◇실패한 북핵외교=북한이 파키스탄 핵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 박사와 HEU를 거래했다는 건 뉴스가 아니었다.
클린턴 행정부가 부시 행정부의 정권인수팀에 전한 것이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그러나 이것이 영변 핵시설 동결과 미사일 협상 타결을 끝낼 만한 장애물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부시는 2·13합의까지 역사상 가장 멍청한 한반도정책을 펼쳤다.
2002년 9월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에 대한 선제공격 독트린을 발표한 지 한 달 만에 평양을 찾은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는 HEU 의혹을 던졌다가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제 우리가 아는 바, HEU에 대한 미국의 첩보는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WMD)와 다를 게 없다. 북한도 이라크처럼 알루미늄 튜브를 수천개 구입했지만 고속 원심분리기에 사용할 정도로 강한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 북한이 실험한 원자폭탄은 HEU가 아닌, 플루토늄으로 만들어졌다. ‘클린턴의 폭탄’이 아니라 ‘부시의 폭탄’이었던 셈이다.
핵능력의 모호성을 유지했던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은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중유 공급을 단절한 중국에 대해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하기 위한 것이다.
2003~2004년 북한은 미국의 침공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라크 침공으로 인해 한반도에 불과 몇개의 전투여단만을 남길 여유밖에 없었다. 북한은 핵보유국 선언을 하고 이후 2년간 제재로 어려움을 겪더라도 차기 미국 대통령과 협상하자는 전략을 선택했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협상키로 결정한 배경으로는 북한과 타협함으로써 더 큰 위협인 이란에 핵포기 압력을 넣기로 했다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한국, “동맹파괴” 경고=지난 몇년간 워싱턴과 서울의 관계는 극적으로 악화됐다. 부시는 전통적인 관계를 훼손하는 동시에 북한과 위험한 상황을 만들었다.
부시 독트린은 한국 지도자들에게 급격한 위기감을 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가까운 보좌관은 부시 행정부 관료들에게 미국이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 북한을 공격할 경우 동맹을 깨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약속을 받아내지는 못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국 내 반미감정은 높아졌다. 김대중 대통령이 전한 바에 따르면 북한은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한 뒤 미군의 한국 주둔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일은 미국 못지않게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동시에 강력해진 중국과 일본을 걱정하고 있다. 김대중은 1945년 이후 미국이 구축한 동북아시아 국제시스템 범주 내에서 북한을 새 안보 구도에 편입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우방국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적이 아닌 중립적인 북한을 얻을 수 있었다. 중국과 부활하는 러시아와 균형을 이루고, 일본의 향후 행보에도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한다는 게 21세기 미국의 합리적인 동북아 전략이다.
〈워싱턴|김진호특파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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