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태의 잠망경>국회를 확 바꾸자! 국회의사당의 생태민주적 개조
국회/16대국회 :
2004/01/12 10:11
현역 국회의원 8명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것만이 아니다. 수사를 받고 있는 의원들도 여러 명이다. 이 중에는 체육계의 거물 김운용 의원(민주당)처럼 결국 의원직을 내놓은 의원도 있고, 악질 도박꾼 송영진 의원(열린우리당 충남 당진)처럼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은 벌써 20명이 넘는다. 이만섭 의원은 의원 노릇을 계속할 만한 의원이라고는 55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4/5를 갈아치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우리 국회는 썩고 무능한 의원들로 넘쳐난다.
이러니 나라 꼴이 엉망일 수밖에 없다. 썩고 무능한 국회는 대통령의 입보다 훨씬 더 큰 문제다. 그러나 제1당은 대통령의 입을 욕하기는 해도 썩고 무능한 국회, 그리고 그 국회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고 있다. 대표는 제1당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식투정'을 하더니, '차떼기'를 지시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영일 의원을 위해 '방탄국회'라도 열고 싶다는 망언을 내뱉었다. 총무는 시대착오적인 '빨갱이 타령'을 불러대더니, 마찬가지로 시대착오적인 '독재정부 타령'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과연 한나라당이 '딴나라당'이라는 오명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 이 나라를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위해서도 참으로 한심한 상황이다.
국회를 확 바꿔야 한다. 썩고 무능한 정치꾼들이 국회의원 행세를 하는 세상을 확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 나라에 미래는 없다.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우리 후손을 위해 정치개혁을 이루어야 한다. '공천개혁' 따위로는 이 중대한 과제를 이룰 수 없다. 더욱이 정치개혁을 거부한 '공천개혁'은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일 뿐이다. 그런 거짓말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끝장낼 수 있는 진정한 정치개혁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남당과 호남당이 아니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올바로 읽고 나라를 이끌 수 있는 진정한 정당과 국회의원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정당과 국회의원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역주의에 바탕을 두고 돈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정치구조를 확 바꿔야 한다.
국회를 확 바꾸는 것은 이처럼 정당과 국회의원과 정치구조를 확 바꾸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한가지를 보태고 싶다. 그것은 국회의사당을 확 바꾸는 것이다. 현재의 국회의사당은 엉망진창인 한국 정치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 그럴까?
현재의 국회의사당은 1969년 7월 17일에 기공되어 1975년 8월 15일에 준공되었다. 지하 2층, 지상 6층의 이 건물은 단일 의사당 건물로는 동양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동양에 우리보다 큰 나라가 많고 많건만 어째서 우리 의사당 건물이 가장 클까? 질보다 양을 앞세웠던 박정희식 성장제일주의의 영향일까? 썩고 무능한 국회의원들이 마음껏 활개치고 다니라고 이렇게 크게 지은 것일까? 동양에서 가장 큰 건물이 아니라 동양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둔 의사당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크기 경쟁이라는 잘못된 세태를 국회 의사당이 주도한 것은 아닐까?
국회 의사당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24개의 바깥기둥과 지붕 가운데의 청동돔이다. 바깥기둥은 왜 10개나 100개가 아니고 24개일까? 24절기를 상징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또한 이 기둥들은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조금씩 가늘어지는 데, 널리 사람들의 뜻을 모은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국회 의사당은 일년 내내 사람들의 뜻을 모으는 곳이라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24개의 기둥을 세웠다는 것이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까? 서양에서는 이런 식으로 기둥들을 세워놓은 건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모두 그리스 시대의 유산이다. 국회의사당의 기둥들은 이런 서양의 건물을 흉내내기 위해 세운 것이 아닐까? 평범한 서양식 건물인 본체와 24개의 바깥기둥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24절기가 어쩌고 민의수렴이 저쩌고 해도, 그 기둥들의 실제 목적은 서양식 폼내기다. 안타깝게도 똑같은 잘못이 재작년에 문을 연 백범기념관에서도 되풀이되었다.
청동돔은 어떤가? 24개의 바깥기둥들은 원래 설계에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청동돔은 아예 원래 설계에는 없던 것을 국회의원들이 우겨서 설치한 것이다. 외국을 많이 다녀본 국회의원 나리들이 보시기에 청동돔을 얹지 않은 국회의사당은 영 어색했던 모양이다. '갓 쓰고 자전거 타기'라는 말이 있지만, '의사당 지붕에 청동돔 얹기'라는 말을 대신 써도 될 것 같다. 이보다 더 어울리지 않고 억지스러운 꼴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 우면산 자락에 자리잡은 예술의 전당 오페라관만이 이 한심한 건물과 자웅을 겨룰 수 있을 뿐이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관은 양반의 갓에서 그 모습을 따왔다고 하는 데, 아무래도 양반의 갓은 오페라보다는 판소리와 잘 어울릴 것이다. 더욱이 예술의 전당 오페라관의 모습은 양반의 갓보다는 솥뚜껑을 떠올리게 한다.
국회의사당과 같은 중요한 국가건물은 모름지기 한 나라의 건축기술과 건축문화를 대변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국회의사당은 이 나라가 얼마나 물색없이 서양을 추종하고 있는지를, 그것도 국회의원 나리들이 나서서 그렇게 하도록 얼마나 강요했는지를 보여준다. 24개의 바깥기둥과 가운데의 돔이 '토론과 설득을 거쳐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는 의회정치를 상징한다고? 이런 식의 견강부회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국회를 확 뜯어고치는 위해 우리는 독일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깨끗하고 유능한 국회의원들을 뽑아서 열심히 일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회의사당을 멋지게 뜯어고치기 위해서도 그렇다. 통일이 되고 독일은 수도를 다시 베를린으로 옮겼다. 이에 따라 옛 제국의회 건물을 연방의회 건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독일 의회는 대대적으로 개수작업을 벌였다. 그런데 그 방향이 참으로 놀랍다. 먼저 독일 의회는 연방의회 건물 옥상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해서 연방의회에서 사용하는 모든 전기를 생산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독일 의회는 원래 있던 돔을 없애고 그 자리에 유리돔을 설치했다. 이렇게 해서 햇빛이 의회 안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그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태양의 시대'를 상징하는 건물을 만든 것이다.
우리 국회의사당도 이렇게 확 뜯어고치자. 우리 국회의사당의 청동돔은 '마징가제트의 격납고'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다. 우리 국회의사당은 안쪽이 비어 있는 네모난 상자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권위주의적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억지로 설치된 그 돔을 뜯어 없앤다면, 햇빛이 안쪽으로 바로 쏟아져 들어가서 밝게 비출 것이다. 청동돔을 없애고 그 자리에 투명한 지붕을 설치하거나 독일처럼 유리돔을 설치하자. 그리고 그 널따란 지붕은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기에 안성마춤이 아닐 수 없다. 국회의사당을 시대의 흐름에 걸맞는 건물로 확 뜯어고치자.
이렇게 고치게 되면, 우리 국회의사당도 진정으로 중요한 관광지가 될 것이다. 지금도 국회의사당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대부분은 국회의원들이 후원회 명목으로 모셔온 시골 어른들이다. 이런 후원회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국회의사당이 진정으로 중요한 관광지가 되어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면, 지금과 같은 국회의사당 방문 방식은 고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썩고 무능한 국회의원들은 카페트가 깔린 정문으로 들어가는 데, 정작 국민들은 250m나 더 뒤에 자리잡고 있는 뒷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곳에서조차 '차별'은 계속된다. 썩고 무능한 국회의원들은 'VIP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데, 국민들은 '일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려야 하며, 그마저도 안내인을 대동하고 지정된 곳만을 갈 수 있다.
사실 이런 식의 권위주의적 이용방식은 사실 즉각 시정되어야 한다. 이런 이용방식은 주권자인 국민을 깔보는 것이며, 국회의원들에게 잘못된 권위의식을 심어줄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정문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꼭 제한해야 할 곳을 빼고는 어디나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시꺼먼 색의 커다란 승용차를 타고 2층의 정문으로 올라가고, 주권자인 국민은 마치 개처럼 뒷문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또한 신분증과 소지품을 확인하면서도 안내인을 대동하고 지정된 곳만을 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반민주적인 국회의사당의 이용방식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민주화를 얘기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우리 국회의사당은 그 모습이나 이용방식이 철저히 박정희 시대에 머물고 있다. 박정희가 혹독한 총통체제를 고집하다가 그 심복의 총에 맞아 죽고 어느덧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우리 국회의사당은 여전히 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 썩고 무능한 정치꾼들이 국회의원의 탈을 쓰고 그곳에 득시글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바야흐로 정치개혁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다. 지역주의에 바탕을 두고 돈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정치구조를 확실히 뜯어고칠 때가 되었다. 이제 국회를 확 바꿔야 한다. 이참에 국회의사당도 확 뜯어고쳐야 한다. 잘못된 모습을 바로잡고 잘못된 이용방식을 뜯어고치자. 모쪼록 국회의사당이 시대의 흐름을 이끌고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곳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이러니 나라 꼴이 엉망일 수밖에 없다. 썩고 무능한 국회는 대통령의 입보다 훨씬 더 큰 문제다. 그러나 제1당은 대통령의 입을 욕하기는 해도 썩고 무능한 국회, 그리고 그 국회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고 있다. 대표는 제1당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식투정'을 하더니, '차떼기'를 지시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영일 의원을 위해 '방탄국회'라도 열고 싶다는 망언을 내뱉었다. 총무는 시대착오적인 '빨갱이 타령'을 불러대더니, 마찬가지로 시대착오적인 '독재정부 타령'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과연 한나라당이 '딴나라당'이라는 오명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 이 나라를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위해서도 참으로 한심한 상황이다.
국회를 확 바꿔야 한다. 썩고 무능한 정치꾼들이 국회의원 행세를 하는 세상을 확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 나라에 미래는 없다.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우리 후손을 위해 정치개혁을 이루어야 한다. '공천개혁' 따위로는 이 중대한 과제를 이룰 수 없다. 더욱이 정치개혁을 거부한 '공천개혁'은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일 뿐이다. 그런 거짓말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끝장낼 수 있는 진정한 정치개혁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남당과 호남당이 아니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올바로 읽고 나라를 이끌 수 있는 진정한 정당과 국회의원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정당과 국회의원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역주의에 바탕을 두고 돈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정치구조를 확 바꿔야 한다.
국회를 확 바꾸는 것은 이처럼 정당과 국회의원과 정치구조를 확 바꾸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한가지를 보태고 싶다. 그것은 국회의사당을 확 바꾸는 것이다. 현재의 국회의사당은 엉망진창인 한국 정치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 그럴까?
현재의 국회의사당은 1969년 7월 17일에 기공되어 1975년 8월 15일에 준공되었다. 지하 2층, 지상 6층의 이 건물은 단일 의사당 건물로는 동양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동양에 우리보다 큰 나라가 많고 많건만 어째서 우리 의사당 건물이 가장 클까? 질보다 양을 앞세웠던 박정희식 성장제일주의의 영향일까? 썩고 무능한 국회의원들이 마음껏 활개치고 다니라고 이렇게 크게 지은 것일까? 동양에서 가장 큰 건물이 아니라 동양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둔 의사당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크기 경쟁이라는 잘못된 세태를 국회 의사당이 주도한 것은 아닐까?

▲ '마징가제트의 격납고'로까지 놀림받는 국회의 청동돔 (사진: 김영광)
국회 의사당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24개의 바깥기둥과 지붕 가운데의 청동돔이다. 바깥기둥은 왜 10개나 100개가 아니고 24개일까? 24절기를 상징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또한 이 기둥들은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조금씩 가늘어지는 데, 널리 사람들의 뜻을 모은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국회 의사당은 일년 내내 사람들의 뜻을 모으는 곳이라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24개의 기둥을 세웠다는 것이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까? 서양에서는 이런 식으로 기둥들을 세워놓은 건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모두 그리스 시대의 유산이다. 국회의사당의 기둥들은 이런 서양의 건물을 흉내내기 위해 세운 것이 아닐까? 평범한 서양식 건물인 본체와 24개의 바깥기둥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24절기가 어쩌고 민의수렴이 저쩌고 해도, 그 기둥들의 실제 목적은 서양식 폼내기다. 안타깝게도 똑같은 잘못이 재작년에 문을 연 백범기념관에서도 되풀이되었다.
청동돔은 어떤가? 24개의 바깥기둥들은 원래 설계에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청동돔은 아예 원래 설계에는 없던 것을 국회의원들이 우겨서 설치한 것이다. 외국을 많이 다녀본 국회의원 나리들이 보시기에 청동돔을 얹지 않은 국회의사당은 영 어색했던 모양이다. '갓 쓰고 자전거 타기'라는 말이 있지만, '의사당 지붕에 청동돔 얹기'라는 말을 대신 써도 될 것 같다. 이보다 더 어울리지 않고 억지스러운 꼴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 우면산 자락에 자리잡은 예술의 전당 오페라관만이 이 한심한 건물과 자웅을 겨룰 수 있을 뿐이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관은 양반의 갓에서 그 모습을 따왔다고 하는 데, 아무래도 양반의 갓은 오페라보다는 판소리와 잘 어울릴 것이다. 더욱이 예술의 전당 오페라관의 모습은 양반의 갓보다는 솥뚜껑을 떠올리게 한다.
국회의사당과 같은 중요한 국가건물은 모름지기 한 나라의 건축기술과 건축문화를 대변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국회의사당은 이 나라가 얼마나 물색없이 서양을 추종하고 있는지를, 그것도 국회의원 나리들이 나서서 그렇게 하도록 얼마나 강요했는지를 보여준다. 24개의 바깥기둥과 가운데의 돔이 '토론과 설득을 거쳐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는 의회정치를 상징한다고? 이런 식의 견강부회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국회를 확 뜯어고치는 위해 우리는 독일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깨끗하고 유능한 국회의원들을 뽑아서 열심히 일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회의사당을 멋지게 뜯어고치기 위해서도 그렇다. 통일이 되고 독일은 수도를 다시 베를린으로 옮겼다. 이에 따라 옛 제국의회 건물을 연방의회 건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독일 의회는 대대적으로 개수작업을 벌였다. 그런데 그 방향이 참으로 놀랍다. 먼저 독일 의회는 연방의회 건물 옥상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해서 연방의회에서 사용하는 모든 전기를 생산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독일 의회는 원래 있던 돔을 없애고 그 자리에 유리돔을 설치했다. 이렇게 해서 햇빛이 의회 안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그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태양의 시대'를 상징하는 건물을 만든 것이다.
우리 국회의사당도 이렇게 확 뜯어고치자. 우리 국회의사당의 청동돔은 '마징가제트의 격납고'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다. 우리 국회의사당은 안쪽이 비어 있는 네모난 상자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권위주의적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억지로 설치된 그 돔을 뜯어 없앤다면, 햇빛이 안쪽으로 바로 쏟아져 들어가서 밝게 비출 것이다. 청동돔을 없애고 그 자리에 투명한 지붕을 설치하거나 독일처럼 유리돔을 설치하자. 그리고 그 널따란 지붕은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기에 안성마춤이 아닐 수 없다. 국회의사당을 시대의 흐름에 걸맞는 건물로 확 뜯어고치자.
이렇게 고치게 되면, 우리 국회의사당도 진정으로 중요한 관광지가 될 것이다. 지금도 국회의사당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대부분은 국회의원들이 후원회 명목으로 모셔온 시골 어른들이다. 이런 후원회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국회의사당이 진정으로 중요한 관광지가 되어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면, 지금과 같은 국회의사당 방문 방식은 고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썩고 무능한 국회의원들은 카페트가 깔린 정문으로 들어가는 데, 정작 국민들은 250m나 더 뒤에 자리잡고 있는 뒷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곳에서조차 '차별'은 계속된다. 썩고 무능한 국회의원들은 'VIP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데, 국민들은 '일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려야 하며, 그마저도 안내인을 대동하고 지정된 곳만을 갈 수 있다.
사실 이런 식의 권위주의적 이용방식은 사실 즉각 시정되어야 한다. 이런 이용방식은 주권자인 국민을 깔보는 것이며, 국회의원들에게 잘못된 권위의식을 심어줄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정문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꼭 제한해야 할 곳을 빼고는 어디나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시꺼먼 색의 커다란 승용차를 타고 2층의 정문으로 올라가고, 주권자인 국민은 마치 개처럼 뒷문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또한 신분증과 소지품을 확인하면서도 안내인을 대동하고 지정된 곳만을 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반민주적인 국회의사당의 이용방식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민주화를 얘기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우리 국회의사당은 그 모습이나 이용방식이 철저히 박정희 시대에 머물고 있다. 박정희가 혹독한 총통체제를 고집하다가 그 심복의 총에 맞아 죽고 어느덧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우리 국회의사당은 여전히 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 썩고 무능한 정치꾼들이 국회의원의 탈을 쓰고 그곳에 득시글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바야흐로 정치개혁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다. 지역주의에 바탕을 두고 돈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정치구조를 확실히 뜯어고칠 때가 되었다. 이제 국회를 확 바꿔야 한다. 이참에 국회의사당도 확 뜯어고쳐야 한다. 잘못된 모습을 바로잡고 잘못된 이용방식을 뜯어고치자. 모쪼록 국회의사당이 시대의 흐름을 이끌고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곳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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