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가 가까웠을까? 전화벨이 울렸다. 여느때와 같이 룸메이트의 여자친구였다.

국제전화비 생각에 룸메이트가 들어오면 알려주겠다고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 순간, "대통령 탄핵됐대요" 라는 말이 수화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왔다. 좀 멍했다.

탄핵안을 상정했다는 말을 얼핏 들을 때부터 긴가 민가 하기는 했는데,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어떤 기시감도 없이 그냥 생경함 그 자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내가 미국에 있어서 생긴 거리감이 아니었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래도 설마설마 하는 심정이었을것 같다.

그렇게 멍하고 있는데, 다시 한번 전화벨이 울려서 받아보니 우리과의 아르헨티나 친구 세실리아였다. 갑작스런 스페인어에 당황하는 사이, 좀 더 당황한 목소리로 그녀는 너네 국회가 대통령을 쫓아낸거가 맞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그걸 어디서 들었냐고 물었더니, 자기네 나라 신문 웹사이트에올라와 있어서 전화를 걸었단다. 왠지, 뭐 특별하게 그러할 일은 아니지만 서글펐다.

전화를 끊고 인터넷에 접속을 했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비록 모니터지만 내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아수라장의 국회 사진, 환희에 찬 박수소리, 분노에 찬 글들, 어느새 눈물을 훔치는 얼굴들도 볼 수 있었다. 인스턴트 메신져에 로그인을 하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말을 걸려고 했는데 갑자기 옆동네의 유학생 형의 대화창이 떴다. "비상"이다라고...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렇게 한켠으로는 대화창을 띄워놓으며 분노와 때로는 욕을 해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탄핵사건을 보도한 기사들을 보느라 밤을 지샜다. 나는 그 순간 그렇게 함께 이 분노를 공유할 수 있는 이가 이 만리 타국에 존재한다는 것이 고맙고 새삼스레 소중했다.

그렇게 그 밤을 보내고 일어나자 마자 나는 다시 온라인에 접속했다. 과연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을까 참을 수가 없었다. 전국적으로 공분이 일어나고 있다는 포탈 사이트의 뉴스 헤드라인을 보고, 그랬다, 나는 안심이 되면서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방을 싸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그 며칠 동안 내가 사는 피츠버그의 여기저기서 만나는 한국사람마다 그 이야기를 지나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기가 막히다는 분노에서부터, 나라 걱정을 하느라고 페이퍼를 기일 내에 못냈다는 볼 멘 하소연에, 어떤 어린 여자 후배는 집에다 라면 사놓으라고 전화해야 하는거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어대는 것까지 그 대화의 내용들은 가지가지였지만 말이다. 그날 밤 나랑 같이 밤을 샜던 형은 며칠 후 만난 자리에서 유시민과 전여옥이 나오는 티비 토론을 다운받아보려는데 모뎀이라 다운로드 되는 걸 몇시간이나 기다리다가 홧병날 뻔 했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리고 결국 다운로드에 성공하여 토론 보다가 또 속이 뒤집히더라고, 이게 바로 자기를 두번 죽이는 것이라는 철지난(?) 한국 유행어로 익살을 부리면서.

하지만 사실 우리가 걱정을 했으면 얼마나 걱정을 했으랴. 지금 이 순간을 한국에서 겪어내고 있는 이들에 비한다면 말이다. 그야말로 먼산 불구경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그렇지만 외국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생각 할 때마다 다들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는, 마치 간유리를 통해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 같은 고국의 실체를 정확히 잡을 수 없는 것에 어느정도 기인하는 것이리라.

미국에 온 지 채 일년이 되지 않은 유학새내기인 나도, 내가 떠나온 후 정치가, 사회가 어찌나 빠르게 급변하던지 며칠에 한번씩 뉴스를 검색해보면 도무지 그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다이내믹 코리아"인 셈이다. 이제와서 돌아보니 무심코 읽어내려갔던 "차떼기", "책떼기"라는 말도 그 정확한 맥락을 얼마전까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어쩌면 이 탄핵을 그야말로 "법대로" 실행에 옮긴 그들에게 감사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며칠 밤을 새가며 과거의 기사들을 뒤적뒤적 해가면서 그동안의 한국의 흐름들을 따라가도록 이 이국만리의 유학생들에게 고국을 알 기회를 주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만나는 사람마다 토론아닌 토론으로 이끌어 우리 피츠버그 유학생들의 소통과 친목에까지 도움을 주었으니 그 고마움은 배가 된다.

그 사건의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온라인 접속을 했을 때, 국민의 분노가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내가 안심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새삼 생각해본다. 오히려 극단적으로 나라가 갈리고, 사회 불안이 가속화되고, 질서가 어지러워진다고 걱정들을 하시는 의견과 기사를 뒤로 하고 말이다. 그것도 내가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제삼자라는 위치이기 때문일까? 엊그제 미국 교수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또다시 작금의 사태로 화제가 흘러갔다. 일본에도 삼년 살았다는 그 교수는 일본, 한국 모두가 정치권은 모두 보수적이다. 하지만 한국 국민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일본인들의 침묵과 달리 매우 역동적인 것 같다는 말을 나에게 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정치가 진창이고, 살아가기에 너무나도 팍팍한 나라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꿈꾸기도 하고 불만도, 그리고 그 불만만큼의 냉소도 가진 사회.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로 이룩한 것들이,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지는, 그 순간마저 냉소로 흘려보내지 않은 이들, 그들이 바로 저 멀리 싸우스 코리아 땅에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그들의 분노를 그들의 의지와 열망으로 읽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망을 미꺼워하면서 나는 아마도 안심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아르헨티나 친구와의 통화에서 느꼈던 한국 정치상황에 대한 서글픔이 조금은 어떤 자신감으로 바뀌게 된 것 같다. 우리들은 대의 민주주의의 그 불안함과 그 한계조차도 국민들의 "참여"의 힘으로 바꾸어 내고, 극복해가고 있다고 말이다.

어제의 주말 집회 소식 또한 나는 인터넷 기사를 통해 확인했다. 일주일이면 분노와 격함이 사그라들고 탄핵의 이슈는 사라질 것이라고 공언하던 이들을 다시 불러내 지금의 입장을 들어보고 싶다. 서울에서만 15만명이 모였다는 것을 그들도 알테니 말이다.

나는 거기 모인 이들이 단지 노대통령의 지지자여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스스로 주말의 휴식도 마다하고 모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한 이라크 파병반대 집회에 참여한 이들이 같이 합세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물론 선거가 다는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거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선거권이 생기고 나서 처음으로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됐다. 해외 거주자는 투표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선배 형은 어디서 검색을 했는지 줄줄이 그 규정들을 읊으면서 결론은 우리가 들어가서 투표를 해야하는 거라는데 그 기간이 마침 기말고사 기간이라며, 애초에 유학생도 고려해 5월에 선거를 했어야 했다고 열을 올렸다.

내가 투표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어쩌면 진심으로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세력을 기대하면서 내 소중한 한표를 던졌을 것 같다, 이전보다 더 고민 끝에 말이다.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내가 투표를 하지 못해도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란다. 어쩌면 기말고사 때문에 투표날 한국으로 못간다고 분기탱천해 있는 한 유학생 선배를 세번 죽이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말이다.
박정원(University of Pittsburgh, 중남미문학 박사과정)
2004/03/21 03:08 2004/03/21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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