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정진 민주노동당 정책부장
국회/17대국회 :
2004/04/20 11:18
"모든 시대에는 민생문제 해결을 위한 시대정신이 있다"
김정진 민주노동당 정책부장. 현재까지는 민주노동당 유일의 상근 변호사다. 민주노동당과 당원들, 지지자들의 법률 자문으로 늘 바쁘다. 선거운동기간에는 선거대책본부 법률지원단장을 맡았다. 진보누리(http://news.jinbonuri.com)에서 진보정당 논객으로도 틈틈이 기여하고 있다.

그가 쓴 글에 따르면, 김 부장은 92년 민중당의 실패를 보면서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합격 이후 통상 우리 사회에서 변호사가 누리는 여러 혜택을 버리고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것은 그가 이번 17대총선에서 진보정당 원내진출을 기정사실로 내다본 낙천주의자였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계급투표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는 "노조 조직률이 12%에 불과하고, 자영업자가 30%가 넘는 근본적인 악조건"을 거론했다. 역사적인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에 모두 들떠 있는, 선거일 바로 다음날에도 김 부장은 들뜬 기분 대신 앞으로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의회에서의 역할, 계급투표에 의한 진보-보수 구도의 재편 가능성과 조건들을 조목조목 따지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다른 진보정당 인사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현실주의자의 색채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경험에서 배우고자 한다면, 그것은 소정의 성과를 분명히 얻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당에 입당한, 딱 진보정당 운동에 필요한 만큼 이상주의자였다.
김정진 정책부장으로부터 시민운동과 민주노동당의 관계 설정,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의 방향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사표론' 선거전략은 더이상 안 먹힐 것
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결과에 만족하는가?
탄핵정국이라든가 막판 유시민 의원 발언으로 인해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런대로 만족한다. 우리 당의 선거운동도 상당히 조직적으로 잘됐다. 언론환경도 이번에는 괜찮았다. 그러나 경험부족으로 인한 문제도 있었다. 선거법 위반도 경험이 많았더라면 훨씬 줄었을 것이다.
선거 막판에 유시민 의원의 이른바 '민주노동당 사표론' 발언이 있었다. 발언의 영향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당투표는 내부 여론조사가 15% 를 넘었기 때문에, 일정하게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특히 당선권이 아닌 지역구 후보에게는 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다른 당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만, 모든 재정을 당원들의 자발적인 당비로 운영하는 민주노동당은 지역구 득표율 10% 이상을 올려 선거비용 절반을 돌려 받는 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데 앞으로 민주노동당의 영향력과 지지율이 일정 수위에 이를 때까지 각 정당은 이른바 '민주노동당 사표론' 식의 전략투표를 부추기는 선거전략의 유혹을 떨치기 어려울 것 같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는가?
먼저, '사표론' 식의 발언은 이해하기 어렵다. 선거라는 것은 각 당의 활동을 평가받는 장이고, 각 정당이 한만큼 표를 얻는 것이다. 선거의 본질과 무관하게 불안심리를 이용해 자신들의 지지를 인위적으로 올리려는 시도가 정치를 퇴행시키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그걸 근본적으로 막을 만한 뾰족한 정치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난 대선보다 영향이 덜 했던 이유는 '정몽준 쇼크' 의 경험이 있었고, 그래서 이번에는 영향력이 그렇게 파괴적이지는 않았다고 본다. 유시민 의원 식의 선거전략이 3∼4번 반복될 수는 없을 것이라 기대한다.
TV토론을 보니 여당을 주로 비판하던 기존 전략과 달리 야당에 대한 비판과 공격에 상당한 비중을 두는 느낌을 받았다. 내부에서 선거전략을 그렇게 잡은 것인가?
민주노동당 내부의 선거전략이라기보다는 탄핵이라는 돌발상황의 영향이 컸다. 우리의 기본 기조는 정책정당, 정책선거, 진보와 보수의 구도다. 그래서 항상 정책선거를 얘기했다. 정책중심으로 갔을 때 사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 큰 차이가 없고, 중요한 정책사항에 대해서 동일한 목소리를 낸 적도 많다. 다만 탄핵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지나치게 비이성적이고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치적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당내 입장이었다. 처음 정책토론이 아닌 토론회에서는 그 부분을 명확하게 했다. 그 이후 정책토론회에서는 열린우리당을 적절히 비판했다.
정당정치 정상화로 시민운동과 정당운동은 각자 역할 충실해야

시민운동이 감시와 비판이라면, 정당은 그런 의견을 모아서 구체적 정책을 만들어 추진, 실행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그동안 우리 정당이 정당의 기본도 안된 상태에서 참여연대 같은 단체에 과부하가 걸린 게 아닌가 싶다. 시민운동이 모든 문제를 떠안고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과도기적 상황이 있었다고 본다. 진보정당이 성장하면 그런 상황은 해소될 것이다.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되, 시민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공동의 이슈가 있고 그 이슈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는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 진보적인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내용과 당이 주장하는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강령상 천명한 바가 있어 시민단체들 주장의 수위에서 몇 발 더 나가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가 아닐까?
이후에 소수정당으로서 시민사회의 과제를 이슈화할 때 있어서 시민운동에 상당부분 의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연대에 관한 논의는 필요하다. 지금은 비공식적으로는 가까운데 공식적으로는 먼, 그런 관계인 것 같다. 앞으로는 공식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이번 총선운동 과정에서 총선연대의 열린우리당 편향성을 지적하는 진보정당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일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파병문제에 대해 여러 단체가 적극적으로 운동하고, 낙선운동도 천명하고 그랬는데, 그 기준이 낙선대상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총선연대가 이미 정책판단은 낙선기준에 반영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탄핵은 넣고, 파병은 빼는, 그런 판단을 시민단체가 하기엔 사실 어렵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파병을 뺀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다만 이건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단체가 그런 중대 정치사안을 다루기에 적절한 조직구조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낙선운동이라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절차나 기준을 엄청나게 세밀하게 짜고, 과정의 공공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 부분이 총선연대에 대한 신뢰성,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2000년에도 여러 비판은 있었지만 운동은 성공했고, 시민들 대다수는 수긍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너무 큰 사안이 많았다고 본다.
계급투표는 진보정당 성장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계급투표 성향이 뚜렷했다. 그러나 기층민중은 아직까지는 13%만이 진보정당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구하고 있다. 이제 가능성을 확인하는 수준이다. 왜 그렇다고 보는가?
우리나라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12%에 불과한데 비해 자영업자 비중은 30%로 높다. OECD가입국 기준으로는 터키나 멕시코 수준이다. 이런 나라에서 사실은 계급투표나 노동자 계급의식 형성이 대단히 어렵다. 서구유럽과 비교해보면 더 명확하다. 북부유럽은 노조 조직률이 거의 80%에 육박하고 자영업자 비중은 낮다.
기층 민중들의 계급투표 가능성 전망이 여전히 어둡다는 얘기인가?
우리와 비슷한 브라질의 노동자당 집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난 대선 때 민주노동당은 무상교육, 무상의료라는 사회적 화두를 던졌고, 이번 총선에서도 사람들에게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계속 알려나가고 다양한 사람들을 그 기치 아래 모았다. 사실 계급이라는 것은 자연히 형성되기보다는 정치적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무상교육, 무상의료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조직하는 것이다.
중앙정치에 있어서 선전, 설득 그리고 통계나 사례 등 폭로를 통해, 그리고 진보정당에 대한 신뢰성 제고를 위해 지방의회에서의 활동을 통해 계급투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실제로 '당신이 참여하고 지지했을 때 복지시설 하나라도 더 늘고 좋아진다', 이런 실제적 활동이 결합됐을 때만이 계급투표가 될 것이다. 계급투표라는 것은 진보정당의 성장과정에서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서 온다고 본다.
원외에 있던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하면 소수정당으로서 입법화를 위해 상당 부분 현실적인 타협을 할 가능성도 높다는 전망이 있는데, 어떻게 보는가?
원내 진출이 진보성이나 선명성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과,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모두 존재한다. 원내에 들어가면 지금보다 약 100배는 많은 정보에 접할 것이다. 둘 중의 하나다. 정보의 홍수 속에 갈 길을 잃어버리거나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하나의 홍역으로 슬기롭게 통과한다면 오히려 건강해지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원내에 진출한 민주노동당 의원들이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가? 또 무엇을 주문하고 싶은가?
성과를 내는 데 있어 입법이나 이런 것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감시와 입법기능의 역량 배분을 7대 3 정도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 감시를 통해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끌어내고, 그래서 세상이 달라진다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고 본다. 입법은 사실 힘의 역관계와 관련이 크다. 실제로 우리가 주장하는 노동관련 정책은 통과되기 대단히 어렵다고 본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도 약한 고리가 있다. 예를 들면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 파견제 철폐나, 기간제 고용에 있어 자동고용 보장이나 이런 것은 당장 통과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최저임금제 제도개선은 가능하다고 본다. 사회적 공감도 있을 뿐만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 나오는 경총도 최저임금 고용 사업자가 아닌 사업자가 대부분이다. 최저임금 심의위원회에 들어가게 되면, 노동조합 주류가 민주노총, 한국노총이기 때문에 최저임금 사업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대표선수가 나가서 협상하는 게 사실은 자기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런 허점에 대해 잘 연구하면 최저임금 현실화 이런 부분은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영역별로 그런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 집중할 경우 역관계에 따라 입법도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고, 대단히 시행착오가 많을 것이다.
과반수 의석을 획득한 열린우리당이 개혁으로 나갈 것으로 보는가, 아니면 보수적 색채를 강화할 것이라고 보는가?
사실 일반민주주의적 개혁들은 당장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다. 모든 시대에는 경제나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한 시대정신이 있는데, 지금은 민생파탄과 IMF 이후 심화된 빈부격차, 교육격차 해결이 시대정신이 아닐까 한다. 세금을 걷든, 어떤 식으로든 국가가 개입해서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은 아주 미약한 조세개혁정책 하나 가지고, 그 이상은 사회주의라고 발언하는 등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포지션에 특별한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인가?
과거의 행태를 보면 열린우리당은 아무 것도 안 할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아이러니는 과거 독재정권도 이런 시대적 요구에 반응을 했다는 것이다. 반응하지 않으면 정권이 유지되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박정희 정권은 추곡수매제도 도입해서 농민의 생활안정을 도모했다. 전두환 정권은 사람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주택임대차보호법이라든가 공정거래법 등을 도입했고, 과외를 금지시켰다. 막판에 국민연금 도입도 약속했다. 노태우 정권은 토지공개념을 추진했고, 김영삼 정권은 금융실명제, 종합토지세 이런 걸 도입했던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민생관련 요구에 대해 전혀 반응하고 있지 않다. 공세적이고 적극적으로 뭔가 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밀리면 하나씩 내놓고 이런 수준이 아닐까 한다. 한나라당과 끊임없이 싸우겠지만 과반수 의석을 가지고도 개혁의 길로 나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마지막 질문이다. 한 달에 얼마 받고 일하고 있나?
(웃음) 그건 다 알고 있다고 믿는다. 국고보조금도 늘고, 당원이 늘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실제로 개선되지 않으면 좋은 인재들 충원이 안되기 때문에, 사실 민주노동당이 여기까지 온 것은 지도부의 유능함보다는 당원들의 집합적 의지의 결과다. 솔직히 인물 면면이 타당에 비해 뛰어난 분들이 많다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당투표 지지율이 높은 것에서 나타나듯이 카리스마 있는 인물은 없지만, '저들이 모여있는 모습은 괜찮은 것 같다', '모여있는 저들은 강도짓 안하고, 자기들끼리 민주적인 투표도 하고 괜찮게 지내는 것 같다' 이런 국민적 신뢰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온 건데, 이후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필요한데, 저는 이후 인력에 대한 투자가 없이 그게 가능한가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참여연대 성공 원인도 다른 시민단체에 비해 간사들에 대한 안정적 지원 이런 게 많이 기여했다고 본다. 개선 조치가 이뤄질 것이고,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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