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지형의 변화와 시민운동 3] 열린우리당은 개혁에 나설 것인가
정치일반 :
2004/05/27 23:36
인터넷참여연대는 17대 총선을 계기로 달라진 정치지형이 시민사회에 미칠 영향을 점검해보고, 이를 기초로 시민운동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의미에서 기획시리즈 '정치지형의 변화와 시민운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152석 확보의 의미는 여러 가지 점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1988년 이후 최초로 개혁세력이 의회내 지배정당이 됨으로써 의회권력과 대통령 권력의 대표성의 부조화가 일정하게 해소됐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보수의 의회독점이 깨짐으로써 보수세력과 중도자유주의적 (개혁)세력 간의 다원적 경쟁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이는 국가와 정치의 정상화와 합리화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과반을 장악한 열린우리당의 역할과 관련,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는 "북한의 존재와 미국의 패권적 영향력, 지역주의 투표성향이 유지되는 한 수구의 정치사회적 기반은 쉽게 와해되지 않는다"면서 "개혁·진보진영의 실패는 수구의 부활과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다시 부를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진보정당의 대표 논객 역시, 비록 한계가 있지만 열린우리당이 주어진 개혁과제에 성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시사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과반 확보와 개혁 성패의 의미
열린우리당 과반 장악의 정치사회적 의미에 대한 거시적 조망도 의미심장하지만, 열린우리당의 선거 승리와 향후 행보는 시민운동 입장에서도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앞으로 시민사회적 가치들을 어느 정도 수용하느냐에 따라 시민운동의 향후 방향과 내용, 제도정치권과의 관계설정 등을 상당 부분 규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은 개혁에 나설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개혁에 나설 것인가, 그 개혁을 위한 조건과 준비는 어느 정도인가 등을 따져보는 것은 시민운동의 향후 방향 설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개혁의 내용과 수위를 규정할 조건들로 살펴 볼만한 지점들로 전체 당선자의 인적 구성, 천정배-신기남 체제 등 당 지도부의 개혁성, 여당으로서 정부와의 관계 등을 꼽을 수 있다.
먼저, 인적 구성에 있어 전체 정치권에 공통되는 신인 정치인의 대거 등장은 개혁성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란 평가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152명 당선자 중 108명이 신인이지만, 개혁노선과 출신 성분에서 구성이 너무 다양해 유의미한 개혁추진세력으로서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기대감 낮은 386 대거 진출
다만 전대협 간부 출신만 무려 12명에 이르는 386 세대의 역할을 좀 더 따져 볼 필요는 있다. 우상호 열린우리당 당선자는 인터넷참여연대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에서 가장 힘을 보태고 싶은 개혁과제로 "국가보안법의 폐지와 언론개혁"을 꼽았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피해 당사자들이기도 한 386사단이 지금 당장은 열린우리당 개혁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듯한 국가보안법 등 반민주 악법의 개폐에 상당한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들 386에 대한 시민운동의 기대는 딱 거기까지다. 안수찬 한겨레신문 기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전대협 간부 등 80년대 운동권 출신이 핵심을 이룬 이들은 일종의 '노무현이즘'의 신봉자다. 구 정치질서의 '정치적 해체 및 재구성'에 대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열망을 지니고 있지만, 정작 정치구조의 혁신에 필수불가결한 '사회 및 경제구조의 재구성'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전망을 갖고 있지 않다. ---- 이들의 정치담론은 한나라당 신보수파들의 '경제담론'의 홈통으로 빨려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전망은 우상호 당선자의 얘기 속에서도 감지된다. "아직 한국사회의 주류가 진보적 지향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진보적 대중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고 시대 상황을 규정하는 그는 "열린우리당이 가야할 길은 분단과 독재의 잔재를 털어내는 역할, 이 정도도 한국사회는 진보"라고 자신이 몸담은 열린우리당의 시대적 과제를 설정한다. 물론 우 당선자를 비롯한 많은 민주화세대 인사들이 복지와 분배, 실업 문제, 중소기업의 어려움 등을 산발적으로 얘기하지만, 안 기자의 지적처럼 '사회 및 경제구조의 재구성'에 대한 독자적인 전망이 없는 것은 현재로선 분명해 보인다.
열린우리당 내부 인적 구성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대목은 10명 안팎에 이르는 시민운동 출신 인사들의 열린우리당 진출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정치인이 됐다고 뭔가 조정하려는 입장이 아니라 시민사회적 가치들을 가지고 치열하게 싸워야 될 것"이라 충고하면서도 "짧게는 수년, 길게는 십여년 동안을 시민운동에 몸담았던 분들이니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감을 피력했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이뤄진 조직적 진출이 아니라는 점 등에서 미뤄 볼 때, 열린우리당에서 이들이 개혁적 시민운동의 가치들을 구현하기 위한 유의미한 정치집단으로 기능하기에는 무리라는 평가다. 다만, 환경, 장애인, 여성 등 특정 이슈에서 정부여당과 시민운동의 소통 채널이 마련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천정배-신기남 체제의 개혁성
열린우리당 개혁성 전망에서 짚어야 할 중요한 조건이 이른바 천정배-신기남 체제다.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 셋째도 개혁"을 내세운 천정배 대표의 당선, 열린우리당 정치개혁 추진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선도 개혁론'을 제시한 신기남 의장의 취임은 그 자체로 시민운동에 상당한 기대감을 주는 지도체제 구성이다. 천정배 대표의 경우 민생을 내세워 '개혁속도 조절론'를 주장한 이해찬 의원을 제치고 당선됐고, 신기남 의장 역시 시민사회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은 '실용주의 노선'의 주창자 정동영 전임 의장을 대신했다는 점은 공히 열린우리당 개혁 추진의 청신호로 읽힐 만하다.
신기남 의장이 개혁 우선 카드로 들고 나온 언론개혁에 대해 언론개혁단장을 맡았던 김재홍 당선자는 "언론개혁은 인사와 함께 개혁의 인프라 작업으로 이해해 달라"면서 후속 개혁과제가 이어질 것을 시사했다. 결론적으로 천정배-신기남 체제의 열린우리당이 언론, 사법, 정치, 국회, 양성평등 등의 영역에서 시민운동의 요구를 일정한 수위에서 반영한 개혁을 시도할 것이란 예측은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다만 보수세력의 반발 앞에서 열린우리당이 이들 개혁과제를 얼마나 일관성있게 밀고 나갈 것인가는 현재로선 확신하기 힘들다. 개혁 우선 카드인 언론개혁이 보수언론의 계속되는 반발과 내부 구성원간 입장 차이를 확인하면서, 벌써부터 삐걱거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사법개혁 역시 현직 판검사, 대법원, 변호사단체 등 기득권 및 이익집단의 반발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만한 개혁 수단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결코 성공을 낙관하기 어려운 과제다.
개혁의 영역을 사회경제적 영역으로 가져갈 경우 지도부의 개혁 의지는 심각하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대체로 신기남-천정배 라인이 일반민주주의적 개혁을 담당하고, 홍재형 정책위의장이 사회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원내 정당화 추세와 맞물려 더욱 위상이 강화된 정책위의장의 개혁성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홍 의장의 개혁성은 시민사회의 기대에서 한참 멀다.
열린우리당 원내정책실 관계자의 얘기다.
"당의 입장은 불합리한 관행은 철폐하겠다는 것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격차, 특수영업직 근로자의 4대보험 가입과 표준근로계약서의 체결 등을 주요 과제로 보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과거처럼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갈 수도 없고, 원칙적으로 노사자율의 문제다."
어두운 사회경제 개혁 전망
이런 발언에서 엿보이는 열린우리당의 사회경제정책의 방향은 지금까지 참여정부의 입장과 별다를 바가 없다. 참여정부의 개혁을 추동하는 역할은 커녕, 이정우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등 정부 내부 일부 개혁인사들의 사회경제개혁 구상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김상조 한성대 경제학 교수의 얘기다.
"열린우리당 당선자 152명 구성원 중 경제통은 재경부 관료 출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재경부의 경제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독자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마련할 가능성도 낮다. 홍재형 정책위의장은 YS 말기 때 재경부장관을 역임한 분인데, 당시 별명이 '홍 주사'였다. 경제정책의 중심 위치에 있는 사람이 주도성과 철학을 가지고 뭔가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안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전체적으로 열린우리당은 재경부의 결정에 순응하는 현상 유지로 나갈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개혁성을 규정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정부여당로서의 위치다. 이와 관련해서 언론, 정치, 사법 등 분야에서는 정부여당의 위치가 개혁 추진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정치개혁과 부패 척결에는 상당한 의지를 가진 참여정부가 최근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를 들고 나오면서, 정치개혁 등 여당의 반부패 정책을 추동하고 있는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파병과 한미관계 등 외교 분야, 특히 재벌정책 등 경제정책은 개혁성의 한계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열린우리당 원내정책실 관계자는 출자총액제한,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공정위 계좌추적권 연장 등 3대 재벌정책 현안에 대한 당의 입장을 묻자 "당의 입장은 있지만 정부의 입장이 나오지 않은 한 밝힐 수 없다"고 말해 김상조 교수의 평가를 뒷받침했다.
총선 이후 달아 오른 파병 재검토론 역시 참여정부 외교안보팀의 파병 추진 불변 입장이 나온 후 급속히 냉각된 것도 열린우리당이 정부여당으로서 갖는 개혁의 한계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의 평가대로 열린우리당의 과반 장악이 "범개혁진보 지향 개혁과제의 실현 가능성을 높인 점"은 분명하지만, 개혁 추진을 둘러싼 열린우리당의 조건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열린우리당의 개혁 조건과 한계에 대한 시민운동의 면밀한 분석과 대응이 필요함은 불문가지다.
열린우리당의 개혁 추진에 시민운동이 개입하는 양태는 다양하겠지만 국회 개원 초기에는 일반민주주의적 개혁과제의 조속한 추진을 촉구하는 양상이 주를 이룰 전망이다. 김민영 국장은 "일반민주주의적 개혁과제들은 17대 국회 개원 초기에 집중해야 개혁이 가능하다"면서 개원 초기부터 정부여당에 개혁을 촉구, 압박하는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참여연대가 17대 국회 개원에 맞춰 6월초에 발표할 개혁과제 중 정치개혁, 반부패, 사법개혁, 국민기본권 강화와 인권보장 등 '낡은 정치 청산과 민주개혁' 분야에서 특히 과반을 장악한 열린우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질 전망이다.
대안 비판담론 형성의 중요성
사회경제 개혁 요구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열린우리당을 견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는 특히 재경부 관료 인사들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열린우리당에 대해 시민사회가 비판담론을 형성, 제시하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열린우리당에서 상대적으로 개혁파로 통하는 의원과 재경부 정통관료 출신 의원의 발언은, 고민의 지점은 다를 지라도 사회경제 개혁에 있어 결국 동일한 결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시민사회 비판담론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모델은 여전히 아직 부족하며, 현 시스템에서 국가권력의 힘은 대단히 제한적이다. 개별국가, 민족국가 단위에서 (신자유주의) 노선을 바꾸기는 대단히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 시민사회단체 토론회에 참석해)
"자유기업주의가 전세계를 풍미하고 있다. 정부가 복지나 다른 균형을 찾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이런 흐름에 맞지 않는다."(강봉균 열린우리당 의원, 한겨레 '대한민국 새 틀을 짜자' 좌담회에서)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의 승리를 "생활세계가 경제논리에 의해 장악된 것"으로 보는 김동춘 교수의 지적을 곱씹을 만하다.
"기업의 개발이익, 지자체의 세수확대, 소수의 지가상승 이득분을 위해 다수 주민의 삶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중앙과 시민사회는 어떤 반박 논리와 대항조직을 대비하고 있는가? 냉전 하에서 마비된 상상력은 효율성의 담론을 대체할 수 있는 무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조희연 교수는 "삼성의 주장인 '2만불 시대' 담론이 참여정부의 공식담론화하는 과정은 강력한 물적 기반을 갖춘 재벌 및 자본 진영의 정책담론 생산의 힘을 보여준다"면서 "저항적 시민사회를 배후지로 하는 개혁적·진보적 싱크탱크는 국가관료집단과 시장으로부터 독립성을 가지면서 지속적인 대안 정책을 생산하는 단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 교수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과제로 시민사회의 개혁진보적 의제들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국책연구소의 재편, 진보적 학술연구진영의 정책생산능력 제고, 시민운동의 정책생산 능력의 내부화, 진보정당 원내 진출에 대응하는 진보적 정책생산 노력의 경주 등을 제시한다.
위원회 제도 참여는 위상을 분명히 해야
시민운동이 정부나 제도 정치권에 개입하는 방법중의 하나로 지난 총선 전 꾸려졌던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 같은 기구를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참여연대는 실제로 정치개혁협의회의 상설화를 정치권에 요구할 방침인데, 김민영 국장은 "인적인 구성에서 정치인과 시민사회 동수로 구성하고, 합의된 내용의 무조건 채택 등 위상을 분명히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환경, 여성 등의 분야에서도 이같은 구상을 고민해 볼 필요성이 있다.
다만 각종 위원회 제도를 통한 시민운동의 개입은 위험성도 따른다. 홍성태 교수는 "시민의 참여를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각종 위원회 제도가 만들어져 중앙 정부와 자치단체까지 합치면 수천개의 위원회가 있지만, 정부에서 이미 안을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들러리 세우고 동의를 강요하는 식"이라고 평가한다. 홍 교수는 "정치개혁협의회 역시 일정한 성과도 있었지만 우롱당한 측면도 있다"면서 "위원회의 성격과 목표, 위상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차라리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 밖에도 시민운동은 민주노동당을 지렛대로 하여 열린우리당의 개혁 추진을 압박하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1. 정당정치 정상화와 시민운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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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152석 확보의 의미는 여러 가지 점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1988년 이후 최초로 개혁세력이 의회내 지배정당이 됨으로써 의회권력과 대통령 권력의 대표성의 부조화가 일정하게 해소됐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보수의 의회독점이 깨짐으로써 보수세력과 중도자유주의적 (개혁)세력 간의 다원적 경쟁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이는 국가와 정치의 정상화와 합리화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과반을 장악한 열린우리당의 역할과 관련,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는 "북한의 존재와 미국의 패권적 영향력, 지역주의 투표성향이 유지되는 한 수구의 정치사회적 기반은 쉽게 와해되지 않는다"면서 "개혁·진보진영의 실패는 수구의 부활과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다시 부를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진보정당의 대표 논객 역시, 비록 한계가 있지만 열린우리당이 주어진 개혁과제에 성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시사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과반 확보와 개혁 성패의 의미
열린우리당 과반 장악의 정치사회적 의미에 대한 거시적 조망도 의미심장하지만, 열린우리당의 선거 승리와 향후 행보는 시민운동 입장에서도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앞으로 시민사회적 가치들을 어느 정도 수용하느냐에 따라 시민운동의 향후 방향과 내용, 제도정치권과의 관계설정 등을 상당 부분 규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은 개혁에 나설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개혁에 나설 것인가, 그 개혁을 위한 조건과 준비는 어느 정도인가 등을 따져보는 것은 시민운동의 향후 방향 설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개혁의 내용과 수위를 규정할 조건들로 살펴 볼만한 지점들로 전체 당선자의 인적 구성, 천정배-신기남 체제 등 당 지도부의 개혁성, 여당으로서 정부와의 관계 등을 꼽을 수 있다.
먼저, 인적 구성에 있어 전체 정치권에 공통되는 신인 정치인의 대거 등장은 개혁성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란 평가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152명 당선자 중 108명이 신인이지만, 개혁노선과 출신 성분에서 구성이 너무 다양해 유의미한 개혁추진세력으로서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기대감 낮은 386 대거 진출
다만 전대협 간부 출신만 무려 12명에 이르는 386 세대의 역할을 좀 더 따져 볼 필요는 있다. 우상호 열린우리당 당선자는 인터넷참여연대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에서 가장 힘을 보태고 싶은 개혁과제로 "국가보안법의 폐지와 언론개혁"을 꼽았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피해 당사자들이기도 한 386사단이 지금 당장은 열린우리당 개혁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듯한 국가보안법 등 반민주 악법의 개폐에 상당한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들 386에 대한 시민운동의 기대는 딱 거기까지다. 안수찬 한겨레신문 기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전대협 간부 등 80년대 운동권 출신이 핵심을 이룬 이들은 일종의 '노무현이즘'의 신봉자다. 구 정치질서의 '정치적 해체 및 재구성'에 대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열망을 지니고 있지만, 정작 정치구조의 혁신에 필수불가결한 '사회 및 경제구조의 재구성'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전망을 갖고 있지 않다. ---- 이들의 정치담론은 한나라당 신보수파들의 '경제담론'의 홈통으로 빨려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전망은 우상호 당선자의 얘기 속에서도 감지된다. "아직 한국사회의 주류가 진보적 지향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진보적 대중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고 시대 상황을 규정하는 그는 "열린우리당이 가야할 길은 분단과 독재의 잔재를 털어내는 역할, 이 정도도 한국사회는 진보"라고 자신이 몸담은 열린우리당의 시대적 과제를 설정한다. 물론 우 당선자를 비롯한 많은 민주화세대 인사들이 복지와 분배, 실업 문제, 중소기업의 어려움 등을 산발적으로 얘기하지만, 안 기자의 지적처럼 '사회 및 경제구조의 재구성'에 대한 독자적인 전망이 없는 것은 현재로선 분명해 보인다.
열린우리당 내부 인적 구성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대목은 10명 안팎에 이르는 시민운동 출신 인사들의 열린우리당 진출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정치인이 됐다고 뭔가 조정하려는 입장이 아니라 시민사회적 가치들을 가지고 치열하게 싸워야 될 것"이라 충고하면서도 "짧게는 수년, 길게는 십여년 동안을 시민운동에 몸담았던 분들이니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감을 피력했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이뤄진 조직적 진출이 아니라는 점 등에서 미뤄 볼 때, 열린우리당에서 이들이 개혁적 시민운동의 가치들을 구현하기 위한 유의미한 정치집단으로 기능하기에는 무리라는 평가다. 다만, 환경, 장애인, 여성 등 특정 이슈에서 정부여당과 시민운동의 소통 채널이 마련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천정배-신기남 체제의 개혁성
열린우리당 개혁성 전망에서 짚어야 할 중요한 조건이 이른바 천정배-신기남 체제다.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 셋째도 개혁"을 내세운 천정배 대표의 당선, 열린우리당 정치개혁 추진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선도 개혁론'을 제시한 신기남 의장의 취임은 그 자체로 시민운동에 상당한 기대감을 주는 지도체제 구성이다. 천정배 대표의 경우 민생을 내세워 '개혁속도 조절론'를 주장한 이해찬 의원을 제치고 당선됐고, 신기남 의장 역시 시민사회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은 '실용주의 노선'의 주창자 정동영 전임 의장을 대신했다는 점은 공히 열린우리당 개혁 추진의 청신호로 읽힐 만하다.
신기남 의장이 개혁 우선 카드로 들고 나온 언론개혁에 대해 언론개혁단장을 맡았던 김재홍 당선자는 "언론개혁은 인사와 함께 개혁의 인프라 작업으로 이해해 달라"면서 후속 개혁과제가 이어질 것을 시사했다. 결론적으로 천정배-신기남 체제의 열린우리당이 언론, 사법, 정치, 국회, 양성평등 등의 영역에서 시민운동의 요구를 일정한 수위에서 반영한 개혁을 시도할 것이란 예측은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개혁의 영역을 사회경제적 영역으로 가져갈 경우 지도부의 개혁 의지는 심각하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대체로 신기남-천정배 라인이 일반민주주의적 개혁을 담당하고, 홍재형 정책위의장이 사회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원내 정당화 추세와 맞물려 더욱 위상이 강화된 정책위의장의 개혁성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홍 의장의 개혁성은 시민사회의 기대에서 한참 멀다.
열린우리당 원내정책실 관계자의 얘기다.
"당의 입장은 불합리한 관행은 철폐하겠다는 것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격차, 특수영업직 근로자의 4대보험 가입과 표준근로계약서의 체결 등을 주요 과제로 보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과거처럼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갈 수도 없고, 원칙적으로 노사자율의 문제다."
어두운 사회경제 개혁 전망
이런 발언에서 엿보이는 열린우리당의 사회경제정책의 방향은 지금까지 참여정부의 입장과 별다를 바가 없다. 참여정부의 개혁을 추동하는 역할은 커녕, 이정우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등 정부 내부 일부 개혁인사들의 사회경제개혁 구상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김상조 한성대 경제학 교수의 얘기다.
"열린우리당 당선자 152명 구성원 중 경제통은 재경부 관료 출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재경부의 경제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독자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마련할 가능성도 낮다. 홍재형 정책위의장은 YS 말기 때 재경부장관을 역임한 분인데, 당시 별명이 '홍 주사'였다. 경제정책의 중심 위치에 있는 사람이 주도성과 철학을 가지고 뭔가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안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전체적으로 열린우리당은 재경부의 결정에 순응하는 현상 유지로 나갈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개혁성을 규정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정부여당로서의 위치다. 이와 관련해서 언론, 정치, 사법 등 분야에서는 정부여당의 위치가 개혁 추진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정치개혁과 부패 척결에는 상당한 의지를 가진 참여정부가 최근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를 들고 나오면서, 정치개혁 등 여당의 반부패 정책을 추동하고 있는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파병과 한미관계 등 외교 분야, 특히 재벌정책 등 경제정책은 개혁성의 한계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열린우리당 원내정책실 관계자는 출자총액제한,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공정위 계좌추적권 연장 등 3대 재벌정책 현안에 대한 당의 입장을 묻자 "당의 입장은 있지만 정부의 입장이 나오지 않은 한 밝힐 수 없다"고 말해 김상조 교수의 평가를 뒷받침했다.
총선 이후 달아 오른 파병 재검토론 역시 참여정부 외교안보팀의 파병 추진 불변 입장이 나온 후 급속히 냉각된 것도 열린우리당이 정부여당으로서 갖는 개혁의 한계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의 평가대로 열린우리당의 과반 장악이 "범개혁진보 지향 개혁과제의 실현 가능성을 높인 점"은 분명하지만, 개혁 추진을 둘러싼 열린우리당의 조건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열린우리당의 개혁 조건과 한계에 대한 시민운동의 면밀한 분석과 대응이 필요함은 불문가지다.
열린우리당의 개혁 추진에 시민운동이 개입하는 양태는 다양하겠지만 국회 개원 초기에는 일반민주주의적 개혁과제의 조속한 추진을 촉구하는 양상이 주를 이룰 전망이다. 김민영 국장은 "일반민주주의적 개혁과제들은 17대 국회 개원 초기에 집중해야 개혁이 가능하다"면서 개원 초기부터 정부여당에 개혁을 촉구, 압박하는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참여연대가 17대 국회 개원에 맞춰 6월초에 발표할 개혁과제 중 정치개혁, 반부패, 사법개혁, 국민기본권 강화와 인권보장 등 '낡은 정치 청산과 민주개혁' 분야에서 특히 과반을 장악한 열린우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질 전망이다.
대안 비판담론 형성의 중요성
사회경제 개혁 요구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열린우리당을 견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는 특히 재경부 관료 인사들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열린우리당에 대해 시민사회가 비판담론을 형성, 제시하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열린우리당에서 상대적으로 개혁파로 통하는 의원과 재경부 정통관료 출신 의원의 발언은, 고민의 지점은 다를 지라도 사회경제 개혁에 있어 결국 동일한 결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시민사회 비판담론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모델은 여전히 아직 부족하며, 현 시스템에서 국가권력의 힘은 대단히 제한적이다. 개별국가, 민족국가 단위에서 (신자유주의) 노선을 바꾸기는 대단히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 시민사회단체 토론회에 참석해)
"자유기업주의가 전세계를 풍미하고 있다. 정부가 복지나 다른 균형을 찾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이런 흐름에 맞지 않는다."(강봉균 열린우리당 의원, 한겨레 '대한민국 새 틀을 짜자' 좌담회에서)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의 승리를 "생활세계가 경제논리에 의해 장악된 것"으로 보는 김동춘 교수의 지적을 곱씹을 만하다.
"기업의 개발이익, 지자체의 세수확대, 소수의 지가상승 이득분을 위해 다수 주민의 삶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중앙과 시민사회는 어떤 반박 논리와 대항조직을 대비하고 있는가? 냉전 하에서 마비된 상상력은 효율성의 담론을 대체할 수 있는 무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조희연 교수는 "삼성의 주장인 '2만불 시대' 담론이 참여정부의 공식담론화하는 과정은 강력한 물적 기반을 갖춘 재벌 및 자본 진영의 정책담론 생산의 힘을 보여준다"면서 "저항적 시민사회를 배후지로 하는 개혁적·진보적 싱크탱크는 국가관료집단과 시장으로부터 독립성을 가지면서 지속적인 대안 정책을 생산하는 단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 교수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과제로 시민사회의 개혁진보적 의제들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국책연구소의 재편, 진보적 학술연구진영의 정책생산능력 제고, 시민운동의 정책생산 능력의 내부화, 진보정당 원내 진출에 대응하는 진보적 정책생산 노력의 경주 등을 제시한다.
위원회 제도 참여는 위상을 분명히 해야
시민운동이 정부나 제도 정치권에 개입하는 방법중의 하나로 지난 총선 전 꾸려졌던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 같은 기구를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참여연대는 실제로 정치개혁협의회의 상설화를 정치권에 요구할 방침인데, 김민영 국장은 "인적인 구성에서 정치인과 시민사회 동수로 구성하고, 합의된 내용의 무조건 채택 등 위상을 분명히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환경, 여성 등의 분야에서도 이같은 구상을 고민해 볼 필요성이 있다.
다만 각종 위원회 제도를 통한 시민운동의 개입은 위험성도 따른다. 홍성태 교수는 "시민의 참여를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각종 위원회 제도가 만들어져 중앙 정부와 자치단체까지 합치면 수천개의 위원회가 있지만, 정부에서 이미 안을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들러리 세우고 동의를 강요하는 식"이라고 평가한다. 홍 교수는 "정치개혁협의회 역시 일정한 성과도 있었지만 우롱당한 측면도 있다"면서 "위원회의 성격과 목표, 위상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차라리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 밖에도 시민운동은 민주노동당을 지렛대로 하여 열린우리당의 개혁 추진을 압박하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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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의원이 개혁성이 있다기 보단 이해찬이 충남 출신이라서 그런것 아닐까요?
개혁성 하면 이해찬 의원이 더 낫죠.
제 생각엔 열린우리당 대표에 천정배 의원이 된 것은 당 정체성에 부합하는 지역출신이고 개혁성보다 당 주변 의원들의 연합에 더 부합되는 인물이란 생각이 드네요.
천정배 의원 저도 한번 믿어보고 싶습니다. 전라도 사람들의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고 좋은 정치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