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부패방지법 본회의 표결 집계 오류 인정
국회/16대국회 :
2001/07/11 00:00
전근대적 기립표결방식이 빗어낸 국가적 망신
부패방지법 국회 본회의 표결시 집계 오차가 있었다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사실임이 지난 10일 확인됐다. 국회 의사과 관계자는 "당시 표결상황을 녹화한 자료 등을 검토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맞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부패방지법 천정배 의원 수정안 표결결과를 찬성 33표, 반대 167표, 기권 61표에서 찬성 35표, 반대 167표, 기권 59표로 수정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본회의 표결오차에 대해 인정함에 따라 '주먹구구식'이라는 기립표결의 문제점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또한 지난달 28일 부패방지법 표결은 전자투표기 고장을 이유로 기립투표가 실시됐다. 그러나 내일신문 보도를 통해 전자투표기를 통한 표결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국회에서 고의로 전자투표를 회피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한편 국회 의사과 관계자는 "국회 전자투표기가 불안정해 7월 임시국회에서도 기립표결을 할 것"이라고 밝혀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부패방지법은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사위 원안이 찬성 135표, 반대 126표, 기권 7표로 가결됐다. 당시 천정배 의원 수정안은 찬성 33표, 반대 167표, 기권 61표로, 한나라당 수정안은 찬성 132표, 반대 133표, 기권 3표로 부결됐다.
부정확한 기립표결, 7월 임시국회에도 계속돼
지난 6월 28일 참여연대, YMCA 등 38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부패방지입법시민연대(이하 부방연대)는 25명의 '시민기록관'을 모아 부패방지법 국회 본회의 표결결과를 기록했다. 부방연대는 시민기록관들의 기록과 자체 사진 판독 결과 천정배 의원 수정안 표결 집계 과정에서 찬성표 중 2표가 누락되는 집계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부방연대는 표결 오차를 밝히기 의해 천의원 수정안에 찬성한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부방연대의 주장에 국회측은 "자료조사요원들은 모두 오랜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반박(한겨레, 6월 30일자)한 뒤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왔다. 그러나 국회는 지난 10일 천정배의원 수정안 표결집계가 잘못됐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인정하고 국회 본회의록을 수정했다.
국회 의사과 관계자는 10일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부방연대에서 보낸 증거 사진, 의원명단, 국회 CCTV 자료 등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표결집계에 오차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오늘 국회 본회의록에 천의원 수정안 표결결과를 찬성 35표, 반대 167표, 기권 59표로 수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립표결은 의원들이 일어서고 국회 자료조사요원 9명이 의석을 나누어 맡아 뒤에서부터 숫자를 세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며 "자료조사요원들이 뒤에 눈이 달리지 않는 한 뒤늦게 일어난 의원들을 확인하기는 힘들다"며 표결오차가 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국회 전자투표기 '고장 아니다'
지난달 28일 부패방지법 표결은 전자투표기 고장을 이유로 기립투표가 실시됐다. 국회법 112조에 따르면 국회 본회의에서 제출된 법안 등에 이의가 있을 때는 찬반 토론을 거친 후 전자투표로 기록표결을 해야 한다. 다만 전자투표기가 고장나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기립표결을 허용하고 있다.
국회는 지난 3월부터 전자투표기 고장을 이유로 기립표결을 계속해 왔다. 16대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처리 된 12건 중 전자투표를 한 것은 지난 해 12월 27일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 3건에 불과했고, 나머지 9건은 찬반의 숫자만 남는 기립표결을 실시했다.
그러나 국회가 그동안 전자투표기를 통한 표결이 가능한데도 고장이라는 이유로 기립표결을 계속해 왔다는 주장이 제기되어(내일 신문 7월 4일자 보도) "기록표결을 기피하는 의원들이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내일신문 보도에 따르면 전자투표장치시스템보완 공사를 맡고 있는 삼성SDS 직원 송모씨는 "현재 국회 전자투표기의 기존 시스템 속도와 안정성을 높이는 기능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의원들이 버튼을 눌렀을 때 전광판에 뜨는 시간이 4∼5초 가량 걸렸다면 이를 1초 안팎으로 당기는 작업과 의원들이 버튼을 뒤늦게 누를 경우 집계에서 누락되는 경우를 보완하기 위한 성능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국회 의사과 관계자는 "내일신문 보도는 오보"라며 "현재 전자투표기는 시스템이 불안정해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자투표기는 투표기 장치와 전광판 장치로 나뉘는 복잡한 기계"라며 "삼성 SDS는 10월달에 공사를 완공하겠다고 했지만 이를 앞당겨 9월 정기국회부터는 사용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내일신문 장병호 기자는 "기사가 오보라면 이에 대한 정정 요청이 들어와야 하는데 어떤 항의도 받지 않았다"며 "보도된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장 기자는 "국회 사무처에서 전자투표기를 담당하는 직원도 지금도 전광판 장치는 사용하고 있다며 전자투표기를 통해 투표하는데 약 10초 정도의 시간만 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인정했다"며 "현재 전자투표기는 고장난 것이 아니라고 보여진다"고 덧붙였다.
빠른 표결이 아니라 정확한 표결이 중요
지난 10일 국회에서 본회의 표결오차에 대해 인정함에 따라 기립표결의 문제점이 공식적으로 확인됐으나 국회 관계자는 '전자투표기 시스템 불안정'을 이유로 7월 임시국회에서도 기립표결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 의사과 직원은 "자료조사요원들이 일어난 의원수를 센 다음 다시 한번 뒤돌아 서서 숫자를 확인하는 등 표결집계에 좀더 신중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개선책이라고 보기 힘들어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태호 참여연대 투명사회국장은 "전자투표기를 통한 표결은 단순히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개별 의원의 표결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는 중요성을 인식해야 하는 문제"라며 "9월에 전자투표기 공사가 완공되기 때문에 7월 임시국회에도 기립표결을 계속하겠다는 국회의 태도는 무책임하다"고 비난했다.
이 국장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헌법 기관"이라며 "전자투표가 힘들다면 단순히 찬·반 의원 수를 확인하는 기립표결이 아니라 표결기록이 남아 의원들이 이에 책임질 수 있는 다른 표결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국장은 아울러 "현재 예비금을 60억이나 가지고 있는 국회에서 재정이 어려워서 공사가 지연되는 것도 아닐 것"이라며 "전자투표기가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이고 왜 공사에 5개월이나 시간이 걸리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부방연대는 11일 성명서를 발표해 표결집계 오류에 대한 국회의 공식적인 사과와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부방연대는 또한 국회의 표결기록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어차피 부결될 것 아니였냐…"
지난 6월 28일 밤 9시경, 부방연대에서는 시민기록관들의 기록과 사잔 판독을 통해 부패방지법 천정배의원 수정안의 표결 오차를 확인했다. '국회 본회의 표결 집계에 오차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를 발견한 시민단체들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를 재차 확인한 후 밤 11시경 부방연대는 각종 언론사 기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대부분 기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어차피 부결될 것 아니였냐"는 것이 이들의 즉각적인 반응. 천의원 수정안에 찬성한 35명의 의원 명단을 들이미는데도 "확실한 증거가 없다" "어차피 부결될 것이었는데 표결 집계가 조금 틀린 것은 뭐가 문제냐"며 대부분의 언론이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아마 당시 표결을 집계했던 자료조사요원들의 생각도, 이에 대해 "자료조사요원들은 모두 오랜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반박했다가(한겨레, 6월 30일자) 뒤늦게 오류를 인정한 국회 측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부결될 것 아니였냐..."
표결집계 오류가 밝혀졌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재발방지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부결'과 '가결'이라는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생각이 앞선다면 이러한 일의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 보장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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