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정치자금을 볼모로 한 경제정책 왜곡을 우려한다
유권자운동/2002대선유권자연대 :
2002/03/05 18:28
경제 5단체의 부적절한 대선개입에 대한 논평
1. 전경련 총회에서 부당한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어, 어제(3월 4일) 경제 5단체가 올해 대선 각 후보의 공약을 평가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련의 발표들은 경제단체들이 정치권에 대한 구체적 발언의 수위를 점점 높여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2. 전경련의 부당한 정치자금 거절 선언은 정치자금의 투명성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최근의 상황에 대한 재계 나름의 '정경유착 거부선언'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발표된 경제 5단체의 공약평가 계획은 "재계가 정치자금의 제공을 담보로 경제개혁정책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새로운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3. 경제 5단체는 성명을 통해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면밀히 검토·평가해 정치논리에 따라 경제를 희생시키는 '선심성 인기영합주의'와 '반시장경제주의적 제도개편'을 철저히 배격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성명서로만 본다면 재계는 이제까지 반기업적 선심성 경제정책의 '순수한 희생양'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IMF로부터 지금까지 경제정책의 핵심문제는 재벌총수를 핵으로 하는 방만하고 부실한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원칙적인 처방의 부재에 따른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국제적인 신용평가기구들도 하나같이 한국사회에서 재벌개혁, 기업지배구조 개혁이 전제되지 않는 한 경제위기의 근원적 해결을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1년 PricewaterhouseCoopers 가 발표한 세계 각국 시장의 투명성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지배구조와 회계와 관련한 투명성은 조사대상 35개국 중 최하위다. 요컨대, 정치권의 정략적이고 비시장적인 경제정책이 문제의 한 원인임과 동시에 이들 경제단체들 자신이 가장 심각한 경제개혁의 대상이자 걸림돌이었다는 점 또한 명약관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 경제단체들은 이런 명확한 사실을 일체 언급하지 않고 반시장경제주의적 제도개편을 '심판'하겠다고 나서고 있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4. 조남홍 경총 부회장은 인터뷰에서 "선호하는 후보나 당에 관심을 표명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공약평가를 정치자금 제공의 판단자료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일견 당연해 보이는 이 발언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돌이켜 보면 이들 경제단체들은 선심성 경제정책의 희생양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장 큰 수혜자였던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 선심성 경제정책의 주된 대상은 노동자나 일반서민이라기보다는 경제단체나 재벌기업이었고 그들 스스로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활용하여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선거철마다 정치자금을 의식한 정치권의 대기업 공약남발 역시 사라지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되어 왔으나 이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낸 적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단체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치인에 대해서만 정치자금을 제공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는 것은 경제개혁정책에 대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만을 인정하겠다는 공개적인 협박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는 부당한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순수한 취지를 넘어서 역으로 정치자금을 볼모로 한 경제정책 로비를 노골화하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5. 기업가 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밝히거나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얼마든지 가능하고 보장되어야 할 권리이다.
그러나 기업지배구조가 비교적 투명하게 정착된 대다수 선진국에서조차 법인 또는 기업집단의 정치자금 제공을 매우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경우에도 그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법인들의 정치자금 제공내역이 제대로 공개되지도 않는 현실에서 법인들의 연합체가 정치자금 제공을 매개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부적절하고도 불순한 시도라 할 것이다. 경제 5단체는 이를 철회함이 마땅하다.


1836_f0.hwp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