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현장 리포트-창림이가 간다①>6mm에 걸린 제주·울산 경선 현장
유권자운동/2002대선유권자연대 :
2002/03/12 12:07
동원된 청년, 돈 먹은 아줌마, 한국정치는 낙제점
(편집자 주)참여연대 인턴, 창림. 스물 여섯 청년이다. 그는 얼마 전부터 대선감시 시민옴부즈만 활동을 시작했다.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은 채…. 그는 대선 경선이 펼쳐지는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누빈다.
아르바이트로 동원된 대학생, 10만원권 돈봉투를 받은 아주머니, 선거인단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한 전 국회의원 비서, 동원된 대학버스…. 모두 그의 카메라에 잡혔다. 앞으로 창림이는 부정선거가 벌어지는 곳에서 시민의 눈으로 문제의 현장을 적발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사이버참여연대에 소상히 밝힐 예정이다.
창림과 함께 후끈 열기가 달아오른 2002 대선 현장 속으로 달려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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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7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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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김종범 |
제주와 울산에서 펼쳐질 대선감시 시민옴부즈만 민주당경선을 참관하면서 그들의 불공정한 선거백태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다.
전원 켜고 끄고. 줌(Zoom)사용법…. 생각보다 쉽다. 그런데 직접 현장에서 고발장면을 과연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까. 솔직히 마음이 떨린다. 혼자 연습해봐도 생각만큼 화면이 잘 잡히지 않는다.
"첫술에 배부르랴."
찍고 또 찍다보면 언젠가는 '작품' 되리라.
2002년 3월 8일 금요일
오후 2시 30분. 제주공항에 발을 내딛었다.
봄바람에 실려오는 짭짜름한 바다 내음이 후각을 간질인다.
제주공항에 마중나중 제주참여환경연대의 고유기 사무처장. 인상이 퍽 좋아 보였다.
서약식이 진행될 MBC 제주총국. 그러나 정작 장소가 회의 중이라 곁눈질로 보지도 못하고 발길을 제주참여환경연대(www.jejungo.net)로 돌렸다. 상근 간사들과 간단한 인사.
동행한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과 이재명 사법감시센터 간사는 노트북을 켜고 일을 시작한다. 특별히 할 일 없는 난 인상좋은 고유기 사무처장에게 제주참여환경연대 소개를 듣고 제주도 역사 등에 대한 몇 가지 가이드를 받았다.
밤 9시. 대선감시 시민옴부즈만(박원순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이남주 한국YMCA사무총장·송두환 민변 회장·정대화 상지대 교수)이 주최하는 "깨끗한 선거를 위한 후보자 합동서약식"이 치러질 상황이다.
우리가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MBC의 다른 방에서는 경선 주자들이 <100분 토론>을 준비하고 있었다. 얼굴에 분을 찍어 바르고, 담소를 나누는 풍광이 눈 안에 들어왔다. 긴장된 분위기를 달래느라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있지만, 내겐 그 모습이 더욱 더 어색해 보였다. 차라리 그냥 있으면 오히려 긴장미라고 있을 텐데….
밤 9시를 조금 넘기자 후보측에서 서약식을 거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런 일이….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박원순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과 정대화 교수가 후보들을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한화갑 후보와 노무현 후보는 '신경질적인 반응'마저 보였다.
원래 서약식이 있는 줄 몰랐다는 핑계(한 시간 전에 보좌관들에게 다시 한번 확인을 한 사항이었다)와 다른 후보가 다 한다고 한 줄 알았다는 궁색한 변명을 대면서 완강히 거부했고, 결국 서약식은 무산되었다. 정치인들의 말 뒤집기 실력은 울 할머니가 부침개 뒤집는 솜씨보다 훨씬 좋았다. 인정한다! 그들의 뒤집기…. 허걱.
2002년 3월 9일 토요일
미국의 예비선거는 뉴햄프셔에서 시작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실시되는 민주당 국민참여경선은 제주도에서 시작된다. 국민참여경선제는 제도적인 단점이 있긴 하지만,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단지 그 의미를 다하기 위해서는 돈선거, 조직을 동원하는 선거가 없어야 할 것이다.
울산에서 양심고백 기사가 크게 보도됨에 따라 시민옴부즈만은 다소 긴장하는 듯 했다. 제주가 다른 지역에 비해 선거인단 수가 적지만, 처음 선거를 치른다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각 후보들이 많은 득표를 위해 공을 들일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라체육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쯤. 벌써 많은 인파가 체육관 입구에 모여 있다. 각 후보 진영들은 기호나 연호 등을 연습하기에 분주했다. 호흡이 잘 맞는 모습들이 연습을 꽤나 한 듯 했다. 어떤 후보 진영은 30∼40명의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모여 앉아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제주도의 청년들은 정치의식이 이렇게 높단 말인가? 이렇게 날씨 좋은 토요일 오후에 재미없는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응원하러 오다니….
후보들이 도착하면서 각 캠프의 운동은 더욱 격앙되었다. 일반투표자는 없고 모두 선거운동원같이 보였다. 도대체 누구에게 표를 달라고 외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행사가 시작되고 각 후보들의 지루한 연설은 시작되었다.
그동안 난 대학생이나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었다. 같은 젊은이라면 솔직한 말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대선감시 시민옴부즈만이라고 하니까 모두들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다.
실제로 돈을 주고받는 것을 포착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상황에서 인터뷰까지 못하면 제대로 된 감시를 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내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많은 분들께 양해를 구한다. 꾸벅.
몇 개의 인터뷰를 하니 벌써 마칠 시간이 되었다. 인터뷰에서는 돈을 받고 선거운동을 하러 동아리나 친구들끼리 온 청년들이 꽤 있었다.
행사 끝나고 나오는 길에 도로변에 서 있는 T대학 버스를 촬영하고 기사아저씨와 인터뷰를 했다. 선거인단을 태우고 돌아갈 차였다. 어떤 후보인지 물어봤으나 대답하지 않고 차를 몰고 서둘러 떠나버렸다.
2002년 3월 10일 일요일
어제 부산으로 이동해서 하루 묵은 후, 아침부터 서둘러서 울산에 도착했다. 봄을 재촉하던 비도 멈추었다. 우리나라의 삭막한 정치판을 촉촉히 적실 봄비도 내리면 좋겠다.
경선대회가 치러지는 종하체육관 입구에는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이미 선거운동원들이 구호를 외치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어제 제주에서 보였던 운동원들도 꽤 많이 보였다. 어떤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안양에서 왔는데 전국을 모두 따라 다닐 계획이라고 한다. 물론 자발적으로 왔다고 말했다. 내가 나쁜 ×라 그럴까? 그 아줌마의 말을 선뜻 믿을 수 없다.
행사가 시작되었고, 난 여전히 바깥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체육관 주차장에는 온갖 노점상들이 와서 장사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뱀장수도 와 있었다. 행사가 시작했는데도 많은 시민들이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었다. 마치 시골 장터에 온 것 같았다.
선관위사무실 앞에서 큰소리가 나면서 "돈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리가 났다. 얼른 카메라를 켜고 달려가 찍기 시작했다. 선거운동원 같은 사람이 큰소리로 어떤 후보의 선거운동원이 어깨띠로 돈을 감아서 던져줬다고 말했다. 그 사람이 목소리를 너무 높여서 주위에서는 일단 그 사람을 말렸고, 진정시켰다. 당 선관위를 비롯 기자들이 달려들어 물어본 결과 단지 어깨띠를 둘러싼 해프닝으로 결말지어졌다.
기자들이 흩어지고 할 일없이 서성이다 보니 아까 그 소란가운데 있던 다른 남자가 한 여자를 데리고 왔다. 서로 감정이 벌써 많이 상한 듯 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어깨띠를 내놓으라면서 다그쳤고, 여자는 선관위에서 가져갔다고 했다. 서로 다른 후보진영임이 틀림없다. 조금 있으려니 또다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카메라 기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것은 나 혼자였다. 자리를 옮겨가면서 어깨띠를 둘러싼 소란은 계속되었고, 나의 6mm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싸우는 모습 찍는 거 좋아하는 사람 어디 있겠는가?
아닌게 아니라, 역시 나였다. 어떤 아저씨가 와서 카메라를 손으로 치면서 거침없이 반감을 드러냈다. 생명의 위험을 느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카메라의 위험을 느끼긴 했다.
순간 영상팀 전옥배 간사의 일침이 생각났다.
"카메라 가격은 350만원!!!"
활동가 월급 몇 달치란 말인가? 더군다나 나 같은 인턴은 꿈도 꾸지 못할 가격이로다.!! 일단 몸조심하고 보자.
체육관 앞길 거리에서 한 기자와 마주쳤다. 그에게 간단한 상황설명을 들었다. 어떤 측에서 돈을 건네고 식사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길 건너 식당에서 빨간 옷을 입은 아주머니가 길을 건너왔다.
그 기자는 저 아주머니라고 했다. 얼른 카메라를 켜고 화면에 담기 시작했다. 그 기자가 접근하자 아주머니는 뿌리쳤고, 그 때 당 선관위 관계자가 왔다. 아주머니를 길가로 데려가서 말을 걸었다. 아주머니도 카메라를 찍는 것을 상당히 싫어해서 한 걸음 물러나 있다가 기회를 봐서 앞으로 다가가서 중요한 장면을 담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카메라를 싫어할까?
모든 사람이 카메라를 싫어하지는 않는 듯하다. 무언가 뒤가 구린 게 있는 사람일수록 카메라 앞에 서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다. 나의 편견? 그럴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선현장에서 내 6mm에 걸려든 부정직한 사람들은 모두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언제 쯤 나의 6mm 앞에서 환히 웃는 사람을 볼 수 있을까. 광주에선 만날 수 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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