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현장 리포트-창림이가 간다②>깍두기 아저씨앞에 고개숙인 캠코더
유권자운동/2002대선유권자연대 :
2002/03/19 13:09
잡히진 않았지만 여전한 동원흔적
(편집자 주)참여연대 인턴, 창림. 스물 여섯 청년이다. 그는 얼마 전부터 대선감시 시민옴부즈만 활동을 시작했다.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은 채…. 그는 대선 경선이 펼쳐지는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누빈다.
앞으로 창림이는 부정선거가 벌어지는 곳에서 시민의 눈으로 문제의 현장을 적발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사이버참여연대에 소상히 밝힐 예정이다. 창림과 함께 후끈 열기가 달아오른 2002 대선 현장 속으로 달려가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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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금요일 - 경선전야, 조용한 후보자들 숙소
지난 주말 제주와 울산에서 있었던 경선 현장에서 부정사례가 많이 적발되었기 때문에 이번 주에는 시민옴부즈만의 감시인력이 더욱 많아졌다. 현장에서의 감시활동과 캠페인을 주요 활동 목표로 삼고 버스 한 대를 대절해서 토요일 아침에 광주로 향하게 된다.
난 월간 참여사회 장윤선 편집장과 함께 하루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예정보다 많이 늦어져서 저녁 6시 40분이 되어서야 광주행 고속버스를 탈 수 있었다. 시간을 아끼느라 저녁도 먹지 못하고 무작정 차에 올라서인지 배가 고팠다.
광주~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80년대 역사의 현장. 나에게는 글로써만 인식되었던 그곳... 광주 땅을 처음 밟게 되는 난 설레었다.
밤 11시를 넘은 야심한 시각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한 방송사 기자가 우리를 후보자가 묶고 있는 숙소로 안내해 주었다. 먼저 광주에서 가장 좋다는 M관광호텔에 갔다. 돈 많은 L후보라면 무궁화가 5개 정도는 되어야 체면이 설텐데, 안타깝게도 광주에는 무궁화 4개인 이 호텔이 가장 좋은 곳이란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무슨 취재거리가 없나 하고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1층 커피숍은 벌써 문을 닫았고, 술집에도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울산에서 봤던 보좌관과 경호원(?)만이 이곳이 후보자의 숙소임을 말해줄 뿐, 후보자 관련 사항은 없어 보였다.
세 명의 후보측이 모두 묶고 있다는 다른 호텔로 자리를 옮겼을 때는 시계가 새벽 2시를 향하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먼저 갔었던 호텔보다 더욱 조용했다.
경선이 있을 염주체육관 근처의 숙소로 와서 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3시에야 잠들 수 있었다.
3월 16일 토요일 - 한 달에 천만원 버는 아저씨에게 욕먹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생일을 맞은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밤새 충전된 캠코더를 챙겨서 일찍 숙소를 나섰다. 날씨는 화창했다. 염주체육관 주변에서는 음식을 파는 분들이 벌써부터 분주히 장사준비를 하고 계셨다. 노점상 아저씨 가운데 한 분이 울산에서 내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찍는 것을 봤다고 하신다. 노점상 아저씨들도 민주당 경선 일정에 맞춰서 움직이신다고 했다.
며칠 전에 광주에 도착했다던 S방송사의 시사프로 제작팀과 광주의 동향에 대해서 논의를 했다. 지역 인터넷 신문에 돈 살포 현장이 포착되었다고 했다. 제주와 울산의 부정선거에 대한 고발이 있었고, 어떤 후보에게는 엄중 경고 조치가 취해졌음에도 곳곳에서 부정선거현장이 여전히 목격되고 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웠다. 정치인들은 "깡" 하나로 살아가는 걸까?
아직 대회가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인지 주변은 조용한 편이었다. 울산과는 달리 주변에 음식점도 드물었기 때문에 오늘은 조용히 넘어갈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근처 음식점들을 돌아본 후, 다시 체육관으로 와보니 벌써 각 후보진영의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주머니 부대, 양복으로 빼 입은 '깍두기' 스타일의 청년들은 동원된 것처럼 보였다. 두 명의 후보가 사퇴를 했음에도 선거운동의 뜨거운 열기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제주보다 더욱 많은 운동원들이 동원된 듯했다.
정오를 넘어서자 대선감시시민옴부즈만을 태운 버스가 도착했다. 체육관 입구 한쪽에 부스를 만들고, "돈선거를 막아야 정치가 바뀝니다" 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캠페인을 했다. 광주지역 시민단체에서도 함께 해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잠시 후에 한 시민이 건너편 건물 4층 여자 화장실에서 아주머니들에게 봉투를 건네는 것을 봤다고 제보해 왔다. 달려가 건물에 도착하니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짝지어 건물을 나오고 있었다. 4층까지 단숨에 올라가 보았으나 이미 아무도 없었다. 아주머니들을 따라가 보았다. 체육관 한쪽에 모여서 한 남자의 인솔아래 선거운동을 하는 곳으로 가서 모두가 특정후보의 선거운동을 했다. 아주머니들의 "깡"도 웬만한 정치인 못지 않다.
경기도, 전남, 충남 등의 번호판을 단 관광버스를 타고 온 동원된 선거운동원들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광주까지 왔냐는 나의 질문에 자발적으로 왔고, 단지 구경만 하러 왔다고 했다. "아저씨, 아주머니 거짓말 좀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경선 대회가 끝나고 난 후 전라도 지역기반을 가진 후보가 저조한 성적을 보이자, 목포에서 왔다는 한 운동원은 "전두환을 다시 부르자", "5·18이 다시 와야 한다"고 말하는 등 광주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토로했다.
체육관 앞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월간 참여사회 황지희 기자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곳은 어떤 후보가 예약을 한 곳이다. 저녁식사는 갈비탕만 가능했다. 우린 식사를 하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식사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특정후보 진영이었다. 어떤 운동원이 일어나 좌중에 뭐라고 말하고는 그 후보의 이름을 연호 했고 사람들도 따라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후보도 일어나 "오늘 고생했다. 내일을 위해 재충전을 하자"며 사람들을 격려했고, 식당 안은 박수와 함성으로 가득했다.
참여연대는 개똥?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모두가 식대를 지불하지 않고 껌과 이쑤시개만 가지고 나갔다. 난 식당 주인 아저씨에게 오늘 누가 식대를 지불하는지 물어봤으나, 아저씨는 모른다며 귀찮게 하지 말라고 했다. 계산대 옆에 서서 누가 지불하는지 알아보려고 기다렸다. 잠시 후 60대 정도 되는 아저씨가 얼마냐고 물었다. 169명이나 먹었고, 술과 음료수까지 90만원이 넘었다.
장 편집장이 왔고, 취재를 하려고 했으나 계산을 했던 아저씨는 노골적으로 "어린X", "참여연대는 개똥" 등의 막말을 서슴지 않고 뱉어냈으며, 장 편집장의 명함까지 땅바닥에 팽개쳤다. 그러고는 "내가 후보의 조카고, 한 달에 1000만원 받는 월급쟁이인데, 친척들한테 밥 사는 게 뭐가 잘못된 거냐"며 더욱 화를 냈다. 후보측의 언론 특보가 와서 사태를 수습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 아저씨에겐 사과를 받지 못했고 찜찜한 기분으로 밀려 나왔다. 한 달에 천만 원이면 참여연대 간사 연봉보다 많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한테 욕하면 쓰나...
다른 후보측이 식사를 하는 곳으로 향했다. 1000만원 받는 월급쟁이 아저씨랑 실랑이를 하느라 시간이 많이 흘러서인지, 이쪽 후보진영은 벌써 식사를 마치고 길거리에 나와 있었다. 식당 주인에게 식대를 누가 계산했냐고 물으니, 각자 5천원, 만원씩 내서 계산했다는 거다. 거기다가 거스름돈도 각자 나눠 가져가더란다. 아까 와는 딴판이었다. 이런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시가 넘어서야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향할 수 있었다. 버스에 타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3월 17일 일요일 - '깍두기' 아저씨앞에 고개숙인 캠코더
피곤해서인지 아침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오늘도 날씨는 좋다. 서둘러서 무역전시관으로 향했다. 선거운동원들은 벌써부터 와 있었고 전시관 주위에는 각 후보의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어제 봤던 운동원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정말 부지런하고, 상당한 열정이다.
어제의 경선 결과와 평소 대전 지역의 지지기반을 고려할 때, 많은 사람들이 동원될 것이라 예상을 했다. 아닌게 아니라 곧 무역전시관 주차장에는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들어 왔다. 한 지역에서 대여섯 대씩 오기도 했다. 차에 타고 온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니, 지구당에서 차편을 마련해 줘서 투표하러 왔다고 한다.
제주에서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동원한 후보측은 이번에도 대학생을 동원한 듯하다. 참여사회 기자가 그 가운데 한 학생과 인터뷰를 했는데 아르바이트 나왔고, 아직 돈을 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인터뷰 도중 인솔하는 학생이 제지하기도 했다.
대전에 지역기반을 가진 후보측의 운동원들이 가장 많아 보였다. 경선 현장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그 후보의 연설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바깥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미 결과는 정해진 것 같아 보였다. 경선 현장에 소위 "깍두기"스타일의 조직원들이 가장 많이 눈에 띤 곳이 대전인 듯하다. 한결같이 양복에 배지를 달고 머리를 빗어 넘긴 모습에 내 캠코더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 시도조차 하지 못한 체...
오늘은 특별한 제보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감시단의 눈에는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조직책들이 많이 보였고, 동원된 운동원들이 많이 보였으며, 선거 후 대청댐 등으로 놀러 가는 버스를 볼 수 있었다. 지역 시민단체 분들에게 정보를 주고, 뒷일을 부탁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광주, 대전에서의 시민옴부즈만 활동에 대한 총평을 했다. 지난 제주, 울산에서의 부정선거 고발로 앞으로 부정선거 현장을 포착하기는 더욱 힘들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 이유가 부정 사례가 없어서라면 얼마나 좋을까?
맑고 화창해 보이지만 황사로 인해 저녁이면 기관지가 아프고 눈이 따끔한 것처럼, 겉으로는 깨끗해 보이지만 뒤에서는 돈이 오가고 조직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황사현상은 더욱 심해진다는데 참 걱정이다. 황사 없는 깨끗한 날씨를 기대하는 것은 철없는 짓일까? 천안에서는 어떨까? 기대반 걱정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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