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화 경선관전기-충남>바람 맞선 승부수 '음모론'
유권자운동/2002대선유권자연대 :
2002/03/24 17:44
노무현의 '추격'에서 이인제의 '견제'로 전환되는 국면
(편집자주) 사이버참여연대는 민주당 국민경선 기간동안 각 지역 경선별 평가를 담은 정대화 상지대 교수의 관전기를 연재한다. 정대화 교수는 '대선감시시민옴부즈만' 전문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관전기는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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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마이뉴스 이종호 |
3월 9일부터 3월 16일까지 일주일. 돌풍으로 평가된 노무현의 짧은 대추격전은 지난 2-3년 동안 공들여 만들어놓은 정치구도를 허물고 수많은 정치평론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와중에 김근태, 유종근, 한화갑 등 세 명의 후보가 자의 반 타의 반 말에서 내렸다. 남은 네 명의 경선 레이스에서 이인제와 노무현 두 후보의 치열한 선두 다툼이 국면을 주도하면서 국민경선의 주가를 상종가로 끌어올렸다. 그 와중에 제기된 복병 '음모론'이 경선 국면을 좌우할 승부수로 떠올랐다. 이래저래 민주당 경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 경선이 처음으로 '넓은 지역'에서 치러지게 되었다. 제주를 예외로 한다면 그간의 경선이 울산, 광주, 대전 등 별로 넓지 않은 '광역도시'에서 이루어졌다면 오늘 충남 경선은 도시와 농촌을 포함하는 지역에서 처음으로 열린 셈이다. 농촌의 선거인단은 도시의 선거인단과 다른 선택을 할지 주목되는 상황이었다.
충남 경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심사항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되었다. 그중 두 가지는 충청권의 일원으로서 충남에서도 대전의 득표상황이 유지될 것인가, 과거 이인제 후보의 우세 지역으로 평가되다가 최근 혼전을 보이는 강원 경선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충청지역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대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득표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 반면 충청과 강원 사이의 상호의존성이나 연관성을 크게 보지 않기 때문에 오늘의 결과가 강원 경선에 의미있는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나머지 하나는 이번주 들어 갑자기 쟁점으로 부각된 '음모론', 정계개편론, 운동권 가세론 등 주로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후보를 대상으로 제기한 문제가 경선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고, 사실상 관전 포인트였다.
이인제 후보의 문제제기는 노무현 후보의 약진에 대한 일종의 견제장치로서, 이인제 대세론이 확산되던 시점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후보를 겨냥해 정통성 논쟁을 제기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노무현 후보의 대안론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전술적 처방의 차원에서 구사된 것으로 평가될 수 있겠다.
2002년 3월 23일 오후 6시.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 대전 경선과 유사한 지지 성향이 나타났다. 이인제 1432, 노무현 277, 김중권 196, 정동영 39로 이인제 고문이 대전에서 얻었던 67.5%보다 6.2% 높은 73.7%의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했다.
전체적으로 이인제, 김중권 후보의 지지도가 올라간 반면 노무현, 정동영 후보의 지지는 내려갔다. 같은 충청권이지만 대전과 구별되는 충청남도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같은 성향의 지지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충남 경선으로 종합 1위를 고수한 이인제 후보의 득표수는 2위를 한 노무현 후보의 득표수를 두 배나 앞질렀다.
이인제 후보의 득표가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에 우수리 26.3%를 얻은 나머지 세 사람의 표 분석은 사실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김중권 후보가 대전에 비해 상당한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점과 정동영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절반 이하로 격감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화갑 후보의 지지표는 특정 후보에게 집단적으로 이동하기 보다는 정동영 후보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에게 적절하게 분산 이동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중권 후보의 상대적 선전은 '안정감있는 보수정책'에 대한 선거인단의 우호적인 응답이 아닐까 한다. 김후보는 연설의 대부분을 국정운영 경험이 있고 위기관리능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충청지역에서 이인제 후보에게 몰표를 주면 영남에서는 자기에게 몰표가 나올 것이라고 가볍게 '협박'하면서, 그러지 말고 자기에게도 표를 나누어 달라고 귀엽게 '애교'를 부렸다. 관전자의 느낌으로 평가한다면 선거인단이 박대할 이유가 없는 친근감있는 행동이었다.
정동영 후보의 경우 제주 경선 이후 단 한 번의 반전 없이 지속적으로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경선이 진행되면서 선거인단의 규모가 확대되고 후보 수가 줄어드니 득표수가 늘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줄어드는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정 후보는 광주와 대전에 54표를 얻은데 이어 이번 충남 경선에서 39표를 얻음으로써 지지기반에 상당한 결함이 있음이 드러난 셈인데, 제주발 태풍을 실현시키지는 못했지만 경선 마지막까지 완주하겠다고 한 정 후보로서는 충분히 고민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인제 후보는 대전에서 했던 레파토리에 변화를 주지 않고 그대로 반복했다. 10남매를 낳아 여섯을 기른 어머니의 희생적인 노고와 중3때 만나 39년을 동고동락한 아내의 이야기가 연설문의 서두를 장식했다.
이 두 여성과의 관계가 이후보의 여성관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적수공권으로 뛰어들어 500만표를 획득한 지난 대선 상황 및 그 이후 국민의 정부를 위한 자신의 공적을 이야기하는 장면까지는 담담하고 회고적인 어조로 이어내려갔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의 정계개편론을 비판하면서부터 격앙되기 시작한 연설의 톤은 경선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비판에 이르러서는 절정에 달했다. 일순 경선장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후보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발성은 빨라졌고, 순간순간 구사하는 어휘에는 깊은 장중함이 묻어났다.
이 후보는 노 후보의 정계개편론이 민주당을 깨는 것이라고 몰아쳤다. 그는 민주당을 합리적 진보와 건강한 보수가 결합된 중도개혁정당으로 규정한 다음 운동권 출신들이 경선장에 몰려다닌다고 비판한 다음 극단적인 운동권이 민주당의 안방을 차지해서는 안된다고 의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노사모를 빗대어 비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인식은 경선장에서 만난 이 후보의 참모가 들려준 노사모에 대한 비판적인 진술에서도 잘 드러났다. 이 후보 진영이 노사모에 대해서 상당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거나 노사모를 이념적 차원에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무난했다. 드디어 이 후보가 경선의 공정성을 해치는 세 가지 행위를 비판하는 지점에서 긴장도는 바짝 높아졌다. 이번 경선의 신무기로 등장한, 그리하여 언론에서 '음모론'이라고 부르는 대목이 이 후보의 입을 통해 실제상황으로 표출된 것이다. 이 후보는 유종근 후보의 사퇴와 청와대의 개입을 지목하면서 철저한 조사와 처리를 요구했다.
이 대목에서 이 후보는 광기, 돌풍, 분노와 같은 대단히 정서적인 어휘군을 동원했다. 그 사례로 독일의 히틀러가 인용되었다. 언어의 상징조작에 의존한 일련의 연상작용이 일어나는 어법이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짐작인지는 두고보아야 할 일이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냉정하게 판단할 일이지만, 사실보다는 분위기가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경선장에 나온 많은 사람들은 경선이 중대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핵심은 이런 것이다. 은인자중하던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비판의 뇌관을 뺐다는 것이다. 노무현 후보를 향한 비판은 불안심리와 반김대중 정서로 모아질 것 같다.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을 깨려고 한다는 것이나 운동권 출신들이 몰려다닌다고 비판하는 것은 불안심리를 극대화할 가능성이 높다.
유종근 후보의 사퇴, 방송사의 여론조사 타이밍, 노무현 후보의 돌풍 등 일련의 사건에 대한 '음모론'적 해석은 상황을 대통령이나 청와대에 연결시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반김대중 정서로 연결된다.
이인제 후보의 비판 담론에서 핵심은 음모론이다. 정계개편론과 운동권 이야기는 음모론으로 접근하는 도입단락이거나 음모론에 맛을 내는 양념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음모론이 민주당의 경선국면을 통째로 뒤흔들 수 있는 막강한 폭발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황 전체가 변경될 수도 있는 것이다. 대세론에 상처를 입은 이인제 후보 진영에서 상당한 체중을 걸어 대응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이 후보의 비판에 대한 노무현 후보의 대응은 매우 수세적이었다. 대전에서 했던 '까치밥' 이야기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노 후보는 정계개편론과 음모론으로 상해 있을 선거인단의 마음을 어루만지려는 듯 "차분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누자"고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노후보는 음모로 어떻게 돌풍을 만들 수 있냐고 반문했다. 정계개편론은 당을 깨자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을 중심으로 당을 키우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인제 후보가 사실을 잘못 말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작은 모략에 흔들리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
경선 국면에서 제기된 당에 대한 불안감을 우려해서인지 두 후보는 끝까지 당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이인제 후보는 노무현 후보의 정계개편론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당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표출했으며, 노무현 후보는 이 후보의 비판에 대한 답변을 통해 민주당은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민주당 사람들은 선두에 선 두 후보가 당을 깨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하고, 또한 당이 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을 보면서 아마도 안심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상황을 뒤집어 보면 이런 이야기가 거론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당이 깨지지 않는다고 만사형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논평자들의 일반적인 우려와 달리 민주당 경선에서 지역감정이 심하게 표출되지 않고 있어 무척 다행스럽다. 충청지역에서 표의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표의 쏠림만으로 지역감정을 말할 수는 없거니와 광주의 훌륭한 선택으로 지역감정에 대한 우려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음모론'이 선거전 레귤라 멤버인 지역감정을 제치고 복병으로 등장한 셈이다.
충남 경선이 끝난 시점에서 관심사항은 '음모론'의 후속타에 관한 것이다. 1위 후보가 2위 후보를 향해 '음모론'을 제기한다는 것이 조금은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인 만큼 당 차원의 조치가 필요한지 판단해보아야 할 것이다.
'음모론'의 진원지로 지목된 청와대의 경우에도 무대책이 상책이라고 버틸 일은 아니다. 이인제 후보측에서도 추상적 문제제기 이상의 사실관계를 적시해야 할 부담을 안고 있다. 예상밖의 승부수가 던져진 셈이라고나 할까.
정대화 상지대 교수, 대선감시시민옴부즈만 전문가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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