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현장 리포트-창림이가 간다③>돈 거부한 어떤 대의원
유권자운동/2002대선유권자연대 :
2002/03/26 14:32
한국정치에 작은 희망을 발견하다
(편집자 주)참여연대 인턴, 창림. 스물 여섯 청년이다. 그는 얼마 전부터 대선감시 시민옴부즈만 활동을 시작했다.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은 채…. 그는 대선 경선이 펼쳐지는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누빈다.
앞으로 창림이는 부정선거가 벌어지는 곳에서 시민의 눈으로 문제의 현장을 적발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사이버참여연대에 소상히 밝힐 예정이다. 창림과 함께 후끈 열기가 달아오른 2002 대선 현장 속으로 달려가 보자.
경선현장 리포트-창림이가 간다
① 6mm에 걸린 제주·울산 경선 현장 (03/12)
② 깍두기 아저씨앞에 고개숙인 캠코더 (03/19)
2002년 3월 23일 토요일 - 경선장에서 웬 힘자랑?
오전 10시 30분, 김민영 국장과 만나기로 한 대방역에 도착했다. 정훈이는 벌써 와 있었다. 참여연대에서 함께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정훈이도 천안과 춘천에 함께 간다. 좋은 일은 여럿이 함께 할수록 힘이 난다. 김민영 국장과 그의 부인, 일곱 살배기 아들 지문이, 이재명 간사, 김정훈, 그리고 내가 함께 출발한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은 좋았고, 지문이의 재롱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예정보다 늦은 1시 30분에 천안 유관순체육관에 도착했다. 고급 승용차들과 관광버스가 많이 보였다.
체육관 앞에는 벌써부터 선거운동이 진행중이다. 각자 지지하는 후보를 연호하기에 한창이다. 벌써 다섯 번째의 경선이다 보니 각 캠프마다 얼굴을 아는 운동원들이 제법 있다. 대부분 내 얼굴을 알고,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지라 어색한 눈인사만 할뿐이다. 알고보면 나도 나쁜 사람은 아닌데...
국민참여경선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지만, 선거운동의 방식은 대체로 평이하다. 후보의 이름을 외치는 것, 악수하는 것, 부르기 쉬운 가요의 가사를 바꿔 부르는 것, 함성을 지르는 것 등. 모두 그렇고 그런 선거운동방식이다. 그런데 특이한 선거운동을 하는 곳이 있었다. 대체로 건장한 청년들로 구성된 어떤 후보측에서 한 명이 나와서 커다란 바위를 번쩍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난데없는 차력시범에 여러 사람들의 눈길이 쏠리기도 했다. 하지만 경선 현장에서 웬 힘자랑?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난 경선현장과는 다르게 운동원 중에 젊은이들의 비율이 많아졌다. 전에 보이던 아줌마 부대나 아저씨 부대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정치권도 젊어지고(?) 운동원도 젊어진다. 젊어진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일단 생기 있어 보여 좋긴 하다. 그들 모두가 동원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시민로비단 어른들과 함께 체육관 옆에 있는 스포츠 센터의 지하 식당에 가 보았다. 전국대의원 명단을 놓고 식사를 하고 간 사람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어림잡아 40∼50명 정도는 되는 듯했다. 한국 문화에서 밥을 함께 먹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정치현장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사고, 밥을 먹는다. 심지어 100명이 넘는 인원에게 밥을 사기도 한다. 이런 비용들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정치와 밥, 그 관계는???
선거운동이 한창인데 좀 떨어진 곳에 모여있는 여학생 운동원들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자발적으로 왔다는 그들은 좀 피곤해서 쉬고 있다고 했다. 양 손바닥에 응원하는 후보의 기호를 써 놓긴 했지만 그 후보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고, 어떤 점이 좋아서 응원하는지에 대한 간단한 물음에도 답하지 못했다. 안타까웠다. 대학생들을 동원하는 정치인들이 안타깝고, 그들에게 동원되는 젊은이들이 안타까웠다. 오랜만에 하늘은 파랗게 개인데 반해 내 머리 속엔 아직도 황사가 끼인 듯 하다.
2002년 3월 24일 일요일 - 돈 거부한 어떤 대의원
호반의 도시 춘천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막국수를 먹기 위해 한 음식점을 찾았다. 그런데 광주에서 봤던 선거운동원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강원지역 경선이 열리는 춘천호반체육관과는 그리 가깝지 않은 식당이었는데도 이렇게 선거관련자들이 있는 것을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경선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차장이 모자라서 체육관 근처 학교의 운동장과 길거리에도 대형 버스를 비롯한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체육관 입구부터 쭉 늘어선 운동원들이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여러 후보들이 사퇴한 것에 비하면 선거운동원들의 수는 정말 많은 편이다. 어제와 비슷하게 젊은 학생들이 가장 많이 보였다.
어제 바위를 들었던 그 젊은이도 있었다. 오늘도 역시 바위를 번쩍 들어올려서 길 한복판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당 선관위 관계자가 와서 치우라고 지시했다. 바위를 치우고 오는 그 젊은이에게 왜 그랬냐고 물으니 죄송하다면서 답변을 피했다. 뭐가 죄송하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몸은 참 건강한 청년임에 틀림없다.
오후 1시부터 시민옴부즈만은 캠페인을 했다. "돈선거를 추방해서 정치개혁 이룩하자"는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제보엽서를 나눠줬다. 하지만 선거운동원들의 큰 목소리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해서 아쉬웠다. 다음부터는 좀 더 재미있는 캠페인을 생각해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봤으면...
강원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경선이라 그런지 대부분 지구당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왔다. 도착한 선거인단들은 민주당에서 제공하는 점심 도시락을 먹고 체육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외할머니 고향도 강원도다. 할머니는 예전에 시골에서는 모두들 투표를 했다고 하셨다. 누가 하는지, 안하는지 다 알기 때문에 모두들 투표를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고, 안하는 사람들은 이장이나 청년회장이 차로 데려가서 투표를 하게 했다고 하셨다. 옛날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대절해준 버스를 타고 체육관에 와서 투표를 하는 모습이 왠지 외할머니가 해주신 말이 생각나게 한다.
울산과 광주, 대전에서 봤던 노점상 아저씨들도 봤다. 광주에서 날 알아본 칼 가는 아저씨는 주위 분들에게 날 소개하기도 했다. 나도 아저씨께 근황을 묻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다. 아저씨들은 나의 좋은 제보자들이다. 물론 한 건도 올리진 못했지만 말이다.
요즘 정치인들은 연예인처럼 팬클럽이 있다. 이번 경선에 나온 정치인들도 그렇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팬클럽은 연예인의 그것과는 다른 점이 있기도 하다. 연예인들의 팬클럽이 전적으로 자발성에 의해서 움직이는데 비해 정치인의 팬클럽은 그렇지 않은 모습도 있다.
또 연예인의 팬클럽은 자기가 좋아하는 이를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지만, 정치인의 팬클럽 회원은 누구를 지지하는지조차 밝히기를 꺼려하는 경우도 있다. 응원하는 모습이 쉽게 지쳐보이는 것도 연예인의 팬클럽과 정치인의 팬클럽이 다른 모습이다. 연예인의 팬클럽은 그 연예인을 따라 체육관으로 몰려들어가지만 정치인 팬클럽은 정치인이 체육관으로 들어가고 행사가 시작하면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몰려간다.
인터뷰를 했다. 투표를 마친 어떤 대의원은 현역 의원이 경선을 도와달라며 돈을 주는 것을 거절했다고 한다. 앞으로도 그 후보 진영에서 그런 일이 계속 있으면 양심선언을 하겠다고 한다. 돈을 주려고 해도 받지 않는 이런 분들이 있기에 한국정치에 대해서 쉽게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시민옴부즈만의 활동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하지만 나의 바램은 옴부즈만 활동에서 부정의 현장을 파악하지 못하는 날이 왔으면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감시가 필요없이 깨끗한 정치의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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