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은 일은 '심기일전'의 대추격 뿐



(편집자주) 사이버참여연대는 민주당 국민경선 기간동안 각 지역 경선별 평가를 담은 정대화 상지대 교수의 관전기를 연재한다. 정대화 교수는 '대선감시시민옴부즈만' 전문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관전기는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서도 볼 수 있다.

정대화 경선관전기

<강원>태백산맥 넘은 '돌풍' (03/25)

<충남>바람 맞선 승부수 '음모론' (03/24)

<대전>지지도인가 지역주의인가 (03/18)

<광주>극적 이변, 그 이상의 혁명적 반전(03/17)

2002년 3월 27일.

정치실험을 수행중인 대한민국의 아침 햇살은 여느 때와 달리 맑고 쾌청했다. 같은 시간, 이인제 후보가 숙고에 숙고를 거듭한 끝에 끝까지 경선에 참여하겠다는 낭보를 전했다. 만 하루만의 고뇌의 배경이 무엇이든 이 후보가 경선을 거부하지 않고 참여하기로 한 것은 무조건 잘 한 일이다.

이 후보의 결정으로 민주당도 살고 정치도 살았다. 이 후보도 살 길을 택한 것이다. 물론 국민경선에 참여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많은 국민들도 다행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좋은 선택이 또 하나 늘었다. 좋은 선택의 축적, 그것은 좋은 정치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인제 후보의 결심으로 젊은 7공자로 시작된 민주당 국민경선이 3파전의 장기전 경합구도로 정착되었다. 이제 누구도 중도사퇴를 못하게 되었다. 앞으로 3파전 경선구도를 깨는 후보가 나온다면, 그는 아마도 민주정치의 실험을 방해한 현대판 '역적'으로 치부될 것이다.

이로써 이인제 후보는 심기일전 새출발하게 되었으며, 대안론에 탄력을 붙이고 있는 노무현 후보는 안심하고 역주할 수 있게 되었다. 불가피하게 꼴찌가 되어버린 정동영 후보는 이인제와 노무현 양자대결구도의 충격을 완화하고 관리하면서 국민경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유일한 조정자를 자임하게 되었다. 정동영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꼴찌"가 되었다. 국민경선이 짧은 진통을 거치면서 황금 대결구도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이인제 후보의 고뇌가 무엇이었는지 그 깊은 속을 알지는 못한다. 성급하게 알려고 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느낌으로 다가오는 고뇌의 강도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 후보는 오랫동안 포근한 '대세론'의 양탄자 위에서 꿈을 키웠고, 3월 8일 부푼 꿈을 안고 첫 경선지 제주로 내려갔다. 비행기가 구름 위를 나는 것과 같은 심정이었음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그러나 제주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대세론'의 화려한 꿈은 가장 믿었던 광주에서 처절하게 부정당했으며 마지막 보루로 여기고 역량을 집중했던 강원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 것으로 보였다. 불과 2주일만에 믿을 수 없는 가정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들이닥친 것이다.

이것이 이인제 후보의 맨살을 자극한 얼음처럼 차가운 국민경선의 성적표이자 현실이며, 여러 차례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부서지지 않는 철벽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라면 차라리 나을 것이다. 일반 국민들에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 안쪽의 고민은 더 깊은 법이고,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순위의 변화나 지지율의 변화는 선거자금의 조달에 가장 빠르고 민감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 원래 돈이라는 것은 그렇게 냉정한 것이다. 조직의 사기저하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더구나 조직의 특성상 자금없이 가동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금부족과 사기저하라는 이중고가 선거운동을 근본적으로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 ⓒ 오마이뉴스 권우성
많은 사람들은 이인제 진영에서 제기한 '음모론'의 배경을 이렇게 짐작하고 있다. 답답한 현실에 대한 돌파구로서 기획된 '고육지계'라는 것이다. 실제로 '음모론'의 전개과정을 보면 그것이 사실에 대한 담담한 접근이라기 보다는 확대된 '가공의 상황'에 대한 해석적 접근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고 시기마다 뉘앙스가 변하는 구름과도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연이은 패착으로 인한 불안감과 당혹감이 진하게 배어있는 그런 것이었으며, 조직내 견해차가 언뜻언뜻 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충남 경선 직전에 점화되어 강원 경선에서 폭발할 것으로 전망되었던 '음모론'은 목적지인 강원 경선에서 불발로 끝나고 말았고, 경선 결과는 어이없는 패배였다. 경선 종합순위 1위, 득표율 52.6%의 선두주자가 2위를 겨냥해 '음모론'을 날려야 하는 매우 이상한 국면마저 불발로 시들면서 정신적 공황상태가 찾아들었다. 이 또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광주 참패에 이어, 대전과 충남의 압도적 지지가 승리로 간주되지 않는 상황, '음모론'도 먹히지 않고 마지막 배수진을 쳤던 강원마저 등을 돌려버린 상황에서 오히려 '음모론'에 대한 반발장세가 강력하게 형성되는 국면이었다.

'음모론'이 제 발등을 찍는 오판이었다는 세간의 평가도 국면형성에 중요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음모론'이 노무현 진영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그럴듯한 '음모'의 특성상 권력중심부를 겨냥함으로써 오히려 '음모론'의 부메랑에 스스로 큰 상처를 입었다. 청와대가 '음모'에 개입했다면 대통령과 동교동이 무관할 수 없는 것이고, 이인제 진영과의 최후의 일전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최후의 일전을 감행해야 할 그 공격대상은 바로 자기 조직의 원천이 아니었던가? '음모론'을 타고 위기를 돌파하려던 계산이 자기 조직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는 자기부정적인 선택이었다면 그 결과는 무서운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노무현 진영의 입장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전략적 선택이 불가피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지난 2주간의 경합상황은 2위로 출발한 노무현 진영이 1위를 추격하는 긴박한 국면이었다. 울산과 광주와 강원에서 일부 추격했지만 종합순위는 여전히 이인제 진영에서 장악하고 있다. 문제는 종합성적 1위의 이인제 진영이 자신을 패배자로 자인하는 반면, 종합성적 2위의 노무현 진영이 대전과 충남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게다가 마지막 승리를 확신하는 매우 이상한 정국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거대 조직으로 출발한 이인제 진영은 생명력을 상실한 공룡조직의 특성을 보이는 반면, 작은 조직으로 출발한 노무현 진영의 활성화된 조직은 더욱 활성화되고 확대되는 상반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양상은 스페인의 거함 무적함대를 깨고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한 영국의 개미군단 무적함대의 대결과 같은 것이었다.

하루 낮과 하루 밤을 지새는 과정에서 이인제 진영 안에서 후보와 참모 사이의 의견차이가 부분적으로 노출되었다. 다양한 참모집단 간의 의견대립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후보가 사퇴 쪽에 무게를 두었다면 참모들은 만류하는 모양이었다.

▲ ⓒ 오마이뉴스 권우성


97년 당시 국민신당 출신들이 사퇴를 선호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사퇴를 부적절한 결정으로 평가하는 분위기였다. 후보와 참모진 사이의 의견차이나 참모진 내부의 의견차이의 양상은 매우 중요하다. 이인제 진영의 조직기반 및 성격을 드러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세론'이 대안론에 압도되면서 조직이 극심하게 출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케네디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다음에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재서류에 도장찍는 일 뿐이다." 그렇다. 이 파동을 거치면서 이인제, 이인제 진영, 그리고 국민들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 후보로서 이인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국민경선에서 계속 앞으로 내달리는 일 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사퇴를 선택할 자유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지금 형성되어 있는 대통령선거의 경쟁구도상 추가로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줄기를 찾아들어가면 97년 대통령선거에서 신한국당의 경선결과에 불복하고 탈당하여 출마한 원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충무공의 말처럼 "죽기로 작정하면 반드시 산다"는 '필사즉생'의 신화는 단 한 번만 약발이 먹힌다. "두 번 죽고 두 번 사는" 이야기는 007시리즈에도 없는 허무맹랑한 전설일 뿐이다.

이인제 후보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후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당내 경선을 통과해야 한다. 정말 간절하게 대통령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에 고뇌도 크고 번민도 크다. 대통령을 향한 꿈은 97년 이후부터 현실적인 것이었다.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 후 국민신당을 새정치국민회의에 갖다 바치고 4년 동안 대통령의 꿈을 키워왔다. 대통령을 향한 이인제의 꿈은 김중권이나 정동영의 꿈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이 간절한 꿈, 경선을 사퇴하고 탈당을 해서라도 반드시 이루고 싶은 이 꿈. 그러나 원죄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사퇴와 탈당이 '정치적 객사'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 당에 뼈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오늘 아침 이인제 후보는 민주주의와 국민경선의 성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외면할 수 없기에 끝까지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마도 경선과정에서 하게 될 최후의 최종적인 입장정리가 아닐까 한다. 앞으로의 대결에서 색깔론 대결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승부수로 쏘아올렸던 '음모론'은 결국 제 손으로 거두어들여 폐기처분하는 결자해지를 발휘했다. 대신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경선대책본부를 해체하고 동지와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과거 97년 당시에 했던 것처럼 단기필마의 자세로 국민 속으로 들어가 선거운동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가 경선대책본부를 해체하고 자원봉사자를 중심으로 돈 안쓰는 선거로 전환하겠다고 천명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원칙적으로는 선거운동의 양상을 민주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으로서 애초의 국민경선 취지에 맞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더욱 중요한 의미는 선거양상이 질적으로 변하면서 조직가동과 조직동원 등 돈이 많이 드는 선거운동을 계속할 만큼 자금조성이 어려워진 냉혹한 현실이다. 게다가 애초의 '대세론'에 맞추어 상당한 자금규모를 가정하고 설계된 조직이 돈없이 가동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앞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왕자와 거지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왕자와 거지가 서로의 역할을 바꾸었다. 거지생활을 통해 적응력이 높아진 거지는 왕자 역할을 즐겁게 수행할 수 있었지만 거지가 된 왕자는 현실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거지가 왕자인지 왕자가 거지인지 분간이 안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거지가 된 왕자가 다시 왕자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과거 거지가 겪었음직한 수많은 경험과 고뇌를 압축적으로 거쳐 적응력을 길러내야 한다. '대세론'과 대안론이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경합하는 국면에서 '대세론'은 거지가 된 왕자로, 대안론은 거지에서 왕자로 역할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거지이고 누가 왕자일까?

이인제 후보의 입장에서 본다면 광주에서 강원에 이르는 '절망의 계곡'을 거치면서 형성된 위기국면을 일단 무사히 넘겼다. 이 과정에서 '대세론'의 주도권을 대안론에 넘겨주는 전복의 과정에서 발생할지도 모르는 힘의 공백 및 이로 인한 조직붕괴의 우려도 무난히 수습했다. 여진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음모론'의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효과도 거두었다. '사퇴' 가능성이라는 배수진 위에서 시작한 상당히 틔는 모양새를 연출하기는 했지만, 전격적으로 들이닥친 위기상황을 연착륙시키는 전략적 조정기를 최대한 무리없이 넘긴 셈이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 것이 연인들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가능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이인제 후보에게 남은 일은 심기일전의 재추격 뿐이다. 이 후보는 태백산맥도 막지 못한 노무현 돌풍을 단기필마의 적수공권으로 막겠다고 선언했다. 이인제 후보의 고뇌에 찬 결단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가 앞으로 펼치게 될 '정신일도 하사불성'의 2단계 전략을 기대한다.

▲ 정대화 교수
이인제, 노무현, 정동영이 있기에 민주당의 경선은 이미 성공작이 되었고 정치는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첨단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국민들은 오늘 부로 지루했던 내분을 수습한 한나라당 또한 이 흥행대박의 정치쇼에 즉각 참여하여 고단한 생업에 찌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한가닥 기쁨을 제공하는 보은의 정치를 선보이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 대선감시시민옴부즈만 전문가위원회 위원장
사이버참여연대
2002/03/27 16:11 2002/03/2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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