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원(?)된 버스기사 아저씨의 인간적 고뇌



(편집자 주)참여연대 인턴, 창림. 스물 여섯 청년이다. 그는 얼마 전부터 대선감시 시민옴부즈만 활동을 시작했다.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은 채…. 그는 대선 경선이 펼쳐지는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누빈다.

앞으로 창림이는 부정선거가 벌어지는 곳에서 시민의 눈으로 문제의 현장을 적발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사이버참여연대에 소상히 밝힐 예정이다. 창림과 함께 후끈 열기가 달아오른 2002 대선 현장 속으로 달려가 보자.


경선현장 리포트-창림이가 간다

③ 돈 거부한 어떤 대의원 (03/26)

② 깍두기 아저씨앞에 고개숙인 캠코더 (03/19)

① 6mm에 걸린 제주·울산 경선 현장 (03/12)

3월 30일 토요일 - "거짓말도 한번은 할 수 있지만..."

새벽 5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이다. 밤을 달려 마산에 도착한 시민옴부즈만 활동가들과 참여사회 기자들은 숙소에서 아침잠을 청했다. 모두들 좁은 봉고차에서 다섯 시간을 구부리고 있어서인지, 허리펴고 누운것만으로도 잠이 쏟아지기엔 충분한 듯 했다.

오전 9시, 좀 더 자고 싶은 맘이 간절했지만, 해야할 일을 생각하니 그럴 수 없었다. 거짓말 쬐끔(?) 보태서 말하면, 시민옴부즈만 활동을 한 이후로는 돈선거 생각만하면 잠이 확 깬다. 씻고 나와 식사를 하니 벌써 11시가 넘었다.

체육관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곧 도착했다. 아직 시간이 여유있게 남아서인지 선거운동원들의 모습은 보였지만 선거운동을 하지는 않았다. 체육관 주변도 왠지 모를 썰렁함이 느껴졌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계단 양쪽에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경선현장에서 매번 본 40대 중반의 열성 선거운동원 아저씨가 그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가르치고 지시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주의 깊게 보리라 마음을 먹고는 일단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프레스센터에서 안면이 있는 한 사진기자가 제보를 해왔다. 그 기자는 조금 전에 내가 본 40대 중반의 운동원이 학생들에게 하는 말을 들었는데, "기자나 다른 사람들이 물어보면 무조건 자원봉사라고 말하라", "인터뷰는 하지 말아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이쿠..! 여전하구나.

체육관에서 나와 주변 식당가를 돌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체육관 주변에선 활짝 핀 벚꽃을 볼 수 있었다. 제주부터 4주째 주말마다 벌어진 경선 현장을 다니다 보니, 어느새 꽃피는 봄이 온 것이다. 점심시간이 다가왔음에도 식당들은 대체로 한산했다.

꽃구경(?)을 하고 돌아오니 체육관 입구는 어느새 부쩍 늘어난 선거운동원들의 열띤 응원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한쪽에선 시민옴부즈만이 캠페인을 하고 있었다. 세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에게 수적으로는 열세이지만 깨끗한 선거를 만들겠다는 의지만큼은 대단해 보였다. 더군다나 오늘은 새롭게 준비한 카드섹션까지 있지 않은가! 카드가 넘어갈 때마다 다른 구호가 나오는 것을 보고는 한걸음에 캠페인 장소로 달려갔다. 카메라에 캠페인 장면을 담은 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옴부즈만통신 소식지를 나눠줬다.

오늘은 유난히 당선관위에서 체육관 출입을 엄격히 제한했기 때문에 선거인단과 참관인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 선거운동이 뜸해졌을 때, 학생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학생들은 준비한 참관표를 보이며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고, 모두 한자리에 앉지 않고, 삼삼오오 흩어져 앉았다.

그 중 한 학생과 인터뷰를 하려했다. 어떻게 왔느냐, 오늘 선거를 하느냐 등을 물어봤으나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다른 곳에 앉아 있는 학생들 또한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았다. 단지 "대답할 수 없다", "묻지 말라" 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인터뷰를 포기하고 체육관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으로 갔다. 광주와 대전에서 봤던 ○○○관광버스를 찾을 수 있었다. 당시 그 버스는 선거운동원들의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었다. 잠시 기다려 기사아저씨와 얘기를 했다. 기사아저씨는 "나 같은 월급장이에게 많은 것을 묻지 말아달라" "거짓말도 한번은 할 수 있지만 두 번은 할 수 없다"며 인간적 고뇌를 드러냈다.

아저씨와 대화하는 도중 아까 그 학생들이 버스에 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대충 헤아려 보아도 30명은 족히 넘는 수였다. 조금 있으니 40대의 선거운동원 아저씨가 와서 인솔해 갔다. 연설시간이 다 끝나고 선거인단들이 체육관으로 나오는 시간이다.

학생들의 선거운동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돌아왔다. 선거가 끝난 후, 학생들은 모두 버스에 올랐고 잠시 후에 버스는 체육관을 떠났다. 선거운동원 동원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잡기 위해 일단 뒤따라 보기로 했다. 김민영 국장의 차에 참여사회 기자와 정대화 교수, 시민감시국 간사와 함께 버스를 뒤따랐다. 이런 추격은 처음이다. 마치 007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전주까지 쫓아갔지만 더 이상의 증거는 얻을 수 없었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버스를 보고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한 주 동안 경선과 관련해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래서 선거운동의 형태도 조금은 변했으리라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선거운동은 여전히 그렇고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동원된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여전히 많았다. 말뿐인 쇄신, 개혁은 언제나 공허할 뿐이다.

3월 31일 - 동원된 선거운동원 구별법

전주에서 맞은 아침은 콩나물해장국으로 시작했다. 값싼 가격에 푸짐한 정이 음식에 담겨있었다. 전북참여자치시민연대, 전북여성단체연합 등 지역 단체 분들과 함께 익산으로 출발했다.

체육관에 도착해보니 선거운동원들이 많이 있었고, 이미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선거운동의 열기도 사뭇 경선 초반의 열기처럼 뜨거웠다. 이에 질세라 시민옴부즈만도 캠페인 준비를 했다. 지역 단체 분들이 많이 오셔서 캠페인 참가인원이 많아져서 좋았다. 어제에 이은 카드섹션도 했다. 연습(?)을 열심히 해서인지 착착 손발이 맞았다. 손발이 맞는 만큼 돈선거가 근절되었으면 ...

여기서 잠깐!

동원된 선거운동원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동일한 집단의 사람들만 모여있다면 한번쯤 의심해 보아야 한다. 대학생만 50명이 모여서 선거운동을 한다던지, 20대 남자들만 모여 있던지, 아줌마들만 모여 있던지... 이들에게 접근해서 물어보면 대체로 자신의 지지후보에 대한 적극성이나 확신이 부족한 상태에서 운동을 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선거운동원들을 살펴보았다. 어제의 대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산악회 조끼를 입은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보였다. 다른 후보측에는 건장해 보이는 남학생들이 20여명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전북지역 한 대학의 체육과 학생들이었다. 한번쯤 의심해 볼만한 이들이다.

귀에 익은 가락이 들려왔다. 대학에서 풍물 동아리를 해서인지, 멀리서 들려오는 풍물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멀리서 한 후보가 체육관으로 들어오자 풍물패가 그 후보를 뒤따라왔다. 풍물패에 앞서 들어온 깃발에 쓰인 문구를 보면 평소에 그 후보가 주장하던 구호였다. 누가 보아도 특정후보의 지지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한 술 더 떠서 그 후보의 운동원들이 선거운동에 이용하는 손수건도 목에 둘렀다.

첫 번째 판(?)이 끝나고 나서 퇴장을 했다. 뒤따라가서 한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해 보았다. 내가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서울서 정치인들이 오니까, 다같이 환영하는 거여. 누가 돈대주는 것도 아니고..자원봉사여"라고 말했다. 에구...내가 뭐라고 했나?

이상한 것은 다른 할아버지에게 물어봐도 똑같은 모범 답안을 말하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후보가 등장할 때는 나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다른 후보 운동원들 앞에서는 공연판을 벌이지도 않았다. 내가 좀 끈질기게 물어보니 할아버지는 술이나 한잔 받아 오고 얘기하자며 밀쳐냈다.

선거운동이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무렵, 한 곳에서는 소동이 일어난 듯 했다. 각 후보 진영의 선거운동원들끼리 자리를 두고 실랑이가 일어난 것이다. 서로 밀치기도 하고 거친 말을 내뱉기도 했다. 카메라 기자들이 다가가자 진정되는 듯 했다. 후보간의 신경전이 심해질수록 그들을 지지하는 운동원들의 신경전도 날카로워지는 것 같다. 정치인들 때문에 운동원들이 이렇게 싸웠다고 말하면 억지가 되려나?

국민들의 참여를 보장한 국민경선인 만큼 국민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축제와 같은 경선이 되도록 모두 노력했으면 한다. 그래서 망치 파는 아저씨나 칼 가는 아저씨, 커피 파는 아줌마도 만족하는 정치문화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사이버참여연대
2002/04/03 23:38 2002/04/03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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