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화 경선관전기-대구>광주의 선택에 대한 화답
유권자운동/2002대선유권자연대 :
2002/04/08 11:32
대구의 선택에 담긴 탈지역주의적 의미
(편집자주) 사이버참여연대는 민주당 국민경선 기간동안 각 지역 경선별 평가를 담은 정대화 상지대 교수의 관전기를 연재한다. 정대화 교수는 '대선감시시민옴부즈만' 전문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관전기는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서도 볼 수 있다.
정대화 경선관전기
<전북>전북, '극단'은 없었다
<경남>경남에의 '음모론' '색깔론'
이인제의 고뇌에 찬 결단 (03/27)
<강원>태백산맥 넘은 '돌풍' (03/25)
<충남>바람 맞선 승부수 '음모론' (03/24)
<대전>지지도인가 지역주의인가 (03/18)
<광주>극적 이변, 그 이상의 혁명적 반전(03/17)
이념공세, 한국전쟁 당시 장인의 부역 전력, 언론사 국유화 발언 논란 등 노무현 후보에 대한 이인제 진영의 전방위 공세가 격렬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대구에서 아홉 번째 경선이 열렸다. 따라서 여기서는 대구가 부산 출신인 노무현 후보를 수용할 것인지, 대구 시민들이 노무현 돌풍 혹은 대안론의 부각을 수용할 것인지, 이인제 후보측이 강력하게 제기하는 색깔론을 받아들여줄 것인지 등이 관심사항으로 떠올랐다.
민주당 경선에서 대구가 특별히 관심을 끄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TK지역인 대구는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한나라당의 정치적 기반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대구시민들이 한나라당과 대결할 민주당의 어떤 후보에게 표를 주느냐 하는 것은 호남의 정치적 기반인 광주시민들이 누구에게 표를 주느냐 하는 것만큼이나 상징적인 것이다. 말하자면 이회창의 경쟁 적임자가 누구냐를 선택하는 하나의 기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구는 박정희의 기반이자 박정희의 후광을 바탕으로 정치를 재개한 박근혜 의원의 정치적 기반이기도 하다. 따라서 박의원이 대통령선거를 겨냥해서 한나라당을 탈당해 신당 창당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 어느 후보가 승리하느냐 하는 것은 향후 박 의원의 정치적 선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또한, 한나라당, 이회창, 박근혜, 박정희로 대표되는 개념들은 우리 사회에서 군사독재와 보수를 대변하는 상징물들이다. 이것은 60년대 이후 나타난 대구의 보수성의 배경과도 관련된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매우 개혁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노무현 후보가 승리할 수 있느냐, 즉 대구가 개혁적인 선택을 할 것이냐가 관심사항이었다.
결과론적으로 대구는 노무현을 받아들여 대안론의 돌풍을 인정한 반면 색깔론의 수용을 거부했다. 선거인단 3396명의 54%에 해당하는 1832명이 참여한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는 62.3%인 1137표를 얻어 506표(27.7%)를 얻은 이인제 후보를 더블스코아로 이겼다. 정동영 후보는 181표(9.9%)를 얻었다. 말하자면 강원과 마찬가지로 대구 역시 개혁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결론적'이라고 하지 않고 '결과론적'이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노무현 후보 1위 = 색깔론 거부"의 단정적인 등식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무현 후보가 1위를 했기 때문에 외형상 색깔론이 안먹힌 것처럼 통상 해석하지만, 이런 식의 해석은 정치적 해석이거나 저널리스틱한 설명일 뿐이다. 색깔론 때문에 예상 득표율보다 낮아져 62.3%를 받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색깔론과 투표행태 사이의 정확한 관계는 선거인단에 대한 구체적인 사후조사 없이는 단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대구에서의 승리로 노무현 후보는 대전, 충남에서 이인제 후보에게 빼앗겼던 1위 자리를 다시 돌려받았다. 노 후보는 누계 5750표를 얻어 5518표를 얻은 이인제 후보를 232표 차이로 앞섰으며, 득표율로는 이 후보의 43.2%보다 1.8%가 앞서는 45%를 기록했다.
대구에서 노무현 후보의 승리는 또 하나의 승리를 추가함으로써 아홉 지역 경선 중 여섯 지역에서 1위를 한 것 이상으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로, 대구에서의 승리는 3월 16일 광주의 '역사적 선택'에 대한 영남의 화답이라는 탈지역주의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입장에서 볼 때 대구의 승리는 광주에서의 승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자 상호연관성을 갖는 것이다.
둘째로, 영남에서는 울산, 경남, 대구에서 승리한 노 후보가 호남에서는 광주와 전북에서 승리함으로써 명실공히 영남과 호남을 아우르는, 본인의 평상시 지론을 빌어 표현한다면 지역분열을 극복하고 동서화합과 지역통합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대구 경선은 조직과 바람이 맞붙은 가장 전형적인 대결구도였고, 여기서 바람이 조직을 흔들어버린 사례가 되었다. 이인제 후보는 연설에서 대구지역 지구당 위원장들의 이름을 차례로 거명했다. 그것은 선거인단에게는 마치 주술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인제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위원장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고, 이 후보가 그 점을 강점으로 내세웠지만 선거인단의 지지성향을 잠재울 수는 없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넷째, 이인제 후보가 동원한 전방위 색깔공세가 결과적으로 먹히지 않았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노무현 바람이 강풍으로 몰아치는 상황에서는 지역이나 이념만이 이 바람을 잠재울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그 어느 것도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매우 54%라는 지극히 낮은 투표율 속에서도 노무현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는 점이다. 사흘 연휴 중에서도 한식 전날인데다 날씨가 매우 좋아 투표율이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것은 두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하나는, 대구·경북에 지역연고를 가지고 있는 김중권 후보의 사퇴가 노무현 후보의 득표율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노무현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선거인단의 투표참여가 매우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노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다는 것은 노무현 돌풍의 위력이 투표결과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선이 끝난 후 노무현 후보는 지지자들 앞에서 대구 경선의 승리를 "대구만의 승리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때문에 각별히 값진 것이라고 부연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광주에서의 승리가 대구에서 활짝 살아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변화의 거대한 열풍이 영호남을 휩쓸면서 동시에 영호남을 단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이한 점 하나는, 노무현 후보가 색깔 공방의 와중에서 드러난 장인의 '좌익활동'에 대해서 우회 대신 정면돌파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노 후보는 설명이나 변명을 시도하는 대신 아내에 대한 조건없는 사랑을 위한 불가피하게 대가로 밀어붙였다. 아내와의 사랑을 위해 판사직을 버려도 좋다는 판단으로 결혼했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이런 감동적인 사랑도 드문 일이지만, 장인의 부역활동 논란을 젊은 판사 시보의 순애보로 탈바꿈시켜 버린 논리전개의 과감함이 더 크게 눈에 띄었다.
또 하나는, 이인제 후보의 연설에서 나타났다. 이 후보는 예상과는 달리 연설에서 색깔론을 부각시키지 않고 정책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반면 두 가지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친인척 비리를 청소하겠다는 것과 북한에 대한 '퍼주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 발언은 모두 대통령과 직접 관련된 것이고 사실상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따라서 이 발언은 이 후보가 모종의 행보를 위한 구체적인 포석을 시작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 해석은 투표결과 발표 직후 이 후보의 지지자들이 당 선관위로 몰려가서 이번 경선을 '음모'라고 주장하면서 청와대로 가자고 주장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후보 진영이 청와대와 연관된 '음모론'의 목소리를 줄였으되 그 인식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이 문제가 앞으로 남은 경선 과정에서 큰 불씨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예고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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