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판단기준이 '이회창 기준'에서 '노무현 기준'으로



(편집자주) 사이버참여연대는 민주당 국민경선 기간동안 각 지역 경선별 평가를 담은 정대화 상지대 교수의 관전기를 연재한다. 정대화 교수는 '대선감시시민옴부즈만' 전문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관전기는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서도 볼 수 있다.

식목일에 맞추어 저녁부터 전국적으로 내리기 시작한 비가 한식까지 이어지면서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는 가운데 얼마간 장중한 분위기로 인천 경선이 시작됐다. 날씨 때문인지 다소는 비장한 전운이 감도는 듯한 무거운 분위기도 느껴졌다.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이 민주당 경선의 대미를 장식할 승부처라고 할 때, 영남지역인 대구와 경북 사이에 끼어 있는 인천의 결과가 수도권의 투표성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인천 경선은 수도권 경선의 예고편인 동시에 경선 전체의 예고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이인제 후보로서는 대구와 경북에서의 지역적 열세를 차단할 수 있는 방파제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전개된 각 후보진영의 열띤 선거운동 속에서 두 가지 에피소드가 날씨만큼이나 무거운 인천 경선의 부담을 반증했다. 하나는 문화일보 배달사건. 경선 시작 즈음 "이인제 후보 사퇴 고려"라는 제목을 단 문화일보가 경선장으로 배달되어 잠시 소동이 일었다. 신문은 당 선관위에 의해 압수되어 배포되지 않았지만 경선장은 매우 술령거렸다. 이인제 후보는 사실과 다르다고 항변을 했지만 기사를 작성한 담당기자는 '작문을 한 것이 아니다"는 말로 대신했다.

또 하나는 조선, 동아에 대한 노무현 후보의 경고. 대구에서 한 연설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 민주당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자신이 충분한 검증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예의 정책기조를 이어나가던 노 후보는 연설의 마지막 말을 "언론에게 고개 숙이고 비굴하게 굴복하는 대통령이 되지 않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동아, 조선은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십시오"라고 짤막하게 선언했다.

연말 대통령 선거에 나가기 위해 예선을 치르고 있는 민주당의 후보가 복수의 유력 일간지를 상대로 선전포고와도 같은 발언을 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사항은 '조중동'에서 중앙일보가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노 후보가 두 일간지와 전선을 형성하여 선거전을 끌어나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유화'와 '폐간'이 현시점에서 민주당이나 노 후보의 정책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 후보 본인에 의해 거듭 확인된 상황인 만큼 그때 그 자리에서 본인이 무슨 말을 했느냐 하는 것은 약간의 흥미거리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간지를 상대로 전선을 형성한 후보측이나 그 대상이 된 신문사들로서는 서로 상당한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경선 결과를 확인하기 전에 짚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2002년 대통령 선거의 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연말 대통령선거 본선의 판단 기준은 이제 '이회창 기준'에서 '노무현 기준'으로 바뀌었다. 즉 누가 이회창을 이길 수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노무현을 이길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질문과 사고방식이 전환된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서, 민주당 경선구도의 변화 및 한나라당의 경선 시작과 상호 관련된 것이다. 잘 알다시피 지난 1-2년간 민주당의 경선구도는 한나라당의 '이회창 대세론'에 맞추어져 있었고, 한나라당의 대세론 또한 민주당의 '이인제 대세론'에 맞추어져 있었다.

한나라당의 대세론이 '전국적 대세론'인 반면 민주당의 대세론이 '당내 대세론'이었다는 점에서 두 대세론은 본질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고, 대세론의 이러한 구조적인 열세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민주당에서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와 정당쇄신 작업을 추진했으며, 그 결과 오늘의 국민경선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인제의 '당내 대세론'이 '노무현 대안론'에 의해 무너지면서 '노무현 대세론'이 형성되었는데, 이것이 '당내 대세론' 수준의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 결과 이회창 대세론을 능가하는 '전국적 대세론'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3월 중순 광주 경선부터 감지되기 시작한 이후 경선이 진행되면서 그 양상이 더욱 뚜렷해졌다. 그러다가 한나라당이 경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경선후보들이 '이회창 대세론'의 몰락을 선언하는 동시에 자신만이 "노무현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적임자"라고 주장하면서 비로소 구체화되었다.

이렇게 볼 때 전국적 필패론 논란과 함께 '이인제 대세론'(당내 대세론)의 분위기 속에서 민주당 경선이 시작된 이후 상황은 이인제 대세론 -> 노무현 대안론의 부각 -> 이인제 대세론의 회복 -> 노무현 대안론의 추월 -> 노무현 대세론의 부각(당내 대세론) -> 노무현 대세론의 질적 전환(전국적 대세론)이라는 변화과정을 밟아왔다고 할 수 있다.

선거인단 3522명중 1972명이 참가하여 대구 다음으로 낮은 56%의 투표율을 보인 가운데 진행된 인천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유효투표의 51.9%인 1022표를 얻어 다시 1위를 했다. 이인제 후보는 41.4%인 816명, 정동영 후보는 6.7%인 131명을 얻었다. 그 결과 합계 득표에서 노무현 후보는 총득표율 45.9%에 6772표를 얻어 43.0%에 6334표인 이인제 후보를 438표차로 벌여놓았다.

노 후보는 대구에 이어 인천에서 승리함으로써 경선지 열 지역 중 일곱 지역에서 승리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제주를 예외로 한다면 충청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노 후보는 이인제 후보와 비교해서 최다득표라는 양적 승리뿐만 아니라 최다승과 전국적인 고른 지지라는 질적인 측면에서의 값진 승리를 거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호남의 지지, 영남의 지지, 수도권의 지지라는 현상을 불러왔으며, 이것이 전국적인 수준에서 '노무현 대세론'의 확고한 근거가 된 것이다.

인천의 경선 결과는 몇 가지 의미를 부여해준다. 대구에 이은 인천에서의 승리로 이번 주말에 배치된 대구-인천-경북의 경선이 노 후보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인천의 경우 수도권이면서도 지지성향상 서울과는 공통점 못지 않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특수한 지역이라는 점 때문에 선거결과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인천은 과거 충청지역과 연결된 해상교통로의 영향 때문에 충청지역과의 관계가 밀접한 곳이며 인구의 1/3 가량이 충청지역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강원지역과 유사하게 접경지역의 성격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실향민의 비율이 매우 높다. 이것은 인천지역의 상대적 보수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인제 후보의 이념공세의 영향을 비교적 잘 받을 수 있는 지역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노 후보가 승리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남은 경선 일정에서 노 후보의 순항을 예측할 수 있다. 또한 인천지역의 특수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일정하게 수도권 성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서울 및 경기지역 경선을 예측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주부터는 한나라당도 경선을 시작한다. 한나라당의 경선은 민주당의 오늘 경선지인 인천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될 경우 한나라당은 노무현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할 것이며, 모든 선거전략이 '노무현 따라잡기'에 맞추어질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앞서 언급한 문화일보의 보도처럼 이인제 후보의 다음 주 행보에 관심이 간다. 그러나 이인제 후보로서는 쉽게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선거 경험이 축적되면서 확인하게 되는 사실이지만, 선거 자체의 역동성을 지나치게 단정적으로만 판단하기 어렵다. 더욱이 노무현 대세론이 파죽지세임에도 불구하고 인천에서 이 후보가 41.4%를 얻었다는 것은 이 후보의 지지기반이 단순한 거품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선거란 궁극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승리하지 못한다고 해서 반드시 중도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과정에서 확인한 지지기반은 살아남는 것이며, 선거결과로 획득한 득표수만큼의 발언권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도에 포기하면 모든 것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 후보는 지난주 '사퇴파동'의 전례가 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 하겠다.

정대화 경선관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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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참여연대
2002/04/09 10:49 2002/04/0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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