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장강의 뒷물'이 되어 낡은 정치를 바다로 밀어내십시오"
유권자운동/2002대선유권자연대 :
2002/04/12 15:13
정대화 교수의 '대학생을 위한 정치특강' 강의록
(편집자주)지난 10일, 국민대에서 대선감시시민옴부즈만 전문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대화 상지대 교수가 '대학생을 위한 정치특강'을 가졌습니다. 이날 강의록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김미진 간사가 정리하여 정대화 교수의 양해를 얻어 사이버참여연대에 싣습니다. 이 강의를 통해 왜 지금 우리나라 정치가 국민의 주목을 받고 있고, 우리가 왜 참여해야하는 지를 고민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강의를 시작하며 - 장강(長江)의 고사
우리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몇 가지를 뽑자면 ▲열린 마음, ▲청년의 열정, ▲정의와 선에 대한 판단력, ▲기성세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 등입니다.
열린 마음은 우리 자신의 삶을 살면서 타인에게서 좋은 향기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마음과 자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꾸준히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향기가 나는 삶"이란 것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기성세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장강(長江-중국의 양자강)의 앞물이 뒷물을 밀어낸다"는 유명한 고사가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역사의 진리를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고사는 사회작동의 일반적 원리를 말하는 것으로서, 정치개혁과 관련해서는 정치개혁을 위해 젊은 세대가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즉 젊은 세대가 '장강의 뒷물'이 되어 앞물인 낡은 정치를 바다로 밀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거 역시 장강의 고사와 견주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선거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밀어내려는 움직임이니까요.
올해 경선에는 극적인 재미가 있다
선거란 무엇인가? 선거란 사실 딱딱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인데요. 20대 초반은 민족, 이데올로기, 행복, 이성 등 추상적인 주제에 공감하는 연령층입니다. 20대는 자신이 겪어봐야 느낄 수 있는 세대니까요. 그렇지만 구체적인 주제, 즉 노동이나 선거 등으로 들어가면 젊은 가슴에 공명(共鳴)이 잘 일지 않습니다.
이번 대선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정치가 결코 재미없는 것은 아니구나’하는 것입니다. 문학이나 영화가 감동과 재미를 주는 것은 반전과 같은 극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인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민 경선에는 ▲ 첫째, 반전이 있고, ▲ 둘째, 쟁점이 생겼고, ▲ 셋째, 불가예측성, 즉 불확실성(uncertainty)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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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적인 재미를 주고 있는 경선
국민경선이 처음 시작된 제주 체육관 입구. 각 후보 운동원들과 선거인단이 가득 메우고 있다. |
경선은 역동적이다
재미에 더해서 이번 경선에는 20∼40대의 젊은 층이 폭넓게 참여하고 있다는 특색이 있습니다. 원래 정당의 선거 등 행사에는 20∼40대가 잘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주로 한복과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정당행사의 일반적인 풍경이었는데 이번 경선에서는 모양이 바뀌어 젊은층이 참여가 두드러집니다.
이들의 참여는 특정 후보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다름 아닌 노사모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사모가 뜨자 인사모도 떳습니다. 그 결과 우리 정치권에 참여하는 평균 연령층이 매우 낮아졌습니다. 선거인단의 연령이 젊다고 할 수는 없지만 참여하는 젊은층들이 선거현장의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지난 15년여 동안 정당의 각종 행사를 지켜보았던 저로서는 이런 변화가 정말 놀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최근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부각된 음모론, 색깔론, 언론사 쟁점 등은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이며, 따라서 선거과정에서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쟁점을 풀어가는 방식이 매우 어색하고 퇴행적이라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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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인단을 상대로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인사모(왼쪽)과 노사모(오른쪽) |
다시 말하지만, 이번 선거는 대중 즉 국민의 역동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지금 젊은 세대는 제가 느끼는 역동성을 저처럼 강하게 느끼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냐면 선거가 없었던 시절을 경험하지 못했고, 대통령선거나 지방선거가 부활된 이후 조금씩 개선되는 과정을 지켜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선거가 없었던 시절을 모르기 때문에 선거가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으며, 선거를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느끼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제가 생각한 것은 이제는 우리 정치에서도 국민주권을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음모론이라는 쟁점이 제기되었지만 이제는 누구도 국민에게 음모를 꾸밀 수 없습니다. 사실 대통령도 음모를 꾸밀 수 없습니다.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대통령이 음모를 꾸몄다고 한들 누가 믿겠습니까? 경선 자체가 갖는 역동성 때문에 음모론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역동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국민이 직접 참여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모든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고 공유된다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경선 과정의 심판자가 된다는 것 등 때문입니다. 방송사, 신문사, 인터넷, 시민운동 하는 사람 모두가 심판자 아닙니까?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경선에 대해 모종의 음습한 프로그램을 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음모론적 기획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대중의 역동성 때문입니다.
광주 경선 - '역사의 음모'?
저는 특히 대중의 역동성을 광주 경선에서 보았습니다. 광주 경선의 역동적인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광주 경선 현장에서도 결과에 놀았지만, 광주 경선이 지난 다음 곰곰 생각해보니 그 결과가 정말 대단한 것이었어요. 더구나 광주와눈 구별되는 전북의 타협적 선택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더욱 강하게 하게되었습니다. 광주사람들이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난을 겪어본 사람, 가혹한 상처를 받고 그것을 이겨내면서 성숙해진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위대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저는 광주경선의 결과를 역사의 음모라고 하고 싶군요. 이것이 가능한 것은 국민에게 공통된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역사의 흐름으로 이해할 문제라는 거죠. 정치학자로써 느끼는 것은 역사는 투자한 만큼 그 결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번 광주경선의 결과가 신기하게 느껴지면서도 우리 사회가 가진 고민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거의 의미 - 승패가 아니라 순위의 문제
선거가 가진 사람들만의 요식행위는 아닙니다 또 대통령선거라는 것이 대통령 한 사람을 뽑기 위한 행사는 아닙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선거에는 승자와 패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거에는 순위가 있습니다. 즉 선거는,
① 선거는 그 사회가 가진 모든 병폐, 사회적 모순 구조를 노출시키고 악화시키는, 즉 사회가 홍역과 같은 열병을 앓게 하는 것입니다.
② 이런 모든 모순들이 드러나고 각축하면서 우리 사회를 새롭게 재구조화(restructuring)하는 것이 선거입니다.
선거에서 득표순위는 이러한 사회적 재구조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대통령선거에서 1위를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권력을 행사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1위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행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선거에 참여해서 국민들의 일정한 지지를 받은 사람과 정당, 및 그 정책은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누가 이기느냐 하는 것 못지 않게 어떻게 순위가 형성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순위에 따라 사회적 작동원리가 바뀌는, 말하자면 사회적 재구조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선거는 참여한 사람에게만 혜택을 준다
이런 점에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누군가의 당선을 위해 투표에 참가한다는 식의 소극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의미를 넘어 "사회적 재구조화 과정에 참여한다"는 적극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선거는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혜택을 줍니다. 즉 선거과정에서 모순구조를 노출시키고, 문제점과 쟁점들이 각축하고, 그 결과 새로운 구조가 형성되어 향후 5년간 사회를 움직이는 틀이 짜여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연한 것이지만, 이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지분이 없는 것입니다.
좀 더 부연해서 말하자면, 선거는 단순히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이익, 갈등, 모순, 각축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재구조화 하는 것으로서, 선거는 모든 사람이 참여해야 하는 토털시스템(total syste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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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는 참여한 사람에게만 혜택을
경선 현장에서 감시활동을 벌이며 깨끗한 선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대선감시시민옴부즈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느 정도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할 점도 있다고 봅니다. 한 사람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없습니다. 사회의 변화는 특별한 한 두 사람의 아이디어나 행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나타나고 해결되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정치를 불신하고 참여를 거부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정치적 불신과 허무주의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더러는 물질주의적 풍요 속에서 개인화된 문화와 가치가 정치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나 그것은 자기 기만일 뿐입니다.
우리가 선거에서 멀어질수록 선거 결과는 더욱 우리를 가혹하게 옥죌 것입니다. 우리가 정치가 더럽다고 회피할 때 정치는 더욱 더러워지고, 정치가 부패했다고 멀리할 때 더욱 부패하며, 보수적이라고 비난하며 외면할 때 더욱 보수화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 결과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선거에 참여하고 개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의 진보라는 관점에서
① 진보정당에 대해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점을 알았으면 합니다.
② 선거와 경선의 맥락에서 당이나 후보를 막론하고 참여라는 관점에서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당부합니다.
③ 어느 사회나 젊은 세대가 변화와 개혁의 중심이자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이번 경선을 보면서 노무현과 노사모가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노무현이 노사모를 만들었을까요, 아니면 노사모가 노무현을 만들었을까요? 이것은 닭과 달걀의 논쟁과 같은 것이지만, 적어도 사회의 잘못된 권위적 구조에 억눌려 있던 사람들이 변화와 개혁의 열망을 가지고 노무현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노무현일까요? 그가 우리 사회의 부패구조, 억압적 구조의 핵심을 지적하고 용감하게 앞장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기를 던져 사회개혁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의 금기인 조선일보에 도전하고, 지역분열구조를 극복한다면서 당선 가능한 서울을 포기하고 계속 부산에 도전하는 이런 행동이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젊은 층을 끌어당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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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사모가 먼저인가 노무현이 먼저인가
강원경선이 끝난후 노사모 회원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는 노무현 후보 |
그러나 달리 보면 부패한 사회, 남북으로 갈리고 동서로 갈린 분열된 사회, 사회의 정의와 원칙이 실종된 사회가 노무현과 같은 정치인을 만들어내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시대의 질곡이 노무현이라는 정치가를 만들어낸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노무현이 먼저인지 노사모가 먼저인지 알 수가 없게 됐습니다.
대학 캠퍼스는 운동의 산실이었다
지금 내가 여러분들 앞에서 마음을 크게 열고 세계와 역사를 인식하면서 젊은 세대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 어폐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해방 후 지난 60년 동안 우리 사회를 뜰어온 것은 여러분 학생들입니다.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개혁의 산실이자 동력이었던 것입니다.
이승만독재를 부정하고 4월혁명을 일으킨 것, 유신독재에 반대하여 반유신운동을 전개하고 부마항쟁을 일으킨 것, 서울의 봄과 광주항쟁, 6월민주항쟁을 주도한 것 모두 대학생이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즉 학생이 민주화의 중심이었고 대학이 민주화를 위한 해방구였습니다. 이 학생들이 학교에서 노동현장으로 들어갔고, 이들이 다시 민주노총을 만들고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경험은 유럽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유럽은 혁명과 변화의 중심이 사업장이었습니다. 노동자가 중심이 된 사업장이 사회적 변화의 원천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대학생과 캠퍼스가 민주화와 개혁의 동력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고, 여기서 사회적 변화의 모든 에너지가 분출되었고 그 변화를 추동할 인적 역량들이 배출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진보적 시각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는 시민운동가나 정치가들을 보면 대부분이 학생운동 출신입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와 유럽의 아주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물론 지금은 80년대나 90년대 초반과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과거보다 노동운동이 조직화되고 발전했기에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사업장의 역할이 강화된 반면 학생들의 역할은 조금 줄었습니다. 말하자면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이 균형을 잡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젊은 학생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원동력입니다. 젊은 세대가 민주화와 개혁을 외면한다면 우리의 미래를 암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 세대가 혁명의 무기로 계발된 선거를 외면한다면 우리 정치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선거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일이고 우리의 미래를 위한 일이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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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화 대선감시시민옴부즈만 전문가위원회 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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