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현상 정치·사회학적 분석 토론회 열려



2002년 봄 한국사회를 뒤흔든 하나의 사건이 있다면 그건 단연 노풍일 것이다. 정치에 무관심하던 20대들과 87년 6월항쟁의 주역 넥타이부대가 노무현 현상의 중심에 놓여 있다면 억측일까. 최근 국민들은 도대체 이 노풍이 어디로부터 어떻게 시작됐는지 무척 궁금해하고 있다. 정치·사회학적으로 어떻게 보아야 할까? 참여사회연구소는 이런 물음의 해답을 찾기 위해 토론회를 마련했다. "한국사회 지각변동, 노무현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그것.

▲ 노무현 현상에 대한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국민들의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이 '노풍'을 일궈냈다고 분석했다.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열망

5월 9일 오후 1시부터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개최된 이날 토론회는 제1부 '노무현 현상에 대한 정치학적 분석', 제2부 '노무현 현상의 사회문화적 분석', 제3부 '노무현 돌풍과 진보-보수 대립구도'라는 세 가지 주제로 이루어졌다.

1부 토론의 발제를 맡은 손혁재(정치학 박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은 노무현 현상에 대해 "1987년 6월 항쟁, 2000년 4·13총선과정에서 나타난 낙천·낙선운동 등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던 정치권에 실망하던 국민의 정치개혁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노무현 현상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그는 경선과정에서 노무현 바람을 불러일으킨 정치적 요인을 정치환경적 요인과 정치제도적 요인으로 구분했다. 정치환경적 요인으로 그는 정치개혁의 부진, 정치불신 심화, 필요한 경우 적극적 정치행위를 할 수 있는 합리적 개혁세력의 비중이 커진 점, 야당이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점, 인터넷의 보급 등을 들었다. 정치제도적 요인으로는 국민이 대통령 후보 선출에 참여하도록 한 국민참여경선제의 도입을 꼽았다.

손혁재 박사는 "노무현 현상은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출현에 대한 기대가 노무현 현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여야는 노무현 현상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인식해서 정치개혁에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또한 그는 "유권자들은 책임도 권리도 의무도 없는 방관자의식을 버려야하며, 시민단체들 역시 2002년 양대 선거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이고, 직·간접적으로 일정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토론자들은 대체로 기존정치체제의 변화로서 노무현 현상을 긍정했지만, 그 안정성· 지속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지난 3월 34일 민주당 춘천경선이 끝난 후 노사모 회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노무현 후보.
정상호 경제사회정책e아카데미 기획실장은 노무현 현상의 불안정성을 지적하며 그 근거로 "노무현 개인의 지지기반과 조직기반의 분리/대립, 정책적 비전의 부재와 완결성의 부족, 노풍이 시민의식의 각성과 성장, 참여에 기반한 안정적 현상인지 아니면 우연한 현상에 불과한지 잘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현연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부위원장은 국민들의 정치변혁의 열망이 민주노동당·사회당이 아닌 노무현을 통해 나타난 이유에 대해 진보정당 주체들의 문제와 책임을 지적함과 동시에 기존정치에 빠져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노무현캠프가 머지 않아 심각한 딜레마에 빠질 것"이며, "노무현은 민주당의 노선에서 일탈해 자신의 소신을 지키지 못하고 우향우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시민사회는 어떻게 노무현 현상을 해석할 것이냐에 대한 본격적 논쟁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노무현이 부르짖는 '신민주대연합'에 대해 "YS·DJ가 과거 민주화의 상징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집권기에 국민이 느꼈던 '학습효과'가 있다"며 "역사를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일갈했다.

1부의 토론자들은 대체로 기존정치체제의 변화로서 노무현 현상을 긍정했지만, 그 안정성· 지속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노무현 후보의 지지기반을 '합리적 개혁세력'이라고 명명한 손혁재 박사는 이러한 노무현 현상이 대선 때까지 안정적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민노당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조현연 부위원장은 현실정치인으로서 노무현 후보가 가진 한계를 지적하며 머지않아 '노풍'이 중대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회자 정해구 성공회대 정치학 교수는 "진보정당과 노풍은 협조할 수 없는가?"라며 "두 세력간에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개인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 이날 토론회에는 예상보다 많은 방청자가 참가해 '노풍'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반영했다.


남은 것은 악재뿐

2부에서는 손석춘 한겨레 논설위원의 사회로 "노무현 현상의 사회문화적 분석"이라는 주제의 토론이 이어졌다.

발제를 맡은 홍성태 상지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풍의 기원지는 단연 민주당의 국민경선제"라며, "제도의 민주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노풍은 아주 잘 보여준다"고 제도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그는 노풍의 사회문화적 분석에서는 "변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 1980년대 중반이후 사회의 구조적 변화, 세대론으로 설명되는 주체의 변화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매체의 변화" 등을 모두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풍은 한국정치의 근대화를 한 단계 더 밀고 나가는 것"이며, "비주류에 속하는 대다수 국민의 열망이 그 바탕에 자리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 교수는 노무현 현상에 대해 "기존에 서로 만날 수 없던 사람들이 사회적 틀거리를 넘어 서로 만나는 현상"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대통령선거와 관련 "대선은 박빙의 선거가 될 수 있다"며, "앞으로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 길들이기가 시작될 것이며, 지금의 분위기가 지방선거에까지 유지된다면 대선에서 예측할 수 없는 접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 명계남 노사모 대표는 "진보진영이 노무현 후보를 공격하기 보다 그를 지켜야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후보에 환호하고 있는 노사모 회원들.


명계남 노사모 대표는 "노무현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이냐? 보다 현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전제했다. 그는 '노무현이 결국 보수화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에 대해 "'진보의 날카로운 공세로 노무현이 점점 중간으로 밀려가는 측면이 있다"며, "진보진영이 노무현 후보를 공격하기보다는 그를 지키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명계남 대표는 윤상철 교수가 박빙의 승부를 예상한데 비해 "노무현 후보가 압도적 차이로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손석춘 논설위원은 "언론인들과의 모임에서 노무현 현상에 대해 '남은 것은 악재뿐이다'라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는 문제"라며 진보진영의 노무현 현상에 대한 입장정립과 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무현은 의사진보?

▲ 노무현과 민주노동당의 차별성을 묻는 민노당 학생당원.
노무현 돌풍과 진보-보수의 대립구도 형성 가능성에 대해 토론한 3부에서 정영태 인하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근본적인 변화를 지향하는 급진적 개혁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보수세력이라는 의미에서의 진보-보수의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정영태 교수는 노무현 그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분류할 수는 없으며, 경선에서 승리할수록 '보수화' 되어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회창 후보든 노무현 후보든 일반국민이 각각을 지지한 것은 정책이나 이념적 성향보다 이미지나 인상, 또는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사회에서 진보-보수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기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노무현 후보로 대표되는 온건개혁과 이회창 후보 또는 이부영 후보로 대표되는 온건보수간의 보혁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은 없지 않다"고 말하고 두 후보의 싸움은 "중간으로 가는 싸움이 될 거다"라고 예측했다.

이재영 민주노동당 정책국장은 노무현 현상을 "의사진보로서의 성공"이라 규정하면서 보혁구도형성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노무현이 가상에서 현실 정치로 진입하면서 점차 보수적인 경향을 띌 것"이라고 밝혔다.

김동춘 참여사회연구소장(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세(勢)와 풍(風)'을 거론하면서 "진보적 정치인을 평가할 때 '세와 풍', '그가 옳으냐?, 그르냐?', '제도권 진입후의 정치적 행보'를 주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노무현이 "돈에 의하지 않는 보스, 언론에 의지하지 않는 보스의 출현, 자발적 정치조직의 등장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사회 진보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진보의 평가기준으로 경제적인 측면, 민족적인 측면, 새로운 가치로서의 생태·여성에 대한 측면을 제시하면서 "노무현이 시장의 측면에서는 보수적, 민족의 관점에서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동춘 교수는 "노무현이 좌냐 우냐를 떠나서 우리사회를 어느 정도 왼쪽을 옮길 수 있을 것인가?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청중으로부터 "민노당이 노무현과의 차별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민노당 이재영 정책국장은 "선거가 진행되면서 노무현 스스로가 우경화 되면서 민노당과는 차별성을 보이게 될 것"이라며 "노풍이 머지않아 잦아들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에서는 노무현 현상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

토론을 지켜본 맹형일(60세)씨는 "노무현 후보와 노풍의 여러 가지 측면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평가하며 "노무현 현상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동춘 교수는 "토론회에 노무현 현상에 대해 시민운동이나 진보진영이 어떻게 대응할 지에 대한 모색이 토론회의 주제로 배치되지 못해 아쉽다"며 "이후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토론회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태욱
2002/05/10 14:27 2002/05/1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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