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PM 11:00 일산 집에서

내일(23일) PM 8:00 까지 모처로 나오라는 전화를 받다. 모처는 성공회 성가수녀원. 정확한 위치를 알아듣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처음에는 송가 가스집인 줄 알았다.) 내일 기자회견에 쓰일 프리젠테이션용 파워포인트작업을 하라고 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으니 와서 작업만 하면 된다고… 역사적인 일에 동참하게 되었으니 영광으로 알라고. 아!... 난 정말 가슴 뭉클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1.23 PM 7:50 광화문

장소가 알려지면 안 된다는 신신당부 때문에 집에도 얘기 안하고, 애인한테도 얘기 안하고 성공회수녀원으로 가다.

일부러 낮 시간 동안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꼭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영문도 모르고 어디 가느냐 묻는 통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마치 '미션임파서블'의 재연인것 같았다.

1.23: PM 8:00 성가수녀원 앞

각 방송사 중계차에 기자들이 득실득실하다!!!. 장소가 샌 것이 틀림없다. 분명히 나는 아니다.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꼭 "바로 너지!" 하는 것 같았다.

1.23: PM 8:30 수녀원 기자실

수녀원에서 '100인 유권자 위원회'가 열리는 것은 언론에 알렸단다. 모두가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아! 양구라(양세진)... . 늦게 왔다고 안에도 못 들어가고 그냥 기자실에 있으라 한다. 무작정....

1.23 PM 8:31 수녀원 기자실

큰일났다. 기자들이 뒤늦게 들어온 나를 보고 계속 질문을 해댄다.

'기자냐?' '아니다', '출입 통제됐는데, 어떻게 들어왔냐?', '나는 할 일이 있어서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 ...', '명단 확정됐느냐?', '모른다', '그러지 말고 가르쳐줘라?', '정말 모른다, 나는 이제 들어온 사람이다', '에이 정말 그러지 말고 좀 알려줘라, 핸드폰도 다 뺏고 너무한 것 아니냐?'

이때 내 핸드폰이 너무나 절묘하게 띠리리 울렸다. '어, 넌 왜 핸드폰을 갖고 있냐?' 그곳에 모든 사람들은 핸드폰을 압수 당한 상태였고 나만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자들은 이놈이 뭔가 알고 있는 놈이라고 생각했는지 계속 질문을 해댔고 근 두 시간 넘게 질문을 받으면서 아! 차라리 내가 뭐 아는 것이 있으면 무슨 말이든 해주련만.... 나는 계속 뻥튀기 되고 있었다.

1.23 PM 11:00 수녀원 복도

지금 막 100인 유권자들이 밖으로 나왔다. 이제서야 명단작업이 끝났다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간 맞춰 천천히 올 것인데... . "ssibal! 양구라... 너 때문에"

여태껏 보이지 않던 양세진이 곁으로 다가와 "장소 옮겨서 작업하니까 이따가 신호 보내면 따라나와...."

'그렇구나 여기가 아니었구나 그럼 그렇지, 이런 중차대한 사안이 쉽게 공개될 리 있겠어....'. 기자들 눈치를 보며 복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1.23 PM 11:20

총선연대 대학생팀의 김박태식이 옆으로 다가왔다. "@#$%%^" 하고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한마디도 못 알아들어 다급해진 나는 "뭐야, 난 기다리라고 했단 말이야" 일제히 쏟아지는 기자들의 시선...

다시 다가온 김박태식은 들릴 듯 말듯 낮은 음성으로 "따라 나오란 말이야" 다급한 마음에 바로 뒤따라 나가다가 앗 차! 가방을 놓고 나온 것이 아닌가 다시 들어가 가방을 들고, 나오니 기자들이 덩달아 뒤따라 나오려하고 몇몇 사람들이 기자들을 막아섰다.

1.23 PM 11:25

니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떠들며 밖으로 나오자 김박태식은 뒤따르던 사람들을 잘라내야 한다고 지하도로 들어간다. 목적지는 빤히 보이는 모처인데 웬 지하도? 엄동설한에 지하도를 들어가 반대편으로 나오니 그제야 김박태식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가자" 한다. 그러나... 복잡한 시청 지하도에서 길을 잃고 헤매길 20여분 출구란 출구는 모조리 들어갔다 나오는 바람에 같은 사람을 두 번씩이나 만나기도 했다. 결국 모처로 들어간 것은 밤 11:50분 경.

1.24 0:00

모처로 들어가 조금 있으려니 공동대표들이 들어와 묻는다 기자들은 아무도 안 왔나? 너무나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자 "좀 부르지 왜? 그 추적60분 팀이랑 좀 불러" "...?..."

1.24 0:10

자고 있는 추적60분 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저, 아까 모른다고 하다가 먼저 나갔었던 사람인데요...."

"아휴~ 양구라...."

1.24 11:00 AM

그래도 명단은 발표됐다. 나는 한잠도 못잤고, 결혼을 불과 한달여 남긴 내 파트너는 마치 내가 실종이라도 된 줄 알고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고 말했다. 왜 요즘 신문방송에선 고문기술자가 간간이 나타나지 않는가.
탁현민
2000/02/20 00:00 2000/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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