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찬의 여의도 파일> 최병렬, 이회창 정계복귀 진짜 추진할까?
정당 :
2003/06/3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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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빗어넘긴 머리에 뾰족한 턱의 그가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돌아갈 때까지 건강을 챙겨야겠다"며 예의 그 허리굽히기까지 시연했다. 지난 주말, 한 코미디프로에 등장한 개그맨조차도 어떤 '조짐'을 눈치채고 있었다.
아마 그는 은근히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복귀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배칠수와 김학도에 비해 박명수의 자리는 갈수록 위태로와지고 있다. 그는 '잊혀져가는 정치인' 흉내로 6개월을 먹고 살았다.
'모사(模寫)'의 매력은 '원형(原型)'이 가진 아우라(aura)때문에 가능하다. 정치인에 대한 풍자는 그 권위와 권력이 실재해야, 비로소 우스꽝스럽다. 풍자의 대상이 실존하지 않으니, 비꼬고 틀어야할 '우스갯거리'도 당장 마땅찮다.
박명수는 지금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있다. 가수 이승철이 퇴물취급을 받으면서 덩달아 침체에 빠졌던 그는, 야심차게 준비한 새로운 캐릭터의 조기퇴장으로 또다시 위기에 처했다. '멀티 플레이'가 가능한 배칠수나 김학도와 달리 '한우물만 파는' 아날로그 개그맨 박명수는 이대로 주저앉고 말 것인가.
이 글은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한 짧은 보고서다. 한국 코미디의 대표 코드가 돼버린 '흉내내기'의 원조세대, 개그맨 박명수가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 이를 위해 이 전 총재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지에 대한 스케치다.
이 과정에서 지루한 정치 이야기를 피해나갈 도리가 없다. 할 말은 많지만, FAQ 방식(뻔한 문답들을 모아 귀찮은 질문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이 부담스런 화두를 돌파하겠다. 하여 우리의 일차적 관심은 이것이다. - 이회창 전 총재의 정계복귀는 가능한가?
(Q) 이회창은 미국에서 돌아오나
(A) 당근이다. 돌아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가 외국으로 떠난 이유는 ‘노무현 정부가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피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무슨 비리에 연루돼 도망다니고 있는 게 아니다. 구제금융을 자초한 전직 대통령조차도 상도동 집에서 식모와 집사 등을 거느리고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유승준과 달리 그는 미국 시민권도 없다. 노 정권이 뿌리를 내렸는지 아닌지는 순전히 '주관적'인 판단이므로,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 노 정권의 '착근'을 축하해 주면서 말이다.
(Q)그런데 도대체 언제 미국에 갔나
(A) 꼭 이런 지진아들이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눈물을 흘리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것,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이미 그때 외유 방침이 정해졌다. 우선 1월 15일 일본으로 떠났다가, 29일 한국에 돌아왔다. 그러다 2월 8일 미국으로 다시 건너갔고, 3월 5일 비자 갱신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 마지막으로 출국한 게 3월 16일이다. 이후 석달 동안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연구활동중이란다.
(Q)부인 한씨는 이미 한국에 왔다는데
(A) 신문 정치면 1단 기사까지 찾아읽는 정성에 박수 보낸다. 다만 할일 없는 사람이란 오해받을까 걱정된다. 부인 한씨는 일본 외유 때도 이 전 총재보다 닷새 앞서 귀국했고, 이번에도 지난 6일 잠시 귀국했다. 노환을 앓고 있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간호가 이유였다. 한씨는 과거 이회창 총재 시절 '베갯머리 송사'는 물론 일부 당직 인사를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는 게 당내 정설이다. 한씨의 이번 귀국이 이 전 총재의 귀국 시기를 탐색하는 의미로 읽히는 이유다.
(Q)그래서 언제 온다는 건가
(A)이 전 총재가 9월 이전에 돌아온다는 데 '하프 베팅' 하겠다. 6월 26일 당 대표 선출을 비롯해 7월 중순이면 한나라당의 주요 당직자 인선이 확정된다. 새 지도부의 출범은 대선 패배 이후의 과도기를 끝낸다는 의미다. '창심' 논란을 피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또다른 이유는 9월 정기국회에 있다. 한나라당의 새 지도부는 9월 국회에서 대대적인 대여 공세를 펼치며, 사실상 내년 총선 체제에 돌입할 것이다. 동시에 신당 창당과 대표경선 후유증 등으로 인한 당내 이탈 세력의 등장도 점쳐진다. 당내 정비와 대여 공세를 위해 이 전 총재의 '아우라'가 필요하다는 게 핵심 인사들의 판단이다. 당 지도부 구성이 끝나자마자, 여러 사람들이 미국을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이런 분위기를 전하고, 결국 '삼고초려'에 성공할 것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Q)그럼 왜 '올인'하지 않나
(A) 혹시라도 예측이 틀려서 언론인으로서의 공신력에 결정적 흠결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다. 정세판단을 혼돈스럽게 하는 건 내년 4월 총선이다. 이 전 총재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판알을 튕기는 과정에서, 귀국시기가 조정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대선 패배 직후, 이 전 총재의 한 측근 중진의원은 "내년 총선 전에 총재를 모셔와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원유세를 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적 반격에 장기간 노출시키기보다, 총선 직전의 '깜짝 귀국'을 고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실제로 이 전 총재의 미국 비자 만료는 내년 3월이다. 이를 이유로 귀국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런' 명분은 없다.
(Q)한국에 돌아와서 뭘 한다는 건가
(A)당분간 옥인동 자택에 칩거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한나라당 주변 인사들이 옥인동을 찾아올 것이다. 한두달 정도의 '탐색 시기'가 끝나면, 그의 공식적 활동은 원로급 인사들로 구성된 일종의 사회단체로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한 측근은 "사회의 어른으로 자리매김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김수환 추기경이나 조계종 총무스님처럼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곧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지위에 머무르고 싶다는 뜻이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권 밖에 머무르겠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Q)그건 '정계복귀'가 아니잖아
(A) 날카로운 질문이다. 그러나 이른바 '사회 어른론'이 오히려 정계복귀설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질문이다. '개인 이회창'의 이른바 '사회적 발언'은 본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정치권의 블랙홀에 빨려들어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에게 '야인 이회창'의 존재는 크나큰 유혹이다. 당 대표 경선에 나선 한 중진 의원은 지난달, 이 전 총재의 선영이 있는 충남 예산 지구당을 찾아 "대표가 되면 이 총재를 당 고문으로 모셔오겠다"고 공언했다. 최병렬 후보는 아예 공개적으로 '삼고초려'를 약속했다. 이 전 총재가 어떤 직함을 갖던, 적어도 내년 총선까지는 측근 인사들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Q)왜 하필 이회창인가
(A) 96년 정치권에 입문할 때만 해도 이회창은 일종의 정치적 '대리모'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정계를 견제하기 위해 등판시켰을 때 그는 민주계의 '용병'이었고, 이후 김 전 대통령과의 권력투쟁 과정에서는 민정계가 그를 밀었다. 그랬던 그가 97년 대선 때는 민주계 및 민정계를 두루 중용해 '친위부대'를 구축했고, 2000년 총선 직전 김윤환 등 민정계 핵심을 거세해 버리고 대신 '젊은 피'를 수혈했다.
지난해 대선을 치를 때, 한나라당은 곧 '이회창당'이었다. 민자당 합당 이후, 10여년을 이어온 이른바 '보수 대연합'을 성공적으로 통합한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현재 탈당설이 나돌고 있는 상당수 개혁성향 의원들도 애초에는 '이회창'이라는 인물을 보고 한나라당 입당을 감행한 셈이다. 보수 원조인 민정계를 안심시키고, 디제이라면 치를 떠는 민주계를 끌어안고, 일부 민주화 세대까지 희망을 품게할 정도로 그는 '화학적 혼융'의 능력을 보여줬다.
(Q)그럼, 다음 대선에 또 출마하겠네
(A)아니다. 이 전 총재의 복귀를 주장하는 한나라당 중진들이 틈날 때마다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을 잘 들여다 봐야 한다. 그의 복귀는 다음 대선을 겨냥한 카드가 아니다. 그는 이미 68세다. 2007년 대선이 되면 72세가 되고 임기를 마칠 즈음에는 77세가 된다. '창사랑' 등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복귀와 곧잘 비교하면서 이 전 총재 복귀의 정당성을 찾는 데, 상당한 비약이 있다. 그 이야기 다하려면 지면이 모자란다. 하나만 들자면, 이 전 총재의 복귀를 맘에 두고 있는 당내 정치인들은 다음 대선을 제대로 치르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그들은 '직선제 공포증'에 직면했다. 총칼로 권력을 잡고, 체육관에서 선거를 하고, 금권·관권 선거로 표를 창출했던 시절이 다 끝나버렸다. 과연 다음 대선을 승리할 보장이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잠정적인 대답은 내각제 개헌이다. 일본 자민당의 사례에서 보듯이, 내각제를 통한 안정적 집권을 위해서는 거대 정당이 필수적이고, 거대 정당은 막후에서 계파간 이해를 조정할 '보스'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전 총재의 복귀는 딱 그만큼의 의미다.
(Q)그래서 그 시나리오대로 되나
(A)당연히 알 수 없다. 정세 분석은 방정식이다. 이런저런 상수에 변수를 대입해 결론을 내리는 일이다. 이 경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우선 이 전 총재의 등장이 한나라당의 과거회귀 징후로 읽힐 경우, 이를 돌파할 명분이 마땅찮다. 이 전 총재 본인부터 '뻔하게 속보이는' 시나리오에 편승해서 한동안 스타일 구길 수밖에 없는 막후 '얼굴 마담' 역할을 자임할 지도 의문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전 총재의 복귀에 반대하는 당내 세력도 만만치 않다. 당 통합을 이루려는 이회창 카드가 오히려 당의 분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Q)최병렬 대표는 정말 이회창의 정계복귀를 추진하나
(A)질문에 답하기 전에, 민주당 신주류에게 일러두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들 앞으로 각오해야 할 게다. 최병렬, '꼴통 보수'라고 눈흘기면 그만인 인물이 아니다. '한 칼'이 있다. 매우 전략적인 사고와 계산 아래 행동하고 발언한다. 한나라당에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할 게다.
그의 '삼고초려' 발언은 다양한 함의가 있다. 첫째, '이회창 향수'에 사로잡힌 22만7천명의 당원들에게 "나는 더이상 '반창'이 아니라 '친창'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의미가 담겼다. 둘째, 이회창 체제 아래 기득권을 차지했던 당 중진들이 최 대표에게 가진 경계심을 '무장해제'시키는 효과가 있다. 셋째, 실제로 당 대표로서의 권능에 해가 되지만 않는다면, 이 전 총재를 데려와 선거전에 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도 하고 있다.
(Q)그럼 실제로는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거네
(A)적어도 완벽한 '최병렬 체제'로 한나라당을 개조하려는 최 대표에게 이 전 총재가 실제적인 위협이 된다면, 그는 오히려 복귀추진 세력과 맞설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다음과 같은 상황이다. 강력한 카리스마에 의해 최 대표가 당을 장악한 뒤에, '도구적인 용도'로 이 전 총재의 복귀를 눈감아 준다면, 그때부터 이 전 총재 및 숨죽이고 있던 옛 측근들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권토중래'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도 강한 관성으로 남아있는 '이회창 체제'와 새로운 구심으로 떠오른 '최병렬 체제'는 당분간의 잠복기를 거쳐 올 하반기 내내 한나라당 내홍의 중심 줄기가 될 것이다. 이념적으로는 이 전 총재보다 더 보수적이면서도, 형식적으로는 수구 민정계와 긴장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최 대표의 '모순 형용'이 이런 복잡한 상황의 근원이다.
(Q)지루하다. 그래서 박명수가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건가
(A) '이회창 복귀설 감상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계간 <인물과 사상> 봄호에 쓴 적이 있다. 거기선 더 지루하게 설명했으니 인내심이 강한 독자는 사서 읽으시기 바란다.
그 글에서 필자는 이 전 총재를 '정치적 유령'에 비유했다. 흠칫 놀라며 뒤돌아보게 하는 힘.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실체를 단정할 수 없는 힘.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고, 남들이 그 존재를 해석하게 만드는 힘-오늘, 한나라당에게 이 전 총재는 정확히 그런 의미다.
그러니 두어달 쯤 인내심을 갖고 계속 그 캐릭터를 밀고 나갈 것을 박명수씨에게 권하고 싶다. 때로는 실체가 불분명한 대상이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 코미디의 단골 메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례를 반추하면서 슬슬 '멀티 플레이'를 준비할 것도 함께 권고한다.
실존하는 정치적 실체인 김 전 대통령은 그 아우라에 기댈수록 모두가 '피본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하는 바람에, 이제 누구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됐다. 더 큰 비극은 아직도 그 처지를 본인이 깨닫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쯤되면 아무리 풍자해도 우습지 않고 그저 처연해질 뿐이다. 그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조차 사라진 이유다.
'포스트 이회창 시대'를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과거의 그늘에 머물며 누워서 떨어지는 과실을 기다리겠다는 시도는 성공하기 힘들다. 박명수씨 말고도, 이 점을 심각히 고민해야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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