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장이 최근 앰네스티의 경찰 과잉진압에 대한 보고서의 오역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임을 공언하였다. 앰네스티는 “몰려든 군중을 경찰이 통제한다”는 표현을 “경찰이 군중에게 진격한다”로 잘못 번역하였음을 시인하였다. 검찰이 MBC PD수첩 측이 시인한 광우병 다큐멘터리 ‘의역’에 대해 형사처벌을 공언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오마이뉴스의 부정확한 보도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후에 나온 것이라서 "공권력의 소송위협"이 마치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법적 조치들은 모두 실패할 것이다. 우리나라 법조계는 이미 20년 전부터 공익적인 보도는 허위라 할지라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 위법하지 않다는 이론을 따라 왔다. 위 기준은 세계 대부분의 헌법학자들이 수용하고 있는 미국의 1964년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이 제시한 ‘실제 악의’ 기준과 다르지 않다. 우리 학계에서 ‘현실적 악의’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실제 악의’가 더 정확하다. 즉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피고가 표현물이 허위라는 것을 ‘실제로’ 알고 있었어야 하고 표현물이 원고의 명예를 훼손할 것임을 ‘실제로’ 알고 있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사 작성자가 기사가 허위임을 알 수 있었는데 알아내지 못하였다는 ‘추정적 악의’에 대조되어, 실제로 허위임을 알았거나 거꾸로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없었다는 ‘실제 악의’를 의미한다.

설리번 사건에서도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의 후원회가 뉴욕타임스 지에 경찰 측의 탄압을 비난하는 광고를 게재할 때 “학생들이 저항의 표시로 노래를 부른 이유로 법원에서 쫓겨났다”거나 “킹 목사가 7번 구속되었다”는 명백히 잘못된 사실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명백한 오류가 있었음에도 연방대법원은 퇴거 이유나 구속 횟수를 오해할 만한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실제 악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면책 결정을 하였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사실 확인 노력을 기울여 사실이라고 믿을 근거를 확보한다면 ‘실제 악의’는 철저히 부정된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주장이 진실일 근거를 손에 쥐고도 동시에 그것이 허위라고 믿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PD수첩 사건에서도 아레사 빈슨 어머니가 문제의 인터뷰에서 MBC 측이 만든 자막과 같이 ‘인간광우병’을 의미한 것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는 아주 많이 있었다. 또 앰네스티는 번역이 잘못되었음을 ‘실제로’ 알고 있지는 않았다.

‘실제 악의’가 존재하지 않아 위 소송들이 법원에서 모두 기각될 것이라면 무엇이 문제인가? 어떠한 국민이나 언론도 국가권력이나 그 일원을 상대로 법적 분쟁을 치르기를 원치 않는다. 그 분쟁에서 이긴다고 할지라도 발생할 엄청난 비용과 보복의 가능성 때문이다. 아무리 실패할 위협이라고 할지라도 소송의 위협은 국민과 언론이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많은 선진국에서는 아예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 제도가 폐지되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

* 이 글은 7월 28일 경향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2008/07/28 12:36 2008/07/2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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