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2002년 6월, 우리들의 대한민국
시민과세계/2002년 하반기 :
2002/09/05 00:27
2002년 6월, 우리들의 대한민국
―요동치는 급변 속에서도 놓지 말아야 할 것들―
좌담자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좌담자 박노자 오슬로대학 교수(한국학)
좌담자 최보은 Premiere 편집부장
좌담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사)
사자회 정태인 경제평론가(방송인, 『시민과 세계』 객원편집위원)
때: 2002년 6월 27일
곳: 참여연대(안국동) 2층 강당
광기 어린 혼돈인가, 창조적 격동인가
2002년 6월 27일 바로 이 순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지자체 선거는 단지 지나갔고,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연속된 승리 끝에 월드컵 3ㆍ4위전을 앞둔 한국은 전국이 포만감에 잠겨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선거나 거리응원이나 몇 번씩 곤두박질친 변화사이클의 한 매듭일 뿐이다.
누구보다 히딩크. 연초에는 자기 나라로 돌아갔어야 했을 네덜란드국적의 백인감독은 이순신에 필적하는 구국의 성웅으로 떴다. 2001년 재ㆍ보선에서 참패한 새천년민주당. 그런데 국민경선제, 노사모, 노풍을 통해 이회창 대세론을 더블 스코어로 압도하는 노무현의 인기와 폭발적 지지율. 이 와중에서는 반복되는 과거도 미래의 변화에 가속도를 붙인다. 5공 이래 대통령 친인척들이 감옥 가는 역사는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올라갈 때는 수만의 노사모가 도왔지만 내려올 때는 대통령 아들 단 둘로 족한 그 끝없는 추락과 반등세. 하지만 급등과 반전으로 요동치는 정치권의 이런 작태도 정치권 자체를 아예 관심권 밖으로 밀어낸 붉은악마 열풍에 비하면 찻잔 안의 태풍일 뿐이다. 단군 이래, 아니 지구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700만 인파가 무엇 때문에 한날 한시에 한꺼번에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을까? 내일 우리의 일상은 어떠할까? 오늘의 이 충족감은 내일 올 어떤 불안의 단서가 될까?
그러나 극과 극을 오간 2002년의 이 격동들도 최근 5년간 두드러지게 나타난 급변성 변화의 시기적 매듭들일 뿐이다. 사방에서 밀어닥치는 변화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대한민국의 사회 전반에 정반대의 흐름들이 극적으로 교착하면서 그 극점들이 혼돈스럽게 얽히는 이 ‘순간’, 무엇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상황의 전개에 현기증을 느껴 우리는 판단에 손떼고 다시 사태의 격랑에 휩쓸리지나 않을까? 한국 현대사 50년에는 사회의 이면에 잠복해 있던 변화나 수구의 움직임이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분출하면서 엄청난 결단의 압박을 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때 판단 착오나 근시안적인 예단, 아니면 아집 때문에 사회와 민족에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온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할까? 2002년 6월의 이 순간은 광기 어린 혼돈일까 창조적 격동의 분출일까? 무엇을 가져[保] 지키고[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進] 발걸음을 디뎌야[步] 역사적 과오를 범하지 않았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이런 순간을 감당할 정신적 포텐셜을 갖고 있을까?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저변에 깔고 30~40대 지식인들이 아무 부담 없이 브레인 스토밍 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우리를 현혹시키는 이 변화의 현상들은 과연 생각할 값어치가 있는 변화들인가?
∙이런 변화들 가운데 반복되거나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는가?
∙이 변화들 가운데 계속되어야 할 것은 있는가?
∙사회의 모든 부분과 구성원들이 각개약진식으로 변화를 추구함에도 서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금도(襟度)는 없는가?
∙아무리 변화가 일어나도 새로운 변화를 더 보탤 것은 없는가?
이 좌담은 공식적인 대담자들말고도 방청객들도 간간이 참여하여 개방적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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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급변 속에서도 놓지 말아야 할 것들―
좌담자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좌담자 박노자 오슬로대학 교수(한국학)
좌담자 최보은 Premiere 편집부장
좌담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사)
사자회 정태인 경제평론가(방송인, 『시민과 세계』 객원편집위원)
때: 2002년 6월 27일
곳: 참여연대(안국동) 2층 강당
광기 어린 혼돈인가, 창조적 격동인가
2002년 6월 27일 바로 이 순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지자체 선거는 단지 지나갔고,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연속된 승리 끝에 월드컵 3ㆍ4위전을 앞둔 한국은 전국이 포만감에 잠겨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선거나 거리응원이나 몇 번씩 곤두박질친 변화사이클의 한 매듭일 뿐이다.
누구보다 히딩크. 연초에는 자기 나라로 돌아갔어야 했을 네덜란드국적의 백인감독은 이순신에 필적하는 구국의 성웅으로 떴다. 2001년 재ㆍ보선에서 참패한 새천년민주당. 그런데 국민경선제, 노사모, 노풍을 통해 이회창 대세론을 더블 스코어로 압도하는 노무현의 인기와 폭발적 지지율. 이 와중에서는 반복되는 과거도 미래의 변화에 가속도를 붙인다. 5공 이래 대통령 친인척들이 감옥 가는 역사는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올라갈 때는 수만의 노사모가 도왔지만 내려올 때는 대통령 아들 단 둘로 족한 그 끝없는 추락과 반등세. 하지만 급등과 반전으로 요동치는 정치권의 이런 작태도 정치권 자체를 아예 관심권 밖으로 밀어낸 붉은악마 열풍에 비하면 찻잔 안의 태풍일 뿐이다. 단군 이래, 아니 지구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700만 인파가 무엇 때문에 한날 한시에 한꺼번에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을까? 내일 우리의 일상은 어떠할까? 오늘의 이 충족감은 내일 올 어떤 불안의 단서가 될까?
그러나 극과 극을 오간 2002년의 이 격동들도 최근 5년간 두드러지게 나타난 급변성 변화의 시기적 매듭들일 뿐이다. 사방에서 밀어닥치는 변화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대한민국의 사회 전반에 정반대의 흐름들이 극적으로 교착하면서 그 극점들이 혼돈스럽게 얽히는 이 ‘순간’, 무엇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상황의 전개에 현기증을 느껴 우리는 판단에 손떼고 다시 사태의 격랑에 휩쓸리지나 않을까? 한국 현대사 50년에는 사회의 이면에 잠복해 있던 변화나 수구의 움직임이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분출하면서 엄청난 결단의 압박을 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때 판단 착오나 근시안적인 예단, 아니면 아집 때문에 사회와 민족에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온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할까? 2002년 6월의 이 순간은 광기 어린 혼돈일까 창조적 격동의 분출일까? 무엇을 가져[保] 지키고[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進] 발걸음을 디뎌야[步] 역사적 과오를 범하지 않았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이런 순간을 감당할 정신적 포텐셜을 갖고 있을까?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저변에 깔고 30~40대 지식인들이 아무 부담 없이 브레인 스토밍 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우리를 현혹시키는 이 변화의 현상들은 과연 생각할 값어치가 있는 변화들인가?
∙이런 변화들 가운데 반복되거나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는가?
∙이 변화들 가운데 계속되어야 할 것은 있는가?
∙사회의 모든 부분과 구성원들이 각개약진식으로 변화를 추구함에도 서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금도(襟度)는 없는가?
∙아무리 변화가 일어나도 새로운 변화를 더 보탤 것은 없는가?
이 좌담은 공식적인 대담자들말고도 방청객들도 간간이 참여하여 개방적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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