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기의 벽두에서 우리는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매고, 여기 『시민과 세계』라는 이름의 새로운 광장을 연다. 이 잡지는 우리 사회 시민공론광장의 새로운 한자리를 차지하면서, 풀뿌리 참여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새 시민공동체를 지향하며, 이를 중심으로 우리 시대 개혁과 진보 담론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 산실 역할을 수행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둘이면서 하나인 새 시민적 주체성과 시민적 세계를 더불어 지향하는 『시민과 세계』는 기본적으로 비판적 지식인의 담론공간의 성격을 갖게 될 것이지만, 이 땅의 시민사회운동과 어깨를 맞대고 서로 호흡을 같이해 나갈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잡지는 단순한 학술지를 넘어서 척박한 이 땅에서 풀뿌리 시민적 진보의 나무를 키우는 과업에 일조하고자 한다.

지난 세기말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고 지구적 규모의 공포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이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지구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도 없지 않았지만, 냉전종식 이후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일어난 9ㆍ11사태와 더욱 확연해진 미국패권하의 신자유주의 세계체제 실상은 세계시민의 이러한 기대를 여지없이 배반하고, 심지어 역사가 거꾸로 흐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갖게 한다. 낙관을 불허하기는 우리 사정도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한반도의 시간표는 세계시간보다 더 늦다고 할 것이다.

오랜 세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틈바구니에서 만신창이가 된 채 고난의 역사를 짊어지고 온 한반도에서, 그 일부인 남한에서나마 산업화와 절차적 민주화의 두 관문을 통과한 것은 20세기의 주요한 성과라 할 만하다. 그러나 지금 남한은 전근대, 근현대의 온갖 비동시적인 중첩 유산을 간직한 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블랙홀 속에 빨려 들어가고 있고, 전례 없이 폐쇄적인 북한 국가사회주의에서 본격적인 체제개혁의 길은 아직 멀어 보이며, 6ㆍ15공동선언으로 모처럼 밝아졌던 한반도의 평화와 분단체제 극복의 전망 또한 여전히 요원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새롭게 무장한 미국 부시정부의 강경 군사주의 세계화노선은 세계평화는 물론, 특히 한반도 평화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이같이 역사의 시계추가 우측으로 크게 기울고 평화와 민주주의의 길이 심각한 위기상황에 빠져 있는 세기초의 혼돈상황은 다시금 오늘 우리에게 진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세계는 무엇이며 또 그 세계 내에서 시민은 무엇인가, 우리는 세계 내에서 어떤 의미의 시민인가, 나아가 어떤 의미의 세계시민인가 하는 물음들을 던지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시민공동체와 시민적 주체란 이미 주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형성되고 쟁취되어야 할 새로운 과업이며, 이를 위한 어떠한 고차원적 전략도 억압받고 배제된 민중과 다양한 주체위치에 속해 있는 소수자의 삶의 조건 및 사회적 기회를 개선함이 없이는 공허하다. 따라서 새 시민공동체와 시민적 주체의 형성을 위해 현존하는 지배체제와 사회구조적 질병들, 지배적 이념 및 사유의 실상을 밝히며, 이에 대해 비판ㆍ항의하는 것은 『시민과 세계』의 당연한 책무이다. 그렇지만 또한 우리는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고 진보를 외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이제 구조적 모순은 단순하지 않고 중층적이며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비판과 항의의 과업 자체에도 새로운 실력이 필요하다. 더욱이 우리는 비판을 넘어서 희망에 대해 말해야만 한다. 비판과 고발, 거부를 넘어서 현실의 대지에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는 새로운 건설적 대안, 책임 있는 새로운 창안이 필요하다. 요컨대 오늘날 계몽은 다시 새로운 자기계몽을 요구받고 있다.

성찰적 자기계몽의 운동은 우리의 특수한 사상풍경을 돌아볼 때 더욱 절실하다. 왜냐하면 한국은 정치세계만큼이나 이념세계에서도 심한 파행상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자기계몽이 가장 긴급한 곳은 철옹성을 쌓아온 이 땅의 지배적 보수파일 것이다. 무력하게 억압자와 한편이 되어 뒤틀린 역사를 가진 한국의 자유주의 또한 철저한 자기계몽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 제도정치 영역에서 시민권조차 얻지 못한 진보파의 경우 또한 자폐적 독단의 불모성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며, 발본적 쇄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낡은 것에 대한 집착이 완강히 남아 있는 가운데서도, 우리는 이미 도처에서 더 나은 삶의 세계를 향한 사상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의 소중한 새싹들이 힘차게 움트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시민과 세계』는 이 고통에 찬, 창조적 모색들을 자양분으로 삼아서 풀뿌리 시민정치를 발전시키고 시민의 소리가 울려퍼지게 하는 건강한 시민공론광장의 일익을 떠맡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기에 상생의 세계를 추구하는 길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 사이의 만남과 대화의 실제 내용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소통과 교감과 약속의 새로운 숨길을 열 수 있는 어떤 새로운 에토스 또는 정신적 자세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시민과 세계』 창간의 기본 정신과 관련하여 몇 마디 소견을 피력해 두고자 한다.

1. 『시민과 세계』는 열린 연대를 지향한다. 우리는 개혁과 진보의 새 길을 모색하는 만남과 대화의 광장에서 차이를 대립으로 몰아가는 닫힌 뺄셈이 아니라 건강한 긴장을 유지하는 가운데 차이로 벗을 삼는 열린 덧셈의 노선을 추구할 것이다. 이 광장에서 이념의 중심은 비어 있다. 우리는 비어 있는 중심 주위에 둘러앉아 노동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 등에서 유래하는 현대 비판사상의 여러 차이와 다양성 간의 건설적 대화와 접합, 상호침투를 추구하고, 이 같은 열린 연대와 의견의 향연이 자아내는 창의와 풍부함을 광장의 지적 부(富)로 키워나가고자 한다.

1. 열린 연대는 더불어 사는 공동의 세계를 지향하며, 그 최소한의 보편적 지평은 불가결하다. 민주적 시민성의 이념은 이 광장에 결속력을 부여하는 공통 기반이 될 것이다. 좌ㆍ우익 국가주의와 시장지상주의를 함께 넘어서는 민주적 시민성, 시민적 진보의 이념은 다원성을 근본 조건으로 하는 인권의 정치론과 참여/자치/연대의 정치론의 결합물이다. 능동적 시민이란 다양한 주체위치와 정체성에 근거를 가지면서, 자유와 정의의 실현을 위해 참여하고 투신하는 자각한 정치적 주체이며, 권리의 주체인 동시에 책임의 주체이다. 시민공동체란 이처럼 서로 다르면서도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로 구성된, 새로운 자유인의 정치적 결사체이다.

1. ꡔ시민과 세계ꡕ가 추구하는 시민/공동체는 단지 국가 시민/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세계 시민/공동체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도전은 단순한 반(反)세계화가 아니라, 국민국가의 한계를 넘어선 초국적 민주주의와 세계 시민적 연대를 요구한다. 그러나 세계체제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늘 타자(他者)였고 이 사실은 세계화의 시대인 지금도 별반 달라진 바가 없다. 권력의 담론은 물론 해방과 자유의 담론에서조차도, 지식은 지정학적 현상임을 우리는 직시할 것이다. 세계적 연대와 세계적 의사소통은 복수의 정치 및 문화공동체의 기반 위에서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시민과 세계』는 둥지를 떠나 세상 속으로 길을 떠난다. 이 작은 씨앗이 거센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중도 사망하고 말지, 무럭무럭 잘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루게 될지 지금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이 잡지 또한 뿌리는 대로 거둔다고 하는 차가운 세상살이의 이치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한가하지도 서두르지도 말고 더불어 손잡고 희망의 정신,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정신으로 울고 웃다 보면 좋은 날도 오지 않겠는가.

거듭 강조하는 바이지만 『시민과 세계』에는 주인이 따로 없으며, 이는 소수 편집위원의 밀실이 아니라 열린 광장을 지향한다. 열린 연대로 풀뿌리 시민적 진보를 지향하는 이 광장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 간절한 마음으로 뜻을 같이하는 모든 시민지식인의 동참과 격려, 건설적 비판을 바라 마지않는다.

『시민과 세계』여, 열린 연대의 정신이여, 풀뿌리 시민공동체의 새 희망을 향해 네 갈 길을 가거라.

열린 편집, 함께 관심

『시민과 세계』가 열린 연대와 공동의 세계를 지향한다는 뜻을 세웠을 때 그 뜻을 지면에 실제로 구현시키는 모습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선 반년간지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역사적 관점과 시사적 관심의 중간선을 잡아 시대적 관통에 주력하기로 하여 일단 주제기획이라는 표찰을 달았다. 당연히 우리 시대의 가장 비중 있는 정치적ㆍ사회적 초점은 지난 20세기 한국사회가 21세기 한국에 넘겨준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인 시민사회의 향방이다. 여기에서 필진들은 시민사회에 대한 일반론을 넘어 과연 ‘시민’이란 누구이며, 어디에서 그 시민을 찾을 수 있는가를 놓고 현재와 과거, 시민권과 비시민권, 철학과 정치, 현실과 상상 속을 샅샅이 뒤지려고 노력하였다.

창간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기획이 좌담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 좌담은 여기 나온 주제를 두고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참여시키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 역시 여러 가지 우연적인 사건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국내에서 외국으로 열린 시각으로 현시점의 가장 뜨거운 화두인 ‘포스트9ㆍ11’의 향방을 논했을 때 다른 나라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각종 의견들이 나와 결과적으로 참 잘됐다는 자화자찬을 하게 되었다.

이번 세계의 창은 좌담에서 던져진 화두를 동서양 필진들의 담론으로 풍부하게 풀어내는 데 주력하였다.

동시대 논점은 우리 삶의 가장 절실한 문제, 우리를 가장 가슴 아프게 하는 인간현상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할 장이 된다. 이번 기획에서는 흔들리는 노동시민들의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같은 노동자 중에서도 비정규직노동자는 계급 외적인 차별과 아울러 계급 내적인 차별을 당하면서 인간적으로 아주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보다 안정화가 더 절실하다는 정이환 선생의 제안은 비정규직노동자보다 나은 처지에 있다는 사람들도 경청해야 할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임금, 기본권, 정치세력화 문제 등 노동자들을 둘러싼 경제적ㆍ정치적 조건들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얘기들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 노동시민의 안정된 삶이라고 했을 때 이번 기획이 그런 전제를 환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세계뿐만 아닐 아직 현실이 아닌 것에 대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펴 보려고 시도한다. 흔히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모색되는 시민적 삶을 위한 바람직한 제도 또는 정책을 앞으로 참여사회 구상으로 묶어볼 참이다. 이번에는 한번 뽑아놓으면 제멋대로이기 일쑤인 선출직공무원들에 대해 리콜을 행사하는 ‘주민소환제’, 선거뿐만 아니라 예산편성에도 주민들이 참여하는 ‘예산참여운동’, 그리고 자본투자에 수익성만 아니라 공공성과 윤리성을 결부시키는 구체적 방책을 논한 ‘사회적 책임투자 운동’을 논하는 데 인하대 이기우 교수, 민주노동당의 김웅 위원, 한신대 김항섭 교수 등이 옥고를 아끼지 않았다.

시민운동/시민문화는 시민운동과 시민문화를 비판적으로 조망하고, 시민정신을 함양한다는 거창한 문제의식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 기획은 실제로 시민운동현장에서 발로 뛰는 시민운동가들의 애환이나 일상생활에서 생성되는 풍성한 문화담론을 육성 그대로 중계하여 궁극적으로는 풍요로운 시민문화를 창출하는 데 그 뜻이 있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이 숨겨놓은 문필가로서의 자질을 발휘하여 대체복무제를 둘러싼 담론과 실천을 생생히 전달해 주었다.

『시민과 세계』 창간호에서 참여연대 박원순 전(前)사무처장 그리고 현(現)상임집행위원장――어느덧 박변호사의 시민운동경력에도 전ㆍ현직이 번갈아 붙게 되었다――의 특별기고 『현장에서 본 시민운동』을 싣게 된 것은 우리에게 특별한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지난 10년 동안 엄청나게 성장한 시민운동을 선두에서 견인하면서, 바로 그런 위치 때문에 시민운동의 취약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의 절실한 자기고민이 절절이 배어나오는 이 글은 본래 방대한 분량이었지만, 편집진의 앙청으로 없는 시간을 내어 손수 원고를 가다듬어 주었다.

논단 부분은 매우 이론적이고 학술적인 담론이 될 전망이다. 시민, 시민사회,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다방면의 이론적 탐구의 역사와 성과를 심도 있게 이해하고 그 지평을 넓히기 위해 이 분야의 각종 주제를 체계적으로 논의하는 장이 될 것이다. 이번에는 한나 아렌트를 주제로 잡아 최근 알뜰한 문고본을 저술한 숭실대의 김선욱 박사와 안느 아미엘의 글을 게재하였다.

북리뷰는 시민사회, 민주주의, 시민운동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정치, 경제에 대해 논한 기간별로 각종 단행본을 남김 없이 소개하겠다는 의욕으로 설정한 것이다. 비록 각 책에 할애된 지면은 극히 제한되었지만, 대신 가능하면 이 기획의도와 관련된 출판물 전체를 다루어보겠다는 야심이다. 따라서 소(小)지면 다(多)품종 전략에 따라 구성되는 이 서평부분을 전체적으로 읽으면 적어도 출판물에 반영된 시민담론의 시대적 추이는 재구성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 본다. 이번 호는 이런 과욕에 충분히 못했지만 앞으로는 출판시장을 점검하는 것이 편집진들의 중요한 임무가 될 것이다. 이 부분 기획에 필자나 책으로 동참할 의사가 있는 분은 언제든지 연락 주기 바란다.

권력과 이익의 추구에 혈안이 된 지금 세상에 이 쉽지 않은 잡지를 탄생시키는 데 우리 뜻을 이해해 준 고마운 분들이 많았다. 일일이 이름을 들어 감사함을 표해야 하지만, 사정상 몇 분만 거명하는 것을 독자분들은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오픈에쓰이(Open SE)의 최민 사장은 장애인들과 더불어 사업한 정성으로 장애인 아닌 사람들을 위해 소중한 재정지원을 상당 부분 부담했다. 이 일을 계기로 최사장이 참여사회연구소의 이사로 인연을 계속하게 된 것은 더욱 기쁜 일이다. 당대출판사(박미옥 사장)는 그 출판사의 정신에 맞게 또 이 고달픈 사업에 참여하였다. 김천희 편집장을 비롯한 당대 식구들의 뜻이 편집위원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그러나 어느 분보다 이 잡지의 제호를 써주신 신영복 선생께 감사드린다. 이 나라 방방곡곡을 흘러가는 선생님의 유장한 필치 속에서 “시민과 세계”가 그 살아 움직이는 한 획이 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임무이다.

이병천 · 홍윤기 / 공동 편집인
2002/03/01 00:32 2002/03/0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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