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지난 9월 11일의 테러를 보고 우리는 모두 그 테러의 가공함에 대해 놀랐다. 그리고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 우리에게 보여준 지나친 단순함과 격렬함에 대해 놀랐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스스로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미국을 응징하고 복수하려 했던 아랍인들의 동기를 제대로 가늠해 보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못했다. 그런 자살테러를 단순히 어떤 종교적 광신의 결과로만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종교적 차원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그와 같은 자기파괴적 테러의 바탕에는 단순히 종교적으로만 환원될 수 없을 어떤 근원적인 인간적 경험이 깔려 있음을 어렵지 않게 추측해 낼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까지의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세계화전략과 중동정책에 대한 아랍인들의 깊은 절망과 분노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테러행위를 미화하려는 아무런 의도 없이 그 절망과 분노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그 절망과 분노가 우리라도 그들의 상황에 처했더라면 그렇게 느꼈을 어떤 근원적인 인간적-도덕적 경험임을 깨달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서구 중심적으로 진행된 세계화와 근대화의 과정에서 약소민족으로서 느껴야 했을 모멸감, 고유의 전통적 삶의 양식과 문화가 부정당하고 무시당하는 데서 오는 분노, 깊이 손상된 자기존중의 믿음을 회복해 보려는 용솟음치는 결의, 아마 이런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런 도덕적 경험이 그 자체로 테러행위를 정당화한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겠지만, 그런 경험이 사실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것임에는 틀림없다.

어쩌면 그런 경험은 현대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많은 사회운동들의 공통적인 규범적 동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흑인이나 동성애자 등의 인권운동, 여성운동,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사회적 권리쟁취를 위한 운동 등은 모두 서방세계에 대한 아랍세계의 도전이라는 맥락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도덕적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그런 사회운동들의 바탕에는 모든 사회성원들의 평등한 권리에 대한 인정의 요구와 ‘문화적 차이’의 사회적 인정에 대한 요구가 규범적 문법으로서 깔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모두는 우리가 ‘인정투쟁의 정치’(찰스 테일러)라 부를 수 있는 사회의 정치적 동학의 표현인 것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른바 ‘제3세대’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의 ꡔ인정투쟁ꡕ은 다름 아닌 사회관계의 동학을 규정하는 그와 같은 규범적 문법에 대한 체계적인 철학적 반성을 담고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은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기치로 내세우면서 사회적 발전과정 그 자체 안에서 왜곡된 사회적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준거를 확인해 냄으로써 ‘비판’이 의거하고 있는 규범성이, 단순히 이론가에 의해 선언적으로 주장된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현실 규정적 힘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것을 과제로 내세우는 데서 출발했다. 그러나 호르크하이머에서 마르쿠제에 이르기까지 프랑크푸르트학파 제1세대의 철학자들은 기능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 해석의 연장선상에서 산업노동자층이 자본주의 사회의 제도적 틀 안에 완전히 통합되어 버렸다는 시대진단에 압도되어 역사적 상황 안에서 작동하는 실천적 규범성을 확인하는 데 커다란 어려움에 봉착했었다. 하버마스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로 그러한 기능주의적인 사회인식을 거부하고 비판이론을 생산패러다임으로부터 떼어내어 의사소통의 패러다임으로 전화시킴으로써 사회적 현실 안에서 의사 소통적 상호작용에 대한 규범적 기대의 형식으로 작동하면서 사회의 도덕적 진보를 추동하는 사회적 행위의 차원을 확인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호네트는 하버마스의 바로 이러한 성공은 동시에 그 약점도 분명히 해준다고 본다. 그가 보기에 하버마스가 채택한 ‘보편 화용론’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도덕적 경험을 지나치게 언어사용과 연관된 ‘합리성 이론적인’ 차원에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비판사회이론의 경험적 차원을 불투명하게 만든다. 그래서 호네트는 비판사회이론의 ‘내재적 초월성’을 확보할 준거를, 하버마스에서처럼 사회행위자들이 직관적으로 공유하고 있다고 가정되는 언어적 규칙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사회행위자들이 사회화과정에서 갖게 되는 좀더 폭넓은 사회적 불의에 대한 경험에서 찾을 것을 제안한다. 그는 사회행위자들이, 보통 자신들이 내세우는 정당한 정체성에 대한 요구들이 사회적으로 무시되는 방식으로 경험하는 그와 같은 사회적 불의에 대한 경험을,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차원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표현하며, 그러한 사회적 인정에 대한 요구들이 ‘인정투쟁’의 형식으로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문법을 규정한다고 본다.

호네트는 이 책에서 예나(Jena)시대 헤겔의 초기저작들에서 발견되는 인정 개념의 사회철학적 이론화 시도에 바탕해서, 한편으로는 도날드 위니코트(D. Winniccott)가 발전시킨 ‘대상관계이론’이라는 비정통적 심리분석의 학설과 미드의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성과 등을 공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와 사르트르 등의 비판적 전유를 통해서, 오늘날의 조건에서 사회이론적으로도 충분한 현실 적실성을 가지고 규범적으로도 더 나은 전망을 제시하는 새로운 비판사회이론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우리가 주목해 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시도일 것이다.

장은주 / 한국정신문화원 초빙연구원
2002/03/01 00:01 2002/03/0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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