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케인스주의 이후

독일 사민당은 2차대전 이후에 유럽의 형제정당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자본주의의 경쟁원리를 복지연대의 정합게임으로 수정한 케인스주의를 수용하면서 이데올로기와 실천 사이의 괴리에서 벗어나 정권참여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시장경제의 불균등발전에서 초래되는 실업사태의 구제에 국가개입의 핵심적인 과제를 부여한 케인스의 유효수요이론은 노동계급에 우호적인 분배정책과 복지공급에 대한 자본의 양보를 정당화시켰다. 이로써 이전에 서로 엇갈려 보이던 사회정의와 경제효율 사이의 딜레마가 해소되면서 사회민주주의 정치는 신화적인 완전고용을 달성함으로써 역사적인 황금시대를 펼칠 수 있었다. 케인스주의 복지연대의 헤게모니는 포디즘 대량생산으로 이어진 전후의 성장잠재력과 세계자본시장을 안정시킨 고정환율제도로 가능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의 석유파동 이래로 황금시대를 가져다준 ‘축적의 사회적 구조’가 침식되면서 팽창성의 재정정책에 기초한 수요관리전략은 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락하는 노동생산성과 완전고용으로 늘어난 복지수혜가 분배갈등을 확대시켰으며, 노동비용과 통화팽창률의 동반상승이 그 귀결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민간투자 동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통화체제의 안정을 위협하였으며, 이어서 밀어닥친 국제금융시장의 자유주의 물결은 결국 총괄조정의 개입주의를 무력화시켰다.

이렇게 하여 “보수정당이 신고전주의 세계관과 정치로 복귀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되면서” 사회민주주의 정치는 오랜 정체상황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1998년의 선거승리를 통하여 다시 집권당으로 도약한 독일 사민당이 ‘더 많은 국가’의 기조를 수정하여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험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의 귀결일지도 모른다. 선거캠페인과 이후의 정책입안과정에서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쇄신방안으로 자리잡은 ‘신중도’(Neue Mitte)는 ‘더 많은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평등과 복지를 향한 사회적 연대의 ‘낡은’ 원리와 결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배경에는 보수주의ㆍ신자유주의 세력이 물려준 450만 명에 육박하는 실업자와 거의 재정파탄에 다다른 사회보장제도의 유산이 있다. 사민당의 쇄신프로그램은 과연 오랜 복지제도의 전통을 자랑하는 이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여 다시 한번 황금시대의 신화를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신중도’가 아직도 진행중인 실험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그것의 공과를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독일 사민당의 새로운 노선을 위기관리전략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그것의 배경과 가능성 그리고 구조적 한계를 몇 가지 점에서 밝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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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갑 / 한림대 인문학부 교수
2003/03/01 00:17 2003/03/0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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