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골드블라트ㆍ데이비드 헬드 · 엔터니 맥그로 · 조너선 페라턴, 『전지구적 변환』
『전지구적 변환』은 지구화담론에 관한 한 대단히 담대하고 거창한 학술적 기획임에 틀림없다. ‘지구화’라는 말이 우리 시대를 풍미하는 하나의 유행어가 아니라 문명사적이고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는 전제 아래 개념, 과정, 인과관계, 다층적 영향 등을 포괄적으로 천착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지구화논의에 하나의 획을 긋는 기획이다. 이 책은 견실하게 짜여진 분석틀을 근거로 지구화논의에서 다루어야 할 거의 모든 중요한 주제들과 이슈들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구화관련 담론에서 배제할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 책의 분류에 따르면 평자는 기왕의 지구화논의에서 ‘회의론자’(즉 지구화가 “역사상 전례가 없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라는 정도에서)로서 지구화현상을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장구한 역사적 전개과정의 일환으로 파악하기를 요구해 왔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회의론을 뛰어넘어 역사적 조망을 할 뿐더러 매우 역동적으로 지구화를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역동적이라는 말은 지구화개념에서 흐름, 네트워크, ‘큰 변화’ 등을 중심에 위치지었다는 사실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지구화를 장기적 역사과정으로 본 안목도 높이 살 만하거니와 치밀한 실증적 분석으로 논거가 뒷받침되었다는 점도 서양학자들의 장점이 드러난 경우라고 하겠다.

전공분야를 달리하는 네 명의 학자들이 하나의 화두를 잡고 이 정도 일관된 저작물을 펴냈다는 점도 부럽기 그지없다.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운 학술연구의 특징인 것이다. 그러나 바로 전공을 달리하는 네 학자들이 공동작업을 했기에 지구화논의에서 핵심적인 경제영역뿐 아니라 정치ㆍ폭력ㆍ인구이동ㆍ환경 등 포괄적이면서 실증적인 분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몇 꼭지씩 나누어 집필하고 하나의 책으로 묶어내는 우리 학계의 일반적 경향과는 크게 거리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권의 책이 더불어 머리에 떠올랐다. 평자가 주로 관심을 두고 있는 세계체제분석 진영 내에서 나온 크리스토퍼 체이스-던의 1989년 저서 『전지구적 형성』(Global Formation)이 하나고, 또 하나는 칼 폴라니의 『거대한 변환』(The Great Transformation)이며, 마지막으로 지오바니 아리기의 『긴 20세기』(The Long Twentieth Century)이다. 폴라니의 기념비적 저작 『거대한 변환』은 20세기에 서구지성이 내놓은 가장 영향력 있는 책들 가운데 하나이며, 자기조절적 시장의 등장이라는 중요한 테제가 들어 있다.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나머지 두 책도 나름대로 가치가 없지 않은데, 『전지구적 형성』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구조문제를 다룬 역작이다. 아리기의 『긴 20세기』는 지구화논의에서 매우 강력한 논점을 제기한 문제작으로서 아쉽게도 헬드와 공저자들이 이 책에서 인용도 하지 않고 있다. 아리기는 축적사이클을 주목하여 자본주의 세계경제 역사상 네 번의 축적사이클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매 축적사이클의 하강국면에 ‘금융화’현상이 반복적으로 동반되었음을 책에서 논증하고 있다. 이들 책들도 우리말로 번역되어 국내에 널리 소개되어 같이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자들은 지구화가 기존의 온갖 거버넌스에 변화를 초래했으며, 국가를 포함한 기존의 각종 권력제도들이 지구화가 야기한 문제들을 해소할 수 없다고 본다. 문제는 정치로 귀착되며, 그들이 제시하는 민주화의 기획이 바로 ‘세계주의 기획’이다. 지구화에 대한 정치적 대응이자 인류세계의 미래를 위한 실천적 프로그램이 ‘세계주의 기획’인 것이다. 이 역시 대단히 포괄적이고 균형 잡힌 프로그램이지만, 그 실현성 여부는 기존의 다른 대안들과 마찬가지로 다소 불투명하다고 전망된다.

세상은 분명 변하고 있다. 저자들은 지구화라는 키워드를 통해 그 변화를 포착하고자 했다. 물론 달리 세계적 변화를 얘기하는 학파들이 여럿 있다. 요즘은 정보화를 중시하여 그런 측면에 관심을 두는 이들도 많다.

이런 변화의 파도는 한국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해 아주 특이한 세력이 집권에 성공했는데, 탈중앙ㆍ분권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지방화세력이라고도 볼 수 있는바, 한반도의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중앙화가 빚어낸 과부하의 압박수준이 극치에 달해 급기야 그것을 극복하겠다는 세력이 집권을 한 것이다. 대단한 변화라고 본다. 한반도도 지구화의 압박을 피해갈 수 없는바, 이 세력의 등장과 집권 역시 지구화의 물결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한반도에는 위협도 있고, 변화를 위한 새 기운도 감돈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런 변화에 부응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내학자에게 있어 서양학술서를 번역하는 일은 자기 저작을 내는 것 이상으로 어렵고도 힘든 작업이다. 엄청난 인내력과 지구력을 요하며, 고도의 전문적 지식도 겸비해야 이 작업을 잘해 낼 수 있다. 특히 이 책처럼 분량이 방대한 경우는 역자에게 그 어려움이 더 크게 마련이다. 번역서가 갖는 의의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조효제 교수의 노고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듯싶다.

이수훈 /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2003/03/01 00:04 2003/03/0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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