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편, 『국가폭력, 민주주의 투쟁, 그리고 희생』
현대사를 돌이켜보면, 민주주의는 늘 죽음을 통해 부활했다. 4월혁명의 김주열, 광주항쟁의 무고한 시민들 그리고 6월항쟁의 박종철ㆍ이한열 등 죽음은 투쟁을 불렀고, 투쟁은 민주주의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이 알려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으며 그 죽음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단지 추정을 할 뿐 자세한 진상을 알지 못한다. 피의 대가로 얻은 민주주의를 누릴수록 그 피에 대한 기억은 점점 멀어져 간다. 그러다 문득 무력하게 죽어간 두 여학생의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

역사에서 가해자들은 권력을 얻음으로 해서 이름을 기록에 남기고 때론 왜곡되어 교과서에까지 실린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이름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역사 속에 묻힌다.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저항의 역사가 기록되어야 한다고 누구나 주장하면서도 희생은 항상 최소한 기록되었던 것이 현실이다. 『국가폭력, 민주주의 투쟁 그리고 희생』은 이 오래된 불균형과 망각을 꾸짖으며, 살아남은 자들의 부채를 조금은 덜어주는 책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국가폭력, 민주주의 투쟁 그리고 희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한국현대사를 새롭게 분석한다. 이 책은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소가 추진하는 ‘한국사회재인식 시리즈’의 네번째에 해당하면서 이미 발간된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의 동학』(조희연 편, 나눔의 집, 2001)의 자매편에 해당한다. 『한국 민주주의…』가 한국현대사를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관계’를 통해 파악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에서 사회운동의 갖는 역사적 의의를 규정했다면, 이 책은 광기의 국가폭력에 저항했던 사회운동세력의 적극적 저항에 초점을 맞추어 그 희생의 역사적 의미를 구체화한다.

저항의 기록이 아직 부족하다면, 이 책의 일차적 의미는 ‘희생의 통계학’에 있다. 막연하게만 인식되는 희생이 과연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그 양태가 어떠했는지를 다양한 영역에 걸쳐 꼼꼼히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저자들은 사라져 가는 역사를 복원한다. 각 장에 나오는 수많은 도표만으로도 아직 기록에 익숙지 않은 우리에게 이 책이 주는 의미는 상당하다 할 수 있다.

이 책은 또한 우리 학계에서는 거의 공백상태나 다름없는 국가폭력을 이론화ㆍ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국가는 폭력성을 그 본질로 한다. 문제는 국가의 폭력이 어느 순간에 불법화되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합법적인 외양을 쓰고 나타나는가 하는 점이다. 이 책은 폭력이 어떻게 현실화되는가를 보여줄 뿐 아니라 ‘처벌의 정치학’을 통해 그것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행사되는지를 밝혀준다.

불행한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러나 기억만으로 다가올 위험을 막을 수는 없다. 진실의 규명과 함께 가해자에 대한 단죄가 있을 때만이, 다시 말해 과거청산이 이루어질 때만이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은 말미에 과거청산의 의미와 현실적 실천과정에 관한 논의를 덧붙임으로써 기억이 왜 되살려져야 하는지를 되새기는 미덕을 발휘한다.

이 책의 미덕은 이외에도 많다. 그러나 기대가 큰 만큼 아쉬움 역시 남는다. 공동연구의 결과물치고는 책 전체의 통일성이 부족하다. 또한 폭력과 희생의 통계학만큼이나 중요한 그것의 사회적 효과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가장 큰 아쉬움은 적극적 저항에 의한 희생만을, 그리고 제도적 폭력의 희생만을 그것도 양적으로만 다룬다는 점이다. 물론 앞에서 밝혔듯이, 이 점은 이 책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이 책이 희생에 관한 연구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면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

역사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기록되고 해석될 뿐이다. 기억이 정치학인 이유는 그것이 잊혀진 것을 되살리는 것만이 아니라, 현재적 의미투쟁에 깊이 관여하며 또한 미래의 방향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편자의 말처럼 기억은 ‘과거를 소재로 한, 미래를 향한 현재적 투쟁’이고, 저자들은 그 투쟁을 지금 막 시작하였다.

김정훈 / 연세대 사회학박사
2003/03/01 00:00 2003/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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