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하버마스 · 자크 데리다, 『테러시대의 철학』, 조반나 보라도리 대담 · 서론 · 해설
I. 단초: 참상 앞에서 철학한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인가?

이스트사이드의 자기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세계무역센터(WTC)의 쌍둥이빌딩이 눈앞에서 무너지고, 한나절도 안 되어 수천 명의 주검과 폐허의 먼지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길거리에 넘쳐난다. 아파트 창문 너머로 이런 광경을 보면서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이 순간을 넘어선 내 삶의 실상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머리에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과연 온전한 정신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

평생 철학을 공부하고 또 철학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아직 닥치지 않은 최악의 순간’을 예감하며 공포에 떨면서도 그런 철학적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순간에 ‘몇 주 뒤면 유럽철학의 거장 하버마스와 데리다가 뉴욕에 올 일정이 잡혀 있다’는 것까지 생각해 내어 똑같은 주제로 이 두 사람을 나란히 인터뷰하여 책을 낼 기획을 머릿속에 그렸다면 아무래도 좀 너무한 것이 아닌가?

9ㆍ11테러가 터진 그날, 그곳의 절박한 순간에 튀어나온 철학적 주제에 관해 20세기 후반기에 그 철학의 절정에 오른 두 사람에게 물어보겠다는 발상을 한 것은 아무래도 엽기적이다. 하지만 바사대학(Vassar College) 철학과의 20세기 유럽철학 담당 조교수인 조반나 보라도리는 2001년 12월 각기 다른 일정을 갖고 뉴욕에 온 두 철학자를 자기 생각대로 인터뷰하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하버마스와 데리다를 각기 별도로 상대하여 벌인 이 두 인터뷰가 정작 책으로 나온 것은 2003년 중반기, 인터뷰가 있은 뒤 거의 2년이 지난 시점이다. 하버마스가 유럽의 다른 지식인들과 함께 미국의 이라크침공에 항의하여 유럽 각국의 주요 신문에 연대기고를 한 2003년 5월 31일에도 이 책은 미국에서 정식으로 출간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또 이상했다. 아직 윤독도 마치지 않고 목차에 본문 쪽수도 표시되지 않은 교열본으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하버마스와 데리다 두 사람이 각기 ‘근본주의와 테러’(Fundamentalism and Terror) 및 ‘현실적이고 지구적인 테러리즘’(Real and Global Terrorism)이라는 제목으로 보라도리와 인터뷰를 하고 나서, 또 각기 자신들의 철학적 핵심주장에 따라 『테러리즘 재구성하기』(Recon- structing Terrorism)와 『테러리즘 해체하기』(Deconstructing Terrorism)라는 제목으로 한 편씩 논문을 더 집필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본문을 찬찬히 읽어보니 보라도리는 『테러리즘, 그리고 계몽주의 유산: 하버마스와 데리다』라는 서론(introduction)뿐만 아니라, 내가 처음 하버마스와 데리다가 쓴 것으로 착각했던 두 편의 논문까지 쓴 것이다. 그 두 글의 내용은 하버마스와 데리다의 육성으로 된 인터뷰들을 그 주제순서대로 논술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두 거장은 인터뷰 현장에서 자유롭게 생각나는 대로 말하게 한 다음, 그것을 저본으로 두 사람의 기존 텍스트들에서 전거를 찾아 주석까지 붙여가면서 마치 두 사람이 직접 쓴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논문 형식으로 인터뷰의 내용들을 재집필한 것이었다.

대담자가 수고롭게 작성한 이 두 글에 대해서 하버마스와 데리다는 자신들의 인터뷰를 교열한 때만큼이나 주목하였을 것이다. 사실상 대리성 창작집필인 이 두 글로 인해―만약 이 책이 제대로 번역되기만 한다면―우리는 두 거장의 육성과, 아울러 그들 사상의 배경과 맥락에 대한 아주 체계적인 전문적 해설까지 알뜰하게 경험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그런데 머리말과 서론에 나온 말들이 본문에서도 반복되는 것은 아무래도 저자의 집필력에 한계가 있는 증거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정말 왜 이런 수고로운 작업을 해야 했을까? 인터뷰라면 인터뷰의 육성대로 독자에게 다가가게 하면 그만이다(물론 52쪽에 걸쳐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은 데리다의 인터뷰가 있더라도 20쪽밖에 안 되는 하버마스의 인터뷰만을 더할 경우 책 한 권으로 엮기에는 태부족이기는 하지만 거장들의 경우 아주 얇은 대담록이 출판되는 것은 서구의 경우 결코 이례적인 현상이 아니다).

왜 맨말의 그 췌언들을 걷어가면서, 본인들이 써야 할 글을 마치 본인의 머리 안에서 복기(復碁)하듯이,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그들의 기존 텍스트들과 연관시켜 가면서―솔직히 말해서 보라도리가 하는 하버마스와 데리다의 얘기 가운데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별도의 논술작업을 해야 했을까? 머리말 8쪽까지 포함해 총 208쪽의 책에서 두 발언자의 녹취부분 72쪽을 제하고, 나머지 136쪽을 온통 할애해 유럽에서 온 이 ‘비(非)미국인들’의 말을 마치 구세주의 계시나 되듯이 하나하나 핥아갔을까? 무엇보다 자기 앞에서 벌어진 그 참상 앞에서 놀라 까무러치거나 하다못해 부상자 한 명이라도 구호하지 않고, 철학을 하는 것도 모자라, 미국 밖에서 올 예정이기만 한 이들을 상대로 인터뷰해서 책을 낼 생각까지 했던 것이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인가?

II. 테러시대에 왜 자기 얘기를 하게 되는가?: “이 순간을 넘어선 내 삶의 실상”

우리는 ‘미국 밖에서 미국을 생각’하는 데 아주 익숙해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한국인의 삶 안에 미국적인 것이 엄청나게 많이 삼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미국적인 것에서 실용적으로 아주 많은 이득을 취하는 그런 순간에도, 우리는 한번도 흔쾌하게 우리 자신이 미국스럽게 되는 데 진심으로 동의한 적이 없는 가운데 ‘미국 생각하기’를 계속해 왔다. ‘괴리의 동거와 혼융’(cohabitation and fusion of disparates)이라고나 부를 수 있는 이런 이상한 현상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는 것이 이제 철부지 청소년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장년과 노년의 남녀를 망라하는 일반적 미용품목의 하나가 된 현재에도 여전하다.

나는 조반나 보라도리가 어떤 이인지, 그리고 그런 이름을 가진 미국대학의 철학자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접하기 전엔 전혀 몰랐다. 이 책에 부기된 저자경력을 보고 비로소 이분이 여자이며, 6개국에서 번역된 현대 미국철학자들과의 대화집을 출간했고, 소규모로 짐작되는 대학의 유럽 현대철학 담당교수라는 것을 알았다. 분명한 것은, 그 이름에서 명확하게 풍기듯이, 그녀가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며 유럽적 정체성에 대해 앵글로색슨계보다는 더 친화적 관심을 가질 생활적ㆍ사상적 여건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만큼이나 현실적인 것은 9ㆍ11테러를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그녀는 자신을 그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서 살고 있는 ‘뉴욕사람’(New Yorker)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녀는, 미국 안에서, 미국을 향해 일어난 ‘테러사건’을 겪었다. 그녀는 그 사건의 밖에서 그 사건을 볼 수 없는 원천적 조건을 순식간에―그리고 구식으로 말하자면, 운명적으로―배정받았다.

그리고 그녀가 “9ㆍ11공격에 책임 있는 테러리스트들의 명백한 이데올로기는 현대성(modernity)과 세속화(secularization)를 거부하는 것이다”라고 단언하면서 9ㆍ11테러와 ‘계몽주의 사상가들’을 연관시켰을 때, 그녀는 공포의 순간에도 철학하는 사람으로서 발동된 그녀의 직업의식이 공격받은 문명의 가장 심장부에 놓인 그 문명의 존립양식과 밀접하게 결부되었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 문명의 존립양식이 도전받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음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이에 아주 절박한 것은 그녀의 조상 중 누군가가 고향인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을 때 바로 이 현대성과 세속화라는 시대적 조건과 방향에 적응하여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이 그 이향(離鄕)과 이민(移民)의 가장 중요한 동기 또는 촉발 요인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녀 대에서는 이미 그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를 미국 안에 살게 만든 애초의 바로 그 조건이 이제 직접적인 폭력행사의 표적이 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녀는, 지금 나 자신이 과연 정확하게 살고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조상은 과연 나를 제대로 살 곳에 데려다놓았는가? 나는 과연 이 위험한 곳에 계속 살아야 하는가? 다른 사람이 의문시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증오할 수도 있는, 바로 이 미국에서 계속 산다고 한다면, 그렇게 살아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바로 이런 위기적 자문이 그녀로 하여금 “테러시대를 사는 철학자의 이야기”(the story of a philosopher in a time of terror)로서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추정된다. 이때 두 거장과의 인터뷰는 보라도리 자신이 쓰고자 하는 자기 삶에 대해 자기보다 먼저 산 이웃집 아저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 된다. 그리고 이들의 얘기를 반복의 따분함을 무릅쓰고 다시 논술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이들을 통해 “이 순간을 넘어선 내 삶의 실상”을 직접 그려내고자 하는 보라도리 자신의 고투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 책은 사건이 일어나고 인터뷰가 이루어진 지 거의 2년이 다된 시점에 비로소 책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물론 인터뷰 뒤에 녹취하고 윤독하는 데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III. 제국 안에 사는 사람들의 제국 생각과 그 절박함: 적의 익명성과 제국의 자기면역성, 그리고 유럽중심주의의 자기비판적ㆍ반성적 극복

보라도리가 기획한 이 인터뷰의 가장 첫번째 의의는 우선 “하버마스와 데리다가 병행적으로 제기되는 일련의 비슷한 질문들에 답하면서 나란히 등장하기로 동의한” 것에서 찾아진다. 20세기 후반기에 철학공부를 시작했던 이들에게 이것은 그 자체가 일종의 ‘범철학계적 주목을 받을 만한’ 사건이다. 왜냐하면 보라도리 자신이 잘 요약하고 있듯이, “계몽의 문제에 관한 한 하버마스와 데리다는 첨예하게 대립되는 견해들을 표명해 온 것으로, 즉 하버마스는 계몽을 옹호하고 데리다는 그것을 거부해 온 것으로 확신”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20세기 후반기 서구철학을 ‘현대-탈현대 논쟁’으로 주름잡아 온 두 사람의 이력을 보면 당연한 사고였다. 그러나 보라도리는 인터뷰 이후 하버마스는 몰라도 데리다에 관해서는 그를 반계몽으로 규정하는 것이 ‘실책’(mistake)이었다고 단언하게 되었다. 이 점을 확인하는 데는 다음 다섯 가지 유형의 질문들이 하버마스와 데리다에게 공평하게 던져진다.

(1) ‘9월 11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다른 여러 테러사건과 달리 그것은 왜 특출한 사건으로 규정되어야 하는가?

(2) 테러라는 것은 과연 어떻게 규정되어야 하는가? 그것을 순전히 정치적 행위로 볼 수 있는가? 그것이 ‘전쟁’ 또는 통상적 범죄로 간주되는 폭력행사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3) 9월 11일의 테러는 왜 일어났는가? 그 저변에 깔린 이른바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전근대적 현상인가, 아니면 현대성 자체에 필히 동반되는 현대성의 자기모순인가, 아니면 탈현대적 거사인가?

(4) 이런 테러에 대해서 그 표적인 서구(the West) 쪽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런 테러의 발생에 지구화는 어느 정도 작용했는가? 이런 혼돈의 와중에 서구 지식인이 할 역할은 무엇인가?

(5) 서구가 주도해 온 ‘국-제관계들’(inter-national relationship)은 지정학적으로 어떤 질서로 재편되는 것이 바람직하고, 또 그런 보편적 질서는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테러리스트들 및 테러기획자의 출신 사회까지 포함하여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적 통합을 기할 보편주의적인 행위모델은 가능한가? 과연 대화모델은 국제적 교류에 적합한 것인가?

분명히 이 질문들은 ‘중립적’ 질문이 아니다. 테러감행자들을 지원하는 나라들은 깡패국가(rogue states)인가 아닌가라는 식으로 묻는 일방주의 구도를 염두에 둘 때 보라도리의 질문들은 일단 이들도 할 얘기와 생각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 질문들은 대단히 ‘공정한’ 질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들은 명백하게 “서구에 사는 우리”(We in the West)의 입장에서 내려진 것이다. 바로 그 점에서 하버마스와 데리다는 각론에서 각기 시각을 달리한 데서 나오는 약간의 첨예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삶을 ‘서구’ 그 자체를 벗어난 곳에서 구상하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음으로써 결국 무엇을 서구적인 것으로 지켜내야 하는지를 놓고 ‘입지점 측면에서 근접’할 수밖에 없으며, 그런 서구적인 것을 여전히 바람직한 것으로 부각시켜야 하는 강박관념을 떨치지 못한 결과 ‘공통의 가치론적 결론을 이미 공유’할 수밖에 없다.

(1) 무엇보다 이들은 2001년 9월 11일 미국 중심부를 표적으로 감행된 테러가 테러 그 자체로서도 “새로운 성격”을 가졌지만, 현대역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경우에 따라서는 주된(major) 의의를 갖는다고도 할 수 있는 ‘사건’임에 동의하였다. 하버마스의 표현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역사의 전환점”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도 충분하다. 더 나아가 데리다는 이 사건이 단순히 “9월 11일(September 11)의 사건”이 아니라 ‘9ㆍ11’로 고유명사화되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미국에서 911이 소방대 신고전화임을 상기하면 이 언명의 정서적 강조점이 이해될 것이다). 보라도리가 의도했던 점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9ㆍ11을 식민주의, 세계대전, 홀로코스트(인간학살)로 점철되는 20세기 역사의 상처들의 연장선 위에서 서구적 현대화가 드러내는 또 하나의 상처로 위치시키면서, 그 당사자와 진행구도가 전적으로 새로워진 21세기적 상처의 시발점으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하나같이 9ㆍ11테러의 가장 특출한 점을 ‘적의 익명성’에서 찾는다.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우리”를 공격할지 전혀 알 수 없는 그런 상태가 테러라는 말의 의미 그 자체인 ‘공포’를 “우리” 안에 광범하게 유포시킨다.

(2) 분명한 것은 이 테러가 불특정 행위자들에 의한 특정 국가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공식적으로 선포된 국가와 국가 사이의 전쟁과는 그 성격을 근본적으로 달리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부시행정부의 미국은 과잉대응을 한 셈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이런 테러는 도덕적으로는 명백히 용납될 수 없는 범죄이지만, 그 목표가 범죄로 인한 사익의 점취가 아니라, 테러행위자 자신이 그 행위로 말미암은 수혜의 범위에서 제외되는 가운데 ‘공익’(public interests)의 실현을 주관적으로 의도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범죄는 아니다. 바로 이 점에서도 부시행정부의 테러예방책인 선제공격전략은 테러의 원인을 오판하거나 아니면 고의적으로 왜곡한 것으로 간주된다.

(3/4) 9ㆍ11테러는 그 감행자들의 자살, 인질들의 무조건적인 죽음에의 동행, 피해규모의 거대함, 피해표적(WTC, 펜타곤)의 상징성 등에서 테러역사에서도 특출한 성격을 띤다. 그런데 어떻게 단 한번의 테러로 상상할 수 없었던 이런 규모의 파괴적 결과가 창출될 수 있는가? 여기에서 두 사람 모두 테러의 직접적 원인 또는 책임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슬람근본주의뿐만 아니라 그와 동시에 테러결과가 비극적으로 증폭한 원인과 책임에도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탁월한 철학적 성찰력을 보여준다. 그들의 성찰이 탁월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양면적 시각을 견지할 때 비로소 이 새로운 성격의 테러의 뿌리가 실질적으로는 서구사회가 추동해 온 현대화 그 자체의 구조적 요인에 있다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러의 원인에 있어서 이들이 제시하는 강조점에는 강도상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하버마스의 경우 9ㆍ11테러의 원인으로 이슬람근본주의에 무게를 싣는 편이다. 그런데 하버마스는 이슬람근본주의를 결코 전(前)현대적이거나 비(非)현대적 현상이 아니라, 현대 그 자체의 산물로서 철저하게 ‘현대적’ 현상이라고 본다. 즉 이슬람근본주의는 “가속화된 현대화의 과정중에” “전통적 생활방식이 폭력적으로 뿌리뽑힌다는 두려움에 맞선 방어적 반응”으로서, “시장의 지구화” 및 “대외직접투자의 확대”로 인해 닥치는 파괴적 양상이 증대됨으로써 서구적 현대화의 맥락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소비만능의 꿈을 거부하고 과거의 종교적 지침에서 현세에 대한 급진적 구원처를 찾는 움직임이다. 이슬람근본주의는 아랍세계에서―알제리민족해방전선, 나세르의 아랍통합운동 그리고 이라크와 시리아를 점거한 바트당운동 같은―세속적 민족주의 운동들이 실패하거나 타락하면서 종교적인 것 이외에 대안을 찾지 못한 아랍세계의 소외당한 기층대중들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따라서 9ㆍ11테러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척결하려면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현대화에서의 낙오에 대해 서구세계가 비서구문화권에 대해 좀더 이해하는 자세를 보일 수밖에 없으며, 바로 이 점에서 국제적 관계에서 ‘관용’(寬容, tolerance)의 태도가 강조된다.

이와 약간 다른 관점이지만 아주 독특하게, 데리다는 9ㆍ11테러를 ‘냉전’ ‘냉전의 종식’ ‘테러의 균형’의 행태들이 연속적으로 작용하는 “자기면역성 과정” (auto-immunity process)으로 해명한다. 데리다가 제시하는 ‘자기면역성 과정’이란 “한 생물체 ‘자체’가 그 ‘자체’의 면역성에 저항하여, 거의 자살에 가까운 형태로, 그 자신의 방어책을 파괴하게끔, 즉 스스로를 면역시키게끔, 그렇게 작동하는 이상한 행태”를 가리킨다. 이런 도식을 이슬람근본주의에 적용하면, 9ㆍ11테러로 귀결되는 이슬람테러리즘은 서구사회의 자기면역성의 결과이다. 이것은 이 세력이 태동하여 현재의 수준으로 성장하는 역사적 과정이, 사실은 소련을 제압하는 데 초미의 관심사가 있었던 냉전시대 서구사회 자체의 불가피한 필요성의 산물이었음을 리얼하게 부각시킨다. 즉 서구사회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방어력을 해체시킬 정도의 면역력을 가진 세력을 바로 자신의 자원으로 성장시켰는데, 그 연원은 냉전시대에 있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이 세력은 소비에트권에서 무차별 방출된 대량살상무기들을 장악하여 자체의 ‘군사적ㆍ기술적’ 힘을 배가시키고, 서구사회에 의해 급진적으로 진행된 지구화의 과정에서 배제된 이슬람인민들로부터 새로운 ‘정치적’ 자원을 충당하였다. 결과적으로 9ㆍ11은 서구사회의 자기면역성이 이제 본격적으로 작동되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뿐이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이렇게 성장한 이슬람 쪽의 테러세력들이 철저하게 익명적(anonymous)이라는 것이다. 결국 서구사회는 자기 사회 안에서 실체 없이 크면서 그 사회 전반에 걸쳐 분포한 이 면역체의 공격적 행위를 위한 모든 자원을 그 안에 비축한 셈이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갈 경우 ‘관용’ 정도로는 이런 자기면역체를 완화시키거나 근절시킬 수 없다. 서구사회 자신에 뿌리를 둔 이 반서구적 면역체들은, 바로 그것이 서구사회 그 자체이기 때문에, 마치 서구사회 자신의 분신인 양 무조건 환영, 즉 환대(歡待, hospitality)를 베푸는 “우정의 정치”(Politics of Friendship)를 펼 수밖에 없다.

(4/5) 9ㆍ11의 가장 중요한 또 하나의 특징으로 꼽히는 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시민 모두가 그 발생현장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최초의 대사건이라는 점이다. 지구적 매스컴 네트워크를 통해 이제 국가간 장벽을 완전히 넘어선 ‘세계사회’ 차원의 공중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국제법을 대신하여 단순한 국제관계가 아니라 세계시민적(cosmopolitan) 사회관계를 규제할 새로운 ‘만민법적’ 규범질서가 요구된다. 바로 이 점에서 하버마스와 데리다는 『영구평화론』에서 제시된 칸트의 ‘세계시민법의 이념’(the idea of a law of world citizenship)을 계속 견지해야 된다는 데 완전한 일치를 본다. 그리고 현재의 현실정치 차원에서 이 이념의 추구를 위해 분투하는 유럽지식인의 가장 진척된 자세는 유럽중심주의의 극복에서 찾아지며, 바로 그런 보편성을 향한 성실한 자세를 일관되게 견지하는 데서 확인되는 ‘유럽적 정체성’을 끊임없이 대중에게 환기시키는 것이다. 계몽의 지속은 계몽의 한계를 넘는 데도 여전히 유효하다.

IV. 문명제국의 보존을 위한 제국해체의 논리

9ㆍ11테러를 보는 하버마스와 데리다가 공통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물론 테러 그 자체의 가공할 파괴성이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바로 그런 테러에 대응하는 문명제국의 방식이 제국의 문명성 그 자체를 내부에서 자기 손으로 말살시켜 버릴 가능성이다. 문명성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 문제상황에 대한 사려 깊은 분별력이라고 할 때, 이미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은 분별력을 상실한 전쟁 아닌 전쟁을 자행했다. 이라크에서 미국은 이제 이 분별력을 상실한 상태를 세계시민 앞에서 전략적으로 구사할 정도로 무분별의 놀라운 진보를 보여주었다.

하버마스와 데리다의 인터뷰 내용을 주제별로 섬세하게 추적한 보라도리의 두 논고 『테러 재구성하기』와 『테러 해체하기』는 이같은 제국의 무분별에 속절없이 희생시키기에는 유럽역사에서 비축한 문명의 성과가 너무나 크다는 점을 자기확인한다. 이 문명의 성과는 현재 서구문명의 적이 됨으로써만 자기 삶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비서구권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포용해도 될 만큼 그 폭과 깊이에 아직 충분한 여유가 있다.

그들의 철학적 입장이 참으로 첨예하게 대립됨에도 불구하고 하버마스와 데리다가 9ㆍ11의 참상 앞에서 철학적 내공을 합하기로 한 것은, 이 참상이 서구사회 자신의 우매함 때문에 더 크고 비극적인 참상으로 번져가는 것을 막고자 하는 데 근본적인 동기가 있었다. 그들은 분명히―복지, 부, 민주주의, 자유, 정의 등 ―인류문명 최고의 혜택이 가득한 서구사회 자체를 보존하는 데 일차적 관심이 있다. 바로 그 점에서 우리는, 미국 밖에서 그 제국을 보는 우리는, 20세기의 거대한 사상적 위광을 유감없이 대변하는 이 두 철학자가 여전히 유럽중심적이고 제국친화적이라는 피상적 비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성찰은 서구사회에 대한 자기비판적 쇄신, 즉 서구사회가 자기 내부를 황폐화시키는 방식으로, 즉 자기면역적으로 외부의 도전에 대응함으로써 멸망하기 전에 퇴보해 버리는 결과를 막는 것으로 귀착한다. 그러기 위해 비서구권에 좀더 열린 자기혁신을 동시대 서구인에게 요구하는 것일 때 우리는 그들과 사상적으로 연대하는 것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서구의 문명은 이제 더 이상 서구의 것만이 아닐 뿐더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도 그들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아직 테러로 모든 것이 부서지지는 않았다.

홍윤기 /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박사
2003/09/05 00:01 2003/09/0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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