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2_시민사회와 NGO : 현상기술에서 정치과정 분석으로
시민과세계/2004년 상반기 :
2004/03/01 00:00
권혁태 외 지음, <아시아의 시민사회 : 개념과 역사> ; 조효제 편,
지금 한국사회에서 시민사회와 NGO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전성기를 맞고 있다. 87년 6월항쟁 이후 시민사회에 관한 이론적 논의와 사회운동의 실천은 점차 활성화되어 왔으며, 지구화와 정보화의 경향은 어떤 의미에서든 이러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구화는 시민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정보화는 시민들이나 NGO들의 의사소통방식을 크게 바꾸어놓고 있다. 한편 이러한 시민사회와 NGO의 다원화와 다양한 변화의 흐름들을 학문적으로 담아내려는 노력들도 지속되고 있는데, 최근에 출판된 『NGO시대의 지식 키워드 21』(이하 『키워드』)과 『아시아의 시민사회』(이하 『아시아』)는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키워드』는 NGO에 관한 지식들을 압축적으로 정리하여 체계적으로 보여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크게 이론ㆍ실무ㆍ활동 영역의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21편의 글이 실려 있다. 각각의 주제는 전체적인 체계 속에 배치되어 있지만, 각 글의 성격은 독립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독립성은 뜻하지 않은 하나의 문제를 던져주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NGO에 관한 담론들이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지니고 있어서 서로 모순되거나 갈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의 시각과 시장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이것은 NGO들간의 담론투쟁과 갈등의 분석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NGO를 둘러싼 다양한 이론적 시각과 쟁점들에 관한 논의가 필요한데, 이것은 『아시아』에서 체계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 책은 각국의 시민사회들에 대한 교차 비교연구가 취약한 현실에서 시민사회론의 실증적 논거와 비교사회학적 판단근거를 제공할 목적으로 제안되었다. 이를 위해 『서장』(조효제)에서는 공동연구를 위한 분석틀과 분석지표들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서장』은 시민사회론의 다양한 갈래들을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연구쟁점들을 제기한다. 어떤 시민사회개념을 계승할 것인가? ‘토착적’ 시민사회론의 전개는 가능한가? 규범적 접근과 실증적 접근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시민사회의 구성요소로 어떤 특징들을 상정해야 하는가? 시민사회연구의 종합이 가능한가? 조효제는 시민사회연구의 구성주의적 측면, 즉 맥락과 관점에 따른 해석의 다양성에 주목하면서 “시민사회 용어 자체보다는 구성요소의 확인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시민사회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분석을 위해서는 구성요소의 확인을 넘어 다양한 구성요소들간의 관계와 이들과 국가 또는 경제의 관계설정방식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제1부 한국시민사회의 개념과 역사”에서의 논의들은 아쉬움을 남긴다.
제1장 『한국시민사회의 개념과 실제』(손혁재)는 제목과 달리 서구 시민사회개념의 분석에 주목하고 있으면서, 한국사회에서의 개념적용논쟁을 간략히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 그리고 다양한 논의들을 소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역구분에 관한 논의들과 영역들간의 관계설정에 관한 논의들이 유기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하여 논의가 분산되거나 중복되는 느낌이 있다. 제2장 『한국시민사회 형성의 역사』(박상필)에서도 국가, 자본주의(경제), 시민사회 각각의 역사가 유기적 관계 속에서 논의되기보다는 나열적으로 서술된 느낌이 있으며, 기존 논의들을 정리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 예를 들어 권위주의적 개발독재국가와 자본주의경제의 발달이 시민사회의 계급투쟁 및 헤게모니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훨씬 잘 분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제3장 『지구화시대의 한국시민사회의 역할과 과제』(차명제)는 지구화와 정보화의 과정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최근 한국시민사회의 변화양상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노사모, 촛불시위 등 시민운동의 새로운 양상들을 ‘유연자발조직’ ‘비정부네트워크’(NGN) 개념을 통해 해석하고자 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지구화와 정보화가 시민사회의 계급투쟁 및 헤게모니 지형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지구화가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고 있는지를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제1부를 전체적으로 보면, 저자들이 코헨ㆍ아라토 유의 다원주의적 시민사회론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원주의적 시민사회론은 ‘국가-시민사회-경제’라는 삼분모델을 기반으로 해서 각 영역간의 경계유지와 균형, 자기제한적 급진주의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라는 현대 서구선진국들의 사회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서, 조직자본주의와 복지국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코포라티즘적 복지국가의 틀 속에서 자본주의의 계급적대가 약화됨에 따라, 자본주의경제체계는 이제 혼합경제를 기반으로 해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중립적 시장체계로 인식된다. 사실 ‘국가-시민사회-경제’의 도식을 ‘국가-시민사회-시장’의 도식으로 대체하는 경향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착취, 불평등의 문제설정을 시장경제의 효율성이나 합리성이라는 문제설정으로 대체하는 관점을 내포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계급적대는 주변화되거나 시민사회의 다양한 적대들 중 하나로 취급되고, 시장과 시민사회 또는 기업과 NGO의 균형형성이 실천적 지향점이 된다.
이 점은 제1부에서의 논의들이 다원주의적 시민사회개념을 계승하면서 시민사회의 구성요소로서 계급적대의 특징들을 적절히 다루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언급했던 ‘NGO들간의 담론투쟁과 갈등의 분석’이라는 과제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의 구성요소들 중 어떠한 요소들을 강조하는가 하는 것이 하나의 정치적 입장을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시민사회는 다양한 수직적ㆍ수평적 분화를 겪게 된다. 여기서 다양한 시민사회론들간의 담론투쟁과 갈등은 자본주의적 계급적대를 비롯한 사회적 적대들을 반영하게 된다.
시민사회론들은 시민사회의 구성요소, 국가-시민사회-경제의 관계설정, 바람직한 시민사회의 전망에서 다양한 이론적ㆍ규범적 관점을 취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자체가 정치 또는 담론 투쟁의 장이며, 시민사회의 현실정치의 반영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시민사회와 NGO에 관한 논의들은 다양한 정치적ㆍ실천적 맥락들을 반영해 왔다. 87년 6월항쟁 이후 시민운동의 성장은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의 배제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최근 ‘시민운동’과 ‘NGO담론’의 유행은 ‘노동운동’과 ‘계급담론’의 배제 속에서 이루어졌다. 결국 한국사회에서 시민사회담론이 탈계급담론으로 나아갈 것인가 여부는 시민사회담론의 정치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이처럼 다양한 시민사회담론들이 특정한 정치적ㆍ규범적 입장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때, 『아시아』에서 한국시민사회에 대한 논의들은 다원주의적 시민사회론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와 계급 문제에 대한 분석을 주변화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발전, 지구화, 정보화 등 현대사회의 변화과정에서 노동계급의 형성과 분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자본-노동관계가 어떠한 양상을 띠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헤게모니적ㆍ담론적 지형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전제라고 할 수 있겠다. 현실적으로 시민사회는 민주주의, 계급, 성, 지역, 환경, 소수자, 인권 등 다양한 쟁점들을 둘러싼 적대와 갈등의 공간이다. 여기서 계급적대에 대한 분석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이런 점에서 ‘국가-시민사회-경제’의 도식은 단순히 영역을 구분하는 도식이 아니라 각 영역들 내부의 헤게모니 지형과 영역들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도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시민사회에서의 다양한 적대와 갈등에 주목한다면, 소액주주운동이나 외국자본에 대한 ‘참여연대’와 ‘대안연대회의’의 시각차이, 시장개혁이나 재벌개혁에 대한 ‘경실련’과 ‘참여연대’의 시각차이, 미국의 이라크침공과 한국군파병에 대한 ‘민주네티즌연대’와 ‘통일연대’의 시각차이, 한-칠레FTA에 대한 ‘전국농민회’와 ‘전경련’의 시각차이, 새만금간척에 대한 ‘전북지역주민단체’와 ‘환경운동연합’의 시각차이 등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편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시민사회담론의 정치에 대한 분석은 일본ㆍ타이ㆍ중국ㆍ대만의 시민사회(론)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아시아』의 “제2부 아시아 시민사회의 개념과 역사”에서 잘 이루어지고 있다. 제4장 『일본의 ‘시민사회론’과 시민사회』(권혁태)는 시민사회담론의 정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일본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시민사회론 논쟁과 새로운 시민사회론의 등장을 전후(戰後) 자본주의의 발전, 새로운 생활영역운동의 등장, 1990년대 신자유주의적 개혁 등의 과정과 연관시켜 논의하고 있다. 제5장 『동남아 시민사회의 형성과 진화』(박은홍) 역시 타이에서 좌파지식인분파들의 차별적 이념들이 자본주의와 시장에 대해 어떠한 시각차이로 나타났고 공산주의운동과 민주항쟁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제6장 『개혁개방 이후 중국시민사회의 발전추세와 전망』(이남주)은 사회주의사회가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국가-시민사회-경제’의 관계가 어떠한 양상을 띠게 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자본주의적 시민사회와 비교해 볼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권위주의적 정치체제하에서 시민사회의 발전이 가능한지, 시민사회의 성격은 어떠한지, 국가주도의 사회재조직화의 성과가 어떠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런데 중국에서 시민사회를 국가로부터의 자율성이라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만 이해하려 한다면 시민사회의 문제설정을 단순화할 우려가 있다. 오히려 시장경제의 발전이 불평등을 낳아 시민사회의 갈등과 적대를 형성하게 될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갈등과 적대의 조정자로서의 국가의 역할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NGO담론이 확산되면서 시민사회에 대한 분석이 NGO분석으로 대체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시민사회는 NGO를 넘어서 다양한 사회세력들이 공존하고 있는 연대와 협력의 장이면서 동시에 적대와 갈등의 장이다. 시민사회는 NGO들로 환원될 수 없으며, 시민은 특정한 시민단체의 구성원들로 환원될 수 없다. 시민사회의 뿌리에는 경제적ㆍ사회적 관계들이 있으며, 이러한 관계들은 계급들, 집단들, 세력들 간의 다원적 적대와 갈등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성격을 규정한다. 또한 이러한 적대와 갈등의 형태는 국가의 성격을 규정하기도 하고 또 국가에 의해 규정받기도 한다. 그러므로 국가-시민사회-경제(시장)의 균형관계를 전제하는 다원주의적 시민사회론은 국가와 경제의 성격이 시민사회의 다양한 세력들간의 헤게모니투쟁 및 담론투쟁에 따라 역사적으로 변화할 수 있으며, 소유양식과 분배양식을 포함하는 생산관계 역시 궁극적으로는 변화 가능한 것임을 망각하기 쉽다.
시민사회론이 실증적인 동시에 규범적이고 이론적인 동시에 정치적ㆍ실천적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시민사회와 NGO 연구는 시민사회의 구성요소들의 확인과 현상기술을 넘어서 시민사회담론의 정치과정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시민사회론의 공존을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함으로써 비로소 본격적인 시민사회의 비교연구가 가능해질 것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