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역사 4_반공 개발독재와 돌진적 산업화: ‘한강의 기적’과 그 딜레마
시민과세계/2006년 상반기 :
2006/02/20 00:17
1. 산업화의 질주와 냉전반공의 개발자본주의: 건설, 통합과 배제, 균열의 이중주
산업화는 해방 60년 한국현대사에서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딛고 ‘건설’한국을 일으켜세운 대전환(great transformation)의 시기다. 산업화를 전후로 현대한국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분단과 전쟁이 낳은 대량파괴와 피폐, 세계 최하위군에 속하는 오랜 가난과 저개발상태의 농업사회, 미국의 원조물자에 의존하여 겨우 연명하는 대외종속과 굴종, 헛돌아가고 있는 형식적 민주주의, 남북간 먹고 먹히는 극단적인 적대적 대결의 지속 등이 산업화 이전 현대한국의 얼굴이다. 반면 전쟁의 피폐와 가난의 극복, 세계적 반열에 속하는 산업국가와 경제대국으로의 부상, 산업화를 기반으로 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착, 남북 체제경쟁에서 남한의 승리와 대북지원 등이 산업화 이후 변모된 한국경제의 모습이다. 산업화는 해방 60년 한국현대사에 가히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분단국가와 국민을 재탄생시켰다. 나아가 남북관계와 세계 속의 한국의 위상, 그리하여 한반도의 역사인식에도 혁명적 변화를 낳았다. 그래서 이를 두고 사람들은 하나의 기적이,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적은 단지 한국현대사에서 기적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사와 세계사의 견지에서 보더라도 기적으로 불러 손색이 없다고 이야기된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결과였던가.
그렇지만 역사적 현상이란 양면성을 갖게 마련이다. 빛과 그림자는 공존한다. 이 양면성을 돌아보지 않으면 그 현상이 갖는 역사적 의미의 총체성을 포착할 수 없다. 오도된 인식을 갖게 될 위험도 크다. 아름다운 장미조차 가시를 품고 있지 않은가. 한국 현대 산업화의 성격도 야누스적 얼굴을 갖고 있다. 그 독특한 양면성을 밝히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우리가 늘 생각하는 것은 현대한국에서 공화국의 뒤틀린 역사다.1) 이병천·조현연, <20세기 야만에 대한 비판적 성찰>, <20세기 한국의 야만>, 일빛. 한국의 제헌헌법은 제1조에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고, 경제조항은 임시정부의 헌법조항과 매우 유사한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역사는 헌법 1조의 민주공화국의 규범보다 압도적으로 법률 10호(1948. 12) 국가보안법이 그 실체를 채워넣은 ‘반공자유민주주의’의 역사, 즉 이념, 사회구조, 정치세력과 사회세력의 배치, 주민의 인성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원초적 폭력을 내장한, 보수 일변도의 냉전반공사회의 역사였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야만적 특성이 산업화를 전후로 한 대격변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시대에 들어와서조차 오래토록 변함없는 현대한국의 핵심‘코드’로 재생산되고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다.2) 이는 최근 동국대 강정구 교수 구속소동 사건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정상적인 열린 사회라면 충분히 학문적 토론으로 소화할 수 있고 또 소화해야 하는 사건이다. 그런 사건이 민주화 20년을 내다보는 탈냉전 시대에서 조차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냉전반공’의 닫힌 사회라는 특성 때문에 정치사회, 시민사회가 격렬히 이념전쟁을 하고, 국가권력은 물론 대학 당국조차 달리 생각할 시민적 자유를 박탈하는 폭력을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6·25가 통일전쟁이라는 견해는 강정구 교수만이 아니고 분단시대론을 주창한 강만길 교수도 피력한 바 있다. 그렇지만 강만길 교수는 6·25가 ‘무력통일을 위한 전쟁’이라고 말하면서도,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왜 무력통일의도가 실현되지 않았는지를 아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그 교훈을 같이 지적했다(강만길, <20세기 우리 역사>, 창작과비평사, 1999, 245~59쪽). 우리는 6·25가 통일전쟁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비극적 전쟁을 그렇게만 보는 것은 해방60년사를 통일 민족주의의 시각에서만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면적이며 협소한 견해라고 본다. 해방 60년의 역사는 우파, 좌파 모두를 아울러 민족지상주의가 어떤 위험과 한계를 갖는지에 대해 생생한 교훈을 주었다. 6·25를 보는 필자의 견해에 대해서는 이병천·조현연, 앞의 글 참조.
6·25의 비극을 겪으면서 고착화된, 피비린내 나는 억압과 폭력, 희생과 저항의 역사를 내장하고 있는 남한의 냉전반공주의의 이념과 체제는 우리의 주제인 산업화시기도 여전히 관통하고 있는 ‘장기지속적인’ 기본특성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산업화의 시기는 뛰어나게 이중적이다. 즉 그것은 한편으로 자유시장 우파만이 아니라 계획주의 자립경제 좌파도 넘어서는 방식으로 ‘한강의 기적’이 일어난 건설한국의 시기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분단체제와 남북의 적대적 대결 아래 냉전반공주의와 안보위협, ‘반공 조국’이 국가와 ‘자본의 전략변수’로서 적극적으로 활용된 폭력과 야만의 시기이다.3) ‘자본의 전략 변수’라는 말은 홀거 하이데가 사용하였다(홀거 하이데, <노동사회에서 벗어나기>, 박종철출판사, 2000, 75쪽).한국식 냉전반공개발자본주의의 정치경제적 특징은 사회위에 서는 강한 국가, 강한 자본 그리고 약한 노동 즉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의 부재라는 구조로, 그리하여 강한 국가와 재벌의 지배복합체에 의한 ‘약한 사회’와 약한 노동의 배제적 동원의 체제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한국현대사와 남북관계에 대전환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한강의 기적’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 어디든지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사태는 결코 아니었다. 우리는 이를 낳게 한 독특한 정치적·사회경제적 요인들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국현대에 고유한 역사를 장식해온 분단체제 아래 냉전반공주의가 ‘한강의 기적’을 어떻게 ‘과잉결정’하면서 중첩되고 있는지, 한강의 기적이 어떻게 ‘냉전반공자본주의’로서 꽃을 피웠는지 살펴야 한다. 그럼으로써 기적에 내재된 가시 또는 암적 요소를 같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성장기적이 어떤 건설적 요소와 균열적 요소를 갖고 있는지, 분단과 전쟁의 폐허위에 핀 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어떤 독소를 뿜어내고 있는지를 드러내야 한다.
한강의 기적에 내재되어 있는 그 어떤 독소 또는 암적 요소로 인해 그 성장방식을 지속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구조적 부조리 또는 모순―우리는 이를 한강의 기적의 ‘딜레마’라고 부를 것이다―때문에 사람들은 거기에 저항했고, 개발독재와는 다른 역사 또는 ‘반(反)역사’를 쓰고자 했다. 우리가 산업화는 일사분란한 동의와 통합이 아니라 모순과 균열을 내포한 ‘쟁투적’ 성격을, 따라서 쟁투적 산업화(contentious industrializa- tion)의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통념적 근대화론에서 주장하듯이, 그저 산업화가 독재를 용해시키고 민주화를 낳았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냉전반공주의에 의해 규정되고 모순과 균열요인을 갖고 있는 산업화가 어떻게 민주화를 제약하고, 규정했는지, 민주화시대 그 내부에 어떤 균열과 갈등요인이 꿈틀대고, 확대·지속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같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4) 그간 진보학계에서 몇몇 중요한 인물들이 박정희 시대에 대한 인식에서 변화를 보여 왔다. 근래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백낙청의 글(<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생각할까>, <창작과 비평> 128호, 여름)은 동시대에 대한 균형 잡인 인식과 평가를 위해 유익한 부분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두 가지 핵심논지에서 오해를 살 여지를 갖고 있다. 그는 개방경제 때문에 고도성장이 가능케 되었다는 것과 박정희는 고도성장으로 의도하지 않게 민주화의 길을 열었다고 말하고 있다. 연구의 현단계에서 볼 때 이 주장은, 더 진전된 설명이 없는 한,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자유시장개방주의와 근대화론 쪽으로 출구를 열어줄 우려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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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는 해방 60년 한국현대사에서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딛고 ‘건설’한국을 일으켜세운 대전환(great transformation)의 시기다. 산업화를 전후로 현대한국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분단과 전쟁이 낳은 대량파괴와 피폐, 세계 최하위군에 속하는 오랜 가난과 저개발상태의 농업사회, 미국의 원조물자에 의존하여 겨우 연명하는 대외종속과 굴종, 헛돌아가고 있는 형식적 민주주의, 남북간 먹고 먹히는 극단적인 적대적 대결의 지속 등이 산업화 이전 현대한국의 얼굴이다. 반면 전쟁의 피폐와 가난의 극복, 세계적 반열에 속하는 산업국가와 경제대국으로의 부상, 산업화를 기반으로 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착, 남북 체제경쟁에서 남한의 승리와 대북지원 등이 산업화 이후 변모된 한국경제의 모습이다. 산업화는 해방 60년 한국현대사에 가히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분단국가와 국민을 재탄생시켰다. 나아가 남북관계와 세계 속의 한국의 위상, 그리하여 한반도의 역사인식에도 혁명적 변화를 낳았다. 그래서 이를 두고 사람들은 하나의 기적이,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적은 단지 한국현대사에서 기적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사와 세계사의 견지에서 보더라도 기적으로 불러 손색이 없다고 이야기된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결과였던가.
그렇지만 역사적 현상이란 양면성을 갖게 마련이다. 빛과 그림자는 공존한다. 이 양면성을 돌아보지 않으면 그 현상이 갖는 역사적 의미의 총체성을 포착할 수 없다. 오도된 인식을 갖게 될 위험도 크다. 아름다운 장미조차 가시를 품고 있지 않은가. 한국 현대 산업화의 성격도 야누스적 얼굴을 갖고 있다. 그 독특한 양면성을 밝히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우리가 늘 생각하는 것은 현대한국에서 공화국의 뒤틀린 역사다.1) 이병천·조현연, <20세기 야만에 대한 비판적 성찰>, <20세기 한국의 야만>, 일빛. 한국의 제헌헌법은 제1조에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고, 경제조항은 임시정부의 헌법조항과 매우 유사한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역사는 헌법 1조의 민주공화국의 규범보다 압도적으로 법률 10호(1948. 12) 국가보안법이 그 실체를 채워넣은 ‘반공자유민주주의’의 역사, 즉 이념, 사회구조, 정치세력과 사회세력의 배치, 주민의 인성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원초적 폭력을 내장한, 보수 일변도의 냉전반공사회의 역사였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야만적 특성이 산업화를 전후로 한 대격변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시대에 들어와서조차 오래토록 변함없는 현대한국의 핵심‘코드’로 재생산되고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다.2) 이는 최근 동국대 강정구 교수 구속소동 사건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정상적인 열린 사회라면 충분히 학문적 토론으로 소화할 수 있고 또 소화해야 하는 사건이다. 그런 사건이 민주화 20년을 내다보는 탈냉전 시대에서 조차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냉전반공’의 닫힌 사회라는 특성 때문에 정치사회, 시민사회가 격렬히 이념전쟁을 하고, 국가권력은 물론 대학 당국조차 달리 생각할 시민적 자유를 박탈하는 폭력을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6·25가 통일전쟁이라는 견해는 강정구 교수만이 아니고 분단시대론을 주창한 강만길 교수도 피력한 바 있다. 그렇지만 강만길 교수는 6·25가 ‘무력통일을 위한 전쟁’이라고 말하면서도,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왜 무력통일의도가 실현되지 않았는지를 아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그 교훈을 같이 지적했다(강만길, <20세기 우리 역사>, 창작과비평사, 1999, 245~59쪽). 우리는 6·25가 통일전쟁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비극적 전쟁을 그렇게만 보는 것은 해방60년사를 통일 민족주의의 시각에서만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면적이며 협소한 견해라고 본다. 해방 60년의 역사는 우파, 좌파 모두를 아울러 민족지상주의가 어떤 위험과 한계를 갖는지에 대해 생생한 교훈을 주었다. 6·25를 보는 필자의 견해에 대해서는 이병천·조현연, 앞의 글 참조.
6·25의 비극을 겪으면서 고착화된, 피비린내 나는 억압과 폭력, 희생과 저항의 역사를 내장하고 있는 남한의 냉전반공주의의 이념과 체제는 우리의 주제인 산업화시기도 여전히 관통하고 있는 ‘장기지속적인’ 기본특성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산업화의 시기는 뛰어나게 이중적이다. 즉 그것은 한편으로 자유시장 우파만이 아니라 계획주의 자립경제 좌파도 넘어서는 방식으로 ‘한강의 기적’이 일어난 건설한국의 시기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분단체제와 남북의 적대적 대결 아래 냉전반공주의와 안보위협, ‘반공 조국’이 국가와 ‘자본의 전략변수’로서 적극적으로 활용된 폭력과 야만의 시기이다.3) ‘자본의 전략 변수’라는 말은 홀거 하이데가 사용하였다(홀거 하이데, <노동사회에서 벗어나기>, 박종철출판사, 2000, 75쪽).한국식 냉전반공개발자본주의의 정치경제적 특징은 사회위에 서는 강한 국가, 강한 자본 그리고 약한 노동 즉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의 부재라는 구조로, 그리하여 강한 국가와 재벌의 지배복합체에 의한 ‘약한 사회’와 약한 노동의 배제적 동원의 체제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한국현대사와 남북관계에 대전환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한강의 기적’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 어디든지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사태는 결코 아니었다. 우리는 이를 낳게 한 독특한 정치적·사회경제적 요인들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국현대에 고유한 역사를 장식해온 분단체제 아래 냉전반공주의가 ‘한강의 기적’을 어떻게 ‘과잉결정’하면서 중첩되고 있는지, 한강의 기적이 어떻게 ‘냉전반공자본주의’로서 꽃을 피웠는지 살펴야 한다. 그럼으로써 기적에 내재된 가시 또는 암적 요소를 같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성장기적이 어떤 건설적 요소와 균열적 요소를 갖고 있는지, 분단과 전쟁의 폐허위에 핀 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어떤 독소를 뿜어내고 있는지를 드러내야 한다.
한강의 기적에 내재되어 있는 그 어떤 독소 또는 암적 요소로 인해 그 성장방식을 지속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구조적 부조리 또는 모순―우리는 이를 한강의 기적의 ‘딜레마’라고 부를 것이다―때문에 사람들은 거기에 저항했고, 개발독재와는 다른 역사 또는 ‘반(反)역사’를 쓰고자 했다. 우리가 산업화는 일사분란한 동의와 통합이 아니라 모순과 균열을 내포한 ‘쟁투적’ 성격을, 따라서 쟁투적 산업화(contentious industrializa- tion)의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통념적 근대화론에서 주장하듯이, 그저 산업화가 독재를 용해시키고 민주화를 낳았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냉전반공주의에 의해 규정되고 모순과 균열요인을 갖고 있는 산업화가 어떻게 민주화를 제약하고, 규정했는지, 민주화시대 그 내부에 어떤 균열과 갈등요인이 꿈틀대고, 확대·지속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같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4) 그간 진보학계에서 몇몇 중요한 인물들이 박정희 시대에 대한 인식에서 변화를 보여 왔다. 근래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백낙청의 글(<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생각할까>, <창작과 비평> 128호, 여름)은 동시대에 대한 균형 잡인 인식과 평가를 위해 유익한 부분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두 가지 핵심논지에서 오해를 살 여지를 갖고 있다. 그는 개방경제 때문에 고도성장이 가능케 되었다는 것과 박정희는 고도성장으로 의도하지 않게 민주화의 길을 열었다고 말하고 있다. 연구의 현단계에서 볼 때 이 주장은, 더 진전된 설명이 없는 한,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자유시장개방주의와 근대화론 쪽으로 출구를 열어줄 우려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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