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좌표 8_한국의 근대화와 생태주의
시민과세계/2006년 상반기 :
2006/02/20 00:03
1. 머리말
근대화는 사회구조와 생활양식의 모든 것이 바뀌는 총체적 변화다. 그 동력은 물론 생산력의 발달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근대를 형성하고 지탱하는 생산력은 바로 공업화에서 비롯되었다. 공업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자연을 대량으로 가공하고 변형한다. 따라서 공업화란 전체 산업에서 공업의 비중이 커지는 것을 뜻할 뿐 아니라 자연이 크게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업에 의한 자연의 변화가 대부분 ‘비가역적 변화’, 다시 말해서 ‘되돌릴 수 없는 변화’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크게 오염과 파괴와 고갈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공업화에 의해 오염된 자연을 되살리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이른바 환경호르몬 문제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우리 밖의 자연만이 오염된 것이 아니라 자연의 한 요소인 우리 자신까지도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또한 공업화에 의해 파괴된 자연을 되살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길을 내고 아파트를 짓기 위해 파괴한 산을 되살릴 수 있는 길은 없다. 고갈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공업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지구를 대량으로 소모한다. 그러나 지구는 결코 무한하지 않다. 현대공업문명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인 석유는 이미 고갈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결국 공업은 쇠락하고 말 것이며, 참된 탈공업사회가 도래할 것이다.1) 미국의 다니엘 벨은 미국의 산업구조와 고용구조의 변화를 중심으로 1960년대 중반부터 써온 논문들을 모아서 1973년에 <탈공업사회의 도래>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Daniel Bell, The Coming of Post-Industrial Society, Basic Books, 1973). 그러나 그가 말하는 ‘탈공업사회’는 결코 ‘탈공업사회’가 아니다. 그는 전통적인 제조업의 비중이 줄어들고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사회를 ‘탈공업사회’라고 불렀다. 그리고 다시 80년대에 들어와서는 종래에 쓰지 않으려고 했던 ‘정보사회’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니엘 벨이 말하는 탈공업사회나 정보사회는 사실 ‘고도로 발달한 공업사회’이다. 벨이 예로 삼았던 미국이야말로 이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다. 탈공업사회는 말 그대로 ‘공업에서 벗어난 사회’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다니엘 벨의 ‘탈공업사회’는 현실을 호도하는 잘못된 개념이다(홍성태, <개발주의와 생태주의: 생태적 탈근대를 향해>, <문화과학> 43호/2005년 가을호, 1장; <지식사회 비판>, 문화과학사, 2005, 1장).
생태주의는 이러한 근대화의 문제에 대한 실천적 대응의 산물이다. 요컨대 근대화로 말미암아 자연이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고, 결국 이 때문에 인간 자신이 생존의 위기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생태주의가 나타났다. 흔히 생태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을 지키자는 주장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그러나 생태주의는 단순히 자연을 지키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 현재의 사회구조와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요컨대 생태주의의 내용은 자연을 지키자는 목표와 이를 위한 사회적 방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생태주의가 내적으로 단일하지 않다는 사실이다.2) 홍성태, <생태사회를 위하여>, 문화과학사, 2004. 자연을 지키자는 목표에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한 사회적 방법에 대해서는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구온난화의 실상조차 강력하게 부정하는 개발세력이 여전히 존재한다.3) 米本昌平, 박혜숙·박종관 옮김, <지구환경문제란 무엇인가>, 1995.
세계사적으로 보아서 근대화의 역사는 대체로 250년 전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업화로 이루어진 생산력혁명이 시민혁명으로 이어지면서 이른바 근대사회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산업혁명과 함께 공업에 의한 자연의 심각한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대응도 이미 19세기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4) McCormick, John, The Global Environmental Movement, Belhaven Press, 1989, ch. 1; 존 포스터, 김현구 옮김, <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 현실문화연구, 2001, 3장. 그러나 공업사회 자체의 변혁을 추구하는 생태주의의 등장은 50년대 이후의 일이다. 이른바 풍요사회의 등장과 포드주의의 확산에 따른 자연의 급격한 오염과 파괴가 그 물질적 배경이었다.
한국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면서 파행적 공업화의 길에 들어선 후후발근대국에 속한다. 한국의 본격적 공업화는 50년대 말부터 추진되었다.5) 장상환, <한국전쟁과 경제구조의 변화>, <한국전쟁과 사회구조의 변화>, 백산서당, 1999, 144~45쪽. 4·19 이후 장면정권은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세웠으나, 이 계획은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박정희에 의해 비로소 강력히 추진되었다.6) 임영태, <대한민국 50년사1>, 들녘, 2002. 박정희의 ‘조국근대화’는 양적으로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루었으나 질적으로 민중과 자연의 착취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이와 함께 생태주의적 관심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초기에 그것은 국가주의 공업화에 맞선 생존권수호의 성격이 강했다.
이 글에서는 이처럼 근대화의 파괴적 결과에 그에 대한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한국의 생태주의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이미 생태적 전환이 시작되었으며, 이와 함께 이런 변화를 경제적·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전체적으로 이 글은 근대화라는 역사적 변화의 맥락에서 생태주의의 보편화와 복잡화가 이루어진 과정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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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는 사회구조와 생활양식의 모든 것이 바뀌는 총체적 변화다. 그 동력은 물론 생산력의 발달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근대를 형성하고 지탱하는 생산력은 바로 공업화에서 비롯되었다. 공업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자연을 대량으로 가공하고 변형한다. 따라서 공업화란 전체 산업에서 공업의 비중이 커지는 것을 뜻할 뿐 아니라 자연이 크게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업에 의한 자연의 변화가 대부분 ‘비가역적 변화’, 다시 말해서 ‘되돌릴 수 없는 변화’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크게 오염과 파괴와 고갈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공업화에 의해 오염된 자연을 되살리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이른바 환경호르몬 문제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우리 밖의 자연만이 오염된 것이 아니라 자연의 한 요소인 우리 자신까지도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또한 공업화에 의해 파괴된 자연을 되살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길을 내고 아파트를 짓기 위해 파괴한 산을 되살릴 수 있는 길은 없다. 고갈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공업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지구를 대량으로 소모한다. 그러나 지구는 결코 무한하지 않다. 현대공업문명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인 석유는 이미 고갈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결국 공업은 쇠락하고 말 것이며, 참된 탈공업사회가 도래할 것이다.1) 미국의 다니엘 벨은 미국의 산업구조와 고용구조의 변화를 중심으로 1960년대 중반부터 써온 논문들을 모아서 1973년에 <탈공업사회의 도래>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Daniel Bell, The Coming of Post-Industrial Society, Basic Books, 1973). 그러나 그가 말하는 ‘탈공업사회’는 결코 ‘탈공업사회’가 아니다. 그는 전통적인 제조업의 비중이 줄어들고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사회를 ‘탈공업사회’라고 불렀다. 그리고 다시 80년대에 들어와서는 종래에 쓰지 않으려고 했던 ‘정보사회’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니엘 벨이 말하는 탈공업사회나 정보사회는 사실 ‘고도로 발달한 공업사회’이다. 벨이 예로 삼았던 미국이야말로 이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다. 탈공업사회는 말 그대로 ‘공업에서 벗어난 사회’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다니엘 벨의 ‘탈공업사회’는 현실을 호도하는 잘못된 개념이다(홍성태, <개발주의와 생태주의: 생태적 탈근대를 향해>, <문화과학> 43호/2005년 가을호, 1장; <지식사회 비판>, 문화과학사, 2005, 1장).
생태주의는 이러한 근대화의 문제에 대한 실천적 대응의 산물이다. 요컨대 근대화로 말미암아 자연이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고, 결국 이 때문에 인간 자신이 생존의 위기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생태주의가 나타났다. 흔히 생태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을 지키자는 주장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그러나 생태주의는 단순히 자연을 지키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 현재의 사회구조와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요컨대 생태주의의 내용은 자연을 지키자는 목표와 이를 위한 사회적 방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생태주의가 내적으로 단일하지 않다는 사실이다.2) 홍성태, <생태사회를 위하여>, 문화과학사, 2004. 자연을 지키자는 목표에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한 사회적 방법에 대해서는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구온난화의 실상조차 강력하게 부정하는 개발세력이 여전히 존재한다.3) 米本昌平, 박혜숙·박종관 옮김, <지구환경문제란 무엇인가>, 1995.
세계사적으로 보아서 근대화의 역사는 대체로 250년 전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업화로 이루어진 생산력혁명이 시민혁명으로 이어지면서 이른바 근대사회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산업혁명과 함께 공업에 의한 자연의 심각한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대응도 이미 19세기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4) McCormick, John, The Global Environmental Movement, Belhaven Press, 1989, ch. 1; 존 포스터, 김현구 옮김, <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 현실문화연구, 2001, 3장. 그러나 공업사회 자체의 변혁을 추구하는 생태주의의 등장은 50년대 이후의 일이다. 이른바 풍요사회의 등장과 포드주의의 확산에 따른 자연의 급격한 오염과 파괴가 그 물질적 배경이었다.
한국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면서 파행적 공업화의 길에 들어선 후후발근대국에 속한다. 한국의 본격적 공업화는 50년대 말부터 추진되었다.5) 장상환, <한국전쟁과 경제구조의 변화>, <한국전쟁과 사회구조의 변화>, 백산서당, 1999, 144~45쪽. 4·19 이후 장면정권은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세웠으나, 이 계획은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박정희에 의해 비로소 강력히 추진되었다.6) 임영태, <대한민국 50년사1>, 들녘, 2002. 박정희의 ‘조국근대화’는 양적으로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루었으나 질적으로 민중과 자연의 착취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이와 함께 생태주의적 관심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초기에 그것은 국가주의 공업화에 맞선 생존권수호의 성격이 강했다.
이 글에서는 이처럼 근대화의 파괴적 결과에 그에 대한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한국의 생태주의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이미 생태적 전환이 시작되었으며, 이와 함께 이런 변화를 경제적·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전체적으로 이 글은 근대화라는 역사적 변화의 맥락에서 생태주의의 보편화와 복잡화가 이루어진 과정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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