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정치론_1871년 파리코뮌과 시민사회
시민과세계/2006년 상반기 :
2006/02/20 00:00
1. 머리말
1871년 파리코뮌이 붕괴한 이후, 역사가와 이야기꾼 및 정치가 들은 그것의 정치적·사회적 특징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였다.1) 문지영, <1871년 빠리꼬뮌(Paris Commune)의 역사적 성격>,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7, 2쪽.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것을 이른바 ‘폭력혁명론’에 근거한 ‘프롤레타리아독재론’의 모델로 사용하였다.2) 김성연, <파리콤뮨 연구: 프롤레타리아독재론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7, 61쪽.
그러나 이같은 견해에 대해 루즈리(Jacques Rougerie)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일관되어온 이데올로기적 해석, 즉 코뮌이 ‘20세기 사회주의혁명의 선구자’라고 보는 데 비판을 가하면서 객관적인 역사평가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3) 문지영, 앞의 글, 2쪽. 루즈리는 기존의 코뮌해석이 파리민중들, 즉 코뮈나르(le communard)들의 신념 내지 생각을 사회경제적 상황의 직접적 결과로 유추하여 지나치게 계급의식적인 것으로 보거나, 아니면 전혀 계급적이지 않고 1870~71년 보불전쟁이라는 상황에 따른 오로지 애국적이거나 공화주의적인 것으로만 바라본 것으로, 이 둘 다는 코뮈나르의 신념 내지 생각을 그 자체 자율적인 연구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상황이나 주변정세에 직접적으로 종속된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4) 현재열, <1871년의 파리코뮌과 결사(association)의 원칙>, <프랑스연구> 3집, 2000, 77쪽.
루즈리는 “파리코뮌에서는 이전의 다른 혁명에서처럼 인민과 함께 ‘시민’(citoyen)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었고, 코뮈나르는 언제나 서로를 부를 때 ‘시민’이란 호칭을 사용하였다”며, 코뮈나르의 정체성을 시민권행사와 결사의 원칙을 중심으로 한 “시민, 즉 진정한 공화국의 훌륭한 시민”에서 찾았다.5) 같은 글, 100~101쪽.
그렇다면 아렌트(H. Arend)와 마르크스(K. Mark)는 근대혁명사의 한 사건인 1871년 파리코뮌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고 있는가? 공교롭게도 아렌트와 마르크스의 인식은 시대를 초월하여 1871년 파리코뮌에 대해 행위와 정치공동체의 관점에서 많은 비중을 두고 극찬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체로 유사하다. 아렌트는 자발적 정치공동체로서의 파리코뮌을 ‘새로운 정부형태’와 ‘진정한 공화국’(authentic republic)이란 개념사용을 통해 정치적 동물로서 인간 삶의 본령으로 강조하고 있는 정치행위(praxis, action)6) 프락시스(praxis)의 개념과 그 의미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엔 프락시스(praxis)로, 아렌트의 경우엔 행위(praxis, action)로 하되 문맥에 따라 타인에게 드러나는 공적인 의미나 정치적 관계를 강조할 경우 정치행위(praxis, action)로 표현하며, 마르크스의 경우엔 실천행위(Praxis)로 구별하여 표현한다. 를 통해 인간의 다원성(plurality)을 드러내고 정치적 공존을 추진했던 공적 영역7) 아렌트에 의하면, 공적 영역(public realm)은 인간이 말과 행위(praxis, action)를 통해 자신의 인간됨의 정체성을 적극 드러낼 때 형성되는 정치적 공간으로, 삶의 필연에 따른 인간의 활동인 노동(labor)과 작업(work)이 드러나는 사적 영역(private realm)과 구별하여 필연을 넘어선 공적인 자유의 영역을 말한다. 의 흔적으로 보고 있다. 마르크스 역시 파리코뮌을 인간 실천행위(Praxis)에 의해 열린 공간인 게마인베젠(Gemeinwesen)8) 독일어 Gemeinwesen은 사전적인 의미로 공동의 본질, 공동존재, 공동체, 공동체국가, 공공단체, 공공조직이라는 뜻인데, 마르크스는 자신의 주저서인 <유태인문제에 대해서> <헤겔법철학 비판> <경제학철학 수고> <정치경제학비판 요강> 등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와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공동체란 뜻의 게마인베젠(Gemeinwesen, communal be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개인은 ein Gemeinwesen이며, 그가 살아 활동하는 사회복합체는 das Gemeinwesen이다. 마르크스는 이 용어를 인간의 유적 성격을 강조하여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했으며, 특히 헤겔의 stände 개념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근대적 현상인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와 대립을 지양하는 대안적 공동체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마르크스는 로만스어인 Kommune보다는 게르만어인 Gemeinwesen를 선호했는데, 이것은 1875는 엥겔스가 베벨(Bebel)에게 한 권고에서 “따라서 국가(Státe)라는 말 대신 꼭 친숙한 독일어인 Gemeinwesen이라는 말을 쓸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프랑스어 공동체(commune)와 같은 뜻이기도 합니다.”(엥겔스, 김세균 감수, <엥겔스가 쯔비까우의 아우그스트 베벨에게>,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4, 박종철출판사, 1992, 458쪽).의 의미대로 이해하면서, 이것을 ‘궁극적으로 발전한 정부형태’와 ‘진정한 사회공화국’(social republic)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1871년 파리코뮌에 대한 아렌트와 마르크스의 견해와 함께 그 유사성과 차이성의 연원 그리고 이에 대한 정치적 함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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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파리코뮌이 붕괴한 이후, 역사가와 이야기꾼 및 정치가 들은 그것의 정치적·사회적 특징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였다.1) 문지영, <1871년 빠리꼬뮌(Paris Commune)의 역사적 성격>,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7, 2쪽.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것을 이른바 ‘폭력혁명론’에 근거한 ‘프롤레타리아독재론’의 모델로 사용하였다.2) 김성연, <파리콤뮨 연구: 프롤레타리아독재론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7, 61쪽.
그러나 이같은 견해에 대해 루즈리(Jacques Rougerie)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일관되어온 이데올로기적 해석, 즉 코뮌이 ‘20세기 사회주의혁명의 선구자’라고 보는 데 비판을 가하면서 객관적인 역사평가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3) 문지영, 앞의 글, 2쪽. 루즈리는 기존의 코뮌해석이 파리민중들, 즉 코뮈나르(le communard)들의 신념 내지 생각을 사회경제적 상황의 직접적 결과로 유추하여 지나치게 계급의식적인 것으로 보거나, 아니면 전혀 계급적이지 않고 1870~71년 보불전쟁이라는 상황에 따른 오로지 애국적이거나 공화주의적인 것으로만 바라본 것으로, 이 둘 다는 코뮈나르의 신념 내지 생각을 그 자체 자율적인 연구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상황이나 주변정세에 직접적으로 종속된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4) 현재열, <1871년의 파리코뮌과 결사(association)의 원칙>, <프랑스연구> 3집, 2000, 77쪽.
루즈리는 “파리코뮌에서는 이전의 다른 혁명에서처럼 인민과 함께 ‘시민’(citoyen)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었고, 코뮈나르는 언제나 서로를 부를 때 ‘시민’이란 호칭을 사용하였다”며, 코뮈나르의 정체성을 시민권행사와 결사의 원칙을 중심으로 한 “시민, 즉 진정한 공화국의 훌륭한 시민”에서 찾았다.5) 같은 글, 100~101쪽.
그렇다면 아렌트(H. Arend)와 마르크스(K. Mark)는 근대혁명사의 한 사건인 1871년 파리코뮌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고 있는가? 공교롭게도 아렌트와 마르크스의 인식은 시대를 초월하여 1871년 파리코뮌에 대해 행위와 정치공동체의 관점에서 많은 비중을 두고 극찬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체로 유사하다. 아렌트는 자발적 정치공동체로서의 파리코뮌을 ‘새로운 정부형태’와 ‘진정한 공화국’(authentic republic)이란 개념사용을 통해 정치적 동물로서 인간 삶의 본령으로 강조하고 있는 정치행위(praxis, action)6) 프락시스(praxis)의 개념과 그 의미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엔 프락시스(praxis)로, 아렌트의 경우엔 행위(praxis, action)로 하되 문맥에 따라 타인에게 드러나는 공적인 의미나 정치적 관계를 강조할 경우 정치행위(praxis, action)로 표현하며, 마르크스의 경우엔 실천행위(Praxis)로 구별하여 표현한다. 를 통해 인간의 다원성(plurality)을 드러내고 정치적 공존을 추진했던 공적 영역7) 아렌트에 의하면, 공적 영역(public realm)은 인간이 말과 행위(praxis, action)를 통해 자신의 인간됨의 정체성을 적극 드러낼 때 형성되는 정치적 공간으로, 삶의 필연에 따른 인간의 활동인 노동(labor)과 작업(work)이 드러나는 사적 영역(private realm)과 구별하여 필연을 넘어선 공적인 자유의 영역을 말한다. 의 흔적으로 보고 있다. 마르크스 역시 파리코뮌을 인간 실천행위(Praxis)에 의해 열린 공간인 게마인베젠(Gemeinwesen)8) 독일어 Gemeinwesen은 사전적인 의미로 공동의 본질, 공동존재, 공동체, 공동체국가, 공공단체, 공공조직이라는 뜻인데, 마르크스는 자신의 주저서인 <유태인문제에 대해서> <헤겔법철학 비판> <경제학철학 수고> <정치경제학비판 요강> 등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와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공동체란 뜻의 게마인베젠(Gemeinwesen, communal be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개인은 ein Gemeinwesen이며, 그가 살아 활동하는 사회복합체는 das Gemeinwesen이다. 마르크스는 이 용어를 인간의 유적 성격을 강조하여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했으며, 특히 헤겔의 stände 개념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근대적 현상인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와 대립을 지양하는 대안적 공동체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마르크스는 로만스어인 Kommune보다는 게르만어인 Gemeinwesen를 선호했는데, 이것은 1875는 엥겔스가 베벨(Bebel)에게 한 권고에서 “따라서 국가(Státe)라는 말 대신 꼭 친숙한 독일어인 Gemeinwesen이라는 말을 쓸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프랑스어 공동체(commune)와 같은 뜻이기도 합니다.”(엥겔스, 김세균 감수, <엥겔스가 쯔비까우의 아우그스트 베벨에게>,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4, 박종철출판사, 1992, 458쪽).의 의미대로 이해하면서, 이것을 ‘궁극적으로 발전한 정부형태’와 ‘진정한 사회공화국’(social republic)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1871년 파리코뮌에 대한 아렌트와 마르크스의 견해와 함께 그 유사성과 차이성의 연원 그리고 이에 대한 정치적 함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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