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시론_전환기 한국사회, 시민운동의 진로에 대한 고민
시민과세계/2006년 하반기 :
2006/07/20 00:22
이제 5ㆍ31 지방선거도 끝났다. 선거결과가 가져다주는 문제의 심각성은 지방 정부와 의회에 퇴행성 일당지배구조가 구축되었음에만 있지 않다. 87년 이래 부단하게 진행되고 있는 민주화 대장정에서 개혁ㆍ진보세력의 향후 진로를 가늠해볼 만한 어떤 긍정적 결과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는 우리사회가 또 한번의 시대적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음을 나타내는 징후일 수도 있다. 따라서 바로 지금이 개혁ㆍ진보세력의 좌표와 진로를 다시 한번 성찰해볼 필요가 있는 적절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건데, 87년은 그 이전까지 우리사회의 질곡으로 작동했던 권위주의를 탈각하고 민주주의의 신장을 가져오게 하는 역사적 분기점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해서 개혁ㆍ진보적 시민 사회운동을 위한 합법적 공간이 개척되었고, 민주적 절차에 의한 정권창출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는 개혁ㆍ진보세력이 이루어 낸 분명한 운동성과로서 평가받을 만하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이후 이뤄진 개혁세력의 권력 장악, 특히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의 출범은 그 정치적 기반이 개혁ㆍ진보적 시민사회에 상대적인 무게중심을 두고 있었기에 한국 시민사회의 진보적 지평을 넓히고 그 전망을 보다 구체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과로 보아서는, 두 번에 걸친 개혁세력의 정권장악이 반드시 진보진영의 외연 확장이나 대안사회를 향한 전략적 제휴를 가능하게 할 만한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할 수 없게 한다. 여기서 잠시 그 이유를 점검해 보는 것은 향후 정부와 시민운동 간의 차별적 행보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국민적 합의 없이 주도된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선언’ 이래, 김대중 정부의 IMF 외환ㆍ경제위기 대처방식,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협상개시에 즈음한 기본자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민주화 이후 역대정권들이 실시해온 경제정책의 기저에는 신자유주의적 사조가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글로벌 경쟁 격화를 전제로 한 세계화의 적극적 수용, 외환ㆍ경제 위기의 수습과정에서 추진된 국민경제의 구조조정은 실업증가, 비정규직 양산과 고용불안정, 분배구조 악화를 초래하였다. 그 결과는 공공성의 악화와 전체사회의 양극화로 귀결되고 있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의 ‘일방적 결단’에 의해서 졸속 추진되고 있는 한미 FTA는 가까운 장래에 또 한번의 가혹한 국민경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사회적 배제와 양극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을 예고하고 있다.
또 북핵 위기와 이라크 파병에서 들어난 외교ㆍ안보 정책 기조는 분단 반세기 동안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억압적으로 형성되었던 한미동맹을 중심축으로 한 전통적 외교ㆍ안보관을 재확인하고 고수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 결과는 부시 정권이 추구해 온 패권주의 전략에의 복속을 의미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이 모든 것들은 해방 이래 한국사회에 대하여 작동하는 외재적ㆍ역사적ㆍ지정학적 구속요인들이기에, 개혁정권의 집권기간 동안에 선택할 수 있는 정책과 운신의 폭이 매우 제약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해명을 감안하더라도, 집권세력이 국가경영 과정에서 보여준 정체성 혼란과 이율배반적 모습은 개혁ㆍ진보적 시민 사회로부터 긍정적 이해와 신뢰를 획득 유지해나가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차에, 개혁ㆍ진보진영 인사들의 국가기구에의 개별적 참여는 국가와 시민사회 간에 유지되어야할 경계선, 즉, 건전한 ‘긴장과 견제’를 기반으로 한 전선을 모호하게 만들었고, 마치 권위주의 시대에 형성되었던 국가와 시민사회간의 부적절한 유착관계가 재현되는 것과 같은 의혹을 받게도 하였다. 이로 인해서, 꿋꿋하게 시민사회를 지켜온 진보와 개혁 세력이 견지해온 도덕성과 정체성마저 의심의 대상이 됨은 유감스러운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지적한 모든 요인들은, 개혁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기간에, 오히려 집권 개혁세력의 정치적 지지기반을 줄어들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개혁ㆍ진보적 시민 사회의 운동기반과 역량마저 약화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이런 결과의 연장선상에서 실시된 5·31 지방선거가 노무현 정권의 참패로 끝났음은 너무나 당연한 정치적 귀결일 수도 있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 시민운동 진영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87년 민주화이후 시민운동역사가 20년을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이런 원칙적인 물음을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던지고 이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전달해주는 메시지가, 앞으로 남은 집권기간 동안 국가부문에서의 노무현 정부의 역할을 ‘국정운영의 한정능력자’로만 제한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이 원칙적 물음과 관련하여 개혁ㆍ진보적 시민사회 진영이 떠안게 될 짐과 과제는 지방 선거전에 비해서 몇 배 가중된 셈이다. 다시 말해서, 시민사회의 정확한 좌표 설정과 대안사회를 향한 진로를 제시해야 한다는 운동의 기본 명제가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현실적 과제로 부각되어진 것이다.
당장 단기적으로는, 현재 한국사회의 양극화 문제, 한미 FTA, 저출산 고령화문제를 비롯한 주요 국가적 현안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대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중ㆍ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한 대안사회로 다가갈 수 있는 접근방법을 제시할 것을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민사회가 설정한 운동목표들이, 87년 이전과는 달리, 단일한 대상이거나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데 우리들의 고민의 깊이가 더해진다. 이것은 1990년대부터 한국사회는 다양하고 새로운 구조적 변화를 겪으면서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형태의 그리고 성격이 매우 다른 문제를 배출해왔던 것에서 기인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87년 이전까지 시민사회 운동의 궁극적 지향성은 18세기 부르조아 혁명에서 비롯한 보편적 가치(자유, 평등, 박애)를 기저에 놓고서, 국민국가의 체제변혁을 위한 투쟁을 전개해왔던 것이었다. 이에 반하여, 고도 산업사회단계로 이행해버린 지금의 시민사회는 대안사회 부재의 상황에서 과거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전통적인 진보ㆍ보수의 대립적 관점에 의해서는 현실사회의 다양한 모순에 대한 해석과 해법의 실마리가 찾아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에서 자본ㆍ노동 간의 계급적인 경계선이 존재하고 있음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도의 지식ㆍ기술 산업화의 진행과 고용형태 및 구조변화에 따라서 전통적인 계급적 경계선이 모호해지거나 분절적 구조가 확대 형성되어가는 사회현상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고 본다.
또한, 전통적인 노동운동의 전략과 전망이, 민주화 이후에도 그 현실적 적용과 수용성을 확대해나가지 못한 채 정체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기존의 사회운동 방식의 정합성 여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 이와 동시에 이런 현상의 고착이 전통적 이분법적 계급구도를 전제로 한 사회운동방식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의 접근방식의 도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전체 시민운동진영이 모색해가야 할 새로운 접근방식과 관련하여, 우리는 서구 선진 자본주의국가의 역사적 경험을 주목하고 그들의 실용적 노선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계획경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로의 경로는 상실되어버리고 그렇다고 착취를 내재적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에 무한정 의존할 수도 없다는 것은 역사에서 체득한 사실이자 교훈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시장경제시스템을 폐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하지도 않기에 우리의 차선적 접근방식으로도 고려할 수 없다. 이것은 좋고 싫음 혹은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떠나서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조건인 셈이다.
이런 현실적 조건아래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물질적 풍요를 일구어내는 자본주의 체제의 생산능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에 내재한 비인간적 착취기제를 사회적으로 통제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지금은 세계화와 한미 FTA와 같은 불가피한 외재적 요인들에 의해서 가해오는 제약이 크다 하더라도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사회적·정치적 통제기제를 통해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관철 고착화되는 것을 억제하고, 사회적으로 관리되는 자본주의적 생산체제를 기반으로 한 대안적 사회 발전 모델을 구축해나가는 것을 우리의 기본방향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의 역사적 경험으로 봐서, 사회적 관리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은 각국별 국민경제의 상황과 특색에 따라서 달랐던 것인 만큼 우리는 우리사회에 맞는 관리방식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고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거시적으로는 국민경제의 성장동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한 생산체제로부터 나오고, 노동 및 경영간의 합의구조를 형성해가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국가경영의 기본방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토대로 해서 고용과 성장이 분배와 양극화 해소에 기여하고, 또 역으로 분배와 양극화 해소가 고용과 성장에 보탬이 되는 선순환적 관계가 성립되는 복지 패러다임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역대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정부차원에서 이런 대안적 패러다임이 마련될 가능성이나 전망은 거의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앞에서, 시민 사회 진영이 떠안게 되는 부담과 사회적ㆍ시대적 과제가 한결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것이 지금 우리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처해 있는 척박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현실이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존 국가기구를 통하지 않고 시민사회에 의해서 대안적 패러다임을 모색해 간다는 것은 미래사회의 새로운 거버넌스(governance)에 대한 탐색과 같은 희망적인 작업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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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건데, 87년은 그 이전까지 우리사회의 질곡으로 작동했던 권위주의를 탈각하고 민주주의의 신장을 가져오게 하는 역사적 분기점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해서 개혁ㆍ진보적 시민 사회운동을 위한 합법적 공간이 개척되었고, 민주적 절차에 의한 정권창출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는 개혁ㆍ진보세력이 이루어 낸 분명한 운동성과로서 평가받을 만하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이후 이뤄진 개혁세력의 권력 장악, 특히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의 출범은 그 정치적 기반이 개혁ㆍ진보적 시민사회에 상대적인 무게중심을 두고 있었기에 한국 시민사회의 진보적 지평을 넓히고 그 전망을 보다 구체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과로 보아서는, 두 번에 걸친 개혁세력의 정권장악이 반드시 진보진영의 외연 확장이나 대안사회를 향한 전략적 제휴를 가능하게 할 만한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할 수 없게 한다. 여기서 잠시 그 이유를 점검해 보는 것은 향후 정부와 시민운동 간의 차별적 행보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국민적 합의 없이 주도된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선언’ 이래, 김대중 정부의 IMF 외환ㆍ경제위기 대처방식,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협상개시에 즈음한 기본자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민주화 이후 역대정권들이 실시해온 경제정책의 기저에는 신자유주의적 사조가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글로벌 경쟁 격화를 전제로 한 세계화의 적극적 수용, 외환ㆍ경제 위기의 수습과정에서 추진된 국민경제의 구조조정은 실업증가, 비정규직 양산과 고용불안정, 분배구조 악화를 초래하였다. 그 결과는 공공성의 악화와 전체사회의 양극화로 귀결되고 있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의 ‘일방적 결단’에 의해서 졸속 추진되고 있는 한미 FTA는 가까운 장래에 또 한번의 가혹한 국민경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사회적 배제와 양극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을 예고하고 있다.
또 북핵 위기와 이라크 파병에서 들어난 외교ㆍ안보 정책 기조는 분단 반세기 동안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억압적으로 형성되었던 한미동맹을 중심축으로 한 전통적 외교ㆍ안보관을 재확인하고 고수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 결과는 부시 정권이 추구해 온 패권주의 전략에의 복속을 의미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이 모든 것들은 해방 이래 한국사회에 대하여 작동하는 외재적ㆍ역사적ㆍ지정학적 구속요인들이기에, 개혁정권의 집권기간 동안에 선택할 수 있는 정책과 운신의 폭이 매우 제약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해명을 감안하더라도, 집권세력이 국가경영 과정에서 보여준 정체성 혼란과 이율배반적 모습은 개혁ㆍ진보적 시민 사회로부터 긍정적 이해와 신뢰를 획득 유지해나가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차에, 개혁ㆍ진보진영 인사들의 국가기구에의 개별적 참여는 국가와 시민사회 간에 유지되어야할 경계선, 즉, 건전한 ‘긴장과 견제’를 기반으로 한 전선을 모호하게 만들었고, 마치 권위주의 시대에 형성되었던 국가와 시민사회간의 부적절한 유착관계가 재현되는 것과 같은 의혹을 받게도 하였다. 이로 인해서, 꿋꿋하게 시민사회를 지켜온 진보와 개혁 세력이 견지해온 도덕성과 정체성마저 의심의 대상이 됨은 유감스러운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지적한 모든 요인들은, 개혁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기간에, 오히려 집권 개혁세력의 정치적 지지기반을 줄어들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개혁ㆍ진보적 시민 사회의 운동기반과 역량마저 약화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이런 결과의 연장선상에서 실시된 5·31 지방선거가 노무현 정권의 참패로 끝났음은 너무나 당연한 정치적 귀결일 수도 있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 시민운동 진영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87년 민주화이후 시민운동역사가 20년을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이런 원칙적인 물음을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던지고 이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전달해주는 메시지가, 앞으로 남은 집권기간 동안 국가부문에서의 노무현 정부의 역할을 ‘국정운영의 한정능력자’로만 제한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이 원칙적 물음과 관련하여 개혁ㆍ진보적 시민사회 진영이 떠안게 될 짐과 과제는 지방 선거전에 비해서 몇 배 가중된 셈이다. 다시 말해서, 시민사회의 정확한 좌표 설정과 대안사회를 향한 진로를 제시해야 한다는 운동의 기본 명제가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현실적 과제로 부각되어진 것이다.
당장 단기적으로는, 현재 한국사회의 양극화 문제, 한미 FTA, 저출산 고령화문제를 비롯한 주요 국가적 현안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대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중ㆍ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한 대안사회로 다가갈 수 있는 접근방법을 제시할 것을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민사회가 설정한 운동목표들이, 87년 이전과는 달리, 단일한 대상이거나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데 우리들의 고민의 깊이가 더해진다. 이것은 1990년대부터 한국사회는 다양하고 새로운 구조적 변화를 겪으면서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형태의 그리고 성격이 매우 다른 문제를 배출해왔던 것에서 기인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87년 이전까지 시민사회 운동의 궁극적 지향성은 18세기 부르조아 혁명에서 비롯한 보편적 가치(자유, 평등, 박애)를 기저에 놓고서, 국민국가의 체제변혁을 위한 투쟁을 전개해왔던 것이었다. 이에 반하여, 고도 산업사회단계로 이행해버린 지금의 시민사회는 대안사회 부재의 상황에서 과거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전통적인 진보ㆍ보수의 대립적 관점에 의해서는 현실사회의 다양한 모순에 대한 해석과 해법의 실마리가 찾아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에서 자본ㆍ노동 간의 계급적인 경계선이 존재하고 있음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도의 지식ㆍ기술 산업화의 진행과 고용형태 및 구조변화에 따라서 전통적인 계급적 경계선이 모호해지거나 분절적 구조가 확대 형성되어가는 사회현상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고 본다.
또한, 전통적인 노동운동의 전략과 전망이, 민주화 이후에도 그 현실적 적용과 수용성을 확대해나가지 못한 채 정체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기존의 사회운동 방식의 정합성 여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 이와 동시에 이런 현상의 고착이 전통적 이분법적 계급구도를 전제로 한 사회운동방식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의 접근방식의 도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전체 시민운동진영이 모색해가야 할 새로운 접근방식과 관련하여, 우리는 서구 선진 자본주의국가의 역사적 경험을 주목하고 그들의 실용적 노선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계획경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로의 경로는 상실되어버리고 그렇다고 착취를 내재적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에 무한정 의존할 수도 없다는 것은 역사에서 체득한 사실이자 교훈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시장경제시스템을 폐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하지도 않기에 우리의 차선적 접근방식으로도 고려할 수 없다. 이것은 좋고 싫음 혹은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떠나서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조건인 셈이다.
이런 현실적 조건아래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물질적 풍요를 일구어내는 자본주의 체제의 생산능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에 내재한 비인간적 착취기제를 사회적으로 통제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지금은 세계화와 한미 FTA와 같은 불가피한 외재적 요인들에 의해서 가해오는 제약이 크다 하더라도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사회적·정치적 통제기제를 통해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관철 고착화되는 것을 억제하고, 사회적으로 관리되는 자본주의적 생산체제를 기반으로 한 대안적 사회 발전 모델을 구축해나가는 것을 우리의 기본방향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의 역사적 경험으로 봐서, 사회적 관리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은 각국별 국민경제의 상황과 특색에 따라서 달랐던 것인 만큼 우리는 우리사회에 맞는 관리방식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고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거시적으로는 국민경제의 성장동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한 생산체제로부터 나오고, 노동 및 경영간의 합의구조를 형성해가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국가경영의 기본방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토대로 해서 고용과 성장이 분배와 양극화 해소에 기여하고, 또 역으로 분배와 양극화 해소가 고용과 성장에 보탬이 되는 선순환적 관계가 성립되는 복지 패러다임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역대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정부차원에서 이런 대안적 패러다임이 마련될 가능성이나 전망은 거의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앞에서, 시민 사회 진영이 떠안게 되는 부담과 사회적ㆍ시대적 과제가 한결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것이 지금 우리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처해 있는 척박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현실이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존 국가기구를 통하지 않고 시민사회에 의해서 대안적 패러다임을 모색해 간다는 것은 미래사회의 새로운 거버넌스(governance)에 대한 탐색과 같은 희망적인 작업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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