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거버넌스의 재구성?

이번 제4회 5·31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는 보수 진영 및 보수 언론이 주축이 된 이른바 매니페스토(manifesto) 운동이 새로운 화두로 주도권을 형성하면서 사회단체가 참여하여 지역 거버넌스의 재형성 조건이 마련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매니페스토 운동이 “선거 후에 공약이 실제로 지켜질 수 있는지 검증 가능한 수치 목표, 기한, 재원, 공정표 등이 들어간 공약을 내건 정책중심의 선거로서, 과거의 금권, 지역연고주의를 벗어나 한층 더 선진화된 정치문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라북도 선거관리위원회의 2006년 4월 7일자 보도자료.”고 홍보되고 있으나, 적어도 시·군·구 기초단위에서 이런 운동이 성공될지 의문스럽다. 무엇보다도 내 경험으로 볼 때 내가 살고 있는 부안군 지역에서는 정책선거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유권자들에 있어서 후보의 정책이 뭐냐가 선택기준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들이 연루된 인물 자체가 선택기준이 되고 있다. 후보들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책을 모두 투명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주민사회단체가 참조하여 판단할 만한 정책공약 자료집을 내놓지 않는다. 그저 ‘머리 속에만’ 있다 한다. 본인들 말로는 정책 아이디어가 노출되기를 우려해서 비공개한다고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군의원들은 물론이거니와 군수 후보들조차도 출마를 위해 지금까지 지역사회를 연구하고 담론화한 적이 한번도 없다. 지역사회를 연구하지 않으니 정책이 생산될 리 없다. 대개 인상적 수준의 발언이다. 그나마 현직 군수는 현직을 이용하여 모든 정보와 노하우를 보유하여 구체적인 정책공약을 내걸 수 있을 것이며, 매니페스토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후보들은 재원이나 각종 정보들로부터 차단당한 상태에 있어 매니페스토 차원에서 불리한 조건에 놓여질 수 있다.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들지 않게 할 긍정적 의도가 있음에도 불공정한 게임을 고려하지 않고 매니페스토를 선(善)의 정치로 이데올로기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매니페스토 운동과는 별개로 지역 거버넌스는 구축될 필요가 있다. 지난 2월 7일자로 배포한 감사원의 지방자치단체 종합감사 결과 보도자료를 보면, “선심성·업적과시용 사업 추진이나 줄세우기식 인사풍토 등 지방선거 실시 이후의 새로운 폐해가 지방행정 곳곳에 배어 있고, 여기에 소극적 업무처리, 회계직원의 도덕불감증 등 과거부터 이어온 고질적인 병폐가 청산되지 못하는 등”의 보고를 하고 있는데, 지역 거버넌스를 통한 지역정치의 투명성이 확보되는 것도 커다란 과제이다. 2006 지방선거시민연대는 3월 21일 출범식 출범선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부푼 꿈을 안고 부활 실시된 지방자치제가 10년을 넘었고 또 다시 주민의 손으로 지역의 정치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의 시기가 돌아 왔다. 그동안 중앙정부의 잡다한 사무를 지방에 이전하고 주민의 생활전반, 구석구석까지 해결해 줄 지방정부의 역할을 기대하면서 실시된 지방자치제도는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복리증진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주민참여, 주민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기대는 저만치에 있고, 중앙정당들이 지역 토호들을 앞세워 지역사회에서 주민의 대표인양 행세하면서 지방자치는 부패·무능·타락하고 오만과 독선으로 유권자들을 우습게 여기는 반자치적·반환경적·반문화적 세력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독선과 전횡은 특히 부안에서도 매우 극심하여 부안사태를 초래할 정도였고 이미 군수독선체제로 운용되어 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오히려 거버넌스의 구축보다도 민주화 내지는 민주주의 체제의 정착이 더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달리 말하여 우리는 아직도 지역 거버넌스의 형성기반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통치의 정치-사회적 양식으로서의 거버넌스는 “상호규제적이고 상호조정적이며 상호협력적인 관계를 그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사회 속의 조직들이 스스로 조직하는 조직간 연계망’을 통치하고 관리하는 메커니즘 조명래, 2002, <지구화시대의 지방 거버넌스>,《한국 지방민주주의의 위기》,나남출판, 317쪽.”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거버넌스는 사회체제 내의 행위자·참여자들이 상호작용을 통하여 스스로 자기조절해가는 자기조직의 원리를 지향한다. 지역 거버넌스는 전통적인 지방통치가 추구했던 지방관리자와 주민간 ‘정치적 합의’형성에 초점을 두었던 것에서 사안별 목표 달성에 필요한 자원과 수단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지방정부와 비정부기구, 주체들 간의 ‘협력 네트워크’를 꾸리는 것으로 초점을 이동한다. 즉 “종전의 민관 파트너십은 민주적 합의 형성을 위해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민간이 참여하여 자원과 역량을 교환하는 형식으로 꾸려졌다면, 거버넌스의 실천으로서 민관 파트너십은 사업 추진에 관련된 전문 역량을 갖고 있는 공공과 민간의 역할자들이 그들의 자원과 정보를 결합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되, 그 과정은 상호조율과 조정을 매개로 한다. 조명래, 앞의 글, 325쪽. ”

그러나 우리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주민의 ‘민주적 합의 형성’이 더 절실하다.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민주주의 문제를 중시하지 않거나 배제하고 있는데 오히려 신자유주의 시대에 있어 민주주의 문제야말로 더 절실함을 깨달아야 한다. 최장집 교수도《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는 것처럼 한국사회는 민주주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이익을 정치적으로 표출하고 대표하여 대안을 조직함으로써, 한편으로 대중참여의 기반을 넓히고 다른 한편으로 정치체제의 안정에 기여하는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기존의 냉전반공주의의 헤게모니와 보수독점의 정치구조에 그저 얹혀 있는 외피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특권적 기득구조와 계급구조는 심화되었고 사회의 공동체적 기반은 더욱 약화되었으며 개인의 삶도 황폐화되었다.” 최장집,《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개정판), 후마니타스, 2005, 19쪽.

부안사태, 새만금생명대학살, 평태사태만 놓고 보더라도 민주주의의 위기 혹은 탈민주주의 현실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역 거버넌스의 실천을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복잡성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우리는 전통적 과제로 알아왔던 민주주의 체제의 구축이 오늘날의 지역정치에서도 여전히 절심함을 실감하면서 동시에 지역 거버넌스의 구축 또한 중요시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가 전제되지 않는 거버넌스의 구축은 신자유주의의 지배, 반생태적 개발지상주의의 횡포, 보수적 토호세력들의 헤게모니를 방치하게 될 것이다. 또한 거버넌스의 구축 자체가 탈민주주의로 위장해서도 안 될 것이며, 지방자치시대에 걸맞게 민주주의 원리 역시 새로운 민주주의 즉 직접민주주의 혹은 자치민주주의의 가동 폭을 확대해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고길섶, <정치, 새로운 민주주의로: 생태정치와 자치민주주의>,《문화/과학》44호(2005년 겨울호), 문화과학사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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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섶/문화과학 편집위원, 부안생태문화활력소 정책연대위원장
2006/07/20 00:15 2006/07/20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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