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5_지속가능한 세계화를 위하여
시민과세계/2006년 하반기 :
2006/07/20 00:10
1. 서문
우리는 경제통합이 생활수준을 향상시켜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공공 정책이 그 정책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 받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될 수 있도록 더욱 민주적인 정치를 원한다. 우리는 또한 국민국가와 동반되는 자결권도 바란다. 본 논문은 그러나 우리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다 가질 수는 없다는 점을 논증해보일 것이다.
글로벌 경제의 정치적 트릴레마는 이 국민국가 체제, 민주 정치, 그리고 완전한 경제 통합 세 가지가 상호 양립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아야 셋 가운데 두 가지만 같이 가질 수 있다. 이는 우리가 현재 가고 있는 방향-글로벌 거버넌스 없는 글로벌 시장-이 지속불가능하다는 논리적 결론으로 향한다.
이에 대한 대안은 ‘브레튼-우즈 체제(가 약속한 것들)’를 개혁하는 것인데, 이는 원래의 브레튼-우즈 협정에 제시되어 있는 통합에 대한 제한조항들과 함께 실현 가능한 통합을 다룰 수 있을 만한 좀 더 글로벌한 규제를 유지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와는 다른 길-좀 더 단단히 조여진 경제 통합을 선택하려는 이들은 그 피치 못할 결과, 곧 더 단단히 조여진 세계 정부 아니면 더 희박한 민주주의라는 결과를 직시해야만 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 40년 동안, 국제 정책결정자들은 저마다 갖고 있던 야망을 억제해야 했다. 그들은 국가가 경제를 관리할 여지를 많이 남겨두면서 경제들 각각의 국제화에 대해서는 제한된 형태만을 추구했다. 연이은 다자간 무역 협상은 큰 진전을 보였지만 국경 간 장벽들에만 집중되어 있었고 경제의 상당한 부분(농업, 서비스, 의류 같이 ‘민감한’ 제조업)은 배제되어 있었다. 자본 시장에서 고액현금거래와 금융흐름에 대한 제한은 예외라기보다는 규범이었다. 이 브레튼 우즈 / 가트(GATT) 체제는 성공적이었는데, 그 입안자들이 국제 경제 통합을 경제를 직접 관리하고자 하며, 또한 민주적 정치를 바라는 각 국가의 요구 아래에 두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이십년간 이 전략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글로벌 정책은 이제 ‘깊은’ 통합이라는 공격적인 어젠다 ― 무역, 자본유동성을 가로막는 장벽이란 장벽은 전부 제거해야 한다는 ― 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 결과는 경제 성과(전후 첫 20년 동안과 비교해볼 때)와 정치적 정당성 양 측면에서 사뭇 염려스러운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소위 ‘깊은’ 경제 통합은 국민국가와 민주 정치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을 행사하고 있는 맥락 안에서는 도달 불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본 논문의 제목은 따라서 다음 두 가지 생각을 반영한다. 첫째, 전 지구적 경제통합을 밀어붙이는 데에는 그러한 과정에 고유한 한계가 존재한다. 케인즈(Keynes)가 말한바 ‘국가간 경제 얽힘(economic entanglement)’을 극대화하는 것은 실현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케인즈가 대공황기에 쓴 한 논문에 등장하는 표현. 여기서 그는 얼핏 자유무역을 거의 포기해버린 듯한 발언을 한다: “나는 국가 간 경제 얽힘 현상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이들보다는 최소화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 동조하는 편이다. 사상, 예술, 지식, 환대, 여행 등은 국제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상품은 그게 더 낫기만 하다면 집(각 국가)에서 만든 것이 바람직하고, 다른 무엇보다도 금융은 일차적으로 국가적인 것이어야 할 것이다.” (존 메이나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국가의 자급자족National Self-Sufficiency”, Yale Review, 1933) 둘째, 실현 가능한 세계화들 가운데에는 우리가 선택지로 삼을 만한 상이한 모델이 다수 존재한다. 이들 모델은 우리가 어느 편의 권한을 증진시키고 어느 편을 그렇지 않게 하는지, 누가 이득을 얻고 누가 손실을 보는지에 따라 저마다 다른 함의를 갖게 된다. 세계화 논쟁에 실질적인 진전이 있으려면 이 두 가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가지 함의는 우리가 전 지구적 경체 통합과 관련해서 우리의 야망을 축소해야 한다는 것. 또 다른 함의는 좀 더 ‘얕은’ 세계화 버전을 제정하는 데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세계화로 나아가는 한계들에 대한 나의 주장은 자명하지도 않고, 또 자명해서도 안 될 것이다. 논증은 몇 개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작 지점은 이렇다: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장은 일련의 비-시장적 제도 안에 착근되어야 한다. 이 제도들은 시장의 성과에 대한 비판적 기능을 수행한다. 곧 시장을 만들어내고, 규제하고, 안정화하며, 정당화한다.
내 주장의 두 번째 요점은 이렇다. 이러한 기능들과 그 제도적 인프라가 취할 수 있는 형태 간에는 단순한 혹은 유일한 매핑(mapping)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일본식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르며, 유럽 내에도 매우 다양한 노동시장과 복지국가 제도가 존재한다. 또한 개발에 착수하려는 저소득 국가들은 종종 이단적인 제도적 장치를 요청할 때가 있다.
세 번째 요점은 이렇다: 이러한 제도적 다양성은 완전한 경제 통합에 대한 괄목할 만한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무역과 투자에 따르는 제한이 거의 전부 사라져버린 오늘날, 이질적인 국가 제도들이 만들어낸 규제적이고도 사법적인 단속들은 국제 무역에 가장 중요한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깊은 통합”은 이러한 거래비용을 WTO의 어젠다이기도 한 제도 동질화(institutional harmonization)를 통해 제거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적 다양성이 귀중한 경제적, 사회적 역할을 하는 이상, 이는 또한 위험으로 가득한 길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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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제통합이 생활수준을 향상시켜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공공 정책이 그 정책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 받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될 수 있도록 더욱 민주적인 정치를 원한다. 우리는 또한 국민국가와 동반되는 자결권도 바란다. 본 논문은 그러나 우리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다 가질 수는 없다는 점을 논증해보일 것이다.
글로벌 경제의 정치적 트릴레마는 이 국민국가 체제, 민주 정치, 그리고 완전한 경제 통합 세 가지가 상호 양립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아야 셋 가운데 두 가지만 같이 가질 수 있다. 이는 우리가 현재 가고 있는 방향-글로벌 거버넌스 없는 글로벌 시장-이 지속불가능하다는 논리적 결론으로 향한다.
이에 대한 대안은 ‘브레튼-우즈 체제(가 약속한 것들)’를 개혁하는 것인데, 이는 원래의 브레튼-우즈 협정에 제시되어 있는 통합에 대한 제한조항들과 함께 실현 가능한 통합을 다룰 수 있을 만한 좀 더 글로벌한 규제를 유지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와는 다른 길-좀 더 단단히 조여진 경제 통합을 선택하려는 이들은 그 피치 못할 결과, 곧 더 단단히 조여진 세계 정부 아니면 더 희박한 민주주의라는 결과를 직시해야만 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 40년 동안, 국제 정책결정자들은 저마다 갖고 있던 야망을 억제해야 했다. 그들은 국가가 경제를 관리할 여지를 많이 남겨두면서 경제들 각각의 국제화에 대해서는 제한된 형태만을 추구했다. 연이은 다자간 무역 협상은 큰 진전을 보였지만 국경 간 장벽들에만 집중되어 있었고 경제의 상당한 부분(농업, 서비스, 의류 같이 ‘민감한’ 제조업)은 배제되어 있었다. 자본 시장에서 고액현금거래와 금융흐름에 대한 제한은 예외라기보다는 규범이었다. 이 브레튼 우즈 / 가트(GATT) 체제는 성공적이었는데, 그 입안자들이 국제 경제 통합을 경제를 직접 관리하고자 하며, 또한 민주적 정치를 바라는 각 국가의 요구 아래에 두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이십년간 이 전략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글로벌 정책은 이제 ‘깊은’ 통합이라는 공격적인 어젠다 ― 무역, 자본유동성을 가로막는 장벽이란 장벽은 전부 제거해야 한다는 ― 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 결과는 경제 성과(전후 첫 20년 동안과 비교해볼 때)와 정치적 정당성 양 측면에서 사뭇 염려스러운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소위 ‘깊은’ 경제 통합은 국민국가와 민주 정치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을 행사하고 있는 맥락 안에서는 도달 불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본 논문의 제목은 따라서 다음 두 가지 생각을 반영한다. 첫째, 전 지구적 경제통합을 밀어붙이는 데에는 그러한 과정에 고유한 한계가 존재한다. 케인즈(Keynes)가 말한바 ‘국가간 경제 얽힘(economic entanglement)’을 극대화하는 것은 실현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케인즈가 대공황기에 쓴 한 논문에 등장하는 표현. 여기서 그는 얼핏 자유무역을 거의 포기해버린 듯한 발언을 한다: “나는 국가 간 경제 얽힘 현상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이들보다는 최소화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 동조하는 편이다. 사상, 예술, 지식, 환대, 여행 등은 국제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상품은 그게 더 낫기만 하다면 집(각 국가)에서 만든 것이 바람직하고, 다른 무엇보다도 금융은 일차적으로 국가적인 것이어야 할 것이다.” (존 메이나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국가의 자급자족National Self-Sufficiency”, Yale Review, 1933) 둘째, 실현 가능한 세계화들 가운데에는 우리가 선택지로 삼을 만한 상이한 모델이 다수 존재한다. 이들 모델은 우리가 어느 편의 권한을 증진시키고 어느 편을 그렇지 않게 하는지, 누가 이득을 얻고 누가 손실을 보는지에 따라 저마다 다른 함의를 갖게 된다. 세계화 논쟁에 실질적인 진전이 있으려면 이 두 가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가지 함의는 우리가 전 지구적 경체 통합과 관련해서 우리의 야망을 축소해야 한다는 것. 또 다른 함의는 좀 더 ‘얕은’ 세계화 버전을 제정하는 데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세계화로 나아가는 한계들에 대한 나의 주장은 자명하지도 않고, 또 자명해서도 안 될 것이다. 논증은 몇 개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작 지점은 이렇다: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장은 일련의 비-시장적 제도 안에 착근되어야 한다. 이 제도들은 시장의 성과에 대한 비판적 기능을 수행한다. 곧 시장을 만들어내고, 규제하고, 안정화하며, 정당화한다.
내 주장의 두 번째 요점은 이렇다. 이러한 기능들과 그 제도적 인프라가 취할 수 있는 형태 간에는 단순한 혹은 유일한 매핑(mapping)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일본식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르며, 유럽 내에도 매우 다양한 노동시장과 복지국가 제도가 존재한다. 또한 개발에 착수하려는 저소득 국가들은 종종 이단적인 제도적 장치를 요청할 때가 있다.
세 번째 요점은 이렇다: 이러한 제도적 다양성은 완전한 경제 통합에 대한 괄목할 만한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무역과 투자에 따르는 제한이 거의 전부 사라져버린 오늘날, 이질적인 국가 제도들이 만들어낸 규제적이고도 사법적인 단속들은 국제 무역에 가장 중요한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깊은 통합”은 이러한 거래비용을 WTO의 어젠다이기도 한 제도 동질화(institutional harmonization)를 통해 제거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적 다양성이 귀중한 경제적, 사회적 역할을 하는 이상, 이는 또한 위험으로 가득한 길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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