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성역 ‘한미동맹’

한국민에게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미동맹’을 상징한다. 미군 주둔을 전제하지 않은 한미동맹은 상상하기 어렵다. 주한미군 주둔이 한반도 안보에 사활적이라고 보는 인식도 신념에 가까울 정도로 뿌리 깊다. 많은 이들에게 한미동맹은 곧 국익이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다.

그러다보니 주한미군 주둔과 관련된 문제제기는 대개 그 내용과 관계없이 동맹을 둘러싼 논쟁거리로 비화되고 만다. 미군 주둔에 관한 문제제기는 굳건히 지켜가야 할 동맹을 해치려는 불온한 짓으로 치부되거나, 동맹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되곤 한다. 물론 보수언론들이 이 과정에서 지대한 역할을 한다.

이렇듯 뻔한 공식처럼 동맹이 유지되어 온 가운데 동맹의 미래, 주한미군의 역할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영향 등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정부 일부 당직자들의 몫이었다. 국민들에게는 결정사항을 입맛에 맞게 통보하면 그 뿐이었다. 정부는 국민들의 의사를 묻지도 않았고 판단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정부의 협상태도와 정책판단이 타당했는지 따지고 들어갈 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논하는 한국 사회에서 동맹 문제는 민주적 절차와 국민 기본권 논의조차 배제되어 있는 ‘마지막 성역’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그렇게 반세기 이상 유지되어 왔다.

국민들은 알지 못하는 3년간의 동맹재편 논의

이러한 한미동맹이 중대한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반세기를 넘기고 있는 동맹의 역사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진행된 3년간의 동맹 재편 협상을 통해 주한미군 기지의 통폐합과 이전 그리고 주한미군 병력의 3/1 감축이 합의되었다. 그리고 한반도 방어를 한국군이 맡도록 하는 주한미군의 임무 이양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있었다. 뒤늦게 작전통제권 환수 논의도 개시되었다. 이러한 주한미군 역할변화를 토대로 한 한미동맹의 공동목표와 비전이 올해 연말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을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미동맹 재편이 어떤 함의를 갖는지 국민들은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 참여연대-<한겨레21>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1월 한미 양국이 합의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국민 88.8%가 그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답하였다. 또한 주한미군의 성격변화와 기지이전에 대해 정부가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했다고 보느냐에 대한 질문에서 단지 9.7%만이 충분하며, 67.1%는 부족하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 주한미군 관련 현안에 대한 국민여론조사 결과 발표, 2006. 5. 22) 주한미군의 평택이전은 단순한 공간이동일 뿐이고, 주한미군의 역할과 활동범위도 여전히 한반도 방어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한국 정부가 동맹재편의 내용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거나 이해를 구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은 생략한 채 한미동맹의 존재의의가 여전히 대북방어에 있으며, 주한미군의 평택이전도 한국 측 요구에 따른 기지이전일 뿐이라고 애써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군의 전력이 여전히 북한에 비해 열세라는, 정부 스스로도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 낡은 주장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실제 한미동맹 재편 논의는 정부의 이러한 설명이나 일반 시민들의 인식과는 아주 다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미 양국 당국 간의 협의는 대북방어를 넘어서는 새로운 동맹관계를 깊이 논의하는 단계에 와 있다. 대북방어는 한국군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기본인식 하에 한미 양국은 한반도 방어의 한국군화와 전략적 유연성 발휘를 통한 주한미군의 지역적 역할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 한미동맹은 대북억지를 넘어 동북아를 포함한 전 세계 활동범위로 하며 21세기형 위협에 공동 대처하는 군사동맹으로 그 범위와 성격이 확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형적 변화가 바로 미군기지의 통폐합과 평택이전과 같은 주한미군 재배치이고, 국제 분쟁에 언제든지 신속투사 할 수 있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와 스트라이커 부대로의 전환 같은 군사변환이 소프트웨어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스스로도 ‘동맹의 하드웨어인 주한미군의 기지 이전과 소프트웨어인 전략적 유연성이 합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NSC,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설명자료, 2006. 1. 31) 이는 곧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가 한반도에서 관철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역할확대와 성격변화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의 근거가 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 SOFA를 근본적으로 뒤집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러한 상황변화에 대해 국민들에게 정직하게 이해를 구하거나 설명하지 않은 채 주한미군 기지이전과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였다. 정부는 일련의 한미동맹 재편 방향에 대한 일부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강력한 문제제기를 일축하고 미군기지의 평택이전을 서둘러 강행하였다. 그러한 갈등이 정점에 달한 것이 바로 5월 4일 평택 충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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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
2006/07/20 00:06 2006/07/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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