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환은행 문제를 2년 이상 취재해 왔다. 그 과정에서 외환은행뿐만 아니라 제일은행과 한미은행, 그리고 브릿지증권과 오리온전기, 극동건설, 만도기계, KT&G 등 투기자본과 금융 세계화 문제, 그 한국적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폭넓게 고민해 왔다. 물론 나는 현장을 뛰어대니는 기자일 뿐 학자나 이론가는 아니다. 다만 이 지면을 통해 IMF 외환위기 무렵부터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왔고 벌어지고 있는가 다시 정리해 보려고 한다.

먼저 제일은행과 한미은행의 사례에서 출발해 그 두 은행과 외환은행 매각의 공통점, 그리고 그 상관관계를 살펴볼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들의 의미, 그리고 그 대안을 고민해 보기로 한다.

1. 두 번씩 팔려나간 은행들의 비극

잘못된 역사는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은행 매각의 역사도 그렇다. 1999년에는 제일은행이 팔려나갔고 그 이듬해인 2000년에는 한미은행이 팔려나갔다. 그리고 2003년에는 외환은행이 팔려나갔다. 제일이나 한미은행은 부실은행이었고 상황이 급박했다고 치지만 외환은행 같은 멀쩡한 은행이 정체도 알 수 없는 투기자본에 팔려나가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이 은행들은 결국 모두 살아났고 주가가 크게 뛰어올랐고 한 번씩 더 팔려나갔다.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이렇게 은행을 통째로 내다팔지는 않는다. 그것도 정부가 나서서 정부 소유의 은행을 외국계 사모펀드에 넘겨주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먼저 제일은행은 1999년까지 100% 정부 소유의 은행이었다. 정부는 1998년 3월과 1999년 6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조 5000억 원과 5조 3000억 원을 투입한 것을 비롯해 모두 8조 4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바 있다. 그렇게 엄청난 세금을 쏟아부어가며 살려낸 은행의 경영권을 단돈 5천억 원에 그것도 외국계 펀드에 넘겨버린 것이다.

게다가 뉴브리지는 금융기관도 금융지주회사도 아니었다. 은행법에는 외국인이 국내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금융회사거나 금융지주회사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은행법 시행령의 예외 조항을 적용해 외국계 사모펀드에 정부 소유의 은행을 넘긴 것이다. 제일은행은 사모펀드에게 은행을 넘긴 첫 번째 사례였다.

정부는 뉴브리지에 풋백 옵션과 드래그 얼롱 계약까지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풋백옵션이란 매각 이후 3년 동안 발생하는 모든 부실 여신에 대해 정부가 손실을 보전해 주기로 한 것이다. 이 옵션 덕분에 정부는 매각 이후에도 제일은행에 6조6780억원을 더 쏟아 부어야 했다. 드래그 얼롱이란 최대주주가 일정 지분 이상을 매각할 때 매입자가 요구할 경우 2대나 3대 주주까지 동일한 조건으로 팔아야 하는 계약을 말한다.

제일은행의 경우 51%의 지분을 보유한 뉴브리지가 지분을 30% 이상 매각할 경우 49%를 보유한 정부도 같은 조건에 주식을 내다팔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어처구니 없는 건 이런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이 2004년 11월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2005년 1월 뉴브리지가 스탠더드챠터드은행(SCB)에 지분을 내다팔 때 정부 지분까지 한꺼번에 팔려나갔고 제일은행은 100% SCB 소유가 됐다. 이름도 SC제일은행으로 바뀌었다.

1999년 무렵 제일은행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정부는 그래서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쏟아부었다. 문제는 그렇게 가까스로 살려놓은 은행을 고스란히 외국계 사모펀드에 넘겨줬다는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뉴브리지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 관료들은 외자 유치와 경영권 매각의 차이를 알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무시했고 사모펀드가 은행의 대주주가 된다는 것의 의미도 신경 쓰지 않았다.

2000년 9월 한미은행이 칼라일펀드에 넘어가게 된 과정도 의혹투성이다. 칼라일 역시 사모펀드였을 뿐 금융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은행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 그해 9월 칼라일은 투자은행인 JP모건을 앞세워 금융감독위원회 승인을 받아낸다. JP모건과 50 대 50으로 투자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문제는 JP모건이 들러리만 섰을 뿐 실제로 인수주체는 칼라일이었다는 것이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펀드들의 지분 구성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지분이 많은 펀드는 16.3%를 보유한 KAI(한미은행 투자펀드)였는데 이 펀드는 칼라일과 JP모건이 반반씩 투자한 게 맞다. 문제는 나머지 지분인데, 채드윅과 프리웨이라는 펀드가 각각 3.6%를 보유한 것을 비론해 스칼렛이 3.4%, 이글이 2.5%, 코란드가 1.0% 등 9개 펀드에 분산돼 있었다. 이 펀드들은 모두 페이퍼컴퍼니로 칼라일이 의결권을 갖고 있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4% 미만의 보유 지분은 금융감독원에 신고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이들 페이퍼컴퍼니의 지분에 대해 아무런 통제권도 갖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JP모건은 전체 지분 36.6% 가운데 8.2%만 보유하고 있었고 나머지 28.4%는 칼라일의 몫이었다는 이야기다. 표면적으로는 칼라일과 JP모건이 반반씩 투자한 걸로 돼 있지만 이미 칼라일이 한미은행의 대주주가 돼 있었던 것이다.

금감위는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묵인했던 것일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종합하면 후자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칼라일은 아예 홈페이지에 위장 계열사들 지분 비율을 버젓이 공개하기도 했다. 금감위가 이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지만 금감위는 끝까지 침묵했다. 칼라일은 2004년 5월, 보유지분을 모두 씨티그룹에 넘기고 7천억 원 이상을 챙겨 유유히 빠져나간다.

결국 정리하면 이렇다. 제일은행 때는 제일은행이 부실금융기관이라는 이유로 은근슬쩍 사모펀드에 은행이 넘어갔고 한미은행 때는 JP모건이라는 들러리를 내세워 역시 사모펀드에 은행이 넘어갔다. 그리고 다시 살펴 보겠지만 외환은행 때는 부실금융기관도 아니었고 들러리도 없었는데 론스타 단독으로 은행을 집어삼켰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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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Economy21 기자
2006/07/20 00:04 2006/07/2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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