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봄은 ‘한미 FTA’ 체결이라는 정부의 돌출적인 선언에 따른 사회적 충격과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를 둘러싼, 때 아닌 계량경제모형 논쟁과 함께 시작되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미 FTA 추진과정은 협상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정부의 정책 결정의 후진성과 음모적 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주었다. 단적인 것이 KIEP(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연구결과를 가지고 불거진 수치조작 논쟁이었다. 2005년 후반기에 국민들이 ‘줄기세포’의 전문가가 되었다면 2006년 상반기에 국민들은 CGE(일반균형연산모형)라는 계량경제모형을 알게 되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신뢰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일종의 참고로만 사용될 수 있는 CGE모형이 한국에서는 절대적인 가치판단의 근거가 되는 모형으로 둔갑되었다. CGE모형은 그 자체가 연구자들의 주관적 사고와 편의에 따라 원하는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조작적이고 임의적인 모형을 가지고 누가 결과를 조작한 것인가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웃지 못 할 희극이 벌어진 것이다.

이 와중에서 출간된 이해영 교수의《낯선 식민지, 한미 FTA》는 한미 FTA의 정치적·경제적 영향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견지해 온 진보진영의 분석을 총괄하고 있다. 저자의 미덕은 그동안 국내 및 미국의 한미 FTA 관련 자료들을 입장에 상관없이 풍부하게 섭렵하고 있으며 한미 FTA에 대한 경제적 분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학자로서의 심도 있는 정치적 분석을 더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저자는 그동안 한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이나 친미 관료들이 애써 무시하거나 혹은 시장과 미국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의심하지 않는 한미 FTA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낯선 식민지, 한미FTA》는 내용의 질을 평하기 이전에 정치학자인 저자가 경제학자도 쓰기 어려운 한미 FTA의 다양한 경제적 쟁점을 체계적이고 분석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만 해도 높게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저자의 한미 FTA의 본질에 대한 분석 결과는 다음의 3가지 주장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한미 FTA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가주권의 상실’이다. 한미 FTA는 에너지, 교육, 의료, 문화 등 공공영역에 대한 국가 주권적 정책공간을 심대하게 위축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미 FTA의 ‘투자자 대 국가’ 분쟁해결 절차는 초국적 자본에게 유리하게 권력을 재편시키면서 시장이 국가에게 규제완화나 철폐의 ‘탈규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의해 국가가 ‘역규제’를 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국가는 국민경제의 조절자가 아니라 초국적 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매개자 역할로 전락되고 모든 부문에서 정책공간과 정책수단을 박탈당한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정치적 결과는 주권의 상실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 한미 FTA는 초국적 대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여 노동소득분배율을 악화시키고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대미수출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의 초국적 기업의 입장에서 한미 FTA로 인한 수출 증가나 경쟁력 강화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비록 한국의 초국적 기업(재벌)은 미국계 초국적 기업과 시장을 놓고 경쟁해야 하지만 이들은 국적을 초월한 자본으로서의 이해관계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이 높은 투자처와 값싼 생산지를 찾아대니는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국가의 규제 장치를 없애는 것이다. 한국의 초국적 자본에게는 한미 FTA로 인한 관세철폐가 가져다 줄 가격인하 효과보다 구조조정을 통한 인건비 절감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한미 FTA는 가변자본에 대한 총자본의 글로벌 네트워킹의 한 고리일 뿐인 것이다. 각종 인허가 및 노동·환경관련 규제 철폐 등 한국의 초국적 기업과 미국계 초국적 기업이 동시에 달성해야 할 목표는 너무나도 많다. 결국 한미 FTA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한국과 미국의 초국적 자본이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구조조정의 새로운 계기가 된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셋째, 한미 FTA는 그동안 다소 위축되었던 한국사회의 지배블록 내에서 한미동맹파의 지위를 복원하는 한편 ‘미국/재벌/관료복합체’의 재공고화를 기획하는데 가장 바람직한 조건을 형성한다. 한미 FTA 및 전략유연성 등의 어젠다와 남북관계와 관련된 모종의 프로젝트를 두고 한미간 빅딜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미국과 한국 사회 신주류와의 대타협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으로 추론한다. 즉 전략유연성 문제를 고리로 제2의 분단을 초래하면서 남북간의 낮은 차원의 미시적 긴장과 동아시아 차원의 거시적 긴장이 별개의 층위에서 비동시적으로 공존하는 새로운 분단 상태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미 FTA와 한미군사동맹은 상호보완적이며 상호 지지하는 관계이다. 결국 한미 FTA는 단순한 경제협정이 아니라 고도의 (국제)정치적 의미를 가진 포괄적 정치경제적 협정이며 ‘초국적 식민주의’라고 저자는 명백하게 규정한다.

한미 FTA는 단순히 대미종속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한국계 초국적 기업을 포함하는 신자유주의에 의한 포괄적 식민화를 의미한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이다. 이제 한국 정부는 발전주의국가에서 모든 국민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를 위해 ‘경제전쟁’에 동원하는 임무를 가지는 신자유주의 경쟁국가가 된다.

결국 저자는 한미 FTA는 단순한 경제적 수치의 변화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기본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한미 FTA에 대해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본 책에서 해결책의 하나로 ‘국제통상조약 체결에 관한 법률(통상절차법)’을 신자유주의에 대한 포괄적 대안은 아니지만 실행가능하고 합의가능한 차선이자 출발점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동법은 비민주적인 FTA 절차의 수정 가능성을 법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미 FTA가 초래하게 될 경제적 효과를 특정한 수치로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한미 FTA가 가져올 정치·사회·경제적 구조변화이다. 이러한 의미에서《낯선 식민지, 한미 FTA》는 한미 FTA를 바라보는 관점을 확립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달해 줄 것이다. 한미 FTA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모든 국민들이 한번씩은 일독을 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첫째, 국민들의 많은 열망을 담아 출발한 노무현 정부가 왜 급속하게 한미 FTA를 추진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특히 절차적 민주주의나 투명성을 전혀 가지지 못한 채 자의든 타의든 2007년 3월이라는 시한까지 정해놓고 한미 FTA를 추진하는 이유를 이후 다른 장에서라도 정치학자로서의 저자가 제시해 주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 둘째, 현 시점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좀 더 전략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대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이는 사실 저자의 몫이기 보다는 우리 모두의 몫이 될 것이다. ‘통상절차법’의 통과가 당장은 주요한 이슈 중의 하나이지만 한미 FTA의 영향이 심대한 만큼 이에 맞서기 위해 우리들의 정치·경제·사회의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면서 싸워나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사회안전망 확충이나 소득재분배 문제, 양극화 대응 방안 등에 대한 심도 있고 구체적인 정책을 요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미 FTA 협상이 결렬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너무나 소박하고 모자란 생각이 아니었으면 한다.

정기구독 : 1년 27,000원 (낱권 정가 15,000원)

과월호 판매 : 낱권 1만원

구독문의 : 참여사회연구소, ☎ 02-764-9581

하나은행 : 162-040805-00504 예금주 - 참여사회연구소 시민과세계

김은경/경기개발연구원 경제사회연구부 책임연구원
2006/07/20 00:02 2006/07/20 00:02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Research/trackback/19813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