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2_민주 대 반민주를 넘어
시민과세계/2006년 하반기 :
2006/07/20 00:01
'민주공화국의 민주주의'를 찾아서
최근 국내외 민주주의의 현황을 진단하고 학계의 민주주의 논의가 총망라된 주성수·정상호 편저의『민주주의 대 민주주의』(아르케, 2006)가 출간되었다. 이 저서는 ‘한국의 시민참여와 민주주의’를 중점적으로 연구해온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가 내놓은 ‘민주주의 시리즈’ 첫 번째 공동 연구서로서, 대의민주주의 위기에 대응하는 대안적 민주주의의 다양한 이론적 논의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대안적 민주주의 흐름으로서, 직접민주주의, 현대적 공화민주주의, 결사체민주주의, 토의(심의)민주주의, 전자민주주의와 더불어 최근에 진전되고 있는 풀뿌리민주주의, 생태민주주의, 젠더와 민주주의 등의 이론도 포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 저서는 책 제목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그동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론이 대체로 좌파나 좌파이론가들에 의해서 민주대 반민주의 대립구도차원에서 운동의 전략전술로 접근됨으로써 빠졌던 ‘이념의 과잉성’으로부터 벗어나 전 세계적 현상인 대의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다양한 민주주의를 검토하는 가운데 그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소개되고 있는 여러 민주주의 논의 중에서도 안병진의 <공화주의적 민주주의>와 정상호의 <결사체민주주의의 원리와 쟁점>은 대의민주주의의 사상적 기반인 자유주의와 대별된다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먼저, 안병진의 논의는 해방과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및 6월 민주화운동 2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그동안 무심코 지나쳐 왔던 우리 헌법 제1조 1항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정체성의 의미가 진정 무엇인지를 쉽게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일반적으로, 공화주의(republicanism)는 시민적 미덕(civic virtue)을 구비한 유덕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면서 공공복리의 실현에 공헌하는 체제로 곧 공화국(republica, common-wealth)을 말한다. 따라서 공화국의 존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기본원리로 대략 ‘시민적 미덕’, ‘경제적 종속으로부터 시민의 자율적 독립’과 ‘부패방지’롤 꼽는다. 그 중에서 핵심 정수이자 기반은 ‘시민적 미덕’이다. 시민들이 미덕이 있을 때 시민들의 정치참여의 자유가 실현된다는 점에서, 그 미덕은 바로 시민들의 공공적(public)인 적극적 자유(freedom)와 동의어이며, 따라서 그것은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사적(private)인 자유와 권리들의 보호라는 근대적인 ‘소극적 자유’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안병진의 관련 논의는 2002년 최장집 교수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초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이념적 기반으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라고 인식하고, “공화주의적 민주주의를 대안이념으로 긍정적으로 검토하였다가 2005년 개정판에서 공화주의가 지나치게 한국의 보수적인 지형을 강화할 수 있다”고 하여 이전의 주장을 철회한 사실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토론 소재를 제기하고 있다.
즉, 안병진이 보기에, “최장집 교수 등이 문제로 삼고 있는 공화주의는 공화주의 흐름 중 주로 이탈리아의 시민공화주의 전통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실 그의 지적처럼 이러한 흐름은 지나치게 기존 가치에의 순응적이고 시민적 덕성 함양에 대한 교육 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긍정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지만 최근 호노한 등이 주장하는 현대적 공화주의는 이태리의 시민공화주의와는 달리 정치적 평등 등의 가치에 대한 강조를 통해 제도적 틀을 변환하는데 관심을 둔다”고 하면서 최 교수를 설득하고 있다.
다만 필자가 보기에, 안병진은 현대적 공화주의자로 호노한(I. Honohan) 등 최근의 연구를 중심에 놓고 논의를 전개하다보니, 논의에서 “아렌트와 같은 공화주의의 진보적 혁신을 이룩한 근대적 공화주의도 여전히 타자에 대한 공감의 철학을 분명히 지향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는 남성주의적 철학으로부터 분명히 단절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아렌트(H. Arendt)를 근대적 공화주의자 내지 남성중심의 철학자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같은 의견은 아렌트에 대한 오해라는 점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아렌트가, 고대 폴리스 시민들이 추구했던 공화주의적 이상향을 근대적 조건하에서 부활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인간들의 말과 행위가 드러남을 통해 구성되는 공적영역(public realm)의 창출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아렌트가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생물학적 성 차이를 넘어서 공적영역을 창출하는 동등한 인간으로서 인식했다는 점에서, 그녀를 탈근대적 공화주의자와 양성평등자로 인식하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렌트가 말하고 있는, 인간의 말과 행위를 통해 다양성을 드러내면서 구성되는 공적영역 개념은 루소와 같은 공화주의자들과 비교할 때, 더욱 돋보인다. 즉, 루소는 다양한 시민들 간의 수평적인, 심의적 토의보다는 그의 ‘일반의지’라는 개념이 시사하듯이, 유기체적인 국민을 상정하여 ‘전체주의적인 단일성’으로 전락함으로써, 최장집 교수가 우려하는 보수성과 폐쇄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아렌트의 개념이, 다양한 인간들이 자신의 정치적 개성을 드러내는 정치행위를 통해서 공적 질서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루소의 일반의지에서 오는 전체주의 경향과 이태리 시민적 공화주의에서 오는 지나친 도덕주의 경향을 모두 극복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정치가 단지 사적 이해관계자들 간의 타협을 넘어 공적인 질서 구축을 위한 민주적 토론의 과정(deliberation)과 이를 통한 기존 선호의 변화 가능성(transformation)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진전된 공화주의론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아렌트의 논의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밝히고 한국의 민주정치의 발전논의에 보다 적실성을 갖기 위해서는, 공화주의내지 공화국 존립의 기반인 정치에 참여하는 유덕한, 또는 정치적 공통감각을 가진 시민이 대한민국의 실제 국민으로 존재하도록 해야 한다는 데 1차적 숙제가 놓여있다. 즉, 대한민국의 공화국 시민들이 경제적 불평등과 계급지배-종속관계로부터 해방되어 공화국의 진정한 주권자인 공적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공화국의 정부와 제도정치가 신자유주의적 경제불평등 체제와 정책의 추진을 위한 ‘도구적 정치’를 포기하고, 정치영역에 침투해오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이익정치’를 공적으로 지양하는 ‘시민적 공론정치’로 새롭게 탈바꿈될 때, 이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 형성되고 동학이 작동할 때 가능한 것이다.
특히, 유덕한 시민의 창출과 관련하여 안병진은, 이병천 교수의 시민 자본주의론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교수가 공화주의적 덕성을 가진 시민을 창출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한국의 헌법(119조)에 규정된 ‘사회적 시장경제’는 그런 점에서 공화주의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병천 교수의 이같은 지적은, 향후 우리 헌법을 전반적으로 공화주의적 관점에 서서 재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 그리고 헌법 개정논의에서도 단순한 정치제도 개혁만이 아니라 공화주의 이념에 대한 깊은 성찰을 기초로 하여 경제민주화 조항의 대폭확대와 양원제 도입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며, 이후 많은 공론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아울러 정상호의 논의도 간략하게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결사체민주주의는 당이나 선거와 같은 지역적 대표가 아니라 우리사회에 다수로 존재하는 노동조합, 농민회, 중소상공인회 등 다양한 이익집단 대표체(직능결사체)와 시민 결사체들이 직능단체의 자율적 활동을 통하여 사익추구를 자정하면서도 공익과 민주주의를 함양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고 해석하는데 적합한 모델이다.
결사체민주주의는 크게 유럽의 ‘조합주의적 이익결사체’와 영미의 ‘다원주의적 시민결사체’로 구분한다. 조합주의적 이익결사체의 사상적 기원은 에밀 뒤르켐으로, 그는 “이익 결사체 활동을 통해서도 공공선과 공익이 확보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고, “‘경제활동의 사회화’를 지향하는 결사체를 통해 시민들을 정치에 복귀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실천적 공공영역을 재구축하자”고 하였다.
다원주의적 시민결사체의 사상적 기원은 두가지 지류인데, 하나는 자유와 방임주의에 근거한 매디슨식 민주주의이다. 이것은 “파벌을 통제하기 위해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질병보다 더 해로운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하면서, “인간 본성에 근거한 파벌을 제한하기 보다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파벌의 영향력을 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함으로써, 집단은 부당한 간섭이나 정부의 규제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이익집단이론’으로 발전하였다. 다른 하나는 시민들의 자발성을 고무하고 정치교육을 제공하는 자원 결사체를 찬양하였던 존 스튜워트 밀과 토크빌식의 시민결사체이다. 이것은 ‘시민사회론’과 ‘사회자본론’으로 부활하여, 결사체가 국가도 시장도 아닌 제3의 공간인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즉 당파적 이익집단이 아니라 공익과 공공선을 지향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이해되었고, 아울러 시민사회의 존재가 사회적 신뢰감을 조성하여 정치발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결사체민주주의의 장점이 한국적 상황에서 적실성을 갖기 위해서는, 결사체는 모두 민주적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과연 이익집단들이 자신들의 특수이익들을 표출하되, 그것을 공적질서 속에서 공공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선호와 이해를 토론과 공론화를 통해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과 관련하여, 민주노총이 추구하는 진보정당의 논리가 자신들의 ‘이익정치’를 넘어 보편적 공공선을 추구하는 ‘공론정치’로 나갈 수 있을지, 그리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제도정치의 보조기구가 아니라 비정부기구(NGO)의 정체성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지 판단해 볼 일이다.
앞서 지적했지만, 이 책은 다양한 민주주의의 흐름을 소개하고 있어 다양성을 맛보면서도 서로의 유사성과 차이성을 비교하고 연관시킴으로써 필자들 간에 그리고 사상가 들간에 토론과 대화가 가능하여 공론장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으로 어떤 민주주의가 옳은 것인가? 그래도 대의민주주의인가 아니면 직접민주주의인가? 대안을 선택하는 문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현대 사회에서, 인민, 즉 시민은 소비자 또는 이용자이기도 하고, 투표권자이기도하며, 주민이거나 또는 갈등의 이해당사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소개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다양한 논의들은 시민들의 한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민의 다차원적 존재, 또는 다중적 주체성의 문제는 어느 한 측면만으로 환원하여 설명될 수 없다.
따라서 책속에 소개되어 있는 민주주의의 다양한 흐름이 설명해주는 강조점을 깊이 인지하고, 서로의 특징들을 중첩화시키는 가운데, 현실에서 설명하려는 상황에 적합하도록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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