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신보수 시대, 그리고 정치의 휘발성 : ‘진보의 허브’ 를 구축해야 한다

이병천 · 홍윤기 _ 공동편집인


‘빨리 빨리’ 해치우기는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대한민국 문화의 대표적 트레이드마크가 된 고질병이다. 문패를 ‘실용’으로 내걸면서 탈세와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버는 데 최대, 최고 모범을 보이고 BBK 특검을 ‘실용’적으로 간단히 통과한 이명박 신보수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한민국의 이 고약한 ‘빨리 빨리’ 고질병은 한층 더 병세가 심해질 것이 눈에 뻔하게 보인다. 이번 선거도 다분히 그런 식이었다.

우리는 다섯 달도 채 안 되는 사이에 대선과 총선이라는 국가 최고 중대사를 모두 ‘빨리 빨리’ 해치워 버렸다. 인수위 피곤증이 채 씻기기도 전에 맞이한 총선 국면에서 우리 국민들은 헌정사상 초유의 정치적 경험 아니 무경험을 겪어야 했다. 선거일을 한 달 앞두고서도 공천은 완료되지 않았다. 또 각 정당은 무엇을 공약하는지 제대로 내걸지도 않았다. 사실상 묻지마 투표가 강요되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전체 유권자의 과반수가 투표를 거부하거나 기피하거나 방치했다.

그런데 ‘실용’ 정부가 너무 일찍부터 ‘빨리 빨리’에도 성이 차지 않아 ‘허둥지둥’ 대는 꼴을 보면서 총선에는 그래도 조금 변화가 보이지 않을까 했는데 표로 나타난 총선의 결과는 크게 보면 대선의 연장전과 같아 보인다. 이번 총선의 결과는 여러 측면에서 역대 총선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진영’의 구도로 볼 때 보수진영의 압승과 진보개혁 진영의 대패다. 수도권이 완전히 보수로 돌아선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20·30대가 진보개혁의 부대에서 떨어져 나갔다. 역대 총선에 늘상 보였던 여당 견제 심리도 별반 나타나지 않았다. 보수진영 대 진보개혁 진영의 구도보다는 보수 대 보수의 구도, 보수끼리의 경쟁이 더 흥행을 끌었다. 무엇보다 대중들은 보수세력이 내 건 뉴타운, 특목고 등의 공약에 호응하여 표를 몰아주었다. 진보세력이 주변화되었을 뿐 아니라, 중도개혁 세력이 ‘우향우’로 돌아 선 것이 주목된다. 통합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지금의 ‘중도’는 왕년의 ‘중도’가 아니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총선 결과를 등에 업고 ‘빨리 빨리’ 규제 완화, 민영화 그리고 한미FTA와 같은 개방 드라이브로 돌진할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렇게 강한 보수, 약한 중도, 아주 약한 진보로 짜여진 제도정치판에서는 부득이 국가 기구 안에서가 아니라 국가 기구 밖에서, 국가와 대항하는 ‘거리의 진보정치’가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0년의 세월을 간단히 넘길 일은 아니다. 우리는 87년 이후 훌쩍 20년을 넘긴 대한민국이 그저 진영 개념으로만 파악하기에는 이미 분화가 크게 진전된 사회임에 주목해야 한다. 이미 우리사회의 이해관계가 심지어 같은 진영 안에서도 정치적, 사회경제적으로 당면한 이권(利權, concession)과 인물(人物, figure)에 따라 크게 분화되어 있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대선과 총선 두 선거의 결과에서도 잘 나타난다. 선거 결과를 ‘정파’(政派, faction)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선거 이후 각 정치 수행자들이 벌일 상황이 좀 더 현실적이고도 역동적으로 복기된다. 각 당이 떠안은 선거후 상황은 그야말로 역설과 역설의 연속이다. 선거 결과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먼저, 의기양양한 ‘강한 보수’ 진영 내부부터 보기로 하자.

•한나라당은 4년 전 열린우리당보다 1석 더 많은 과반수 의석을 얻었다. 한편 숫자상의 명백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패배했다. 정당지지율에서 한나라당(37.5%)은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48.7%)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이기고도 졌다는 말이 가능하다.

•한나라당과 당색이 그다지 차이나지 않는 자유선진당은 충청남도만은 확실하게 석권하면서 18석을 얻었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기에는 2석이 모자라지만 총선에서 승리한 것처럼 의기양양 하는데, 누구도 그것을 크게 나무라지는 않는다. 얻은 것도 많지 않으면서 많이 얻은 것처럼 여겨진다.

•특정 정치인 개인과의 친분 또는 주군에 대한 충성을 명시적으로 내세워 ‘가장 봉건적’ 성격을 보인 친박무소속연대와 친박연대는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이른바 ‘포스트모던적’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가받아 마땅할 가장 경박한 당명과 행보로 각기 14석과 12석을 가볍게 얻었다. 오직 한 개인만 대변하고 그에게만 충성하겠다고 내놓고 다짐하는 이런 정당이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는 헌법(제8조②항)의 정당 요건을 과연 제대로 충족할지는 상당히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들을 포함해 한나라당 안의 친박 의원들까지 모두 망라하여 약 60여 명의 의원을 거느리게 되는 박근혜 의원 개인이야말로 제도정치권에서는 두 차례 선거의 최대 승리자로 꼽힌다는 것이다.

지난 민주화 10년을 주도한 세력에서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약한 중도’ 정치 세력의 대표자, 통합민주당의 내부는 어떤가.

•공천 심사 직전 자체 실시한 조사에서 통합민주당의 예상 의석수는 44석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선거 결과 81석을 얻었고, 그것도 호남뿐만 아니라 제주도, 충청북도를 석권하고 강원도와 부산․경남에서도 골고루 의석을 차지해 예상보다는 선전했다는 평이다. 즉, 전멸했어야 하는데 살아남아 다행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경기의 수도권에서만은 거의 전패에 가까운 수모를 당했다. 한나라당이 뉴타운 공약으로 사기를 쳤다고 고발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들도 얼치기로 따라 한 공약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 문제를 자기 브랜드로 풀어갈, 정체성이 분명한, 획기적인 새 해결책이 없는 한 영구히 여당이 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살았어도 산 것 같지 않다는 것은 통합민주당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대한민국 유권자는 과거 여당에게 일단 숨 돌릴 틈은 주었지만 살 기회는 제 하기 나름이라고 훈계한 셈이다. 과연 한국의 중도 정치세력은 한나라당의 ‘이중대’로 전락할까, 새로운 ‘중도 진보’로 거듭날까, 이것이 문제다.

마지막으로, 한쪽에서는 내부 분열의 아픔을 겪는가 하면, 또 다른 쪽에서는 대선 이후 살아남을지 의문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아주 약한 진보’ 세력의 내부 사정은 어떤가.

•대선과 그 이후의 과정에서 가장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였던 민주노동당이 지역구에서 극적으로 살아나면서 비례대표선거에서도 기본은 한 것은 18대 총선의 최대 이변이다. 17대에 비해 의석수가 반 토막 났지만 집권당의 영향력이 아주 강력한 곳에서 지역구 승리를 확보하고, 비관적이었던 기본 지지율도 남해안 벨트(울산 14.2%, 경남 10.6%, 전남 10.1%, 제주 10.0% 그리고 광주 9.4%)에서만은 평균 10% 이상이 거뜬하게 유지되었다. 무엇보다 민주노동당의 정당지지율(5.7%)은 지난 대선 때의 권영길 후보 지지율(3.0%)보다 훨씬 높았다. 즉, 민주노동당은 비록 죽었어도 죽지 않았다고, 적어도 장담은 할 수 있는 내공을 보존하였다. 아주 분명한 것은 앞으로 민주노동당이 살 길은, 강기갑 당선자의 모습에서 확연하게 밝혀졌듯이, 현장의 대중들과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것뿐이라는 점이다.

•가장 암담한 결과는 민주노동당에서 분리되어 나와 한 달도 채 안 되어 선거를 치러야 했던 진보신당의 경우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 사실을 알리고 존재감을 각인시킬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러나 한 달도 안 된 시기에 정당지지율이 의석배분기준에서 단 0.06% 부족한 2.94%를 기록하고 지역구에서 박빙의 승부를 연출한 것은 이번 선거가 진보신당에게 마지막 기회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예감하게 해준다. 즉, 진보신당에게 이번 선거는 끝났지만 진보정치는 이제 시작이라는 메시지가 주어진 것이다. 이 점은 선거 뒤 새삼 점화되기 시작한, 시민들이 진보신당에 보여준 열렬한 관심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기업인 출신이 정치를 했을 때 나타나는 한계를 보여줬던 창조한국당은 집권당 제 1실세를 상대로 한 진검 승부에서 일단 낙승하였고 정당지지율에서도 무난하게 3%선을 돌파하였다. 이것은 이 당의 아마추어적 운영체제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그 충실성과 실현가능성에 있어서만큼은 현 집권당과 가장 선명하게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경제적 메시지에 대한 유권자의 미련과 관심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추정된다. 즉, 창조한국당은 무한하게 미미한 정치 세력이지만 무한하게 가능한 현실적 대안이라는 아주 불균형한 출발점으로 한국 중도 진보 가능성의 실험대에 섰다. 정치적으로 이들이 그냥 무시당할지, 아니면 사회경제적으로 중시할 만한 수준에 도달할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본래 뭔가 가질 일이 없던 맨손과 빈주먹, 즉 적수공권(赤手空拳)의 신진 정치인들이 희망을 갖는 데는 별로 부족한 데가 없을 것 같다.

이상과 같이 강한 보수, 약한 중도, 아주 약한 진보 세력의 구도와 그 내부 사정에 대한 검토로부터 하나의 해석이 가능해진다. 즉 18대 국회를 중심으로 돌아갈 대한민국의 제도권 정치가 대단히 휘발성을 띠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즉, 각 정치세력에게 드러난 현상 가운데 어느 것도 현상 그대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제3자에게 역설은 관념적 유희성을 주는 오락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상황에 실제로 말려든 당사자에게 역설은 반드시 벗어나야 할 곤경(困境, predicament)이다. 그리고 이처럼 각 정당마다 치명적 곤경을 하나씩 안고 있다고 함은, 곧 이명박 정부 시대  대중들이 정당정치를 통해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지속 가능성이 몹시 불안정함을 의미한다.

대선이 끝나 일주일도 안 되어 인수위가 꾸려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아마추어가 아닌 진짜 유능한 전문가들이 능숙하게 국정을 요리하면서 ‘경제를 되살릴’ 비법을 펼칠 것으로 기대하고 그 정치적 반대자들은 혹시나 지난날의 족적이 진짜 미숙함으로 드러날까 공포에 떨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오는 미숙성 정책 아이디어와 스캔들은 그야말로 미숙하거나 설익다 못해 거의 공포스러울 정도로 유치했다. 권력자의 미숙함과 ‘빨리 빨리’, ‘허둥지둥’은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할 수 있다.
이미 인수위 시절부터 경제 살리기에 대한 새 정권의 능력은 지극히 미심쩍어진 상태에서 현임 대통령의 최대 공약이었던 대운하 공약은 뒤로 빼돌려 정치적 검증을 받을 기회는 기피되었다. 아예 실색할 일이다. 재개발과 뉴타운 공약이 남발되었는데, 그것은 단지 집권 여당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로 야당이 된 과거 여당도 얼치기로 따라 한 구호였다. 하지만 구여권과 현 여당 후보들이 확연히 다른 점은 그런 서울 재개발을 추진할 서울 시장과의 약속을 확언했다는 점이었는데, 그것이 결국 수도권 판세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막판에 유권자들의 몰표가 쏟아졌는데, 선거가 끝나고 승패가 갈린 지 단 1주일도 안 되어 그런 약속은 없었다는 서울 시장의 단언이 나왔다. 서울에서 18대 총선은 당장 부자로 만들어 줄 것처럼 유권자를 현혹시킨 사실상의 매수 선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패를 ‘실용’으로 내세운 새로운 집권세력의 행태란 사실상 대중을 상대로 헛된 약속을 무절제하게 유포한 다음, 목적으로 한 권력이나 승리를 얻은 다음에는 바로 취소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적 역학관계에 가뜩이나 휘발성 권력 요인들이 꽉 들어 차 있는 상태에 연소성이 높은 정치적 발언이 난무하면서 국민들의 기대, 좌절, 그리고 냉소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대한민국의 신보수 ‘실용’ 시대는 보수 장기 집권 시대를 열 것인가, 대중적 보수주의 시대가 왔는가,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묻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나라 안으로 보나, 나라 밖으로 보나 균열과 위기 요인이 도처에 부글부글 끓고 있음을 보고 겪고 있다. 대한민국은 보수적으로 안착하기에는 대중들에게 쥐어 준 것이 너무 적다. ‘생산적 복지’ 운운하지만,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자랑하면서 OECD 선진국 대열에 들어간 나라치고는 일자리, 주택, 교육, 의료, 보육, 노후 등 전반에 걸쳐서 민생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보편적 공공성의 토대가 너무 취약하다. 또 ‘지속가능한 진보’ 운운 하지만, 보편적 연대 복지의 기반을 주변화시키는 진보가 지속가능할지 의문이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은 ‘빨리 빨리’ 고질병도 갖고 있지만, 좋은 의미에서 그야말로 역동적이고 연대주의 에토스가 강하다. 개발연대에는 세계 최장의 장시간 노동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냈고, 외환위기 때는 금모으기 운동과 정리해고 고통까지 감수하며 나라 경제를 살려 냈으며, 태안반도 삼성 기름유출 사건 때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물려든 자원봉사자들이 끝도 보이지 않는 인간띠를 이뤄 태안 살리기에 헌신한 사람들이 한국의 대중이자 시민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궁지로, 투기꾼으로 내모는 그런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안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가 보기에 BBK 특검에 이어 면죄부 특검으로 종결된 삼성 특검의 결과는 집권 세력과 삼성에게 결코 성공이 아니라 명백한 실패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한 단계 더 성숙할 기회를 앗아갔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거듭날 기회도 상실하였음을 왜 모르는 것일까.

 ‘MB 시대’가 과연 이른바 ‘국민성공시대’와 ‘선진화’로 대미를 장식할지, 우리는 왠지 불길한 느낌을 감추지 못 하겠다. 한 쪽이 제대로 구실을 하지 못 하면 다른 쪽이 나서서 국가를 맡고, 그 쪽이 힘을 쓰는 동안 다른 쪽은 힘을 충전한다. 이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이다. 그러나 강한 보수, 약한 중도, 아주 약한 진보로 짜여진 제도정치판에서, 대한민국 민주화 20년의 끝, 천민적 신보수주의 ‘실용’ 시대의 개막은 ‘국가 안의 정치’ 이상으로 ‘국가 밖의 정치’, 운동 정치의 확장을 예고한다. ‘실용’정부 시대 오늘의 대한민국은 6월 항쟁을 예고했던 20년 이전 그날로 되돌아간 것일까?

이번 호 좌담에서도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지만, 대선 전후부터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진행된 진보 재구성 논의들에서 한 가지 결론은 ‘진보의 허브’를, 광범하게 열린 진보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흐름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는 것 같다. 제도 정치의 휘발성이 매우 높고, 과도한 평등주의 때문에 잃어버린 10년이 되었다고 혹세무민한 신보수는 깊숙한 균열과 위기 요인을 안고 있다. 이것이 한국의 신진보에게는 어떻게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한국의 진보는, 시민사회 운동과 중도 진보 정당은 어떻게 거듭나야 하며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우리는 이 질문을 던져 본다. <시민과 세계> 이번 호가 부족하나마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 제 1막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며 등장한 신보수 체제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진보의 새 활로를 개척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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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8 11:59 2008/04/2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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