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불태우나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이다
각 정당마다 인터넷이 고민거리다. 네티즌 비례대표 후보를 내세우겠다는 정당이 있는가 하면, 사이버 대변인 제도 등을 운영하는 정당도 있다. 모두 현실 정치에서 인터넷과 그 위에서 발언하고 의사소통하는 네티즌의 '힘'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과 네티즌을 향해 '구애'의 눈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인터넷을 둘러싸고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선거법 개정을 통해서, 국회가 네티즌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당장 헌법으로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오마이뉴스·프레시안과 같은 인터넷 신문사를 물론이고,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디지틀조선일보, 동아닷컴 등의 인터넷 언론사도 인터넷 실명제를 반대하고 나섰다. 더나아가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제도가 국회를 통과하면 불복종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으며, 미디어다음와 같은 포탈 사이트의 뉴스 사이트들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
도대체 인터넷 실명제을 도입하려는 명분은 무엇인가? 선관위와 정개특위의 설명을 들으면,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다. 많은 네티즌들이 허위비방과 욕설을 가득 담고 있는 댓글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으며, 선거 시기가 다가오면서 각종 불법행위가 인터넷에서 성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니 인터넷에서의 글쓰기를 어떻게라도 규제를 해야 한다는 네티즌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이다. 선관위와 정치권은 이런 네티즌의 정서를 편승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여 익명에 기대 무책임하게 허위비방의 글을 올리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주장에 대해서 한편으로 공감한다. 그래서 내 자신은 인터넷 상에서 모든 글을 실명으로 쓰고 있으며, 또한 자율적인 실명제에는 반대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법률에 의거해서 강제되는 인터넷 실명제는 찬성할 수 없다. 인터넷 실명제를 추진하는 것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빈대를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불태우는' 격이다. 소위 '사이버 테러'를 가하는 몇몇 네티즌을 규제하겠다고, 모든 네티즌들로부터 익명에 기반한 표현의 자유를 빼앗아 가려는 것이다. 모든 네티즌이 허위정보나 타인에 대한 비방을 유포할 것이라는 예단을 갖지 않고서는 이런 제도를 추진할 수는 없다. 떳떳하면 실명제를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냐는 혹자의 주장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정신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한편 인터넷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 이외에 또다른 쟁점을 가지고 있다.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이 동일한지를 확인하는 실명 확인 절차는 불가피하게,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과 충돌하게 된다. 실명 확인을 위해서 현재 이용이 검토되고 있는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DB)는 행자부의 주민등록DB와 신용정보회사들의 신용정보DB이다. 그러나 이 각각의 DB는 고유한 목적으로 각각의 동의절차를 통해 수집되고 구축된 것으로, 실명 확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목적 외의 이용으로 허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선거법상의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적이라는 지적은 필자 개인 혹은 시민단체의 주장만이 아니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는 인터넷 실명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시민사회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월 17일 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제21조 뿐만 아니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제17조)과 국민의 기본권 제한의 원칙을 밝힌 헌법조항(37조)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반대의견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또한 여러번의 토론회와 심포지엄에서 거의 모든 헌법학자와 법률가들도 위헌이라는 주장에 동의를 표했다.
여기서 필자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위헌이 명백한 인터넷 실명제를 국회가 당장에 철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는 인터넷 실명제는 국회 의원들이 가지고 있는 인터넷에 대한 '적개심의 표현'이라는 많은 논자들의 주장에 동감한다. 인터넷이 비공개와 침묵으로 일관해 온 낡은정치를 끝장낼 수 있는 파워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국회의원들이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태정치의 본능적인 보호본능이 인터넷에 재갈을 물리도록 했고, 위헌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귀를 틀어막고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 달리 설명할 만한 논리를 찾을 수가 없다.
한편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이라는 원론적인 문제를 제쳐두고라도 현실적인 이유에서라도 인터넷 실명제는 불가능하다. 2월 9일 국회 정개특위가 선개법상 인터넷 실명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상위 50위 권의 인터넷 언론사를 대상으로 하기로 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를 반대하던 몇몇 의원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표결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결정된 바는 모든 인터넷 언론사에 이 제도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개정 선거법안에 규정(제8조의5)된 인터넷 언론사의 범위에는 사실상 정치·시사적인 내용을 다루는 개인 홈페이지까지 모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되며, 선관위도 이 해석에 대해서 부정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를 처음 제안한 선관위마저도 이런 상태의 실명제는 현실성에 큰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법안에 의하면 실명제를 위한 기술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1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개인 홈페이지 운영자들이 100만원 정도로 추정하는 비용을 지출할 경제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불법을 저지르거나 사이트와 홈페이지 폐쇄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이미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앉아서 선거법 위반자가 되느니,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불복종 선언에 나서고 있다. 지킬 수 없는 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를 강행하여, 국회가 불법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회 정개특위에서는 인터넷 실명제를 재론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제 남은 절차는 법사위와 본회의 의결 뿐이다. 그 중에 법사위는 입법 내용이 위헌적인 내용이 있는지를 심사하는 고유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국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국회 법사위가 위헌성이 명백한 법률을 통과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최소한의 기대가 어긋나지는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참고로 '함께하는시민행동'이 24일 발표한 인터넷실명제 관련 쟁점 설명글을 첨부한다.
| 인터넷실명제에 관한 10가지 오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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