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주민카드 시행계획 철회하라
프라이버시권 :
1997/07/18 00:00
정부는 근거법률없이 시행하는 전자주민카드 사업을 당장 중단하고, 범 국민적 논의를 시작하라.
정부는 지난 1995. 4. 이른바 '전자주민카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확정하고 이미 전자카드 발급기계도입계약을 체결하는 등 구체적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 14일에는 임시국회 내무위원회에 전자주민카드 제도의 근거법률이 될 주민등록법 개정안이 상정되었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내년 10월부터 전 국민이 전자주민카드를 소지하게 될 것이고, 제주도 주민의 경우는 내년 4월부터 전자주민카드를 소지하게 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단순히 종이신분증이 전자신분증으로 대체된다거나 주민등록등초본의 발급이 줄어드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이 제도는 우리들의 생활 방식을 하루 아침에 바꾸어 버릴 수도 있는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도, 이 제도의 도입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아주 낮고, 국민들은 제도의 문제점은 고사하고 전자주민카드가 무엇인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전자주민카드 시행반대 공대위는 주민등록법 개정안 상정에 즈음하여 다시 한번 이 제도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먼저, 전자주민카드 제도는 국민 모두의 개인정보를 한 곳에 모아 전자적으로 관리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제도이다. 개인정보가 한 곳으로 집중되면 정보유출의 위험이 증가함은 물론 권력기관에 의한 오용, 남용의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이 제도는 헌법이 정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권(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기도 하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3,400만개의 전자주민카드와 연결되는 어마어마한 국가전산망은 행정부의 권한을 거의 무한대로 확장시킬 수 있으므로 궁극적으로는 권력분립의 기초마저 무너뜨릴 우려가 있다. 더구나 전자주민카드 제도의 전제인 주민등록제도 자체에 대하여도 위헌의 의심이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기도 하다.
우리는 전자주민카드 제도가 위와 같은 점에서 위헌의 여지가 많은 제도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 미국, 호주, 헝가리 등 많은 나라에서 법원의 판결이나 시민의 절대적 반대로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려는 정부의 시도가 무산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제도의 또 하나의 큰 문제점은 제도의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오만한 태도이다. 전자주민카드 제도는 국민들의 일상생활은 물론 사회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명백한 제도이기에, 그 도입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전문가들의 정밀한 검토와 다양한 토론을 거쳐 국민적인 의견수렴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만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을 수 있는 제도의 문제점이 시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기는 커녕, 안기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관료들이 밀실에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채 이 제도를 추진하여 왔다. 더구나 근거법률도 제정되기 전에 제도의 기반시설을 구축하며 그 시행을 기정사실로 만들려 하고 있다. 정부는 전자주민카드 제도가 기술적인 특성이 강하기 때문에 미리 법률적 근거를 만들 수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의 모든 행위는 법률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원칙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는 민주국가의 기본원리이다. 제도의 기반시설을 모두 갖추고 그 시행을 기정사실화 한 다음 국회에서는 법률을 '통과'시키는 절차만을 밟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을 깔보는 의식의 발로에 다름아니다. 정부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예산도 전자주민카드 사업비가 아니라 주민등록증 갱신사업비이다. 이러한 정부의 행위는 예산을 전용하고 있다는 비판외에, 국회를 속이고 예산을 배정받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더욱이 지금은 정권교체기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분위기여서 이 문제에 관하여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 없는 시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자주민카드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 더하여, 이런 어수선한 시기를 택하여, 국민적 공감대형성과정을 거치지 아니하고 서둘러 시행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정부가 국민의 눈을 피하려 일부러 이 시기에 도입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면, 효과는 불확실한 반면 엄청난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이 제도의 시행을 미루고, 다음 정부의 결정에 맡기는 것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전자주민카드 제도의 도입을 전제로 하는 모든 행위를 당장 중지하여야 한다. 또한 관련된 모든 정보를 공개하여야 한다. 정부가 전자주민카드의 시행을 전제로 하는 모든 행위를 당장 중지하지 않는다면,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예산집행이 이루어지게 되며, 나아가 관련 산업체에서는 전자주민카드의 시행을 전제로 하여 많은 시설투자를 하게 된다. 만약 주민등록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지 못하거나 전자주민카드 발급거부라는 국민적 저항을 받아 제도 자체를 시행하지 못하게 될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렇게 될 경우 국가는 물론이고 이 사업을 전제로 투자를 하였던 많은 기업들이 입을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정부는, 전자주민카드 제도의 도입을 전제로 하는 모든 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열린 마음으로 제도의 도입여부 문제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는 국민적 논의의 장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어 보겠다고 공표한 모든 후보들도, 전자주민카드제도 도입에 관한 공식입장을 천명하여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통합전자주민카드 시행반대와
프라이버시권보호를 위한 시민사회공동대책위원회
전자주민카드 시행반대를 위한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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