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이 국세청장에게 보내는 공개편지(5)



청장님, 제가 제보한 사건은 구구단도, 미적분도 아닌

"1+1=2"라는 답을 구하는 수준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왜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라고 하시나요?


안녕하십니까?

청장님

청장님께서는 혹시 이러한 경험이 없으신지요?

너무도 게을러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부하직원이 있었습니다. 비슷한 경력의 다른 직원은 10가지의 어려운 일을 처리하는데, 게으른 부하직원은 단 한가지의 일도 처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일을 시킬까 곰곰히 생각한 끝에 가장 쉬운 한가지의 일을 골라 일을 시키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일처리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제가 다 준비하여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때, 너무도 화가 나더군요. 청장님께서 직접 이런 경험을 하지 않으셨어도 어떤 기분일지 짐작은 하시겠지요? 지금의 제 기분이 바로 그때의 기분과 매우 흡사합니다.

공무원을 흔히 公僕이라고 합니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머슴이라는 뜻이지요. 저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국세청이 조세정의를 위해 똑바로 일할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제가 과세처분을 해달라고 탈세제보한 사건은 삼성의 여러 변칙증여사건중 가장 간단한 사건입니다. 게다가, 과세처분에 필요한 제반 증거서류를 제출하여 사실상 밥상까지 차려준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국세청이 미동도 하지 않으니,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탈세제보한 사건이 얼마나 간단한 사건인지 입증하기 위해 삼성이 저지른 많은 일중 한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99년 6월 30일, 삼성은 삼성자동차 채권단에 대한 손실보상 차원에서 이건희 회장의 사재 2조8천억원을 내놓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내놓겠다는 사재는 다름아닌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이었습니다. 400만주를 2조8천억원으로 계산하였으니, 주당 70만원으로 친 셈입니다.

한편, 이재용씨가 최대주주로 있는 ㈜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의 지분이 98년 9월에는 불과 2.25% 였는데, 99년 6월 28일 현재로는 20.7%로 급격히 증가하였습니다. 에버랜드는 이 기간동안 삼성생명의 주식을 주당 9천원에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아버지가 빚갚으려고 내놓을때는 70만원, 아들이 사들일때는 9천원, 도대체 어떤게 맞는 거죠?

그리고, 98년 9월 현재 10%이던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보유지분이 99년 6월 28일에는 26%로 증가하였습니다. 사재출연을 목적으로 지분을 증가시킨 것 같은데, 지분증가의 경위와 취득가액, 취득자금출처등은 아직 밝혀진 바 없습니다. 다만, 삼성의 전현직 임원 13명이 소유한 삼성생명 지분 17.87%가 같은 기간 동안에 감소하여, 이들의 지분이 이건희 회장에게로 이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 낳고 있습니다.

1999년 8월에는 이건희 회장 과 삼성계열사들, 그리고 삼성자동차 채권금융기관들이 이건희 회장의 사재출연과 관련하여 합의서를 체결했는데,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채권단에 무상으로 증여하고 이 주식을 2000년 12월 31일까지 계열사들이 사주어서 채권단에 2조4천5백억원을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입니다. 즉, 에버랜드가 주당 9천원에 산 주식을 다른 삼성계열사는 주당 70만원에 사들이겠다는 것입니다. 이 합의서에 따라, 삼성전기는 그동안 삼성생명 주식 120,638주를 주당 70만원에 사들였습니다.

도대체 삼성생명의 주식가치는 얼마일까요? 지난 5월, 제일제당이 삼성생명 주식 25만주를 CJ39쇼핑에 주당 28만원에 매각한 적이 있습니다. 이 거래에 영향을 받아서 인지 삼성생명은 최근에 장외시장에서 20 - 3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삼성생명의 주식가치를 28만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삼성전기는 삼성생명 주식의 구입으로 506억원의 손실을 입게 되고, 이로 인해 삼성전기 주주들은 주당 650원의 손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즉, 삼성전기의 주식 1,000주를 보유한 소액주주는 65만원을 이건희 회장에게 갖다 바친 셈입니다.

삼성전기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위의 합의서에 따라, 삼성의 전계열사들이 삼성생명의 주식을 주당 70만원에 본격적으로 구입하기 시작하면, 삼성계열사의 소액주주들은 이건희 회장에게 일정액을 갖다 바쳐야 합니다.

만약, 국세청이 충실한 공복이라면, 이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을 좌시하지는 않겠죠. 이 일을 손보겠다고 나선다면, 조사할 일이 엄청 많을 것입니다.

우선,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증가 사유와 그 경위를 조사해야 하고, 취득한 것이라면 취득가액이 얼마인지 또 취득자금의 출처는 무엇인지 조사해야 합니다. 만약, 명의신탁된 주식을 실명전환한 것이라면 명의신탁의 경위와 실명전환의 경위도 조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계열사가 삼성생명 주식을 주당 70만원에 취득하는 것이 부당내부거래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지,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주식을 주당 9천원에 구입한 것이 적정한 거래인지등도 조사해야 합니다. 이 이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저는 현재 이 일을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구구단도 안외우려는데 복잡한 미적분을 풀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위의 일이 복잡한 미적분 문제라면, 제가 탈세제보한 사건은 1 + 1 = 2 정도의 간단한 문제입니다.

이재용씨가 인수한 삼성SDS 신주인수권의 신주인수가액이 주당 7,150원임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당시 삼성SDS 주식이 장외시장에서 주당 58,000원 정도에 거래되었음을 입증하는 증거자료 4가지를 제출하였습니다. 이 경우, 58,000원과 7,150원의 차액에 대하여 증여세를 과세하여야 함은 법에 명시되어 있고, 이에 대하여 시비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정도로 간단명료한 사건도 처리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수백번을 생각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제 요구가 무리한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는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인가'의 문제로 평생을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나는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의 문제가 더욱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살아온 날이 앞으로 살아갈 날 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청장님은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내일, 여섯 번째 편지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2000년 11월 28일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 윤 종 훈 올림
김보영


2000/11/28 00:00 2000/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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