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UP 최저생계비 캠페인'에는 각계 인사들이 하루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첫날 김창국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하루 체험을 하셨습니다. -편집자 주

'서울시내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성북구 하월곡동 산2번지의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 70세 할머니가 계시는 한 집에 들어섰을 때, 방문객을 맞이하듯 정면 벽에 걸린 둥근 벽시계의 바늘은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내 손목시계를 보니 오후 3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코딱지 만한 마루에 올라서자 낡은 장농 위에 조그마한 탁상시계가 놓여 있어 살펴보니 1시 35분에 멈춰 있었다. 할머니와 마주 앉아 인사를 나누고 방안을 둘러보다가 또 하나의 벽시계를 발견하고는 한 동안 그 시계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그 벽시계의 시간은 10시 10분 전이었고 그 집을 나올 때까지 혹시나 하고 몇 번이나 다시 쳐다보았지만 시계바늘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약 30분 후, 집안 청소를 해줄 목적으로 찾아간 50대 아저씨 혼자 살고 있는 집에 들어서면서도 내 시선은 시계를 찾고 있었다. 방 한구석에 팽개치듯 놓여있는 조그마한 탁상시계는 1시 35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개수대에는 음식물 찌꺼기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식기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혼자서 외로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아저씨는 식기를 씻을 힘도 없기에 그 식기들은 식사 때만 찾아와 도와주는 아줌마(?)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식기를 닦으면서도 정지된 시계바늘들의 영상은 계속 내 머리 속을 맴돌고 있었다.

1년 6개월 후면 모두 철거될 900여 가구가 밀집된 '마지막 달동네'에는 100여 가구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70세 할머니도, 50대 아저씨도 정부가 주는 최저생계비 만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처지라서 '시간'이 필요 없는 것일까. 조그마한 공간에 시간과는 무관한 시계를 3개나 배치해 놓은 할머니의 뜻은 무엇일까.

그들에게서는 희망을 찾아볼 수 없었다. 희망이 없는 삶은 바로 '시간이 정지된 삶'이 아니겠는가. 시계바늘이 멈추어 선 그 시계들은 그들의 희망도 함께 정지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다.

그렇다면 그 시계바늘들이 다시 움직이게 하고, 그들에게 아주 작은 희망과 소박한 꿈이라도 갖게 해주는 길은 없을까.

우리는 빈곤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 문제도 그렇듯이 '복지'문제로만 접근하기보다는 '인권'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즉, 생명권을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헌법상 의무를 지고 있으므로(헌법 제10조), 빈곤 문제도 정부의 시혜 내지는 복지의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가장 기초적인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국민의 생명권 보장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최저생계비를 몇 % 인상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시혜 내지는 복지 차원의 소극적 접근방법이라 한다면, 생존경쟁에서 탈락한 빈곤층의 생명권을 국가가 어떻게 보장해 주어야 하는가에 중점을 두는 것은 인권차원의 적극적 접근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적극적 접근만이 빈곤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와 아름다운재단이 공동으로 펼치는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사업이 '시간이 정지된 삶'을 살고 있는 수많은 할머니와 아저씨들에게 '시간이 흐르는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희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릴레이 일일 체험자 김창국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2004/07/05 21:00 2004/07/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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