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내 이름이
빈곤/분배 :
2004/07/14 16:41

저 토마토 나좀 줘~~
아침에 가계부 조사로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다녀왔다. 할아버지댁에 갔을 때 할머니께서는 감자를 삶기 위해 숟가락으로 껍질을 벗기고 계셨다. 할아버지께서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칼이 없어 숟가락으로 벗기고 계시는 할머니를 거들어 큰 감자 두개를 냄비에 넣고 방으로 들어와 편히 앉았다. 얘기 도중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저 토마토 나좀 줘~허허"하며 환히 웃으시는 것이었다..
뜬금없는 말씀에 난 어안이 벙벙하여
"네?"라고 물었더니
"아니.. 저 티비 속에 토마토..허허"
뒤돌아 보니 티비 속에서는 요리 프로그램으로 토마토가 반쪽 썰어져 있었고 씹히면 톡하고 터질 것 같은 연두빛, 붉은빛의 속이 환히 비추어져 있었다. 마치 우리 가족이 요즘 티비를 볼 때면 나오는 음식들마다 감탄을 내지르다 채널을 돌려버리는 것과 같아 보였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말씀이 할머니와 병원에 갔다 오는 길에 할머니께 이것 저것 사주고 싶은데 그 때마다 할머니께서는 생활비가 빠듯하다며 안드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할미 입에 들어갈 때가 더 좋아..근데 안먹어..
어제도 닭죽을 난 큰 대접에 주고 나머지를 먹었어.."라며 속상해하셨다.
아무말씀도 없으신 할머니를 바라보며 이 두 분이 참 아름답다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죽어도 장례 안 치러줘...
그리고 수급자의 대상에서 자식이 있다는 것으로 제외 되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우리는 정부가 돈 안줘? 자식이 있다고 안준다는데 자식도 살기 힘드니..
우리가 벌어 먹어야 하는데 할미도 여든 넘으면 구청에서 일 안시켜줘.."
그리고 말끝에 할머니께서 "우리도 좀 달라고 해줘.. 법 새로 만든다며.."
나는 그저 "네~ 잘못된 거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다 말할꺼예요.."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죽어도 장례 안치러줘.. (정부에) 돈 받는 노인은 장례도 치뤄주는데 우리는 아냐.."
이 말이 가장 씁쓸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에 타 버린 감자가 쇠그릇에 수북히 담겨져 나왔다.
"다 타버렸네.. 냄비도 새까맣게 되버렸어..^^"할머니께서 웃으셨고, 나도 함께 웃었다. 탄 감자가 구수하게 느껴졌다.
놀이방의 예쁜 아기, 하양이
발길을 돌려 놀이방으로 가니 하양이(12개월)가 나를 알아보고 기어왔다.
처음에는 아이같지 않게 조용하고 의젓해서 더 눈에 띄었던 아이..
나는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처음에는 낯설어 하던 하양이도 이제는 자기를 예뻐하는 마음을 아는지 곧잘 오고 우는 소리도 한다. 이제서야 아이같아 진 아이.... 그런 하양이의 밥을 먹일 때 안고 먹이니 아주머니께서 버릇된다고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아이를 모두 안을 만큼의 아주머니가 부족하다보니 습관이 되면 후에 고생하실 분들은 아주머니이신지라 그 마음을 알고 내려놓았다. 그 목소리에는 모두 안아주고 보듬어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졸음에 겨운 아이를 안고 밥대신 우유로 재웠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 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자고 있는 하양이의 마음 속에서는 어떤 꿈이 놀고 있을까?'
할머니의 손에서 엄마없이 자라고 있는 하양이가 측은하게 느껴졌던 첫 마음이 이제는 하양이 하나로 보였다. 어린 아이가 벌써 몸으로 마음으로 느꼈을 상처가 자고 있는 모습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이 평화로웠다. 너무 사랑스럽고 예뻐서 안아주고 입맞추며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이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고.. 지금 내가 아이를 보듬어주고 있는 이 손길을 기억해서 나중에 자라면 사회 속에서 또 다른 사람들을 보듬으며 살아갈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니까...이 곳에서 자주 의문이 들었던 어려운 나의 이웃을 왜 보살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마음 속으로 전해져 온다..
그들의 어려운 모습 속에서 나는 나를 본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잘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누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곧 그만큼 나로 인해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같을 것이기 때문에....하양이에게 이제 슬픈 자장 노래는 멈추고 하나의 시를 읊어주고 싶다.
그대에게 내 이름이
-푸슈킨-
그대에게 내 이름이 그 무슨 상관이리?
먼 바다 바위를 때리는
파도의 슬픈 일렁임처럼 그것은 금방
사라질 것이라네.
인적 없는 숲 속에서 한 밤의 소리처럼
그것은 기억의 종잇조각에
알 수 없는 말로 씌어진
묘비명의 모양새처럼
죽은 흔적을 남길 것이리라
내 이름이 어떻다는 것인가?
신선하고 격렬한 흥분 속에
이미 예전에 잊혀져서 그대의 이름에
깨끗한 부드러운 추억을 이제는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리라
그러나 슬픔의 날에는
살며시 추억에 잠겨 입술에 떠올리리라
나를 기억하는 이가 있노라,
내가 그의 가슴에 살고 있노라고....
하양이는 지금의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하양이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수녀님의 사랑, 놀이방 아주머니의 사랑, 길러주시는 할머니의 사랑, 그리고 그런 하양이를 잊지 않을 나까지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래서 내 마음 속에는 그런 하양이가 살고 있을 것이라고.. 예쁘고 예쁜 하양이가 때때로 내 삶에 사랑이 되어 기억될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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